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안티로맨틱의 수기 2

in #kr6 years ago (edited)

어느 안티로맨틱의 수기 1 에 이어서

-- 로맨스란 본디 스토리라는 뜻이었다. 안티 로맨틱의 시작과 끝은 거기에 있다. 로맨스에서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미래의 희망을 보지 못하거나, 본다고 하더라도 스토리의 일부로 본다. 그 스토리가 재미있는 것만이 관건이고 그게 안 되면 흥미가 사라져버린다. 셰헤라자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왕.

-- 안티로맨틱 성향은 단순히 로맨스에 대한 태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체적인 성격에서 떼어놓고 논할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다 비슷한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내 경우를 기록할 뿐.

-- 나는 품에 안고 우유를 먹일 수 없는 아기였다. 안으면 너무 몸을 비틀고 우유를 거부해서, 이불을 깔고 눕혀서 체하지 않게 조심해가면서 먹여야 했다고 한다. 우유도 딱 한 가지 종류만을 고집했고, 조건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먹지 않거나 울거나 뱉어낸다거나 하며 진상을 부렸다는 뜻이다. 모유였다면 달랐을까? 모르겠다.

--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갓난 아기도 따로 자신만의 방에서 요람에 눕혀서 재우는 서양식 육아방식은 그들의 성격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나는 부모님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유독 혼자 눕고 싶어하는 아기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식으로 키워진 것 같다.

-- 우유의 종류나 자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밥을 먹인다"는 친밀한 행위를 할 때는 꼭 책을, 하다못해 달력이라도 보여주어야지만 말을 순순히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주 어릴 때에는 눕혀서, 조금 나중에는 보행기에 앉히고 책을 펴서 볼 수 있게 해놓고 밥을 먹이는 사진이 많다. 나는 갓난아기의 상태를 갓 벗어난 시절부터 사람보다는 문자를 더 많이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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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서 처음으로, 또는 주로 세상을 마주한 방법(정확히는 방편)이 무엇이었는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내 경우는 제대로 걷고 뛸 수 있기 전에 한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일찍이 친척들의 희귀한 구경거리가 되곤 했다.) 말을 못 하던 젖먹이 시절에도 어쨌거나 책은 끼고 살았으니까 당연한 결과이다. 또한 한글의 모양이 직관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 충분히 걷고 뛰어 놀 수 있게 된 후에도 책을 읽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게 내가 세상을 접한 주요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 글자를 읽을 수 있더라도 그것이 나타내는 의미가 절로 파악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누가 옆에 붙어서 가르쳐줄 수도 있고, 책으로 혼자 보고 깨달아갈 수도 있다. 다행히도 읽을 것이 끊기지 않고 계속 제공되는 환경이었다. 문자와 더불어 그것이 가리키는 사물의 그림이 있는 책을 주로 보는 것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 기억이 남아 있는 서너살 쯤의 나이에는 내가 읽어서 알아낸 것을 어른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반면 이것저것 질문한 적은 별로 없다. 단지, 이따금씩 서재에 계신 아빠를 보러 갈 핑계가 필요했다. 가서 이미 아는 것을 괜히 물어보곤 했다. 서재에 가면 아빠 책들을 또 봤다. 제목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펴서 읽어보기도 했다. 아버지의 책들은 인문학 분야에 속하지 않았다. 표면적인 전공 분야가 달라도 결국 같은 얘기들을 한다는 것을 그때부터 조금씩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 만일 그 과정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애정의 결핍이나 아쉬움을 느꼈다면, 책 읽기를 줄이고 같이 놀아줄 사람들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잠깐이라도 책에서 눈을 돌리면, 항상 있었다. 뭐 줄까, 뭐 필요하니, 한숨 잘래? 등등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 당연히 사춘기 때쯤에는 내가 과잉보호 받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추구하지 않아도 항상 돌봄이 있었다. 찾아나서지 않아도 항상 있는 것. 그렇다보니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약육강식 세계에서 가장 강한 아이들이 나를 자기들 속으로 편입시켰다. 그 아이들도 느낌으로 알았던 것 같다. 내가 애정과 평가에 목마르지 않은 아이라는 걸. 그래서 자기들 중 한 명이 되기를 바랐던 듯하다.

-- 책을 읽을 때는 절대로 방해받는 법이 없었다. 책 읽는다는 이유로, 흔한 심부름 한번 시키는 사람이 없었다. 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시절부터 나는 방해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 가족들이 매일 같이 때와 자리를 지켜서 식사를 할 때에도,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방에서 따로 자유롭게 먹었다. 원치 않는 것을 원치 않는 때에 먹는 일이라곤 한 번도 겪은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주욱.

-- 입맛이 까다롭고 잘 먹지 않으려 든다는 점 때문에 아예 내 전용으로 다른 음식이 준비되는 날도 많았다. 유치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치원에 어떤 식으로 부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번을 정한 것처럼 매일 차례대로 내게 밥을 먹였다. 요즘 어린이집 등에서 일어나는 폭행 사건들을 보면, 나는 어떻게 그렇게 좋은 기억들만 남는 사람들만을 만났는지 의아하기도 하다.

-- 초등학교 입학 전후로 보통 말하는 서양 고전 문학의 번역본을 많이 읽었다. 그러다 외국으로 가게 되었다. 사용언어가 영어가 되어버렸다. 갑자기 내 또래 아이들이 읽는 수준 또는 더 낮은 수준의 책부터 읽어야만 되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무작정 원래 보던 책의 영문판을 보기 시작했다- 그들보다 더 영문을 잘 읽고 쓰게 될 때까지.

-- 집에서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것 외에는 영어가 내 주 언어가 되었다. 일상적인 이야기는 한국어로, 뭔가를 연구하고 글로 표현하는 것은 영어로. 한글로도 논문 등을 쓴 경험은 있지만, 한국어보다는 영어를 더 복합적인 용도로 많이 쓰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스팀잇에 와서야 한글을 조금 쓰기 시작했다.

-- 부모님과 대화할 때 쓰는 언어인 한국어는 말 그대로 일상적인 이야기, 또는 부모님 특유의 교육적인(내 경우엔 종교적인)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답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반면 학구적인 관심이나 단상은 대외적으로만, 그리고 영문으로만 말하거나 쓰여졌다.

--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지금까지도 가까운 관계에서는 대부분 "일상적인 이야기"를, 대외적인 관계에서는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한다. 내 경우는 그게 한국어와 영어의 용도 차이이기도 했다. 한국어로는 부모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밥 먹었냐' 수준을 크게 벗어날 일이 별로 없었고, 그것은 연애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국에 와서 한국인들을 만나면서는 옹알이 수준의 대화를 넘어설 수가 없었다. 내가 성장과정에서 남들에게 한국어를 그 이상의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물론 언어 외의 요소도 있다. 나는 어릴 때 너무 조숙했었다. 어린 시절에 소꿉장난처럼 사귄 남자친구들은 외국 아이들이었기에, 진짜 관심사들이나 깊은 속내를 영어로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당시의 그들에게는 그런 대화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후로는 외국인과 연애한 적이 없는데, 이미 내 머리 속에는 연애란 언어를 떠나서, 깊은 대화를 절대 하지 않는 관계로 각인된지 오래였다. 진지한 답변을 요하는 질문을 던지는 남자와는 친구 이상이 되지 않았다. 머리 속에서 자동으로 "친구"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 그렇다고 해서,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로맨스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던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어떤 동질감을 기반으로 하는 관계는 다 친구 관계로 못박아 버렸기 때문에, 로맨스에는 다른 특징이 반드시 있어야 했고 내 경우에는 그것이 시각적인 만족감이었다. 남들은 그저 얼빠라고 할지 모르지만 스토리의 주인공 같은 모습이 있어야 했다. 성격도, 머리도 중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머리는 나쁜 편을 선호했다. 머리가 좋으면 귀찮아질 일이 많았고, 어차피 대화를 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특정 신체 부위에만 혹해서 제법 오래 만난 적도 있다. (언젠가 이런 면모를 자세히 기록해보고 싶은데, 안티로맨틱이란 말은 받아들여도 무성애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각적으로 끌리는 것을 심미안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어쨌든 그런 기준으로는, 물론 나 자신을 비롯해서, 높은 평가를 할 만한 사람을 보기 힘들다. 성형한 티가 나는 얼굴은 보기도 싫어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대화가 즐거운 친구들 중에서는 더더욱 보기 힘들었다. 아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공부를 전업으로 했거나 출세욕이 강한 사람들이 친구로 매우 잘 맞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일반화를 무릅쓰고서라도 어쩌면 확률적으로 당연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것저것 다 타고날 확률도 낮지만, 고시를 본다거나 학위를 딴다거나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그런 점 역시 그들이 영 친구로만 남게 된 결과를 낳았다.

-- 나는 친구가 너무 좋다. 친구는 내게 있어 항상 얼굴 빼고 연인보다 우월했고 또 내 마음 속에서는 무조건 우선이었다.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친구에 대한 의리는 강한데 여자는 함부로 하는 남자의 전형이 있는데 내가 그런 식이다. 차이가 있다면 연인을 관상용이나 귀여워해야 하는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기는 했어도, 대놓고 함부로 한 적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내가 일방적으로 존대하는 관계를 선호했다. 같은 말을 해도 쉽게 감동시킬 수 있고, 내 태도를 실제보다 더 좋게 느끼게끔 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 친구가 이성일 경우에는 그 친구가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갖는 것이 제일 두려웠다. 로맨스라는 놈에게는 친구를 빼앗아갈 힘이 있었다. 친구가 좋은 만큼 안티 로맨틱에 가까워졌다.

-- 주로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내 친구들이 결혼한 후로, 그들 중 몇몇은 나와의 대화가 금지된 상태이다. 배우자들이 이해를 못해줬기 때문이다. 가끔 그들이 그리운 나머지 그냥 내가 결혼해버릴걸 생각한 적은 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그랬다면 아마도 매우 불행해졌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연인에게 얼마나 높임말을 써가며 "잘" 대하는지 알기 때문에 기대치가 환상에 가깝게 높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는 그렇게 해줄 수가 없다. 친구는 진심으로 대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매일 보면서 가끔씩 정말 본능적으로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감출 자신도 없다. 로맨스는 스토리이지만, 친구는 사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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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스토리가 별로더라구요. 그래서 종종 스토리를 읽지 못해. 그걸 시처럼 읽어버려. 에고.

ㅋㅋ왜 놀랍지 않을까요? 시처럼 읽는다는게 매우 어울리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속으로 신선 님이라고 부르고 있죠.

ㅋㅋㅋ 그런 닉네임이 있기도 해용~

헐..
만 1살이전에 글을 읽었다..

그런 사람 딱 한명 본적이 있는데, 무슨 sf 소설에서 였음.
신경망이 극도로 발달한 천재 아이 이야기였는데..
제목 기억이 없넹..

나는 초등 2학년때도 한글을 자유자재로 읽지 못했던 듯..
언젠가 기억충 에서 나올수도 있겠지만..

--

어두메재미 님은 정신적으로 약간 남성적인 성향이 있어 보임.
파레토의 법칙에 따라 당연히 그럴 수도 있고..
그것이 ESS 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다른 글자는 그렇게 뛰어나야 가능할 것 같은데, 한글은 사실 모양이 입 모양이라 뚫어지게 보는 성격이라면, 그리고 여러 다른 책으로 비교를 할 수 있다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티비 광고에서 나는 소리+글자를 같이 보기도 했구요.

가능은 하나...대부분 어릴 때는 다른 사람을 보거나,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집중을 잘 하지 않죠. ㅎㅎ

한글 모양이 입 속 모양이라는 것을 안 것은
훈민정음 을 배우고 나서였음.

대단..
타고난 언어적인 능력이 확실히 뛰어난 것 같네요.

친구 중에 그런 넘이 간혹 있음.
언어적인 능력이 유독 뛰어난 애들..
한 2명쯤 본적 있음.

저도 의식적으로 이게 입 모양이라고 생각한 건 아닌데, 그냥 절로 읽을 수 있었대요 어느 날...(어른들 말씀)

한 중딩때쯤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구요. ㅎㅎ

한국어로도 글을 잘쓰시는데 영어가 더 편하다면··· 와. 영어로 글을 쓰셔도, 그 문체를 제가 느낄 수 없다는 게 아쉽네요. 부럽습니다.

한때 한글이 어색하다고도 들었었는데, 감사합니다. 저는 사실 즉흥적으로 말을 잘 하는 편인데 제 글은 그냥 말의 연장선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문학적인 재능이 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쩐지 책을 한두권읽는 느낌은 아니더라. 뭔가 삶에 대한 생각 자체가 진지하고 심오해. 볼 때마다 그래.

저런, 심오까지는...고마워요. ㅋㅋ

이것은 신문에서 보던 천재의 스토리인데요 ㅎㅎㅎ 반가워요!

산술을 빨리 했으면 몰라도 뭐...집구석안 천재 취급은 많이 받았습니다. ㅋㅋ

서재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라...음...

역시 자식에게 책을 읽히는 최고의 환경은
눈이편한 벽지도 아니고, 백색소음의 스피커도 아닌,
책을 가까이하는 부모님인 것 같네요

그런면에서 내 자식은 망했습니다.

미안하다 미래의 아들 딸들아.
너흰 제이미형처럼 이런 멋진 글을 쓸 수 없을거란다.

ㅎㅎ 왜 이 글에서 가즈아의 "미안하닭" 이모티콘이 보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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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들 형이라고 그러지??? 언니 아닌가요?!?!?!
그런데 저도 한 때 애인을 그런 기준으로 찾았던 적 있는 것 같네요. 똑똑하면 피곤하고 논쟁해야 해서, 잘생기고 말 잘듣는 사람을 애인으로 선호했었는데 말이죠. 머나먼 대학 때 이야기지만 ^^

안녕하세요. 가즈아 태그에서 서로 형이라고 불러서 그래요. 이 글은 가즈아에서 작성한게 아니지만 그 습관이 들어서 다들...ㅎㅎ 저도 그게 편하기도 하구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은 꼭 논쟁할 이유가 없는데도 뭔가 이성관계가 (일방적으로라도) 되면, 그 특유의 역학 때문인건지...자신이 뭔가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 앞선 사람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가봐요. 친구가 일부러 논쟁을 만들면 그건 이성으로 어필하려는 의도가 있을 때가 많더라구요. 그런 식으로 친구를 잃은 경험이 많은 것 같네요...

나도 어렸을 때 책 진짜 많이 읽었는데 요즘은 책 읽을 시간도 많은데 찾아서 읽지는 않아. 글도 안 쓴 지 매우 오래되서 문맥도 어색해. 뭔가 글쓰기 관련 책 추천해줄 수 있어 형?

음 그런 책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난 다 고전 문학 아니면 철학이었어. ㅎㅎ

형처럼 뭔가 잘읽히고 느낌있게 쓰고싶은데
철학과 고전문학이라ㅎㅎ.. 고전문학 찾아서 읽어볼게그럼!

나 예전에는 한글로 쓰면 잘 읽히는 편이 아니었는데...고마워!

깨알 같은 문학으로 중간중간 쉬기도 하고 ㅎㅎ

유시민 글쓰기 특강 어때?ㅋㅋ안읽어봤지만 글 잘쓰시니까ㅋㅋ

매일 엄청난 양을 쓰시네요 존경합니다! 전 연재대회 오늘 시작했는데 길지도 않은 글을 숙제하는 기분으로 겨우 올리고... 안티로맨틱도 팬해야지ㅋㅋ

와 혼차 너무 좋아요. 전 혼밥도 혼차도 좋고 카페 엄청 좋아하고 집도 나름 (고양이) 카페 같은데, 정작 차 끓이는건 귀찮아요. 그래서 힌트 많이 얻으러 보겠습니다. 내일 보팅파워 충전되면 펫 태그 돌보기 시작할건데 혼차도 같이 응원할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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