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 녹취록 3. 38선을 넘어서 2, 꿈에 나타난 어머니와 노숙자 생활

in #wisdomandjustice5 years ago (edited)

상인들을 따라 38도선 150미터 정도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당시 상인들은 증명서를 발급받아서 검문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같이 가던 학생들은 중간에 모두 어디론가 없어지고 말았다. 38선은 러시아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월경을 하려면 차고 있던 돈을 것을 주어야 했다. 상인들은 아무것도 없는 이대용에게 솔밭쪽에서 돌아서 넘어가라고 이야기했다. 이대용은 300미터쯤 지나가다가 길가에 전화선이 깔려있는 것을 보고 38선을 넘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길가에서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국수를 얻어 먹었다. 가지고 있는 돈은 하나도 없었지만 행색이 워낙초라하니 그냥 준 것이었다. 국수를 얻어먹고 아카시아 그늘에서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다.

잠을 자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났다. 왜 다른 방향으로 가냐며 정신차리게 세수를 하고 다른 길로 가라고 말씀을 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논에서 일하는 농부에게 길을 물어보니 큰길로 가면 서북청년단원들이 그길로 오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매질을 한다고 하며 작은 길로 가라고 했다고 한다. 그 길이 꿈에서 어머니가 가르켜준 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38선을 넘은 이대용은 서울로 와서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집에서 신세를 잠시 지던 이대용은 군대에 들어갈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미 육사 5기들은 모집이 끝나 1년은 있어야 응시를 할 수 있었고 병사들도 모두 모집이 끝났다. 어찌할 방도가 없어서 효창공원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취직이라고 하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정교사 자격증이 있지만 서울의 학교 교사들도 모두 만원이었다. 이북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그러든 차에 취직부탁하러 아현국민학교에서 교사로 있던 친구 이석준을 찾아갔다. 이석준 방앞에서 3000원 줏었다. 당시 짜장면이 한그릇에 1500원 정도할 때였다. 수중에 돈도 한푼 없었고 그전날 저녁부터 아침까지 굻었다. 이석준은 이대용에게 점심은 먹었냐 물어보았다. 이대용은 이미 늦은 시간이라 식사를 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이석준에게 주인찾아 주라고 할려고 했던 3000원을 넘겨주지 못했다. 교사자리는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2주 정도 뒤에 찾아오마라고 하고 돌아서는 이대용은 내가 도둑질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가 비참해졌다.

더 이상 교사자리를 찾는 것도 어려워서 막노동이라도 해서 입에 풀칠이라고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쓰레기를 치우는 인부들에게 일을 시켜 달라고 했으나 그것도 자리가 없었다. 인부들은 서대문구역소(지금의 구청)에 가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니 찾아가보라고 했다. 서대문구역소를 찾아갔더니 강원도에 갈 광부를 모집한다고 공고가 붙어 있었다. 이대용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광부로 가서 평생 살겠다고 결심했다. 거기서 광부의 딸하고 만나서 살면서 자유를 누리면 되는 것이지 뭐가 더 중요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지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일주일 지나서 다시 찾아가보니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데 3000명 이상이 왔다면서 경력이 있는 사람들 먼저 선발한다고 해서 광부모집 마저 탈락하고 말았다. 한 열흘 정도를 거의 굶으며 지내다가 우연히 정교사 자격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사 모집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길로 한걸음에 달려가 시험을 치루었다. 시험으로는 어디라도 붙을 자신이 있었다. 당당하게 합격해서 우신국민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겨우 하루 하루 입에 풀칠하는 신세를 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녹취록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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