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3) : 이기적인 종

in #kr6 years ago (edited)

[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2) : 종의 분화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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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종


폭력성의 귀책

사람은 보통 ‘종 예외주의’에 따라 다른 동물과는 다르다는 전제 속에서 사고를 전개한다. 익히 알려진 인간의 잔인함 문제를 다룰 때도 그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의 잔인함을 겪은 사람들은 그 원인을 찾아 여러 가설들을 내세웠지만, 어느 것 하나 ‘종 예외주의’를 벗어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잔인함이 카인의 후예로서 오로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말했다. 자연은 이상적인 세계로서 의미 없는 살육을 하지 않으며, 인간은 탐욕이나 유희를 위해 살생을 하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결코 즐거움을 위함 아닌, 오직 먹이를 위한 사냥만을 한다(Never hunt for pleasure, only for food)”라는 정글의 법칙을 제시한 소설 『정글북』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대표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와 정반대로, 자연은 ‘약육강식의 논리’ 안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있으며, 인간 또한 그러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다만 인간은 이러한 자연의 본능을 극복하고 권력 구조를 가진 사회를 이룩했다고 주장한다. 인간 본성의 잔인함을 인정하지만, 인간의 문화와 정치가 그 잔인함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인간의 폭력은 ‘인간성’을 상실한 짐승의 폭력과, 고도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인간적’인 폭력으로 구분되었다.

두 견해 근본적으로 자연의 본성이 선(善)한가 혹은 악(惡)한가를 전제로 출발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러한 자연의 법칙에서 예외적인 존재임을 전제한다. 하지만, 이들 전제는 종 예외주의가 씌우는 색안경에 불과하다. 그들의 주장은 실제로 관찰된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기보다, 색안경에 왜곡된 그들의 시야에 근거한다.

예를 들어, 전자의 견해에서 자연이 본래 선하다는 가정은 조금만 주변을 관찰해 보아도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직 사회에 물들지 않은 어린 인간은 종종 성인 이상의 잔인함을 보여준다. 나는 어렸을 때 차에 치여 목이 돌아간 비둘기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비둘기를 관찰하며 즐거워하는 한 무리의 어린 아이들을 함께 보았다. 그 중 용감했던 아이들 몇몇은 비둘기를 막대로 찔러보기도 하고, 발로 차보기도 했다. 그들은 명백히 다른 생명체의 고통과 죽음을 즐기고 있었다. 인간은 분명 선천적으로 잔인함을 내포하고, 그를 유희로 삼는다. 혹시 누군가는 어린 인간 또한 카인의 후예일 뿐 자연 상태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프란스 드 발[4]이 기술한 침팬지의 사례는 어떠한가. 드 발은 실험실의 어린 침팬지들이 빵 부스러기를 던져 울타리 뒤의 닭들을 유인하고, 다가온 닭들을 막대기로 때리거나 날카로운 철사로 찔러내는 행태를 보인다고 말한다. 침팬지들이 실험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놀이로서 다른 생명체를 괴롭히는 것이다. 심지어 침팬지들은 하나가 유인책을 맡고, 다른 하나가 몽둥이로 내리치는 등 역할을 분담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침팬지 역시 선천적으로 잔인함을 내포하고, 그를 유희로 삼는다. 오로지 인간만이 다른 생명체의 고통을 즐기는 종이라거나, 동족을 살해하는 유일한 종이라는 견해는 부족한 관찰과 종 예외주의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 장에서 인간과 98%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침팬지의 사례를 비교하며, 전자나 후자의 견해에 관하여 좀 더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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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좋은 아들』의 한 장면. 자신이 만든 무기로 떠돌이 개를 죽인다.

동종 살해

인간의 동종 살해 행태는 꽤 익히 알려져 있다. 일반 사회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부터 대규모의 제노사이드(genocide)까지, 동종 살해의 보고 사례는 차고 넘친다. 혹자는 그러한 살인 행위가 특별히 인간성을 상실한 악인에 의한 것일 뿐, 인간의 보편적인 행태가 아니라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20세기를 겪으며 실제로 목격한 것은 ‘평범한 악’이었다. 난징 대학살에서 중국인들을 꼬챙이에 꿰며 즐거워했던 일본인들은 평범한 일본인이었으며, 유대인을 학살했던 독일인들도 평범한 독일인이었다. 2004년 미국을 발칵 뒤집었던 이라크 포로 학대 역시 평범한 미국인에 의해 자행되었다. 미군들은 이라크 포로를 발가벗긴 채 목줄을 채워 개처럼 끌고 다니기도 했고, 여성 포로를 남편이 보는 앞에서 강간하기도 했다. 그들이 죄의식 하나 없이 찍은 기념사진 속에는 그들의 즐거운 한 때가 담겨 있었다. 이 사건은 문명을 자부하던 21세기의 입구에서 벌어졌다는 점과, 그 선두에 있는 미국에 의해 행해졌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인류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저서 『제3의 침팬지』[5]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모든 본성 중에서도 동물의 선조에게서 가장 직접적으로 물려받은 것은 제노사이드의 본성이다. 제노사이드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특수한 인간이 저지르는 일쯤으로 여기며 자기 기만에 빠져 있다면 제노사이드의 위험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다이아몬드와 또 다른 인류학자 존 도커[7]는 인간의 동족 살해 성향에 대하여 제인 구달의 저서 『곰베의 침팬지』에 담긴 사례들에 주목한다. 특히 구달의 관찰 대상이던 카사켈라 공동체가 두 집단으로 분리된 후 드러낸 공격성과 폭력성은 특기할만 했다.

본래 침팬지는 다른 집단에 적대적이다. 집단의 수컷은 공동체의 영역 경계를 순찰하며 홀로 떨어진 다른 무리의 침팬지를 공격한다. 단순히 내쫓는 수준의 공격이 아니라, 뒤에서 몰래 다가가 붙잡고는 물어뜯고 손가락과 성기를 절단한다. 명백히 살해의 의도가 담긴 공격을 한 개체에 퍼붓는다. 하지만 1970년대 구달이 목격한, 카사켈라 집단이 카하마 집단에 가한 공격은 조금 성격이 달랐다. 두 집단은 원래 애정 어린 관계를 나누던 동족이었기 때문이다. 카하마 집단은 카사켈라 집단으로부터 독립하여 남쪽으로 이주한 무리였다. 관찰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카사켈라의 한 공격자와 카하마의 한 피해자는 한때 서로 털을 골라주던 친구 사이였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카사켈라 집단의 첫 공격은 1974년 1월로 기록되어 있다. 카사켈라의 공격 집단은 어른 수컷 여섯 마리와 젊은 수컷 한 마리, 그리고 뒤에 새끼를 남긴 암컷 한 마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조직적으로 남하하여 ‘고디’라는 카하마 수컷 한 마리를 덮쳤다. 카사켈라 수컷 한 마리가 고디의 머리 위에 올라타 움직이지 못하도록 짓누르는 사이, 다른 무리가 약 10분에 걸쳐 고디를 세게 때리고 물어뜯었다. 고디는 결국 그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얼마 지나지 않다 고디의 뒤를 이어 카하마 집단의 '데'가 희생당했고, 곧이어 한때 카사켈라 우두머리 수컷이었던 '골리앗'까지 살해당했다. 카사켈라 집단은 카하마 집단에 대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공격을 지속한 끝에 카하마 집단을 3년 10개월 만에 소멸시켰다.

이 사건에서 카사켈라 침팬지는 한 무리의 침팬지 무리를 완전히 해체시켰을 뿐 아니라, 얼마 전까지 친구였던 동족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잔인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침팬지는 기억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결코 과거의 친구를 못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아니다. 단지 다른 집단이 되어 적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침팬지의 공격성은, 종교, 인종, 이념 등의 문제로 어제까지의 이웃에게 총칼을 겨누는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인 구달은 카사켈라 집단의 집단 살육을 기록하며, “카사켈라 수컷들이 화기를 갖추고 사용법을 배웠더라면 카하마 침팬지들을 죽이기 위해 화기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으며, 제레드 다이아몬드 역시 “침팬지가 만일 창이라든가 그 밖의 전쟁을 위한 무기를 손에 넣었다면 인간과 같은 효율적인 살육을 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다”고 말하였다.

침팬지가 가진 동종 살해의 공격성은 위와 같은 단편적인 예시 뿐 아니라, 통계[11]에서도 잘 드러난다. 통계에 따르면, 곰베에 사는 침팬지의 사망 원인에서, 동종 살해가 질병 다음으로 2순위를 기록했다. 수컷 침팬지의 24~39%가, 암컷 침팬지의 15~21%가 동종 살해로 목숨을 잃었다. 그 다음 순위를 잇는 자연 부상에 따른 죽음이 6~8%를 차지함과 비교할 때, 동종 살해는 침팬지의 주된 사망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때때로 사람들은 인간의 잔혹한 본성이 자연의 섭리를 벗어났다고 믿는다. 본질적으로 자연을 선(善)의 원형으로 간주하는 그들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살육이 전부 최소한의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맹수는 오로지 배가 고플 때만 사냥을 하며, 살육으로 즐거움을 얻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많은 실제 사례는 자연의 선함을 부정한다. 고양이의 장난감이 기본적으로 사냥 놀이임을 생각해 볼 때, 맹수가 사냥을 통해 즐거움을 얻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근거가 없다. 무리지어 사는 대부분의 동물이 동종 살해를 저지르고, 작게는 집단 내부에서도 권력투쟁이 일어나며, 따돌림 문제를 겪는다. 만약 이렇게 관찰된 자연의 사실마저 선(善)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살인 행위를 정당화해 버리고 만다. 애초에 문제는 인간이 만든 선악(善惡)의 잣대를 자연에 들이대고, 인간을 자연에서 배제시키는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에 있다. 우리는 실존하는 자연을 마주할수록, 우리의 본성이 자연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 가진 잔인함 역시 자연의 일부이다. 뛰어난 지적 능력이 만든 살상 도구 탓에 파괴력이 커졌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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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벌어진 대량학살. 인간의 동종 학살 성향은 결코 인간이 만든 예외적 발명품이 아니다.

정치적 동물

앞서와 반대로 자연을 악으로 규정하고, 인간의 본성의 잔인함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종종 자연을 ‘약육강식’과 더불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묘사한다. 그리고 인간이 잔인한 본성을 억제하고 권력 구조를 가진 사회를 만듦으로써 자연 상태로부터 벗어났다고 말한다. 그들은 물론 많은 동물들이 무리지어 생활하고 사회를 가지고 있음을 알지만, 인간 사회와 짐승 사회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자유를 통해 사회를 구성하고 있지만, 자연은 생각하는 자유가 제거된 본능만이 존재하는 야생의 상태라는 것이다. 그들이 상상하는 야생의 사회는, 고도의 정치 행위의 총합인 인간 사회와 달리, 오로지 물리적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약육강식’ 세계의 연장선이다. 동물의 무리는 단순히 먹이와 생존을 위해 형성된 것이며, 원초적인 폭력이 우두머리를 결정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의 잔혹한 학살 행위의 원인을 인간의 정치적 자유가 무너진 상태에서 드러나는 짐승의 본성에서 찾는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허용된 폭력이란, 국가에 위임된 공권력과 그 공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저항권 등 정치적 행위에 수반하는 폭력으로 제한된다.

하지만, 그들이 지어낸 자연의 세계관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이성이 있는지를 논했던 바야돌리드 논쟁만큼이나 당혹스러운 것이다. 바야돌리드 논쟁은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이 존재하지 않는 스페인에서 그러한 논쟁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에 문제가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이성을 갖고 있는지 여부는 그들의 입에 달린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스페인인들은 논쟁이 아니라 관찰을 해야 했다. 동물의 무리를 원초적 본능의 사회로 그리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인간 사회를 통찰하기 위해 자연을 끌어들였지만, 실제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았다. 자연은 책상머리 앞에 놓여 있지 않다.

그렇다면, 실제의 동물 사회는 어떠한가. 과연 우리 인간만이 복잡한 사회적 욕구를 갖는 정치적 동물인가. 또 우리만이 폭력을 억제하고 고도의 정치적 목적 아래 사용할 수 있는 종인가. 이에 대하여 프란스 드 발[4]이 관찰한 침팬지 ‘예로엔’의 이야기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 이야기에는 네덜란드의 아른헴 동물원을 배경으로 세 마리의 수컷 침팬지가 등장한다. 늙고 힘없는 침팬지 ‘예로엔’과 젊은 신출내기 ‘니키’, 크고 강한 ‘로이트’가 그들이다. 그리고 드 발의 이야기는 마치 마피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른헴의 젊은 우두머리 로이트가 피범벅이 된 채 철창에 머리를 기대어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드 발이 발견한 로이트는 이미 생명이 위급한 상태였다. 몸은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 있는 상태였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뜯겨져 나가있었다. 수컷으로서 중요한 부분 또한 보이지 않았다. 수의사가 도착하고 로이트를 살리기 위한 수술이 진행되었지만, 결국 로이트는 마취에서 깨지 못했다.

로이트의 비극은 예로엔이 아른헴 동물원의 우두머리였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로엔은 원래 로이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아른헴 동물원의 우두머리 침팬지였다. 젊고 강한 로이트를 당해낼 재간이 없던 예로엔은 로이트에게 권좌를 내주었고, 로이트는 예로엔을 실각시킨 후 빠르게 침팬지 무리를 장악했다.

처음 실각을 경험한 예로엔은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예로엔은 주변의 모든 사회적 활동에 무관심했고, 몇 주일 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한때 위풍당당했던 그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사라졌다. 하지만, 교활한 예로엔은 이내 복수를 다짐한듯 정신을 차리고 로이트에게 대항하기로 마음먹는다. 예로엔은 로이트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에 본인 대신 어리고 겁 없는 ‘니키’를 내세웠다. 니키나 예로엔의 힘은 누구도 로이트와 견줄 수 없었지만, 싸움은 2 대 1 양상으로 진행되었고, 니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우두머리가 되었다. 약자 둘이 동맹을 맺음으로써 권력을 쟁취한 것이다. 이후 예로엔은 킹메이커로서 특권을 누리며 니키와 권력의 일부를 나누었는데, 그것은 매력적인 암컷과의 섹스였다. 니키는 보통의 경우 다른 침팬지에게 그와 같은 행동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예로엔은 예외를 인정받았다. 동맹에 따른 거래였다.

그러나 영원한 동맹은 존재하지 않았다. 4년의 통치 기간 동안 니키는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자신이 권력을 얻도록 도와준 침팬지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린 것일까. 니키는 예로엔의 성생활에 간섭하기 시작했고, 몇 달 동안 지배 계급 내부의 권력 투쟁 끝에, 어느 날 예로엔은 니키와 결별을 고한다. 그리고 그날 밤 로이트는 이 권력의 공백을 놓치지 않았다. 다시금 권좌에 오른 로이트는 우두머리로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로이트는 암컷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으며, 뛰어난 분쟁 조정자이자, 약한 자의 보호자였고, 분할 통치를 통해 경쟁자 간의 연대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데 뛰어났다.

사실 침팬지 사회에서 우두머리로서 다른 침팬지의 지지와 분쟁 조정자로서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침팬지 무리는 서열이 높은 침팬지에게 약자를 지원하거나 공정한 간섭을 통해 싸움을 말리는 역할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야생 침팬지의 사례 보고에 따르면, 침팬지 무리는 그러한 역할을 무시하고 난폭하게 구는 우두머리를 죽이거나 세력권의 경계로 유배 보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로이트는 우두머리가 된 지 몇 주일 만에 이 중재자 역할을 떠맡았다. 그는 탁월한 중재자였으며 공정한 공권력이었다. 로이트는 집단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났을 때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았다. 그와 털고르기를 한 시간과 중재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대신에 로이트는 계속 싸우려고 하는 침팬지는 누구든 두들겨 팼다. 공동체의 평화를 위해 공권력을 동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로이트는 우두머리로서 공적인 역할과 사적인 감정을 구분할 줄 알았다. 반면에, 이전 통치자였던 니키는 썩 훌륭한 우두머리가 아니었다. 니키는 싸움을 누가 먼저 시작했든 자기 친구의 편을 들었는데, 그 결과 어떤 침팬지도 니키의 중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니키는 분쟁 당사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곤 했다. 그래서 니키의 집권 기간에는 예로엔이 모든 분쟁의 중재를 도맡았다. 무리 구성원들이 예로엔의 중재를 받아드렸다. 이는 마치 공식적인 직함과 권력이 다르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아른헴의 침팬지들은 니키보다 예로엔에게 더많은 존경의 예를 표시하곤 했다. 니키는 ‘명목상의 우두머리’로, 예로엔은 ‘막후의 권력’처럼 보였다.

한편 로이트가 암컷들의 지지 속에 무리를 통치하던 어느 날, 그는 결국 동맹을 회복한 니키와 예로엔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고 만다. 예로엔이 로이트를 붙잡은 사이 니키가 급소를 노린 치명적 공격을 퍼부었다. 이 극단적인 보복은 마치 예로엔이 로이트에 의해 두 번이나 맛본 좌절과 분노를 표출하는 듯 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날 밤은 로이트를 도와줄 암컷 무리가 없었다. 암컷들이 별도의 우리로 분리되있었던 탓이다. 니키와 예로엔은 로이트를 도와줄 세력이 없는 틈을 타 정치적 보복을 감행한 것이다. 로이트가 살해된 다음날, 니키는 포이스트라는 암컷에게 거친 항의를 받으며 쫓겨 다녀야 했다. 그녀는 로이트의 주요 동맹 중 하나였다.

로이트가 죽은 후, 니키는 다시 우두머리가 되었지만, 그의 집권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배은망덕한 니키가 예로엔을 대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니키는 아마 로이트가 없는 지금 예로엔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예로엔은 ‘댄디’라는 새로운 우두머리 후보를 추대했고, 정신적 압박을 이기지 못한 니키는 결국 해자의 물에 빠져 죽었다. 결과적으로 권력을 탐하던 세 침팬지 중 살아남은 것은 나이 든 예로엔이었다.

여기까지 드 발이 들려준 예로엔과 니키, 로이트의 정치 이야기는 꽤나 흥미롭다. 우리는 그들이 마치 사람인양 그들의 행위에 공감할 수 있었으며, 다시 우리는 이 공감에서 그들이 얼마나 우리 인간과 닮았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관찰된 실제의 침팬지는 우리에게 상상 속의 자연이 아닌 진짜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드 발의 이야기 속에서, 침팬지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강한 권력욕을 느끼고, 권력을 위해 동맹을 맺으며, 권력을 잃었을 때에는 심한 우울을 앓는다. 또 공정함이 무엇인지를 느끼며, 공정한 지도자에게는 중재자로서 일정한 폭력을 위임할 줄 안다. 반대로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지도자에게 저항하고, 선을 넘은 경우 그를 끌어내릴 줄도 안다. 이 모든 특징들은 앞에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특징이라고 주장되었던 것들이다. 만약 그러한 주장을 하던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사람’으로 바꿔 보여준다면 알아차릴 수 있을까.

우리가 인간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회 질서와 정치 행위는 인간만의 특출난 발명품이 아니다. 또한 어떤 이가 말하는 것처럼 자연이 원초적인 본능에만 의존하는 공간도 아니다. 복잡한 정치 제도의 탄생은 인간의 뛰어난 지적 능력 덕이겠지만, 그 제도를 정당화는 감각은 결국 자연적 본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우리와 유전적 친척인 유인원들도 자연히 그러한 본성을 공유한다. 책상 앞에 앉아 상상하는 자연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사람이 원하는 바에 따라 자연은 선(善)으로 되기도 하고, 악(惡)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책상을 떠나 실제의 관찰이 밝히는 자연은 결코 인간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4-1) : 이타적인 종 ; 정의란 무엇인가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1] Begue, L. (2013).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이세진 (번역). 서울 : (주)부키. (원전은 2010에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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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Williams, J. M., Lonsdorf, E. V., Wilson, M. L., Schumacher-Stankey, J., Goodall, J. And Pusey, A. E. (2008). Causes of Death in the Kasekela Chimpanzees of Gombe National Park, Tanzania. American Journal of Primatology, 70, 766–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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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자연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중 다수는 자연이 뭔지 제대로 모르는 도시 사람들이 많죠

그냥 자연은 자연일 뿐. 다들 자연에 자신의 바람을 투영하는 것같습니다.

침팬치 이야기 넘 재미있네요. 그들의 스토리가 이렇게나 '인간적'일 줄은 몰랐습니다. 참 그러고 보면 인간의 정의는 최대한 건조하게 내려야 하지 않을까요. 오로지 유전자 구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습니다.

멍청한 니키 자식... 남들은 다 실권이 누구한테 있는지 아는데, 그냥 자리라도 보전하고 있지ㅋㅋㅋ 정말 인간같지 않습니까ㅎㅎ

법과 질서, 규칙과 사회화가 우리의 본성을 억눌러주는게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태어난 시대가 원시시대가 아니라 현대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꼭 우리의 본성이 잔인하지만은 않으니까 저는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ㅎㅎ 그게 다음편 주제입니다.

잘 봤습니다. 생각할 여지가 많군요. 감사합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불교의 관점으로 설명하자면 識을 가진 존재로서 기세간 안에 색계, 무색계, 욕계를 구분하는데 욕계중생을 유정(有情)이라고 정의하지요. 즉 감정이 있다는 것인데 감정 속에는 선과 악이 동시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지요. 선과 악이라고 정의내릴수 있다면 지(知)라는 '앎', 인식을 때어놓을수 없거든요. 따라서 인간이나 동물이나 감정+앎(인식)이 있다는 면에서는 다를 것이 없지요. 그런데 인간에게는 '지혜'가 다른 유정들보다 발달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영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추론을 할수 있지요. 그래서 수행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욕계에서 색계에서 무색계 그리고 출세간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불교의 세계관을 보면 인간과 동물의 생명을 똑같이 존중한다는 데에서 참 앞서나갔다는 생각을 합니다. 말씀하신 부분 중에 "감정과 인식이 있다는 면에서 다를 것이 없다"는 부분이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그동안 많은 예외주의의 시각에서 인간은 동물과 차별적인 존재로 다루어왔거든요. 그리고 지적능력(지혜라 하셨지만 저는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에서 출발한 인간의 능력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협동이나 배려, 공감과 같은 특징들을 인간의 이성에서 그동안 많이 찾아왔던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ㅎㅎㅎㅎ, 맞는말씀입니다. 불교에서는 무지(無明)을 생명의 근본 바탕으로 보거든요. 그래서 윤회의 바퀴를 돌고돈다는 것이지요. 돌고 돌고 물레방아 인생이라는 것이지요. 지적 능력이 있는 사람은 사실 0.00000001%도 안돼지요.

음 ㅋㅋㅋㅋㅋ
회사에서 소방교육시간에 이 글을 읽으니 아ㅡ주 다채롭네요
생명을 살리는 심폐소생술을 설명하는 시간인데 인간의 악함과 침팬지들의 죽임과 괴롭힘에 관한 글을 읽고이쏘옹
배터리가 10퍼라 ㅡㅡ정치적동물 전까지 읽구가용
ㅋㅋㅋㅋ댓글책갈피ㅋㅋ

ㅋㅋㅋㅋㅋㅋㅋ

댓글책갈피라니ㅋㅋ

웃지마 정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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