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생에 처음으로 , 갑자기 ...모두에게 조용한 기쁨과 설렘이 피어올랐다.

in Avle 여성 육아4 years ago (edited)

일생동한 끝없이 이어질것 같았던 어떤 굴레에서 일시에 벗어난 해방감을 온 가족들이 난 생 처음 느낀 것이다.
아무도 말은 없었지만 모두가 어떤 기대감에 고양되고 있었다.

바람 핀 것을 용서받지 못해 이십년 만에 나타난 둘째 매형만이 장례식장에 흐르는 가벼운 해방감을 이해할 수 없어했다. 사실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은 시간을 살아본 이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이치 뿐이니 당연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세 달,
이제 어머니는 난생 처음 인생에 ‘쉼’을 용납했다. 이제야 아무 염려 없는 천국에 이르셨다. 꽃밭에서 벌을 보며 할 일이 없어 고즈넉히 일기를 쓰시고 오직 당신 드시고 싶은 것을 먹고 적적할 즈음엔 자식들의 환대를 받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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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제 한 몸 밖에 모르고 산 인간!"

"미안해요, 마지막까지 이런 말로 보내서....거 가서 잘 사소"

마지막 화구 앞에서 꽃단장한 아버지의 시신을 보내며 어머니가 한 말이다.

배운 것 없는 모두가 먹고살기 팍팍하던 시절, 사 남매를 안 굶기고 대학보내기 위해 등록금 벌어 보내려 궁리한 십 여 년. 그 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아버지가 가장다웠던 유일한 장면이다.

물론 그 가장의 책임감조차 다소 거친 적도 많았지만 말이다.
배추 한 차를 삼남매 자취방 앞에 부려놓고 " 팔아서 생활비 해라" 하거나,
방학 때 귤 한 차를 싣고와서 " 장에 나가 팔아서 등록금 내라" 한 적도 있었다.

삼남매가 대학을 졸업하거나 때려 친 때부터 아버지는 돈 벌기를 멈추고 부양받기를 원했으니
우리는 부양했다. 거기에 어머니의 삶이 있었으므로.

우리를 부양하고 공부시킨 분은 오롯이 어머니 몫이었다.

가장이 궁리를 해서 돈 벌 아이템을 과감하게 저지른 후
술집으로 가면,
결국 우리 등록금을 만들어 낸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려서 수를 잘 놓으셨다는 꽃다운 어머니지만,

내 기억 속에 모든 시간에
가을의 매일 새벽부터 온 종일 감자 자루를 어깨에 이고 차에 실었고,
모든 겨울날은 리어커로 연탄 한 차를 매일같이 배달하셨다.
엿장수들이 실어오는 고물을 달아서 쌓아두는 일을 할 때도 있었고
하루는 배추를 실어 서울로 보냈고
또 다른 날은 사과한차를 이집 저집에 외상으로 배달했다.

그 모든 일을 하면서도 아침 저녁으로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집 주변에 한 뼘 땅마다 고추며 먹거리를 심어 가꿨다.
우리가 사춘기 때는 어머니의 그 태도가 너무나 절박하기만 해서 힘겨웠다.

우리는 도회로 나가 공부만 했으므로
이런 집안 사정이며 꾸려온 일들은 방학 때 외에는 잘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평생 엄마 속을 긁고
어머니는 악착같이 자식들의 교육에 삶을 바친 이야기는
훗날

모두 어머니의 기억과 입을 통해 우리 기억이 되었다.

그 옛날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
멀리 도망가서 바람난 아버지를 찾아 삼단 이불을 이고 찾아 온 날로부터
아버지의 주사와 바람과 손찌검을 다 견디며
지붕도 없는 집에서 악착같이 일 해 ‘생존’하시며 결국 우리 삼남매를 낳고 키우시느라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기 위해 이를 악문 날이 많았다.

어느 날엔가 읍내 살던 생모가 암으로 떠나며 우리 집으로 오게 된 작은 누나를 아버지는 유독 귀여워했지만, 어머니는 미움을 삭이고 품었다.

황국신민관 촛불시민 사이 두 사람의 삶을 다 꿰면 대하소설이 되리라.

그 모든 날들 흥분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공정하고 이성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키운 어머니에 대해 우리 모든 남매는 근원적 존경을 품고 있다. 그의 스토리를 들은 며느리 사위까지도.

60대에도 폭행합의금이며 도박 빚을 지고 욕하는 다투는 아버지와 대비되어 어머니의 인품은 늘 온 동네 존경을 받아 왔다.

아버지가 치매로 누워 대소변을 못 가릴 때조차 최선을 다 해 간호하시는 어머니의 그 정성을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없다. 남매는 아버지에 대한 근원적 원망을 품고 있다.
그래도 우리 4남매가 집을 지어드리고, 고추를 따러가고, 생활비를 넉넉히 드리고, 필요를 다 채워드리려 마음이 가 닿아 있는 이유는 오직 그 곳에 어머니의 삶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일탈도 없이 운명을 그저 받아들이고 삶을 고집스레 밀고나간, 그 어머니의 인생을 우리는 흉내 낼 수 없지만 그에 의지하여 우리 가족이 존재할 수 있었음은 모두가 알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어머니는 ‘인생이 쉼’이라는 어색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raah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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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하 소설처럼 어머님의 삶이 그려집니다.
어머님의 희생이 아니었으면 다들 퍽퍽한 삶을 사셨겠어요.
저희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엄니 말씀이라면 무조건 복종입니다. ㅎㅎ

진정 존경할만한 어머니시네요.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립네요.

정말 눈물나는 이야기네요.
이젠 좀 편하게, 행복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님~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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