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 녹취록 38. 사이공 잔류와 배신자 김영택

in leedaeyong •  20 days ago

미국도 자국민들을 모두 철수시키지 못했다. 대사관이 너무 빨리 철수하는 바람에 다른 집결지에 있던 미국인들은 철수를 하지 못하고 남겨져 버렸다. 그들은 월맹군에 의해 체포되었고 그 과정에 많이 사살 당했다. 유엔에서 개입을 했다. 당시 북베트남은 유엔가입 신청을 하고 있었다. 유엔사무총장은 북베트남군이 사람을 죽이면 유엔가입을 시키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5월 2일 12시에 방송이 나왔다. 지금부터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방송이었다.

한편 월맹군은 불란서 대사관으로 피신한 한국인들에게 밖으로 나오라고 종용을 했다. 외교관도 아닌 사람들이 왜 거기 들어가 있는가라고 하면서, 프랑스 대사관이 한국인들을 밖으로 내 보내지 않으면 치외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최후 통첩을 했던 것이다. 5월 1일 오후 늦게 프랑스 대사관 밖으로 나왔다. 이미 그때에는 월맹군들이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4월 30일 12시에 월맹군이 사이공으로 진입했으니 바로 하루 정도 절대절명의 시간에 프랑스 대사관에 피신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월맹군들은 12시경부터 오후 4시 정도까지 학살을 저질렀던 것이다. 프랑스 대사관에서 나온 사람들은 바로 한국대사관으로 들어갔다. 프랑스 대사관에서 보호를 해주었다. 프랑스 국기를 한국대사관에 걸어놓고 프랑스 대사관 경비원이 보호를 해주었다. 보넬이라는 사람이었다.

사이공을 점령하자 월맹군들은 피난민들이 집을 돌아갈 수 있도록 검문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했다. 5월 2일이었다. 이대용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탈출을 할 계획을 수립했다. 트럭을 타고 붕따우까지 가서 배를 타고 탈출을 하는 것이었다. 월남에서 살림을 사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트럭을 준비해 놓았다. 대사관에 사람들이 모여서 토의를 했다. 반대가 많았다. 이대용은 잘못하면 모두 죽을 수 있으니 탈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전쟁 당시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경험에 비추어볼때 군인들은 승리했다는 기분에 모두 긴장이 풀어져 있어서 절대로 검문을 하지 않는다고 설득했다.

이규수 참사관에게 먼저 가라고 했더니 싫다고 이야기했다. 마침 2등서기관으로 해군대위 출신인 김창근이 자신이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이대용은 자신이 입으려고 준비했던 검은 옷을 김창근에게 주고 탈출시켰다. 김창근은 탈출에 성공했다. 이대용은 교민들이 안가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사이공에 그대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5월 12일 월맹군은 사이공의 외교관들에게 등록을 하라고 요구했다. 일본, 인도네시아, 라오스 대사관 직원들이 모두 등록을 했다. 성명, 가족 그리고 월남에 들어온 날자등을 등록하면 자국으로 보내준다는 것이었다. 한국 외교관들은 6월 18일 비행기를 타고 귀국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막상 6월 18일이 되자 안영사와 서경무관은 출국을 하지 못한다는 연락이 왔다. 스위스 국제적십자사 사이공 지점장과 직원 2명의 에스코트를 받아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 찰나, 월맹 측에서 한국사람들은 출국을 보류한다고 이야기 했다. 행정적인 일이 있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봐도 답해주지 않았다. 이대용은 대사관에 돌아오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저녁에는 대사관 밖의 안가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 월맹의 정치보위부 사람들이 대사관을 습격해서 안영사와 서경무관을 체포했다. 그와 함께 김종옥이라는 사람도 같이 체포해갔다.

프랑스 대사관 치외법권지역에 머무르고 있었을 때, 일본 대사관 와타나베 참사관이 찾아와서 북한 사람들이 남한 외교관들을 데리고 가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다. 월맹은 처음에는 그렇게 하라고 하다가 나중에 안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안영사와 서경무관이 잡혀간 것은 그들이 중앙정보부에서 파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비밀이 새나간 것은 한국인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대용은 자신이 사이공 억류를 기록한 책에서 그 배신자의 이름을 배완용이라고 가명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의 실제 이름은 김영택이었다. 통역관 소령 출신이었고 사업을 하러 와있었는데 절대절명의 순간에 월맹에 외교관들을 밀고해서 체포하게 한 것이었다.

녹취록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30, 30, 31, 32, 33, 34, 35, 36,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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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esome work sir.
truly extraordinary your works sir @wisdomandjustice

어디에나 쓰레기 들은 있나 봅니다.ㅠㅠ
저 와중에도 동포를 팔아먹고...

열길 물속을 알아도 ...

너무 화가 나내요
장군님께서 가명을 배완용(배신자 이완용)으로 사용하신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절대절명의 순간에 월맹에 외교관들을 밀고해서 체포하게 한 것이었다.

기가 막히네요...

김영택 완전 배신자네요~
후에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