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6) : 마치며

in #kr6 years ago (edited)

[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5-3) : 이기와 이타의 경계 ; 동전의 양면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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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나를 사랑하는 법

인간은 과학을 발전시킬수록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우월적 지위에서 한 계단씩 내려오고 있다. 뉴턴 역학의 빛나는 성취를 정점으로 하늘을 찌르던 자만심은 점점 고도를 낮추며 내려앉고 있다. 생물학의 발전은 인간이라는 종이 가졌던 권위를 무너뜨려 유인원과 같은 위상으로 돌려놓았고,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지적 능력을 보잘것없는 재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인류를 하나의 유기체라고 본다면, 그동안 인류가 가졌던 자기 인식은 청소년기의 자기중심적 특성인 ‘개인적 우화(personal fable)’와도 같았다. ‘개인적 우화’란 자신을 특별하고 독특한 존재로 인식하여, 자신이 느끼는 우정과 사랑, 고통 따위를 다른 사람들은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심리를 말한다. 인류는 최근까지 자신이 여느 동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감성과 이성을 가졌다고 여기는 ‘개인적 우화’에 빠져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청소년이 성인으로 자라며 특별함이 곧 우월함을 의미하지 않음을 깨닫듯이, 더 이상 우리가 자연의 법칙에서 예외적이지 않음을 깨닫고 있다.

물론 분명히 인류는 특별한 종(species)이다. 지구 역사상 이토록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졌던 생명체는 없었다.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뚜렷한 특징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종을 분류하는 명백한 근거이기도 하다. 다만 이 특별함이 어떠한 종류의 특권으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다. 우리의 특별함은 침팬지의 특별함과 다르지 않으며 보노보, 고릴라 등의 특별함과 다르지 않다. 모든 종은 각자의 방식으로 특별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지능을 우월함의 증표로 삼고 싶은 유혹이 일지만, 이는 인간끼리도 지능 순으로 존재 가치의 우열을 따질 수 있다는 논리를 도출시켜 버린다. 특별함과 우월함 사이의 착각은 청소년기에서 끝을 내야 한다. 미성숙한 청소년은 자신의 우월함에서 자기애를 발견하지만, 성숙한 인간은 자신의 부족함을 포함한 특별함을 오롯이 받아들이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나는 나인 까닭에 사랑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일각의 우려처럼 종 예외주의의 타파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종으로서 자신에게 실망할 필요도 없고 인류에 대한 애정을 깎아내릴 필요도 없다. 내가 속한 가족이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듯, 다른 동물에 대한 인류의 우월성이 인류애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

진정한 사랑은 조건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가 자부하는 지적 능력, 도덕심 때문이 아니라, 역사를 공유하는 집단의 동질감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인류애가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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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진 않지만 힘센 아이. 우리가 이 아이를 사랑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를 사랑하는 법

나는 지금까지 호모 사피엔스 종이 가진 예외주의를 다루며 그 부당함을 따져 물었지만, 사실 우리는 아직 종 내부의 예외주의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에 대하여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종의 분화를 돌아보자면, 사람의 유효집단크기 Ne는 8,000명 밖에 되지 않지만, 고작 그 안에서도 작은 특징을 잡아내어 차별의 근거로 삼는다. 더욱이 8,000명의 다양성을 만드는 상당수는 아프리카인들인데, 그들을 ‘흑인’이라는 한 묶음의 인종으로 취급하는 현실은 우리가 얼마나 주변 이웃들에게 무신경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13]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프리카인들의 생김새를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작은 관심만으로도 서로 다른 신체적 특징을 가진 민족들을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아프리카 대륙을 직접 관찰했던 제레드 다이아몬드도 『총, 균, 쇠』에서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8]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물론이고 많은 유럽인들도 아프리카 원주민이라면 곧 흑인이고 백인들은 최근에 들어온 침략자들이며 아프리카 인종사는 곧 유럽의 식민정책과 노예무역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오늘날 흑인들이 살고 있는 많은 지역은 불과 몇 천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매우 다른 민족들이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며, 이른바 아프리카 흑인이라는 사람들도 사실은 각양각색이다. 백인 이주민들이 들어오기 전에도 아프리카는 이미 흑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류를 크게 여섯 가지로 구분할 때 다섯 인종이나 살고 있었다. 게다가 그중 세 인종이 원주민으로 살고 있는 곳은 아프리카뿐이다. 전 세계 언어의 4분의 1이 아프리카에서만 사용된다. 이 같은 인간의 다양성은 그 어느 대륙도 따라가지 못한다.

분명, 단지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거리가 멀어 익숙하지 않을 뿐이라는 항변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사소한 무관심과 예외주의가 인류사에서 어떻게 작용했었는지를 고려해 본다면, 문제는 자못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기적인 종에서 동물들에게 덧씌워졌던, 최소한의 살생을 추구하는 자연 친화적 초상은 과거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도 고스란히 씌워졌으며, 이타적인 종에서 동물을 야만과 악의 상징으로 보았던 시선 역시 인디언들에게 똑같이 적용되곤 했다. 유럽에서 건너온 당시의 미국인들은 감히 인디언들을 짐승과 동일한 수준에 놓고 제멋대로 상상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들은 인디언들을 제대로 된 사람으로서 취급하지 않았고, 이 같은 사고방식의 결과는 결국 인디언 부족의 절멸이었다.

그리고 이 예시에서 한 가지 더 소름 끼치는 사실은, 현대에 들어서도 이미 절멸해버린 인디언 부족에 대한 무감각으로 인해 누구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학살의 가해자인 미국인들이 과거 인디언들에게 부여했던 왜곡된 초상은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를 비롯하여 여전히 그들 자신에 의해 무비판적으로 사용되지만, 이를 지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러한 이미지가 사용됨으로써 상처받을 민족들을 아예 말살시켜 버렸기 때문에 행위가 정당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잔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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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족의 모습에는 북미 인디언들에게 덧씌웠던 예외주의적인 시선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영화 「아바타」, 2009)

우리는 개인 사이에도 상대에 대하여 잘못된 정보를 말했을 때, 상대방이 받을 불쾌감을 이해하고 정중히 사과한다. 빈정상한 상대에게 오히려 뻔뻔하게 구는 경우는 오로지 상대를 무시하고 업신여길 때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지와 무관심에 대하여 결코 당당해져서는 안된다. 남을 얕보는 무례함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된다. 모든 이에게 관심을 쏟을 수 없는 한계가 명백히 존재하지만, 최소한 미안한 마음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관심은 타인을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자, 우리가 우리 인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사실 그동안 내가 밝혀 왔던 종 예외주의의 불합리성은 우리들의 도덕적 가치를 다른 생물에게까지 확대시켜야 한다는 논거로 연결되지 못한다. 리처드 도킨스가 지적하였듯, 어떠한 진화생물학적 사실이 “어떻게 행동하여야 한다”라는 의식의 진화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이는 즉 과학적 사실에서 도덕적 당위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5] 다만 나는 우리가 종 예외주의를 뜯어보며 발견한 인간의 민낯에서 오만함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탄탄한 기반 위에서부터 우리가 추구하는 도덕적 이상을 구현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나에게 범지구적인 인류애는 그러한 이상 중 하나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나와 같은 이상을 공유하고 있다면, 예외주의의 종말을 위하여 세상의 인간들에게 조금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길 바라여 본다.


『종 예외주의』의 연재를 마칩니다.
성원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참고문헌

[1] Begue, L. (2013).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이세진 (번역). 서울 : (주)부키. (원전은 2010에 출판)

[2] Burgess, R., Yang, Z. (2008). Estimation of Hominoid Ancestral Population Sizes under Bayesian Coalescent Models Incorporating Mutation Rate Variation and Sequencing Errors.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25(9), 1979–1994.

[3] Call, J. and Tomasello, M. (2008). Does the chimpanzee have a theory of mind? 30 years later.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12(5), 187-192.

[4] Dawkins, R. (2006). 이기적 유전자(30주년 기념판). 홍영남 (번역). 서울 : 을유문화사 (원전은 2006에 출판)

[5] Dawkins, R. (2007). 만들어진 신. 이한음 (번역). 경기도 파주 : 김영사 (원전은 2006년에 출판)

[6] de Waal, F. (2005). 내 안의 유인원. 이충호 (번역). 경기도 파주 : 김영사 (원전은 2005년에 출판)

[7] Diamond, J. (1996). 제3의 침팬지. 김정흠 (번역). 서울 : 문학사상사 (원전은 1993에 출판)

[8] Diamond, J. (2013). 총, 균, 쇠(개정). 김진준 (번역). 서울 : 문학사상사 (원전은 2003에 출판)

[9] Doker, J.(2012). 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 신예경 (번역). 경기도 파주 : (주)알마. (원전은 2008에 출판)

[10] Greene, J. D., Sommerville, R. B., Nystrom, L. E., Darley, J. M., and Cohen, J. D. (2001). An fMRI Investigation of Emotional Engagement in Moral Judgment. Science, 293, 2105-2108.

[11] Locke, D., Hillier, L., Warren, W., Worley, K., Nazareth, L., Muzny, D., [...] Wilson, R. (2011). Comparative and demographic analysis of orang-utan genomes. Nature, 469, 529-533. doi:10.1038/nature09687

[12] Nater, A., Mattle-Greminger, M., Nurcahyo, A., Nowak, M., Manuel, M., Desai, T. [...] Kru¨tzen, M. (2017). Morphometric, Behavioral, and Genomic Evidence for a New Orangutan Species. Current Biology, 27(22), 3487 - 3498.

[13] Prado-Martinez, J., Sudmant, P., Kidd, J., Li, H., Kelley, J., Lorente-Galdos, B. [...] Marques-Bonet, T. (2013). Great ape genetic diversity and population history. Nature, 499, 471–475. doi:10.1038/nature12228

[14] Williams, J. M., Lonsdorf, E. V., Wilson, M. L., Schumacher-Stankey, J., Goodall, J. And Pusey, A. E. (2008). Causes of Death in the Kasekela Chimpanzees of Gombe National Park, Tanzania. American Journal of Primatology, 70, 766–777.

[15] Wilson, D. S., Sober, E. (1994). Reintroducing group selection to the human behavioral sciences.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 17, 585-654.


저자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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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런글도 스팀에 .... 감동적이네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두고두고 곱씹을 명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었던 건 행운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spaceyguy 님 덕에 끝까지 쓸 수 있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인간에게서 상호존중이라는 테마가 인간을 둘러싼 모든것에 적용되어져야한다는 것으로 정리됩니다.

끝까지 정독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인간은 과학을 발전시킬수록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우월적 지위에서 한 계단씩 내려오고 있다.

역설적이게 느껴지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이네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오히려 내려오는 .. 벼가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는 비유와도 일맥상통하겠죠? 저 자신부터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도덕적 가치 (차마 저는 '이상' 이라는 말은 쓸 자격이 안되기에...) 에 일조하는 사회적 구성원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저는 말만 번지르르 하게 써놨지, 이상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는 범인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결론은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군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해 준다면, 전부가 행복해 질텐데 말입니다.

왕자님
이글은 여기랑 안맞는글인듯 하네요
논문을 여기에 연재하시면 어떻합니까
학회도 슬프고 나도 슬프고 나라도 슬프겠어요.
박제해두면 두고두고 카피할지도 모르는뎅.
진정한 재능기부에 박수를 👏👏👏
(사실 들어와보니 머시기 6탄이래여;;; 대충 딱 훑어봐도 굉장히 심오해버립니당. 시리즈물이니 정주행해야할텐데요. 정주행하면 다시 느낀점을 댓글달께요)
수고하셨네옄ㅋ잇힝

감사합니다ㅋㅋㅋ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똑똑하진않지만 힘센 아이가 뭔가 했더니 일부 알파벳은 안 맞는걸 구겨넣었군요 ㅎㅎㅎㅎ

너무 귀엽지 않나요ㅋㅋㅋㅋㅋ

Watchmen을 찾아서 봤어요. 빛과 어두움, 한 몸의 양면을 너무 잘 보여주더군요.
머리로는 알면서도 모르는데에서 오는 두려움은 너무 커요.

왓치맨은 분명 히어로 영화인데, 히어로 영화같지 않은 수작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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