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4-2) : 이타적인 종 ; 도덕적 동물

in #kr6 years ago (edited)

[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4-1) : 이타적인 종 ;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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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인 종


도덕적 동물


동물의 인간성

사실 자연을 ‘악(惡)’의 지위에 놓았던 사람들 중에, 도덕을 위선으로 보는 사람들은 소수라고 할 수 있다. 이보다 좀 더 다수의 사람들이 가지는 믿음은 도덕성이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라는 생각이다. ‘종 예외주의’의 사고 회로에서, 어떤 이는 도덕을 사회나 문화가 만든 가면이라고 주장한다면, 다른 이는 도덕 그 자체가 인간에만 허락된 고결한 정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도덕성을 인간성의 상징으로 보는 사고방식은 과거에 굉장히 보편적이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도덕은 인간에게만 있는가?”와 같은 물음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도덕성이 있다는 것은 그 정의상 자연법칙을 초월해 있다는 뜻으로 통했다.[1] 특히 원초적 생존 본능을 초월한 자기희생에 감동한 사람들은 감히 동물들이 이 숭고한 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1996년 상어에게 습격을 당한 잠수부들을 돌고래들이 둥그렇게 에워싸고 보호해준 일[1]이나 2004년 남자 아이가 방울뱀에게 물리기 직전에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그 앞으로 뛰어들어 대신 물린 일[5] 등은 사람들에게 감동적이면서 동시에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특히 1996년 8월 16일 시카고 브룩필드 동물원에서 ‘빈티’라는 암컷 고릴라가 담장에서 떨어진 세 살짜리 남자 아이를 구해낸 사건은 전 세계로 방송되면서,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인간이 아닌 다른 종에게도 ‘인간성’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도록 만들었다. 빈티는 세 살배기 아이를 구덩이에서 구했을 뿐 아니라, 동물원 직원에게 인계하기 전까지 아이를 안전한 장소로 옮겨 무릎 위에 올려놓고 등을 두드려 주는 모습까지 보여 주었다.[1][5]

물론 동물들이 보여준 한두 사례가 ‘종 예외주의’의 대세적인 생각을 바꾸지는 못했다. 우리는, 애덤 스미스가 지적한 대로, 도덕의 본바탕에 ‘공감(共感)’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공감’을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감정적 능력으로서, ‘역지사지’를 타인의 생각을 추론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이성적 능력으로서, 인간만이 도달 가능한 영역으로 여긴다. 그래서 동물들의 도덕적 행동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도덕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보상을 바랐기 때문에, 우두머리에게 복종하는 본능 때문에, 또는 자신의 아이로 착각한 고릴라의 모성 본능 때문에 등등 동물들의 선행에는 각종 원초적 본능에 대한 이유가 따라 붙는다.

과연 동물들은 인간이 갖는 ‘공감’과 ‘역지사지’의 능력을 결여하고 있을까. 인간만이 유일하게 다른 개체의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추론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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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rifice!
(영화 콘스탄틴, 2005)

공감(共感)

‘공감(共感)’은 글자 그대로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능력을 말한다. 인간의 경우, 갓 태어난 아기에서부터 공감 능력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마치 한 현의 진동이 다른 현의 진동을 촉발하는 것처럼, 한 아기로부터 시작된 웃음이나 울음이 다른 아기들에게 전염되는 현상은 유명하다. 걸음마를 막 뗀 아기들은 다른 아이가 넘어져 우는 모습을 보고 따라서 울먹이며 부모에게 매달린다. 이 시기까지의 아이들은 다른 아이가 걱정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가 보여준 감정에 공명하였을 뿐이지만, 조금만 성장하면 곧 자신의 감정과 대리 감정을 구분할 줄 알게 된다.[5]

그리고 만 한살이 조금 넘은 아기들은 ‘공감’에 수반하여 ‘위로(consolation)’라는 행동상의 특징을 나타낸다. 아기들은 자기가 아는 사람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상처를 두드리거나 비비면서 상대를 위로하려 든다.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동정심의 표현은 첫 걸음마를 떼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성취 과정인 셈이다.[5]

아기에게서부터 보이는 인간의 이 사랑스러운 반응들은 사실, 대부분의 포유동물에게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이미 1959년에 나온 ‘남의 고통에 대한 쥐의 감정적 반응’이라는 도발적 제목의 논문은 쥐에게도 공감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논문에 따르면, 쥐에게 지렛대를 누르는 동작으로 먹이를 얻을 수 있음을 학습시킨 뒤, 다시 그 행동이 곁에 있는 다른 쥐에게 전기 충격을 초래함을 보여주면, 쥐는 그 동작을 멈춘다고 한다. 우리가 혐오하는 쥐조차, 동료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먹이에 대한 욕구를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의 연구에서 같은 실험에 놓인 원숭이들은 훨씬 강한 자제력을 보여 주었다. 어떤 원숭이는 친구가 전기 충격을 받는 모습을 본 뒤로 5일 동안 손잡이를 당기지 못했고, 어떤 원숭이는 12일 동안이나 먹이를 얻지 못했다. 이 원숭이들은 거의 굶어 죽어 가는 상황에서도 친구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려 했다. 현대의 뇌 과학은 뇌에서 감정의 전염을 담당하는 부분이 아주 오래된 것이어서 쥐, 개, 코끼리, 원숭이 등 다양한 동물도 이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5]

‘위로’의 행동은 ‘공감’ 반응 자체에 비해서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또한 다양한 동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아마 개나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자연히 아는 사실일 터인데, 애완동물들은 고통스러워하는 가족에게 앞발을 얹는 동작으로써 걱정하는 기색과 함께 그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사람들도 이들의 노력에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그리고 위로의 행위는 특히 우리의 친척인 유인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관찰된다. 그들의 위로가 인간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까닭에 더욱 눈에 띈다. 어린 침팬지가 나무에서 떨어져 울부짖을 때, 어른 침팬지는 즉시 달려와 이 어린 침팬지를 들어 올려 흔들며 달래 주는데, 이 행동은 마치 우리가 어린 아기를 흔들며 어르고 달래는 모습과 같다. 유인원들에게 위로는 매우 보편적으로 나타나면서, 또 강하게 나타난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심리학자 나디에 라디기나 코흐츠(Nadie Ladygina-Kohts)가 어린 침팬지 ‘요니’를 기르며 쓴 다음의 기록은, 유인원에게 ‘위로’라는 반응이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하는가를 잘 보여 준다.[5]

내가 눈을 감고 우는 체하면, 요니는 지붕이나 우리 천장처럼 가장 먼 곳에 떨어져 있더라도 즉각 장난이나 행동을 멈추고 달려왔다. 그 방법 외에는 소용없다. 요니는 마치 나를 공격한 사람을 찾는 듯이 급히 내 주위를 빙빙 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고 노력하는 듯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내 턱을 자신의 손바닥으로 감싸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얼굴을 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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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능력은 선한 인격체의 상징과도 같다. (영화 아바타, 2009)

역지사지(易地思之)

‘역지사지’는 타인의 입장과 인지를 추론하여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도덕적 행동에는 ‘공감’ 뿐 아니라 ‘역지사지’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굶주린 사람을 도우려면, 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뿐 아니라, 상대가 나와는 다르게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하고, 상대가 밥을 원한다는 생각을 추론할 수 있어야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능력을 ‘마음 이론(theory of mind)’ 또는 ‘조망 수용(perspective taking)’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경우에도, 조망 수용 능력은 3살 무렵부터 시작하여 청소년기까지 점차 발달해 나가는 높은 수준의 인지 능력이다. 조망 수용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은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을 다른 사람도 보고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상대방을 볼 수 없으면 상대방도 자신을 볼 수 없다고 여긴다. 아이들과 숨바꼭질 놀이를 함께 하다보면, 얼굴만 커튼 뒤에 숨겨 놓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이러한 특징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최근까지 역지사지의 도덕적 행동을 동물들이 갖기에는 너무 어려운 능력으로 여겼다. 실제로 많은 동물들이 역지사지의 능력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심지어 대부분은 ‘자신’조차 구분하지 못해 거울을 보고도 자신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교적이며 높은 지능을 가진 동물로 알려진 코끼리, 고래, 유인원 등에게서, 그들이 이러한 능력을 가졌음을 추정케 하는 행동들이 관찰되며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실험실의 연구자들은, 1978년 미국의 심리학자 프레맥과 우드러프의 기념비적인 논문 “침팬지는 마음 이론을 갖는가?” 이래로, 침팬지들과 유아들을 비교하며 침팬지의 역지사지 능력을 실험해 왔다. 그 결과로, 40여 개의 연구를 정리한 조셉 콜과 마이클 토마셀로는 그들의 리뷰 논문 “침팬지는 마음 이론을 갖는가? 그 30년 후”의 결론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는다.[3]

이제 인간은 그들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 친척들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행동만을 읽고 반응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분명히 침팬지들의 사회적 이해는, 인간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다른 이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시작되지만,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침팬지가 틀린 믿음(false belief)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명백하게 그들은 다른 이들의 표면적 행동만을 단순히 인지하거나, 아무 생각 없는 행동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검토된 모든 증거는 침팬지가 다른 이들의 인지(perception)와 인식(knowledge)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목적과 의도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욱이, 그들은 이러한 심리적 상태가 어떻게 함께 작용하여 의도적인 행동을 취하게 되는지를 이해한다. (후략)

그리고 실험실 밖의 연구자인 프란스 드 발[5]은, 위와 같은 긍정적인 실험의 결과에도,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짜인 실험 설계가 유인원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고 믿는다. 그는 제한된 실험보다 실제의 유인원 무리에서 관찰되는 수많은 행동들에서 그들의 역지사지 능력을 추론한다. 특히 ‘표적 원조(targeted helping)’는 유인원들의 역지사지 능력을 평가하는 좋은 사례가 된다. ‘표적 원조’란 다른 이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제공하는 행동을 이르기 때문이다. 드 발에 따르면, 표적 원조는 대부분의 동물들에게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행태이지만, 유인원들에게는 그다지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고 한다. 그가 관찰한 다음의 표적 원조 사례는 유인원이 가진 뛰어난 역지사지의 능력을 잘 보여준다.[5]

영국의 트와이크로스 동물원에 사는 쿠니라는 이름의 보노보는 찌르레기가 야외 사육장의 유리창에 부딪혀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달려가서 보살펴 주었다. 쿠니는 충격을 받은 찌르레기를 들어 올리더니 두 발로 서게 했다. 그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자, 쿠니는 찌르레기를 살짝 던졌다. 그렇지만 새는 푸드덕거리기만 했다. 그러자 쿠니는 찌르레기를 손에 쥐고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로 올라갔다.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두 다리로 나무 줄기를 꽉 감싸 잡은 쿠니는 양손에 찌르레기의 날개를 하나씩 잡아 조심스럽게 벌린 다음, 마치 작은 장난감 비행기를 날리듯이 사육장 밖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나 찌르레기는 사육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사육장 주변에 파놓은 해자의 둑에 내려앉았다. 나무에서 내려온 쿠니는 한참동안 지켜보면서 호기심 많은 어린 보노보로부터 찌르레기를 보호해 주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자, 찌르레기는 기운을 되찾고 무사히 날아갔다.

쿠니가 찌르레기에게 한 행동은 다른 유인원을 도울 때 보이는 모습하고는 사뭇 달랐다. 틀에 박힌 본능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신과는 아주 다른 동물이 처한 그 상황에 알맞은 도움을 제공한 것이다. 야외 사육장 곁을 지나가는 새들을 보고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감을 잡은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종류의 공감은 다른 동물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일찍이 동물에게서는 보고된 적이 없는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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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은 배려의 첫 걸음이다. (영화 왓위민원트, 2000)

잘 되면 내 덕, 못 되면 조상 탓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적 기제를 진화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아마도, 성공의 보상을 얻고자 자신에게 공로를 돌리고, 실패의 처벌을 피하고자 타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비열하고 편의적인 인간의 속성도 자연선택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물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인간은 자연으로 받은 이 속성을 이용해 자연과 인간을 구분 짓는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본성의 나쁜 부분은 자연의 탓으로 돌리고, 좋은 부분은 우리의 덕으로 남겨 놓는다. 이기성과 잔혹함은 육체가 어쩔 수 없이 동물의 탈을 썼기에 갖는 한계로 치부하면서, 이타성과 도덕은 인간 특유의 고결한 정신으로 칭송한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오만과 오판이다. 인간의 본성도 결코 자연의 법칙을 떠나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본능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과도 같다. 공감 능력은 새끼를 젖 먹여 기르는 포유동물 대부분이 갖는 능력이며, 역지사지의 능력 또한 유인원 사이에서는 보편적인 능력이다. 동물들을 관찰한 바에 따르면, 동물들도 상대를 긍휼히 여기고 도울 줄 안다.

미국의 심리학자 조슈아 그린(Joshua Greene)[9]은 피실험자들에게 트롤리 딜레마의 질문을 하고 뇌를 촬영해 보았다. 피실험자들의 뇌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를 떠밀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과 타인의 감정을 평가하는 부분이 활성화되었다. 뇌 과학이 밝히는 인간의 도덕적 결정은, 인간에 이르러 확장된 신피질 표면에서 일어나는 이성적 활동이 아니라, 수백만 년 전에 이미 사회적 진화의 산물로 생겨난 감정적 활동이라는 것이다. 20세기 초, 핀란드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웨스터마크(Edward Westermarck)가 한 다음의 말은 이 실험의 결과가 의미하는 바를 잘 설명한다.[5]

우리는 달리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찬성하고 반대한다. 몸이 불에 닿았을 때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가? 친구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가? 이 현상들은 경험의 주관적 영역에 속한다고 해서 덜 필요하거나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인간의 높은 지능은 인간이 더 높은 수준의 도덕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우리는 어떤 ‘표적 원조’가 적절한지를 따지며, 정말 타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토론할 수 있다. 걸인은 당장의 현금을 요구하지만,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콜과 토마셀로[3]도 침팬지가 갖는 역지사지 능력의 한계를 지적한다. 유인원들은 인간과 같은 수준의 인지 능력이 없다. 하지만, 이는 지능에서 비롯된 도덕성의 수준과 정도 차이일 뿐이다. 도덕의 본질을 따지자면, 도덕은 결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 드 발의 다음 문장은 내가 논설하는 종 예외주의의 핵심과 궤를 같이 한다.[5]

최종 결과물에서부터 설명을 시작하는 하향식 접근 방법은 거의 항상 표적을 벗어나기 일쑤다. 진짜 질문은 그것을 이루는 기본 구성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도, 그들은 왜 우리만 유일하게 공정성, 정의, 정치, 도덕성 등을 지니고 있는지 묻는다. 공정성, 정의, 정치, 도덕성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본 요소는 무엇인가? 어떻게 간단한 현상들로부터 더 큰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면, 우리가 다른 종과 많은 구성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하는 일 중 정말로 우리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독특한 일은 하나도 없다.


[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5-1) : 이기와 이타의 경계 ; 선과 악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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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Begue, L. (2013).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이세진 (번역). 서울 : (주)부키. (원전은 2010에 출판)

[2] Burgess, R., Yang, Z. (2008). Estimation of Hominoid Ancestral Population Sizes under Bayesian Coalescent Models Incorporating Mutation Rate Variation and Sequencing Errors.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25(9), 1979–1994.

[3] Call, J. and Tomasello, M. (2008). Does the chimpanzee have a theory of mind? 30 years later.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12(5), 187-192.

[4] Dawkins, R. (2006). 이기적 유전자(30주년 기념판). 홍영남 (번역). 서울 : 을유문화사 (원전은 2006에 출판)

[5] de Waal, F. (2005). 내 안의 유인원. 이충호 (번역). 경기도 파주 : 김영사 (원전은 2005년에 출판)

[6] Diamond, J. (1996). 제3의 침팬지. 김정흠 (번역). 서울 : 문학사상사 (원전은 1993에 출판)

[7] Diamond, J. (2013). 총, 균, 쇠(개정). 김진준 (번역). 서울 : 문학사상사 (원전은 2003에 출판)

[8] Doker, J.(2012). 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 신예경 (번역). 경기도 파주 : (주)알마. (원전은 2008에 출판)

[9] Greene, J. D., Sommerville, R. B., Nystrom, L. E., Darley, J. M., and Cohen, J. D. (2001). An fMRI Investigation of Emotional Engagement in Moral Judgment. Science, 293, 2105-2108.

[10] Locke, D., Hillier, L., Warren, W., Worley, K., Nazareth, L., Muzny, D., [...] Wilson, R. (2011). Comparative and demographic analysis of orang-utan genomes. Nature, 469, 529-533. doi:10.1038/nature09687

[11] Nater, A., Mattle-Greminger, M., Nurcahyo, A., Nowak, M., Manuel, M., Desai, T. [...] Kru¨tzen, M. (2017). Morphometric, Behavioral, and Genomic Evidence for a New Orangutan Species. Current Biology, 27(22), 3487 - 3498.

[12] Prado-Martinez, J., Sudmant, P., Kidd, J., Li, H., Kelley, J., Lorente-Galdos, B. [...] Marques-Bonet, T. (2013). Great ape genetic diversity and population history. Nature, 499, 471–475. doi:10.1038/nature12228

[13] Williams, J. M., Lonsdorf, E. V., Wilson, M. L., Schumacher-Stankey, J., Goodall, J. And Pusey, A. E. (2008). Causes of Death in the Kasekela Chimpanzees of Gombe National Park, Tanzania. American Journal of Primatology, 70, 766–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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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읽으면.. 가령 어떤 사람을 보고 "침팬치만도 못한 놈아" 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누구에게 욕일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양쪽 다 아니겠습니까ㅎㅎㅎ

그런데 과거에 동물의 자기희생을 생각 안했는지는 좀 의문이네요. 좀 과장이 붙었지만 은혜갚은XX라는 소재가 오래전부터오고있고 동물의 그런 행동에 관한 속담도있으니....

맞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오수의 개 이야기도 있고, 사실 그런 일들을 많이 봐왔는데, 인간은 우월하다는 전제를 깔고 보니, 눈을 감아 버린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과거 서구의 논리와 철학에 기반한 학풍에는 실제로 그러한 요소가 많았기 때문에 레퍼런스에서 그렇게 기술한게 아닌가 합니다. 반대로 아시아권에서는 동물들을 그렇게까지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죠. 그래서 "누가 그렇게 생각하지?"라는 생각에 조금 갸웃하게 되는 면도 있습니다. 드 발이 한 이야기 중에서도 아시아에서는 인간의 우월성을 자만하는 요소가 별로 없는데, 그 이유가 인간과 닮은 원숭이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그런것 아닌가 하는 가설도 있었습니다.

도덕성은 집단선택의 결과라는 게임이론적 분석이 와 닿더군요. 인간은 그런 게임을 특히 잘 하는 종이란 생각이 듭니다.

네, 맞습니다. 도덕성은 집단을 공고히 하기 위한 방책으로 발달해 왔습니다. 지난 글에서는 침팬지가 어떻게 공동체를 유지하는지에 관한 글을 썼고, 마침 다음 글은 집단선택에 관한 점을 다룰 예정입니다.

기대합니다~~ 마침 저도 침팬지 폴릭티스를 대해 읽을 참입니다.

그 책도 프란스 드발이 지은 책이지요? 침팬지 폴리틱스, 보노보, 착한 인류 등등 읽어보고 싶은데, 책 욕심만 가득합니다ㅎㅎ

^^ 네~ 맞아요. 프란스 드발이 글을 잘 쓰시더군요. ^

'뇌 과학이 밝히는 인간의 도덕적 결정은, 인간에 이르러 확장된 신피질 표면에서 일어나는 이성적 활동이 아니라, 수백만 년 전에 이미 사회적 진화의 산물로 생겨난 감정적 활동이라는 것이다.'

본의는 아니었다고 항변하고 싶지만 제 안에 이미 '종 예외주의'가 깊히 자리하고 있었음을 확인합니다. 공감이나 역지사지가 막연하게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에서부터 분화를 시작한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신피질이 담당하고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말씀을 듣고보니 두려움 같은 부정적 감정뿐 아니라 공감이나 역지사지와 같은 것도 또한 중요한 진화의 동력이고 공감은 물론이거니와 역지사지도 건조한 인지보다는 강렬한 감정을 그 기제로 선택해야만 우리를 움직이고 또 더 분화 가능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말 백번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우월하다는 생각의 근원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생각도 되어집니다. 종교? 제가 보기에는 영적 전승지혜를 해석하는 인간 속에 자리잡은 오만함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혹시 동물의 오만성, 종우월주의를 연구한 것은 있는지 모르겠네요.

프란스 드 발은 인도나 동아시아같은 동양문화가 서구 문화에 비해 그런 우월주의가 덜하다는 점에서, 주변에 원숭이같이 인간을 닮은 동물이 살아서 그런게 아닌가 가설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이름이 지금 기억안나는 어떤 학자는 우월주의의 생각이 종교에 근거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히히 재미난 가설이네요. 원숭이랑 함께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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