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 같은 문학 30 (마지막 회) + 29회차 답변

in #kr-pen6 years ago (edited)

moon-1275126_1280.jpg

문학작품을 다른 각도로 보는 시리즈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깨알 같은 문학]은 이번 회차가 마지막이다. 둘 다 지속을 할 수도 있겠으나, 한 작품으로 글을 두 번 쓰고 싶은 일이 생기느니 그냥 새 시리즈에 주력하기로 하였다. 새 시리즈는 스팀잇과 마나마인에 업로드할 생각이다.

[깨알...]의 마지막 회는 "가즈아"체가 아닌, 평소 쓰는 투로 쓰기로 한다. 지난 회차 풀이를 하기 전에 문학에 대한 몇 가지 개인적인 소고를 남겨두기로.

문학작품, 정확히는 문학작품을 읽는 습관에 얽힌 몇 가지 추억

-예전에 한번 밝힌 적이 있지만, 나는 글을 일찍 익혔다. 늦어도 7세부터는 완역본을 읽었다. 어린 아이라서 다 이해할 수 없기야 했겠지만, 뒤돌아보면 생각보다 놓치는 것은 없었다.

-물론 부모님이 전집 단위로 책을 계속 사주시니까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새 완역본 전집이 올 때마다, 아버지는 묵묵히 몇 권의 책을 미리 압수해 가셨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 테스, 여자의 일생등이었다. 압수를 왜 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은 했다. 나중에 정리가 덜 된 이삿짐 박스 더미에서 찾아서 읽었다.

-외국에 나가기 전의 아주 어린 시절, 놀이터에 나가서 논 적은 한 손에 꼽는다. 우리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나는 문 밖에서 매일 동네 아이들이 와서 부르는데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책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거의 혼나는 일이 없는 아이로 자라난 면도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현재의 내 성격에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다 끼쳤다.

-간혹 다른 아이들과 놀게 되면, 내가 짠 이야기로 연기를 하는 일이 잦았다. 직접 하거나, 인형을 사용하거나. 그리고 나서 아이들에게 "치우기 놀이"를 빌미로 내 방 청소를 시키곤 했다. 아이들이 내 이야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정 책을 압수하는 것 외에) 아버지는 내 책 읽기에 대해서 특별히 관여하시지 않았다. 딱 한 번, 산책을 하던 중에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해 얘기해보라고 하신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한 열 살쯤 되었었는데, 그런 고전문학을 읽고 무엇을 느끼는지가 궁금하셨던 것 같다. 당시에 내가 거듭 읽던 책은 레마르크의 개선문이었는데, 사실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수용소에서 자신을 고문하던 독일 사나이와 조우하고 살해하게 된 한 유태계 의사"의 이야기로 설명을 했다. 일을 저지르고 결국 망명의 길에 오르는 라비크의 "미래"에 대해서 아버지는 "아마 결국 죽게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어차피 가정이니 딱히 정답이랄 건 없었지만, 슬펐다.

-책 속 인물들의 고민이 내 고민이었고, 그들의 스트레스가 내 스트레스였다. 책을 덮는 즉시 따뜻한 세상이 펼쳐졌지만, 책 속에서 본 것보다 딱히 더 "현실"에 가깝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마치 아주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자를 목격했는데, 다음날 그가 아주 상냥한 모습을 하고 인사를 건네오는 현상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그 괴리에 대해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태도는 그저 웃는 것임을 배웠다. 생각해보면 정말 웃기기 때문에...

-한 10대 초반이 되기 전까지는 그런 소위 고전이라고 하는 문학 작품만을 읽었다. 추리소설 등에 흥미를 붙인 것은 그 후의 일이었는데, 이미 고전이라는 것에 입맛이 길들여졌기 때문에 장르 소설도 그런 것들만을 읽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레 속독을 하게 되었다. 속독을 하느라 놓친 부분이 있는지 나중에 샅샅이 뒤져봐도, 별달리 그런 것은 없었다. 어릴 때의 뇌란 사실 굉장한 것이다. 성인이 된 후로는 그 정도의 무시무시한 기억력이나 호기심은 퇴색되었음을 느낀다. 하지만 나아진 부분도 있는데 필요 없는 정보를 거르는 능력, 그리고 정보를 체계적,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능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도 어차피 어릴적 습관의 위에 세워지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좋아하는 것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문학이란 나를 낳고 키워준 부모와도 같다. 내가 문학적인 글쓰기를 지향하거나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지만, 내 육체의 부모님도 내면적으로는 그다지 닮지 않았다고 느끼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닮지 않아서 더 쉽게 사랑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깨알 같은 문학] 시리즈는 어릴 적에 할머니가 들려준 "옛날 이야기"처럼 전달하고자 했다. 문학작품이란 잘 들여다보면 여러 골치아프고 철학적인 문제들도 분명 엮여는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재미있는 것이니까.

-위에서 언급했듯 [깨알...]은 오늘로 완결을 한다. 목록 아래에는 지난 회차 풀이를 제공하기로.

깨알 같은 문학 목록

깨알 같은 문학 1 미국인 헨리 제임스 作
깨알 같은 문학 2 성서의 야곱 이야기 中
깨알 같은 문학 3 보바리 부인 구스타브 플로베르 作
깨알 같은 문학 4 검찰 측 증인 아가사 크리스티 作
깨알 같은 문학 5 푸른 눈동자토머스 하디 作
깨알 같은 문학 6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作
깨알 같은 문학 7 노란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作
깨알 같은 문학 8 주홍 글씨 나다니엘 호돈 作
깨알 같은 문학 9 레드 서머셋 몸 作
깨알 같은 문학 10 에덴의 동쪽 존 스타인벡 作
깨알 같은 문학 11 홈즈, 포와로, 브라운 신부의 추리법 비교
깨알 같은 문학 12 신곡 단테 作
깨알 같은 문학 13 보석 모파상 作
깨알 같은 문학 14 로그 메일 제프리 하우스홀드 作
깨알 같은 문학 15 스칼렛 핌퍼넬 오크지 남작 부인 作
깨알 같은 문학 16 스페이드의 여왕 알렉산더 푸쉬킨 作, 아스펀 페이퍼스 헨리 제임스 作
깨알 같은 문학 17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作
깨알 같은 문학 18 오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作
깨알 같은 문학 19 카탈리나 서머셋 몸 作
깨알 같은 문학 20 [몰 플란더스 다니엘 디포우 作, 화니 힐 존 클릴런드 作
깨알 같은 문학 21 트리스탄 토마스 만 作
깨알 같은 문학 22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作
깨알 같은 문학 23 A.H.H.를 추모하며 알프레드 테니슨 作
깨알 같은 문학 24 맨스필드 파크 제인 오스틴 作
깨알 같은 문학 25 타르 베이비 토니 모리슨 作
깨알 같은 문학 26 소공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作
깨알 같은 문학 27 실수로 누락
깨알 같은 문학 28 반전의 통속소설, 캐서린 쿡슨의 작품 특징
깨알 같은 문학 29 슬픈 사이프러스 아가사 크리스티 作

cypress-101428_960_720.jpg
지난 회차의 슬픈 사이프러스에 맞는, 사이프러스 나무 사진

지난 회차 답변 풀이 및 선정:

다음 질문에 대해, 정답보다는 재미있는 답변을 선택하기로 했었다.

슬픈 사이프러스에서 메리를 죽인 범인은 누구인가?

우선 실제 작품에서 메리를 죽인 범인은 간호사 1이다.

간호사는 메리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그녀에게 호감을 가졌으며 마지막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의심을 받지 않은 이유는 메리만 특정 종류의 샌드위치를 먹었고, 그것은 엘레노어가 마련한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간호사는 메리와 함께 차를 나눠 마셨지만 멀쩡했다. 그래서 간호사가 만든 차는 의심의 대상이 아니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디테일은 지난 회차에 제공하지 않았다. 정답을 맞추기 위한 퀴즈가 아니었으니까.

메리를 죽인 사람(들)의 모티브로는 1) 사랑/치정, 2) 돈/상속 3)출생의 비밀 4)질투 등, 교집합을 이룰 수도 잇는 몇 가지가 가능할 것이다. 추리 소설을 써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이런 류는 아마도 여러 가지 답안이 가능하게끔 캐릭터를 고안하고 집필하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중에서 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옴므 파탈" 중에서 가장 엉성하고 어정쩡한 로드니를 살인자로 지목하는 답변이 마음에 들었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하였지만, 약간씩의 차이가 있었다.

  1. @knight4sky님: 메리가 고모의 재산을 상속할 것을 노리고 약혼녀 엘레노어를 차버렸다. 하지만 고모가 미처 유언을 못 하고 죽었기에, 다시 엘레노어에게로 돌아가려고 메리를 죽인다.

  2. @docudai-jun님: 메리를 죽이면 엘레노어도 용의자로 몰려 제거될 수 있으니, 결국 상속을 직접 받으려고 한 짓이다.

  3. @napole님: 로드니는 메리를 사랑한 것이 맞지만, 돈도 차지하기 위해서 엘레노어의 살인을 사주한다. 하지만 사주를 받은 가정부가 마음을 달리 먹는 바람에 메리가 죽는다.

1번은 뭔가 계획의 실패를 바로잡으려는 시도, 2번은 냉혈한의 상속 작전, 3번은 엉뚱한 사람을 죽인 실패한 살인이다.

이중에서 내 생각은 2번과 같다. (저자인 크리스티는 독자가 그런 전개로 오해하는 것을 충분히 유도했고 따라서 그럴싸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에서이다.) 하지만 가장 먼저 댓글을 단 @knight4sk님에게 내가 대댓글을 달면서, 메리와 엘레노어 양쪽을 제거하는 시나리오를 이미 공유를 해버렸다. 애초에 @knight4sky님이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어쨌건 지금 와서 따져보기에는 불분명해져버렸다. 그래서 가장 먼저 "로드니 설"을 제공한 @knight4sky님의 손을 들어주기로...댓글을 달아주시길 바람!

지난 회차에 언급했듯이 이 스토리는 영상화하면서 연출이 상당히 달라진 점이 재미있으므로, 언젠가 Jem tv 시리즈에서 다뤄볼 생각이다.

새 시리즈는 문학작품에 대해 보다 학술적이지만 적어도 일부 독자의 흥미유발은 할 수 있게끔 쓸 생각이다. 사회문화적 배경, 용어들, 캐릭터 탐구 등...그렇게 보면, [깨알...]은 새 시리즈로 다시 이어나가는 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 표면적으로는 이만, 안녕.

KakaoTalk_20180702_132144113.jpg
몇 번 써주지 못한 @mipha님의 후문, 미안.

For @sndbox:

This is the thirtieth and the last post of my series on literature. The series has been about the works by Maugham, Steinbeck, Shakespeare, Dante, Hardy, Mann, Maupassant, Pushkin, Bronte, Austen, Toni Morrison and more. I selected a book for every post, with an emphasis on its fun aspect.
In this post I have shared a little about what literature means to me, because I'd practically been raised on it. I'm ending the series because I now wish to move onto a new series showcasing more expertise on the subject; It's to be published here and on www.manamine.net, a content provider run by Steemians.

Footer_jamieinthedark.png

Sort:  

아... 그냥 읽고 지나갔었네요.ㅎㅎ
그리고 마지막회라니 아쉽네요.
뭐 어떻게든 부활해주시겠지만... 그래도 시리즈 하나가 공식적으로 끝이니...
항상 긴 포스팅을 올려주시는데 술술 잘 읽혀서 재밌습니다.
계속 애독자 할께요...

감사합니다. ㅎㅎ 깨.문.은 유일한 가즈아 시리즈였던데다가 스팀잇 적응기의 효자였어서 저도 아쉽네요!ㅠ

내 답변이 언급이 된것을 보면 그래도 문학에 아주 조금은 소질이 있는거 같네요..재미님의 어리시절 일상 이야기를 들으며..애들을 재미님처럼 독서를 많이 하도록 키워야 겠다고 다시한번 다짐을 하네요..하지만 어린시절 부터 교과서 외에는 본적이 없는 나를 닮은 탓인지 애들이 책을 잘 읽지 않아 고민도 많네요..어떤 글을 올리든 항상 응원할게요..
그리고 내경우는 정적인 것보다 동적인 것을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
시간이 될 때 더 자주 밖으로 나가 보시고 느끼고 하시다 보면 글을 쓰는데 좋은 영감을 더 많이 얻을 거 같습니다...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네요..감사합니다.

사실 동적이면서 책을 즐기는 성향이 되기는 매우 어렵죠. 저는 외국 나가서부터는 가족이든 학교든 은근히 저를 자주 끌고 다니는 바람에 강제적으로 여행을 많이 했는데, 그게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결핍을 남기진 않아서 다행인 것 같긴 해요. 지금은 그냥 긴 산책이나 해변 나가는 걸 좋아해서 오디오북을 듣는 습관을 열심히 들이고 있죠. 눈을 안 쓰고도 책을 읽을 수 있도록요.

알고는 있었지만
여러모로 빠지는 부분이 없는 그런..
너무 찬양하면 부담..될까..

그런건 아니에요! ㅎㅎ

어려서 부터 문학에 대한 흥미가 대단했네요.
저는 문학을 잘 알지 못해서, 연재도 가끔 읽었네요.
연재 하신다고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다 다각도의 시리즈로 돌아올텐데 가끔이라도 흥미점을 찾으실 수 있담 좋겠네요!ㅋㅋ

어머니는 저에게 책을 많이 보라고 하셨지만 저는 늘 만화책만 보았다는....

외가댁에 가면 삼촌이 보던 만화책이 몇 권 있었는데 그래봤자 뭐 거의 연례행사 수준으로 봤죠. 게다가 다른 책들도 거기서 봤던 걸로 봐서, 만화가 큰 인상을 남기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스토리가 강한 매체라면 거의 볼 수 있지만요...

스토리가 강한 매체?! 어떤 매체죠?!

아 특별히 무슨 매체는 아니고...스토리가 강하다면 전보다는 즐길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 가령 만화책은 여전히 안 보지만 웹툰은 가끔 봐요. ㅎㅎ

역시 멋제미!!

어릴적에 부모님이던 선생님이던.... '책을 많이 읽어라. 책을 많이 읽어야 생각이 자란다. 책을 많이 읽어야 글을 쓸 때에도 조금더 잘 표현할 수 있다.' 라고 하셨었는데..... '에이 공부하라고 뻥치시네...' 했거든요...
여기에 그 산 증인이 계셨군요.... 갑자기 글 쓰는 건 내 길이 아닐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ㅋㅋㅋㅋ

음...솔직히 공부를 하고자 한다면 저처럼 자란 사람이 엄청나게 유리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글쓰기에 대해서는 꼭 이런 방법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특히 가사는 시와 비슷한 영역이라...

오호 정도가 아니고 샛길도 있다면... 샛길을 찾아봐야겠네요 ...^^ ㅋㅋㅋ

저도 정도는 아니에요. 많이 쓰는 게 정도, 많이 읽는건 돌아가는 길ㅋㅋ

ㅇㅋ 정도로 가면서 살짝씩 샛길 추가해서 빨리가는 걸로....

범인이 간호사1이고.... 당첨은 로드니라니 ㅠㅠ 털썩~~!!!!!

OTL 엎드려 있겠습니다. >.<

ㅋㅋ당첨은 순전 취향이라...

로드니가 메리에게 반했으니 살해하지 못하리라는 로맨티시즘은 타도대상입니다!

당첨 보다 문제를 풀면서 느끼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어서 늦었지만 답안지를 제출해 봤습니다. 결국은 로맨티시즘이 타도당하는 거군요...ㅋㅋㅋ
다음에 문제 풀때는..... 감정이입을 출제자에게 해서 풀어봐야 겠습니다. 그럼 정답에 가까울듯 ~~ ㅋㅋ

더 정확히는 감정을 배제하고 푸는거요!ㅎㅎ

ㅋㅋㅋ 쉽진 않을 것 같긴한데 .... 맞추려면 노력은 해볼께요..^^

글이라는게 자기않에 많은 에너지가 쌓여야 제대로된 글이 나오는.
법이지요.
제이미님은 차근 차근 싸인 에너지가 꽃을 피울때가 된것 같아요.
앞으로 좋은글 기대 하겠습니다 ^^

ㅎㅎ 감사합니다.

도레에게 영광을!

간호가1이 범인이라닛 당했다.
깨알 안뇽 ㅠㅠ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4
JST 0.030
BTC 60078.84
ETH 3197.52
USDT 1.00
SBD 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