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문명과 전쟁], [사피엔스] 거시적 세상읽기-3. 갑자기 유럽이 앞서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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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3.jpg
ISBN:9788934972464

거시적으로 세상읽기-1.-“9/11? 인종청소? 그런 건 장난이야.” 연쇄 학살범의 후손들이여

거시적 세상읽기-2-농업혁명? 그건 사기야.” 인류는 속아왔어, 엄청난 희생이 있었지


[총균쇠],[문명과 전쟁], [사피엔스] 거시적 세상읽기-3. 갑자기 유럽이 앞서간 이유는?

  • 세 책을 차례로 비교 정리하고 마지막에 총정리 해 보겠습니다. ^^

총균쇠:

그 동네는 운이 좋았지

과학의 발달이 왜 유라시아에서, 다음엔 유럽에서 발전했는지를 지역과 ‘인구수’에서 찾는다.

유라시아는 가장 큰 땅덩어리이며 대륙의 축이 동서방향 이므로,

기술이 가장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곳은 생산성이 높고, 넓고, 인구가 많은 지역, 즉 발명가도 많고 서로 경쟁하는 사회도 많은 지역이다
서로 경쟁적인 사회의 수도 많고 한 지역에서 습득된 기술은 비슷한 위도의 기후를 가진 지역 사회로 비교적 빠르게 전파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기술 가속화가 가장먼저 시작된 대륙이었으며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기술을 축적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본다.

인구가 많으면 기술자도 많다?

각 대륙의 면적, 인구확산의 난이도, 식량생산의 출발 시기 등에서 나타난 이 같은 차이에 따라 기술발전의 차이는 더 크게 벌어졌다, 기술은 자가촉매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라시아는 처음부터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있었지만 AD 1492년에 와서는 더욱 엄청나게 앞서가고 있었다, 그것은 유라시아인들의 지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유라시아의 지리적 요건 때문이었다.

아프리카는 다른 대륙보다 훨씬 일찍 출발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고 기후와 생식지도 다양하고 인종도 다양하다, 그러나 아프리카 인들은 유럽인들을 정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유럽인들에게 침략당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식량생산의 출발시기 때문이었다,

재수 없게도 가축화,작물화 할 거리가 없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는 유라시아 보다 생산이 늦어졌다, 그 까닭은 가축화 작물화 할 토종동식물이 적었고 식량생산에 알맞은 지역이 좁았으며 남북축 때문에 전파가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유라시아에서 전해진 작물을 처음 받아들인 반투족은 그 덕분에 먼저 성장하여 코이산족을 대체했다.

말은 BC1800 이집트에 나타났지만 사하라 넘어 서 아프리카에 기병대를 갖춘 왕국이 건설된 것은 AD1~1000년이다. 2000년 동안 체체파리가 서식하는 지역을 통과하여 남하하지 못했다. 소,양,염소는 BC3000~2000년 이미 세링게티 평원 북쪽 변두리에 도달했지만 세렝게티 평원을 지나 남아프리카에 도착하는데는 2000년이 걸렸다. 토기도 BC8000 수단과 사하라에 나타났지만 희망봉에 도달한 것은 AD1년 경의 일이다

중국은 식민지도 무역도 필요도 없고,관심도 없었다.?

중국의 천자는 이미 세계를 통일했으므로 개인들이 부유해지고 힘을 갖는 것을 경계했다. 또한 유,불교는 상업적 성공을 중요하게여기지 않았으므로 과학의 발달을 전쟁에 도입하기를 신경 쓰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문명과 전쟁]:

좁은데서 볶닦이다 무역에 눈뜬 탓이다.
제해권을 통한 무역, 즉 돈이 대규모 군대를 낳는다고 봅니다.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구와 돈이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과거 문명은 시민의 군사력→ 부와 번영→시민의 군사적 덕목 하락→ 쇠퇴

그러나 이제 문명사회의 부 →기술발달 → 부→ 무력강화의 양성되먹임 현상을 낳았다
이제 역사성 처음으로 부자만이 위력자 집단의 자격을 얻었다.

군사혁명 1, 총포 ,제해권

BC 5C 전국시대의 중국처럼 잘게 쪼개져 경쟁하는 시기는 전제정에 비해 기술혁신을 낳는다. 유럽이 그랬다. 문명발상지에 가까우면서도 산과 바위에 막혀 대체로 보호받으며 기술적 발전을 거듭했다.

총포 VS 인구

1200년 경부터는 제후들을 압도하며 민족-영역 국가가 증장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도시국가는 너무 작았다. 도시국가의 몰락은 화력과는 무관했다. 150만명을 통치한 베네치아제국도 프랑스의 10%정도였다. 산성의 스위스와 제방 뒤의 네덜란드 동맹을 제외한 모든 도시들이 살아남지 못했다.

  • 무엇이 군사혁명을 구성했는가.

15세기 철포가 증장하다. 화기의 사용은 획기적 사건이었다. 백년전쟁 막바지에 프랑스는 잉글랜드 방어시설에 구멍을 냈다. 메메드2세도 거대한 사석포로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을 박살냈다. 프랑스 샤를8세는 공성포를 끌로 이탈리에서 마주친 모든 요새도시의 성문을 쉽게 열어젖혔다.
잠시동안 공성포가 전장을 장악했다.

하지만 총포의 사용이 결정적이지는 않았다. 화승총과 대포로 무장한 중국의 명나라 군대는 만주 기병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필리프2세 이후 프랑스가 국가를 만든 것은 대포를 사용하기 한참 전의 일이다. 도시들은 즉시 높이를 낮추고 충격을 완화한 신형 방어시설을 통해 총포에 대비했다.

육군의 규모

저자가 찾아내 군사혁명의 핵심은 육군의 규모다.( 돈이 필요하다)
화기가 야전과 포위전을 탈바꿈시키고 영속적 육군을 엄청나게 확대했다.
1530년~1710년 유럽 국가들의 급료를 받는 육군은 10배 증가하다.
에스파냐는 1630년 30만명, 프랑스는 1700년 40만명에게 급료를 지급했다.
아우구스트스이후 역사적으로 유지 가능한 직업군인병력의 수는 인구의 1%였다.
로마제국후기에도 불가피하게 군인의 수를 확대하다가 경제적 악순환에 갇혀버린다. 1700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1630년 스페인은 일정기간 군인을 2%를 유지하다가 남미에서 실어온 은괴에도 불구하고 파산을 맞았다.

재정 혁명- 제해권 VS 직업군인 + 상업

  • 1500년 등장한 지구적 무역체계가 ‘유럽의 기적’의 진짜 엔진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바다무역(제해권)을 통해 시장을 열어버린 세계무역시장은 유럽 일부국가에 더 많은 자원을 주고 권력을 주었다. 부를 통해 산업화가 가능하게 했고 부와 권력이 비약적으로 증대하게 했다는 애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견해에 동의한다.

왜 다른 대륙, 다른 문명이 아니라 유럽인가? 그것은 지리적으로 곤란함이 낳은 역사적 우연이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중국과 아랍상인들이 이미 좋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중국의 나침판이 유럽에 도착한 것은 12세기 였다. 중국 정화의 거대 선단이 아프리카까지 간 것은 이미 1433년의 일이다.

하지만 아시아 인들은 지리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었고 뱃길로 멀리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중앙의 황제도 상인들이 무역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물론 그보다는 모두의 골칫거리인 기마유목민의 침입으로 그런 한가한 해상 무역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유럽은 몽골족이 침입할 매력이 없는 곳이었고 동쪽의 길은 막혀있었다. 배를 타고 바다로나가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상선의 일종인 범선에 마침 발명된 대포를 싣자, 갤리3단 노선보다 뛰어난 전함이 되어 바다를 지배했다.

돈= 인력

저자가 볼 때 전쟁의 성패는 결국 돈과 인력이다.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는 몇 회의 대 회전에서 승리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수개월~ 수년을 이어지는 포위전의 병창을 유지하는 것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로마의 부유층들은 적극적으로 이 전쟁에 투자했다. 그 승리는 지중해의 제해권을 통해 다시 이익으로 환수되었다.

근대초기 국가들은 전례 없는 적자재정은 육군과 해군의 확대, 상업과 제조업의 발달과 맞물려 치열한 투쟁의 변수로 작용했다. 전쟁을 위해 국가는 자국 내의 자본가들을 (유대인처럼)쥐어짜다가 결국 던져 버릴 수도 있고, 그들과 거래해서 융자를 할 수도, 혹은 적극적으로 전쟁에 투자하도록 부추길 수도 있다. 전제적 왕권을 가진 프랑스, 스페인은 제 3국 즉 이탈리아의 은행들에게 차관을 빌려 전쟁을 수행했다. 고수익 고위험 융자인 이런 국가의 융자는 종종 채무 불이행으로 이어지고 그 신용불량상태는 종종 국가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자금이 부족해진 정부는 자본가에게 직위를 매매한다. 자본가는 봉급과 횡령으로 돈을 회수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1787년 프로이센의 군 장성이 80명 정도일 때 프랑스는 1171명에게 봉급을 지급했다. 국방비의 절반이었다.

[사피엔스] 3부:

인류의 통합 / 돈, 제국, 종교의 법칙

농업혁명 이래 인간사회는 점점 더 규모가 크고 복잡해졌다. 사회질서를 지탱하는 상상의 건축물 역시 더욱 정교해졌다.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 본능인 '문화'가 탄생하였다.
역사의 역학은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문화가 반드시 호모 사피엔스에게 가장 좋은 문화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진화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
인간 집단은 점차 커지면서 상상의 집단인 ‘국가’체제에 이르렀지만 이젠 전 세계를 하나의 집단으로 인식한다.

  •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은 것은 자본,종교,제국 그리고 그 것들이 서로 뒤섞여 시너지를 냈다.
    소, 돼지가 유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삶의 질은 불행 그 자체인 것처럼

인간도 자본과, 과학이 국가에 부역하면서 제국이 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모든 면에서 나날이 발전(?)했지만, 전쟁과 빈부격차로 개인들에게는 엄청난 불행을 안겨주었다.

  • 인공적 본능: 본래 없었으나 창조된 인공적 본능의 네트워크가 바로 ‘문화’다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은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이외에 없다. 1789년 이래 세계 정치사는 이 모순을 화해시키려는 일련의 시도로 볼 수 있다. 오늘날 세계는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데 실패한다.

거시적 시각에서 보면 역사가 통일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다.

  • 지구에는 얼마나 많은 이 공존했을까? 기원전 10000년경 우리 행성에 인간 세상들의 숫자는 수천 개였다. 90퍼센트에 가까운 인류는 아프로아시아에 살았다.

기원전 1000년~기원전1년 동안 세계의 인간들이 ‘하나’라는 인식이 나타났다.

  • 그것은 화폐질서 안에서, 두 번째는 제국의 질서, 세 번째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 안에서였다.
  1. 돈의 향기

    국가가 상상의 산물인 것처럼 돈도 그렇다. 세계 전체의 화폐 총량은 약 60조 달러지만 50조 달러 이상의 액수는 컴퓨터 서버에만 존재한다. 게다가 황금은 종교와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넘친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서로를 향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이고 서로의 도시를 폐허로 만들면서도 서로의 금화는 애용해 마지않는다. 카톨릭 주교들도 복사해 발행하고 애용한

이슬람 주화에는 “알라외에는 다른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자다”라고 적혀있었고 신을 두려워하는 기독교인들도 이를 기쁘게 사용했다....
무슬림 통치자들도 예수와 마리아를 새겨 넣은 주화를 세금으로 받았다.

  1. 제국의 비전
    오늘날까지도 고대 누만시아인들은 스페인의 영웅적 행위와 애국심의 귀감이며, 젊은이들의 역할모델로 묘사된다.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켈트족 누만시아는 로마인의 노예가 되는 것에 저항하여 버티다가 결국 모두 자살한다. 누만시아는 나중에 스페인의 독립과 용기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로마의 언어로 로마인의 예술모델로 발표된다. 누만시아를 칭송하는 스페인 애국자들도 대부분 로마 카톨릭 신자들이다. 현대 스페인의 법도 로마법에서 나온 것이다.
    과거에 존재했던 문화들은 무자비한 제국의 군대에 희생되었고 제국은 이들 문화들을 망각속에 밀어넣었다. 21세기 모든 사람은 제국의 후예이다. 자신들의 조상 중 누군가가 목숨 걸고 저항했던 그 제국문화의 언어를 쓰며 그 나라의 일원이라 여긴다. 오늘날 이집트인들은 아랍어로 말하고 자신을 아랍인이라 여기고 아랍제국과 동일시한다. 7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하여 철권으로 반란들을 진압한 제국 말이다.

많은 경우 하나의 제국이 무너진다고 해서 피지배 민족들이 독립하는 일은 드물었다. 옛 제국이 붕괴하거나 후퇴한 자리에 생긴 진공에는 새로운 제국이 발을 들여놓았다.
페르시아왕 키루스 파사왕 고레스:바사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성경:에스라1:1-4)
키루스는 자신이 정복한 나라의 백성들에게도 사랑받고 싶었고, 자신의 신민이 된 것이 행운이라고 믿게 하고 싶어했다. 이후 제국들은 키루스의 ‘제국관’을 받아들인다. 이는 제국을 정당화하고 반란시도를 무효화한다.
영국인들은 인도 사법제도의 초석을 놓았으며 행정부 구조를 창건했고, 경제적 통합에 극히 중요한 철도망을 건설했다. 독립 인도는 영국에서 구현된 형태의 서구식 민주주의를 정부형태로 받아들였다.

21세기가 전개되면서 민족주의는 급속하게 입지를 잃고 있다.
국가들은 글로벌 마켓의 책략에, 글로벌 여론에, 국제 사법제도의 기준에 따라야 할 의무가 생겼다.

  1. 종교의 법칙

농업혁명이후 인간은 초인적 도움이 필요했다. 수 천년간 종교란 인간이 동식물을 지배하는 대가로 신들에게 헌신한다는 약속을 담는 계약이다. 그래서 양과 포도주,케익을 바치고 풍년과 가축의 다산을 약속받는 것이었다.
종교란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아트만’같은 전 우주의 영원한 정수이자 영혼을 설정하고, 모든 개인과 모든 현상들에 대해서 다양한 신들을 만든 다신교의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다신교적 통찰은 매우 관용적이었다.
로마인들은 대부분의 피정목민의 종교를 인정하면서 로마의 황제를 함께 존중해 주기를 바랐다. 다만 이를 극력하게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을 반란분자로 보고 일부 박해했다.

3세기에 걸친 모든 박해의 희생자를 다 합쳐도 다신교도 로마인이 살해한 기독교인은 몇 천명을 넘지 않았다. 이후 1500년간 기독교인들은 사랑과 관용에 대한 조금 다른 해석을 지키기 위해 다른 기독교인 수 백만명을 학살했다.

유일신교의 성공

16,7세기 오직 신앙만을 주장하는 개신교도와 신앙과 의례를 중시하는 가톨릭은 서로를 수십 만명이나 살해한다.
1572년 선행을 강조하는 프랑스 가톨릭교도는 8.24일 하나님 사랑을 강조하는 개신교를 공격해서 하루만에 1만명 정도를 살해했다. 로마 교황은 매우 기뻐하며 축하 기도회를 조직하고 바티칸의 방 하나를 기념화로 장식했다.

이 폐쇄적 잔인성이 유일신교의 성공이유라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나사렛 예수가 그들이 오래 기다리던 구세주라는 것을 유대인에게 확신시키려 했던 한 유대교 분파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제국민 바울은 우주 최고 권력이 편견적 신앙에 관심을 가지고 복음이 만민에게 지난 2천년간 일신론자들은 모든 경쟁상대를 폭력으로 말살시킴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되풀이 했다.

불교

불교는 신을 믿지 않지만 종교로 분류된다. 현상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다.
신을 섬길까?가 아니라 “번뇌는 존재한다. 나는 거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를 전파한다.집착을 놓아버리면 된다.탐욕,관계,사랑,쾌락,고통등에 관한 집중을 말한다.집착을 버리는 방법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명상을 권한다.
온갖 오류와 착각에서 벗어나 자연을 사실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늘 밀려오는 파도 하나하나를 기쁨과 고통으로 붙잡으려하던 사람이 파도들을 그냥 왔다게 내 버려 두고 바라보는 것. 그것이 해탈이다.

인본주의적 종교

인본주의적 종교는 호모 사피엔스를 숭배한다. 모든 인간이고유한 존엄성을 갖는다고 상정한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인간성’은 개별 인간의 속성이며 개인의 자유는 신성하다고 믿는다. 개인의 내면의 목소리가 지닌 자유‘인권’능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인간성’이 집단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모든 영혼이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일신론적 확신의 개정판이다.
진화론적 인본주의: 인간이 인간이하로 퇴화하는 것을 막고 초인으로 진화하도록 고무한다. 파시즘과 니치즘이 여기서 나왔다.

역사적 성공의 비결? 그런 것 없다.

  • 역사는 카오스다. 혁명은 그 정의상 예측이 불가능하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역사의 선택은 인류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는 없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문화가 반드시 호모 사피엔스에게 가장 좋은 문화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진화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

전체정리

농업혁명 이래 인간사회는 점점 더 규모가 크고 복잡해졌다. 근대이전에 이미 세계의 모든 사람을 하나의 집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것의 도구는 돈, 즉 경제와 제국주의와 종교다. 종교에는 일신교,불교,공산주의,자유개인,진화론적인본주의 등이 있다.
다음장에서는 이 세가지 재료가 어떻게 뒤섞여 산업혁명에 이르는 시너지를 내는지를 밝힙니다.

[문명과 전쟁]도 제해권 + 돈 + 육해군 + 시장이 결합되어 영 제국 산업혁명을 이룬다고 설명합니다. 영국의 엘리트는 기업가로 탈바꿈했고 자국 상업 발달과 번영에 관심이 많았고 전쟁에 투자할 용의가 있었죠. 결국 전쟁에 투자해서 제해권을 잡자 세계 각지에서 다른 나라의 시장을 착취하여 이익을 극대화 했고 그 자금과 노예무역이 영국의 맨체스터 제조업공장에서 산업혁명을 낳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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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유명한 책이죠. ^^

결국 인간의 욕심이 문명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