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 녹취록 14 압록강으로 진격

이대용 장군 녹취록 14 압록강으로 진격

희천에서 적의 1개 사단 정도가 도망가는 것을 추적하다가 부상을 입은 인민군들이 후송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 중 한명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남천이라고 대답했다. 이대용은 자신의 누님이 황해도 남천으로 시집을 갔다고 하면서 위생병에게 빨리 치료해서 후송하라고 지시를 했다. 그러나 그 인민군 병사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죽고 말았다. 북한군은 철수하면서 국군의 추격을 막기 위해 계속 포를 쏘았다. 그 포소리를 듣고 있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이전의 전투에서 먼저 죽은 병사들이 하나씩 앞으로 지나갔다. 손을 내밀어 그들의 손을 잡으려고 하다가 잠을 깼다.

다시 북신현으로 들어갔다. 22일 서울에서 북한 의용군으로 들어온 간호원들을 잡았다. 약 20명정도 되었다. 그 중에 풍문여중 3학년생 박필숙이 특히 기억이 났다. 박필숙은 인민군이 싸우다 도망가는 것을 보고 분해했다. 이대용의 중대가 200명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인민군들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도망가버렸다. 박필숙은 “저런 바보들, 사람들도 많은데 이쪽으로 총을 쏘면 될텐데 하면서 욕을 했다.” 이를 본 하사관 하나가 박필숙을 죽이겠다고 했다. 이대용은 “포로는 절대로 죽이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만류하고 살려주었다.

낙동강에서 핀치에 몰렸을 때 국군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던 것과 달리, 인민군들은 자기네 지역에서도 자꾸 도망을 갔다. 구장에서는 빡빡깍은 머리에 인민군복을 거꾸로 뒤집어 입은 이들이 나와서 “국방군 환영합니다”라면서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이대용이 “너 인민군이냐 ?” 했더니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아니 임마 왜 싸우지도 않고, 총은 어딨냐?”라고 했더니 “총은 다 버렸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북한의 청천강 방어선은 그렇게 힘한번 써보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계속 공격하여 초산에 이르렀다. 압록강 이전 6km 전쯤에 있는 방어하기에 아주 이상적인 산이었다. 북한군 제8사단이 방어하고 있었다. 사단장은 오백룡이었다. 사단이라고 하지만 전체를 다 합쳐서 약 2500명 정도었다. 국군은 제7연대 1대대 약 700명 정도였다. 북한군 8사단은 여기에서 필사적으로 저항을 했다. 평양에서 철수한 당간부들이 강계에서 뗏목으로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였다. 대대 병력보다 4배 가까이 많았지만 전투에서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한나절 전투를 벌인 다음에 초산을 점령했다.

초산을 점령한 후 이대용의 중대가 제일 앞으로 나갔다. 지도도 없이 앞으로 전진했다. 간헐적으로 적의 사격이 있었으나 포병으로 제압한 후 계속 앞으로 갔다. 갑자기 큰 호수 같은 것이 나타났다. 그것이 압록강이었다. 압록강에 내려서 시계를 보니 2시 15분이었다. 1950년 10월 26일 2시 15분에 압록강에 도착했다. 압록강에 북한군이 설치한 뗏목은 잘라버렸다. 눈으로 본 것만도 몇천명 정도가 만주쪽으로 넘어갔고 나머지는 동쪽으로 도망갔다. 도망가는 것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이제 남북통일이 되었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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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쉽습니다. 그렇게 끝났어야하는데..

지금의 안보 상황이 불안한 지금입니다. 역사의 교훈을 발판삼아 국력을 배양 시켜야 할 시점인데 정부에서 하는 모든 정책이 나라를 망국으로 이끄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아! 그때 좀 더... 그놈의 중공...
너무 무서운 얘기지만 그때 핵을 써 버렸으면...
제가 너무 나쁜놈인가요?

아 여기서 진짜 끌났어야했는데 안타깝네요.

적군에게도 측은지심을 느끼는 모습이 멋있습니다.

마지막 문구에 안타까움이...ㅠㅠ

남북통일이 되었다는 생각에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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