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5-2) : 이기와 이타의 경계 ; 이기와 이타의 진화 上

in #kr6 years ago (edited)

[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5-1) : 이기와 이타의 경계 ; 선과 악의 공존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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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와 이타의 경계


이기와 이타의 진화


마음의 역사

사람 뿐 아니라 유인원에게서도 보이는 마음의 경계는 이기심과 이타심이 진화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암시한다. 이타심은 왜 집단 내부로만 향하는지, 그리고 이기심은 왜 집단 외부로 뻗는지를 생각해 보자면, 이기심과 이타심은 각자 다른 경로로 발달한 남남이 아니라, 집단 사이의 경쟁 속에서 함께 자라난 형제라고 할 수 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역시 『제3의 침팬지』에서, 유인원 자체가 포식자인 동시에 사냥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유인원의 공통 생존방식인 집단생활은 다른 집단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한다.[7] 유인원 집단은 아마 혈연관계로 맺어진 작은 집단에서 생존의 이득을 경험했을 것이며, 경쟁을 거쳐 점점 더 큰 집단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다른 집단을 향한 적개심이 집단의 생존 확률을 높였을 터이며, 강한 결속력이 집단의 생존 확률을 높였을 터이다. 적개심은 곧 이기심과 폭력성으로, 결속력은 곧 이타심과 도덕성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또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공동체 의식을 이끌어 내는 가장 강력한 힘은 외부 집단과의 적대감이며,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외집단에 대한 적대감은 도덕성을 출현시키는 단계까지 내집단의 단결을 높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의 가장 고상한 성취인 도덕성이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가장 저열한 행동인 전쟁과 진화상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6] 이와 관련해 제인 구달 역시, 전쟁에 따른 대량 학살로 인해 특정 집단이 몰살당하고 다른 집단은 살아남는 과정에서 ‘집단 선택’이라는 일종의 진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초기 인류의 전쟁은 이타주의, 용기, 지성, 집단 구성원들 사이의 협력 같은 귀중한 인간성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다른 유인원과 구분되는 커다란 뇌를 탄생시킨 가장 큰 진화의 압력이었다.[9]

하지만 일견 납득이 가는 진화론적 설명에도, 여기서 우리는 자연 선택의 단위와 수준이란 무엇인지를 논의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기성과 이타성이 집단 사이의 경쟁에서부터 발전하였다는 식의 표현은 진화생물학에서 논란이 많은 한 이론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집단 선택 이론’이라고 불리는 이 이론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철저히 부정된 이후, 수십 년 동안 진화생물학자들의 외면을 받아온 까닭에, 그 의미를 오해하지 않도록 신중하고 주의 깊게 다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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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상징인 오크조차 종족의 생존을 위해 협동한다. 어떻게? (영화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 2013)

순진한 집단 선택 이론

우선 우리는, 이타심이 집단 사이의 경쟁에서 비롯되었다는 발상에서부터, ‘순진한 집단 선택 이론’으로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1960년대 이전까지 많은 생물학자들은 “자연선택이 분류학상의 상위 계층에서 작용한다”는 가정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했다.[15] 다시 말해, 그들은 “생물이 ‘종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행위 하도록 진화한다”고 가정하곤 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이 이 ‘종의 이익’에서 이타성의 기원을 찾았다. 대표적으로, ‘집단 선택’을 유포시킨 제1의 책임자 윈-에드워즈는 개개의 동물이 집단 전체를 위하여 이타적으로 스스로의 출생률을 조절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동물들이 출생률을 제한함으로써 먹이 고갈에 따른 집단의 절멸을 방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4]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던 저명한 생물학자 콘라트 로렌츠조차 자신의 저서 『공격에 대하여』에서 동물의 공격성이 같은 종의 살육을 억제하는 본능적 성향으로써 제어된다고 주장했으며[7], 동물의 싸움은 억제가 가능한 신사적인 것임을 강조했다.[4]

그러나 윈-에드워즈나 로렌츠 같이 ‘종의 이익을 위하여’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사고방식은, 구체적인 기제를 고려하지 않은, 말 그대로 ‘순진한’ 이론이었다. 1966년,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던 조지 윌리엄스는 자신의 저서 『적응과 자연선택』을 통해 윈-에드워즈의 개념을 통렬하게 비판했으며, 1976년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를 이어 받아 집단선택설의 오류를 날카롭게 꼬집어 내었다.[15] 더 이상 ‘순진한 집단 선택 이론’은 전문적인 생물학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윌리엄스와 도킨스가 비판한 집단선택설의 가장 큰 오류는, 개체의 이기적인 행위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모두가 만족할 만큼 풀을 뜯을 수 있도록 이타적으로 고안된 한 무리의 토끼 떼를 가정해보자. 만약 이 무리에 욕심껏 풀을 더 뜯을 수 있는 이기적인 돌연변이 형질이 등장한다면, 이 형질을 가진 토끼는 다른 토끼들보다 더 많은 생존의 기회와 번식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 돌연변이 토끼의 새끼들은 세대를 거쳐 형질을 이어 받으며, 결국 이타적인 무리 구성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즉, ‘집단의 이익’을 위한 가상의 이타적인 집단은 곧 이기적인 집단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풀뜯개’ 돌연변이가 풀을 모두 고갈시켜 무리를 멸종으로 이끌더라도, 진화의 과정에는 이를 벌할 수 있는 합당한 기제가 없으며, 아무리 이타적인 집단이 덜 이타적인 집단에 비해 경쟁에서 유리하다손 쳐도, 집단 내부에서 튀어나온 이기적인 개체의 확산을 저지할 방도가 없다.[4][15] 윈-에드워즈의 ‘출생률 조절’은 범집단적인 의지에서 비롯되는 개체의 이타적인 행동이 아니라, 제한된 자원과 새끼를 노리는 천적에 대한 부양능력의 한계 탓이며, 로렌츠의 ‘억제된 공격성’도 동종의 번영을 위해 작용하는 이타적인 심성이 아니라, 비슷한 두 개체가 목숨을 걸고 싸웠을 때 받을 치명적인 부상이 생존에 이롭지 않은 탓이다. 실제로 빈번하게 발견되는 여러 동물들의 영아 살해와 침팬지의 집단 살해는 로렌츠의 견해를 훌륭하게 반증한다.

그리고 도킨스는 집단 선택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집단의 이익’이 가진 모호함과 비논리성을 다음과 같이 비꼬아 낸다.[4]

만약 선택이 같은 종 내의 집단 간이나 이종 간에 일어난다면, 왜 더 큰 집단 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종은 속으로 집단을 이루고 속은 목으로 묶이고 목은 강에 속한다. 사자와 영양은 둘 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포유강의 일원이다. 그렇다면 “사자는 포유강의 이익을 위해” 영양을 죽이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분명히 포유강의 멸종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자는 영양 대신에 새나 파충류를 사냥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척추동물 문 전체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도킨스는 집단 선택설의 주장이 우리가 갖고 있는 도덕적 이상이나 정치적 이상과 맞물려 있음을 지적한다.[4] ‘집단 선택’이 주장되었던 이유가 그것이 단지 도덕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바람직해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명백히, 윈-에드워즈의 ‘자발적 출생률 조절’은 인구 폭증에 따른 환경오염과 자원부족 문제를, 그리고 로렌츠의 ‘억제된 공격성’은 인간의 제노사이드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그들의 이론은 과학으로서 철저하게 진실을 파헤치려는 시도가 아닌, 사회가 원하는 답을 제공해 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더욱이, 그들은 생물학자임에도 인간을 자연 법칙에서 예외적인 종으로 취급하며, 인간이 ‘종의 이익’이라는 본능을 잊어버렸다고 여기는 듯하다. 결국 한때 유행했던 ‘순진한 집단 선택 이론’은, 이기적인 종에서 다루었듯,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를 자연에 투영하여 찾아낸 결과에 불과한 것이다.


[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5-2) : 이기와 이타의 경계 ; 이기와 이타의 진화 中으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1] Begue, L. (2013).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이세진 (번역). 서울 : (주)부키. (원전은 2010에 출판)

[2] Burgess, R., Yang, Z. (2008). Estimation of Hominoid Ancestral Population Sizes under Bayesian Coalescent Models Incorporating Mutation Rate Variation and Sequencing Errors.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25(9), 1979–1994.

[3] Call, J. and Tomasello, M. (2008). Does the chimpanzee have a theory of mind? 30 years later.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12(5), 187-192.

[4] Dawkins, R. (2006). 이기적 유전자(30주년 기념판). 홍영남 (번역). 서울 : 을유문화사 (원전은 2006에 출판)

[5] Dawkins, R. (2007). 만들어진 신. 이한음 (번역). 경기도 파주 : 김영사 (원전은 2006년에 출판)

[6] de Waal, F. (2005). 내 안의 유인원. 이충호 (번역). 경기도 파주 : 김영사 (원전은 2005년에 출판)

[7] Diamond, J. (1996). 제3의 침팬지. 김정흠 (번역). 서울 : 문학사상사 (원전은 1993에 출판)

[8] Diamond, J. (2013). 총, 균, 쇠(개정). 김진준 (번역). 서울 : 문학사상사 (원전은 2003에 출판)

[9] Doker, J.(2012). 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 신예경 (번역). 경기도 파주 : (주)알마. (원전은 2008에 출판)

[10] Greene, J. D., Sommerville, R. B., Nystrom, L. E., Darley, J. M., and Cohen, J. D. (2001). An fMRI Investigation of Emotional Engagement in Moral Judgment. Science, 293, 2105-2108.

[11] Locke, D., Hillier, L., Warren, W., Worley, K., Nazareth, L., Muzny, D., [...] Wilson, R. (2011). Comparative and demographic analysis of orang-utan genomes. Nature, 469, 529-533. doi:10.1038/nature09687

[12] Nater, A., Mattle-Greminger, M., Nurcahyo, A., Nowak, M., Manuel, M., Desai, T. [...] Kru¨tzen, M. (2017). Morphometric, Behavioral, and Genomic Evidence for a New Orangutan Species. Current Biology, 27(22), 3487 - 3498.

[13] Prado-Martinez, J., Sudmant, P., Kidd, J., Li, H., Kelley, J., Lorente-Galdos, B. [...] Marques-Bonet, T. (2013). Great ape genetic diversity and population history. Nature, 499, 471–475. doi:10.1038/nature12228

[14] Williams, J. M., Lonsdorf, E. V., Wilson, M. L., Schumacher-Stankey, J., Goodall, J. And Pusey, A. E. (2008). Causes of Death in the Kasekela Chimpanzees of Gombe National Park, Tanzania. American Journal of Primatology, 70, 766–777.

[15] Wilson, D. S., Sober, E. (1994). Reintroducing group selection to the human behavioral sciences.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 17, 585-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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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이익보다는 '나'의 생존을 위하여 노력하는게 개체에게 더 합리적인 것 같아요. 다 읽으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일단,
@홍보해

감사합니다!!!

'순진한 집단 선택 이론'은 마치 선의로 블록체인 노드를 유지한다거나, 시스템을 만들면서 인간의 선의에 기대는 행위와 비슷하게 느껴져요.

네. 이타적인 마음과 더불어 이기적인 마음도 갖고 있는데 한쪽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sleeprince님 안녕하세요. 겨울이 입니다. @relaxkim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크... 진짜 이런 알찬 글은 풀보팅안해줄수가 없죠... 선보팅 후감상!

감사합니다

두고두고 이해하며 읽어봐야 할 글인 것 같아요. 과학에세이 너무 좋으네요. 팔로잉하고 갈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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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정성스럽게 긴 논문을 쓰시느라그 포스팅이 늦어졌군요. 리스팀하고 이제야 읽습니다. 눈이@@. 이제는 노안때문에 진도 따라가기 버겁네요. 그래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가 느낀점,

철저한 3인칭적 시각에서의 관점은 한계가 있어보입니다.

모든 이론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옳다. 개체, 개체성,개체들간의 작용,개체들이 이룩한 집합성 모두를 고려해야 온전한 이론이 되겠네요.

도킨스의 시각은 철저히 한쪽에 치우친듯.

ps. 도덕성 같은 것들은 1인칭적 시각인데 철저히 3인칭적 시각으로 추적하려다보니 이론이 다양한것 같네요.

읽어 주시는 것도 정성없이는 안되는데, 정말 감사드립니다. 너무 이론적인 내용은 사람들이 안좋아할 것 같아서, 자르지 않고 그냥 한번에 올렸습니다. 지난주에 반절 쓰고, 이번주에 반절 썼습니다.

제 경우는 반 반 나눠서 올리시는게 더 좋을것 같아요. 눈이 아파요.^^

이기심과 이타심은 정말 깊이 들여다 봐야 할 주제같습니다. 정성이 가득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전쟁이 진화의 매커니즘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세히 얘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평소보다 내용이 더 길어졌네요 ㅎㅎㅎㅎ 전쟁이 진화를 이루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과 집단에는 어울리는거같긴하네요. 친절한 개인도 집단으로서의 전쟁에선 그러기 힘드니....그래서 보통 전쟁을 다들 싫어하지만요.

나눠서 내기에는 흐름이 끊기는것 같기도 하고, 약간 복잡한 내용이 나오는 이론 문제는 사람들이 별로 안좋아 할 것 같아서, 그냥 한번에 올렸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최대한 간략히 설명하는게 제일 힘들었습니다ㅠ

개체보다 유전자가 좀 더 세련된 것 같습니다. 무언가 의지가 있는 개체보다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조종하는 유전자가 훨씬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을 접해보니,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때가 온 듯 합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글 정말 감사합니다. ^^
스팀잇을 한 보람이 있습니다!

'다중 수준 선택 이론'도 '유전자 중심 이론'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결국 선택되는 것은 유전자입니다. 다만 유전자들의 집합인 운반자로서 개체 뿐 아니라 집단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많은 텍스트에서 자연 선택의 '단위(unit)'과 '수준(level)'의 개념을 혼용하고 있어서, 진화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데 혼란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개념들을 최대한 구분해서 쓰려고 노력했는데,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처럼 만난 님의 글에 반가움과 기쁨이 함께 합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서 '마음속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도덕적 가치를 지나치게 배제하는' 듯 한 꺼림직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차분하게 다시 보니 그때의 제 느낌은 다분히 종예외주의적 관점에서 가졌던 느낌이었음이 확인됩니다.

이기는 그렇다 쳐도 이타마저 과학적 실증으로 환원되고 보니 '영성' 같은 것마저도 그리 될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면 인류가 도달한 인지 수준 저 너머엔 그간 알 수도 없고 알려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던 신성마저도 명약관화해질라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번 글은 워드 페이지 수로는 평소 분량의 2~3배 정도 됩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업로드하지 못했습니다ㅠㅠ 오늘도 찾아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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