[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24

in #kr-pen6 years ago

별을본다_03.jpg
ⓒkim the writer


지난 회차는 본문 아래 링크되어 있습니다.










   광장 한가운데, 그녀가 멈췄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눈 부신 햇살에 살짝 찡그린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마침내 커피 트럭 앞에 멍청하게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한참 동안 시선을 고정했다. 무언의 힘이 나를 앞으로 떠밀었다. 그녀의 인력이 나를 앞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만났다.

   “당신이군요.”
   그녀는 여전히 햇빛에 미간을 찌푸린 채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네, 저예요.”
   나는 히죽 웃었다. 동시에 스스로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입은 여전히 귀에 걸려 좀처럼 내려올 줄 몰랐다.

   “몸은 좀 어때요? 다친 덴 없어요?”
   “다친 덴 없지만 두 번은 못 할 거 같아요. 그쪽으로 전문가가 아니라.”
   “맞아요, 그래 보이더라구요.”
   우리는 함께 웃었다.

   “아 참, 그 아기 엄마는 어떻게 됐어요?”
   “그분은 괜찮아요. 타이밍을 잘 맞췄죠. 조금만 늦었더라면 위험했겠지만…….”
   그녀는 만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를 쳤다.
   “그래도 다행이지 뭐예요. 아기도 다친 데가 없더라구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는지! 아, 그렇잖아도 당신을 찾았어요.”
   나는 놀라 물었다.
   “그쪽도요?”

   그녀는 잠깐 주춤하더니 난감한 미소를 보였다.
   “아뇨. 그분이랑 남편분이요. 한번 연락해 보시겠어요? 명함이 있을 텐데…….”
   그녀가 가방을 뒤지는 동안 나는 어쩐지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괜찮아요. 무사하다면 그걸로 됐어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사뭇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나는 눈앞에 선명한 그녀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에메랄드처럼 푸르게 반짝이고 있었다. 순간 나는 또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마치 굉장히 오랫동안 잊고 있는,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무언가가 그녀의 눈동자 너머에 감춰져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그녀의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녀가 물었다.

   “그런데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요?”
   나도 그게 궁금했다. 하지만 어떻게 설명하든 그녀는 물론 나조차 납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여기에 서 있다가 그렇게 불러 보는 게 취미예요. 제일 예쁜 여자에게 말이죠.”
   “진짜요?”

   말하고 나니 파커 씨가 경멸하는 양아치들이나 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싶어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양아치처럼 보였을 내 시선을 피해 주위를 둘러보다가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설마 진짜로 믿는 건 아니겠지.

   “그러니까 그게 당신이 하는 일이군요. 오늘은 제가 제일 예쁜 여자고?”
   그녀의 싱거운 농담에 나는 적잖이 안심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지미처럼 매력적인 미소가 아니라는 게 천추의 한으로 다가왔다.
   “저는 저기서 일해요.”
   나는 엄지를 치켜들어 등 뒤를 가리켰다.
   “괜찮으면 커피 한잔 어때요?”
   “아하.”

   그녀가 알 것 같다는 뉘앙스로 감탄사를 뱉었다. 문득 금방의 제안이 어떻게 들렸을지 깨달은 나는 서둘러 해명에 들어갔다.
   “절대 영업 전략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 말은, 한잔 사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요?”
   미심쩍은 미소로 그녀가 물었다.
   “그쪽이 괜찮다면요.”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 내용은 ‘고작 그것밖에 못 하냐’ 정도일 것이다. 그에 부합하듯 그녀의 미소는 난감한 뉘앙스로 바뀌어 있었다.
   “역시 좀 더 좋은 데로 가는 게 낫겠죠? 마침 퇴근 시간이거든요. 사실 여기 커피 그렇게 맛있진 않아요.”
   농반진반으로 공세를 몰아가자 그녀가 확실히 의사를 밝혔다.
   “저도 그러고는 싶지만……, 지금은 시청에 볼일이 있어서요.”
   “기다릴게요.”
   나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패기를 넘어 무례가 된다. 그녀가 주저하며 말했다.

   “오래 걸릴 텐데요.”
   옳거니. 나는 확신을 느끼며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걱정하지 마세요. 추가 근무가 있는 걸 깜빡했군요.”
   내 너스레에 그녀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못 말리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항복 의사였다.
   “30분, 어쩌면 그 이상 기다려야 할걸요.”
   “제대로 봤군요. 기다리는 게 제 특기죠.”

   그녀는 정말 못 당하겠다는 듯 웃었다. 그녀가 웃는 게 좋았다. 그녀를 웃게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 흐뭇함이 내 표정으로 드러났다. 우리는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직 어색한 듯 충분히 시간을 들여 점차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럼 이따 봐요.”
   “서두를 거 없어요.”
   나는 멀어지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근데, 이름이 뭐라구요?”

   그녀가 뒤돌아보며 물었다.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데자뷔가, 데자뷔의 데자뷔가 내 머리를 아찔하게 뒤흔들었다. 그녀가 뒤돌아보며 내 이름을 묻고 내가 그에 대답하는 장면이 내가 맡은 대사를 채 다 하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재현되었고, 그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 연이었다. 나는 마치 그렇게 하면 현기증이 물러나기라도 한다는 듯 씩씩하게 소리쳤다.

   “잭!”

   그녀는 한낮의 햇살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다가 건물이 드리운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믿을 수 없는 일을 목전에서 보는 건 흔치 않지.”
   파커 씨는 우리의 재회를 그렇게 평했다.

   운명. 믿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 일들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도 있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복잡한 인과의 톱니바퀴를 거친 희박한 확률이 만들어 낸 기적. 그러나 우주라는 공간으로 의식을 확장하면 아무리 희박한 확률일지라도 0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된다. 우주의 관점에서 그건 그저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뿐. 하지만 때로는 그런 장난이 인간의 삶을 압도하는 거대한 느낌표가 되기도 한다. 그녀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운명이라는 단어가 촘촘한 거미줄로 신경망을 대체했다.

   “조심하게. 운명이 장난을 시작하려는 모양이야.”
   파커 씨가 턱짓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나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나서 단번에 이해했다.
   “별일 있겠어요?”
   내 말은 운명에게 들려주려는 것과 다름없었다.

   “별일이 있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 원래 전前자가 붙는 건 다 무서운 법이거든. 내 전처처럼.”
   그 말을 남기고 파커 씨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다는 듯 얼른 자리를 피했다. 나는 흑발을 찰랑거리며 다가온 낯익은 여인에게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어쩐 일이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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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나간 김작가님 찾기 운동본부

얼마전 대상포진으로 고생하신다는 것을 알았지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겼는지 걱정이 됩니다.
납치? 입원? 귀국?
아무튼 집나간 김작가님 찾기 운동본부 가동합시다.

오겡끼 데스까~!!!(러브레터 버젼)

제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차마 생각이 현실이 될까 두려워 입에 담지는 못했지만, 대상포진 생각을 안할수가 없었어요.
며칠간 댓글 하나 없이 그러나 여러 글에 여전히 보팅을 해 주고 계신것을 보면 지켜보고 계신건 분명한데... 김작가님!~!!! 대체 무슨 일이 있으신건지 여기 목빠지게 기다리는 팬들의 마음을 좀 살피셔서 소식을 알려주세요!!
어쩔 수 없이 마신봇의 주문을 외워 봅니다.

龜何龜何 구하구하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수기현야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 약불현야 (내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번작이끽야 (구워서 먹으리.)

김작가님 빨리 나타나지 않으시면.. 구워서 먹으리..(응??)

외계인에게 납치당해 강제 입원당해 강제 귀국당할 뻔했다가 겨우 긴급 피난처를 찾아 숨어 있는 상황입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 다행입니다.
뱀파이어에게 끌려 가신줄 알았습니다....

헉 그러게요;; 뱀파이어나 외계인이나 뭐 그렇지만요;; 그래도 암튼 무사하시다니 다행입니다. 잘 피신해 계시다가 돌아오실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음악실]

saturday.jpg

잭 이자식...
어설픈 실력으로 바람을!?

자본주의의 노예답게.

또.. 구렁이 담넘어가시듯..
음악실을 여셨어...........

여기서 담배 펴도 되여???

그럼요. 술도 됩니다. 약만 하지 마세요.

제가 시간이 되면 약을 먹어야하는데..

언더락으로 한 잔 부탁 드립니다 ㅎ

운명을 믿는 자로서 응원합니다~~~

아까전에는 없었는데 하던 일을 마치고 읽고나니 음악실이 생겼네요
마치 21시간동안 읽지 못한게 운명처럼 .. 한대 태워도 된다고 하니 태우고 가겠습니다.
후~~
운명같은 만남이 이뤄졌지만 파커씨의 말대로 장난일지 이겨낼지 ..

오늘 해야할 일
방 청소 / 강의 준비 / 코딩몰라여 포스트 / 봇 조정 / 몬헌

먹으면 죽을 것 같은 우유가 냉장고 구석에 있었어요. 로봇청소기는 나의 인내심을 유지해주는 최고의 도구. 설거지 넘모 허리 아파요... 청소 끝났따아ㅏㅏ

학생이 뭘 궁금해할지 몰라 전부 준비했습니다. 학생 : (겁나 싫음)
준비 끝났드아아아ㅏ - ! 이제 포스팅하러 가즈아ㅏㅏㅏ!

딴짓도 안했건만 남은 두 가지를 하기엔 '오늘'이 아니게 될 것 같네요... 크흑..

아.. 잭이 클레어의 눈을 바라보는 장면이 슬로우모션으로 그려졌어요 ^^
근데 수지큐가 왠지 잭을 잊지 못하고 새로운 만남도 인정 못할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Lindsay Perry의 Dancin' With the Devil입니다.
많이 알려진 가수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이 곡은 2015년에 발표되었는데 이번 제시카 존스 시즌2 OST에 삽입되어 새롭게 주목받았습니다. (EP2 캐리-앤 모스 씬에 깔림) 음악실에서 꼭 한번은 소개하고 싶었던 곡입니다.

잭이 감금시간이 너무 길었나봐요.
클레어에게 던진 멘트가 매우 고전적이에요.ㅋㅋ

저도 오래된 사람인가봐요.
댓글 라인을 못 찾겠어요.
요줄인가? 아랫줄인가??
엄청 헷갈리네요.ㅜ

추천해주신 노래를 들으니... 아.. 출근하기 싫어라....ㅋㅋㅋㅋ

그런데 잭의 유혹기술이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발전이 없었던 듯 합니다....-ㅁ-

새로운 소식을 찾아서 블로그를 왔는데 여전히 이전글이 남아있네요.
그냥 가긴 아쉬워서 음악실에 노래 한곡 틀어놓고 갑니다.^^

저도 찾아왔다가, 김작가님이 혹시 어디 편찮으신건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하고 갑니다!
뭔가 핵폭탄급을 준비하고 계신걸까요? +_+

기대기대!!.ㅋㅋ

그르게요. 작품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고 계시다면 일단 끽연실에서 수다라도 떨고 가시지요-

그르게 말입니다! 여기저기 보팅은 여전히 해 주시는것 같던데..
무슨 일인걸까요? +_+ 오늘도 소식이 없으시네요;;

운명 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운명은 만들어 가는거라고 하시는 분도 있고요
앞으로 더욱 더 궁금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

바삐 지내시는 모양입니다. 유일하게 담배 필 수 있는 곳이 끽연실인데 사람이 텅텅 비었군요 ㅜ.ㅜ 한숨 쉬면서 커피 마실 곳이 필요합니다...

몰래.. 또 불법 영업 해봐요..
그럼 김작가님 짠 하고 나타날지...

똑똑똑.... 집 나간 김작가님 언제 오나요????

행패를 좀 부려볼까요?
주인~~ 이리 좀 나와~~ (취한 진상 손님 빙의)

술취해서 우엑~ 까지 하세요..
꼭 아주 아주 큰 전을 부치셔야합니다.. ㅋㅋㅋ

큰 전

....... +_+
족장님의 특이한 상상력은 항상 이렇게 발휘되시는 건가요..... 휘리릭!!

어딜가요... 쏭블리님이 만들어 놓은 큰전 치우셔야죠..

저는 송블리님 옆에서 같이 외치면서 술병이라도 들고 서 있을까봐요 ^^
(취한 손님 친구 1)

기다리는 분들을 보니 이 곡이 생각나네요.

아주 분위기 딱인데요 ^^

집나간 김작가님 찾기 운동본부가 열렸습니다.
위에 댓글에 보시고 운동본부 행동대장을 맡아주시길....

아름다운 나는 한국 팀으로부터 upvote와 후속 조치를 받았어. resteemid
welcome for any one from koria in youre family @krteam

막상 만남이 현실적이게 되니 기분이 이상하군요.

오늘은 가게 문 닫으셨네요..
운명이 수지로인해 운명의 장난이 되지는 않겠죠.ㅎㅎ

아 흑발을 찰랑거리며 다가온 낯익은여인.. 불안한데요 .

"조심하게. 운명이 장난을 시작하려는 모양이야.”

파커씨의 말도 불안하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딱 이거 쓰려고 했는데....
혹시 뒤에서 다 지켜보고 있던건 아닐런지

아.. 이 허전함..
끽연실도 없고.....
테라스도 없고.....

그나저나 그녀를 만나고나니 막혔던게 시원하게 뚫리는듯한 기분이드네요

이번 회에 잭 복 터졌네요 ㅎㅎ

어라 댓글 시스템은 어디로...


드디어 운명의 그녀와 우연히 혹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해 놓고는 전여친을 등장시키다니 잭에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요? 전에 댓글로 말했듯 오늘도 쿨의 운명이라는 노래가 머리 속에 울려 퍼지네요.


이름을 물어봤을 때 "잭"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에서 "잭"이 "짹"으로 들리네요. 짹짹짹! 어미새를 향해 먹이를 내놓으라는 듯 클레어에게 '사랑'을 내놓으라는 소리로 들리더군요. 그 '사랑'없으면 먹이를 얻지 못해 죽는 새끼새처럼 잭도 죽을 거 같은 느낌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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