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 녹취록 32, 다시 경제공사가 되어 세번째로 월남에 가다.

박정희 대통령 팀이 바로 뒤에 있어서 앞으로 보내기 위해 숕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각하 먼저 가시지요 하는 예의였다. 박대통령이 다가오자 6관구 사령관 방경원 장군이 경례를 했다. 박태롱령은 말없이 답례를 하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이대용을 보자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이 장군, 지금 어디 있나?” 이대용은 “네 6관구 사령부 부사령관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박대통령은 티샷을 했다. 동반자였던 정재호와 김진만이 티샷을 할때 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이대용에게 다가 왔다. “이 장군, 왜 보직을 안받았지 ?”라고 물었다. 원래 6관구 사령관은 전역하기 전에 잠시 대기하는 직책이었으니 이대용이 그런 자리에 있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이대용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단장을 하고 싶다던지 그것도 안되면 공사를 마쳤으니 대사라도 하고 싶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를 그냥 그렇게 하는 것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이대용은 아무말 하지 않았다. 어색한 시간이 20초 쯤 지났다. 보다 못한 6관구 사령관 방경원 장군이 “각하, 제가 이장군을 부사령관으로 데리고 있습니다”하고 참견을 했다. 박대통령은 아무말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장군, 나 먼저 가”라고 하고 동반자들과 함께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몇주가 흘렀다. 유재흥 국방부장관이 불러서 갔다. 유재흥은 이대용에게 소장으로 진급시켜 예편한 다음 부대사를 시키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각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월남 티우 대통령과 친분이 깊으니 월남 부대사를 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월남전이 끝나면서 부대사 직위는 없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부대사 대신에 선임공사로 가서 경제를 담당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월남 전쟁이 끝나고 나서 미국이 월남에게 8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으니 한국기업들이 입찰을 할 수 있도록 이대용에게 도와주라는 것이었다. 이대용은 경제기획원 소속으로 공사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소장 진급시켜서 예편하기로 했는데 소장으로 진급을 시키지 않아서 그냥 그대로 준장 계급장을 달고 경제기획원 공사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월남에 도착해서 군에서 떠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박정희 대통령에게 외교 행랑으로 전역을 시켜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청와대 비서관이 이대용의 편지를 대통령에게 전달하지 않고 없애 버렸다. 그리하여 베트남에서 억류당할 때도 현역 준장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월맹군들이 몰랐을 뿐이었다. 나중에 이희성 장군이 참모총장이 되어서 이대용을 전역 조치했다. 결국 이대용은 정년이 지나서 까지도 계속 군적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1973년 1월 27일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나서 이대용은 다시 월남 대사관의 경제공사가 되어 세번째로 근무하게 되었다.

녹취록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30, 3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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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클릭은 사랑입니다 ^^

어색하게 박힌 표지석마냥 지내셨군요.ㅠㅠ

amazing your work sir
a very awesome your post @wisdomandjustice

진짜 많은일들을 겪으셨네요...

정말 힘드셨을 것 같네요.

편안한 시간되세요:]
오늘도 디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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