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당][인물] 호가든의 아버지, 피에르 셀리스(Pierre Celis)

in #busy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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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셀리스(Pierre Celis, 1925~2011)
▶ 출처 : Celis Brew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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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ho님과 코멘트를 나누던 도중 문득 떠오른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피에르 셀리스 옹입니다. 맥주계에서는 산타 같은 존재입니다.

오늘은 피에르 셀리스 옹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피에르 셀리스와 호가든

피에르 셀리스 옹은 1925년 벨기에 후아르던(Hoegaarden)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실 그의 집안은 양조자 집안이 아니라 낙농 축산업을 하는 집안이었습니다. 소를 길러 우유나 소고기를 파는 집안이었지요.

그의 집 길 건너편에는 Louis Tomsin이라는 사람의 Tomsin Brewery가 있었고, 어린 시절 셀리스는 그 양조장에서 벨기에식 밀맥주(witbier)를 만드는 것을 도왔습니다. 양조장이니 항상 맥주를 마실 수 있었던 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양조장은 1955년 문을 닫게 됩니다. 이 당시 벨기에에 황금색 체코 맥주인 필스너가 들어오면서 맥주 시장을 싹쓸이해버리는 바람에 14세기부터 양조되어 오던 벨기에 전통 맥주인 witbier는 맥이 끊기게 되었지요.

그로부터 약 10년 뒤 어느 날, 셀리스는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이제는 더 이상 Witbier를 마실 수 없음을 한탄합니다. 그러자 친구가 "네가 한번 만들어 봐!"라고 지나가는 말로 말하죠. 그때 셀리스 옹이 "안될 것 없지!"하고 대답했답니다. 그에게는 어린 시절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양조 스킬이 있었지요. 하지만 변변한 양조 용기나 시설이 있을 리 없었지요. 헛간에서 세탁통을 양조통 삼아 시험 양조를 거듭한 끝에 Witbier를 부활시킵니다. 왠지 스티브 잡스가 생각나는 일화죠?

그 후 아빠 찬스로 버려진 양조장을 매입해 역사적인 호가든(Hoegaarden)의 첫 배치(Batch, 양조 단위)를 1965년 3월 19일 만들어 냅니다. (후아르던과 호가든은 사실 같은 이름입니다. 수입 업체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발음하기 쉽도록 이름을 호가든으로 정했습니다.)

셀리스 옹이 칭송받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필스너에 밀려 잊힐 뻔했던 witbier를 다시 세상에서 주목받는 스타일로 키웠다는 점입니다. 그 과정 중에서 witbier를 더욱 맛있게 재탄생시켰다는 공도 있지요.

셀리스 옹의 성공

블루오션이었지요. 아무도 Witbier를 만들지 않는 시기에 혼자 그 스타일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승승장구합니다. 여름 맥주인 Witbier가 겨울에 안 팔리니 겨울용 고도수 맥주도 만드는데 이 맥주가 호가든 그랑 크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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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가든 그랑 크뤼(Hoegaarden Grand Cru) / 8.5% / Belgian Strong Pale Ale

셀리스 옹의 불운

하지만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지요. 호가든이 유명해지자 벨기에의 많은 양조장들이 Witbier를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셀리스 옹은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1978년 De Kluis라는 식음료 공장을 인수하여 양조장(De Kluis Brewery)을 설립합니다. 하지만 이 양조장이 1985년 화재로 몽땅 타버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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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된 양조장

하지만 이 양조장은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죠. 양조장을 다시 짓는데 280만 벨기에 프랑(물가 상승 고려 안 하고 그 당시 액면가로 약 10억 원)이 필요한데 셀리스 옹은 그만한 여력이 없었지요. 이때 셀리스 옹이 45%의 지분을 갖는 조건으로 아르투아 브루어리가 투자를 제안합니다. 셀리스 옹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요. 양조장의 주인은 아르투아에 넘어갑니다.

하지만, 이후 스텔라 아르투아는 공격적인 인수 합병을 거쳐 인터브루(interbrew)라는 회사로 거듭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셀리스 옹에게 값싼 재료로 단가를 낮추도록 압력을 가합니다. 이미 호가든이라는 브랜드도, 양조장도 챙겼으니 셀리스 옹은 눈엣 가시였겠지요. 견디다 못한 셀리스 옹은 지분을 모두 처분하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이때 그의 나이 65세입니다. 이 대목에서도 스티브 잡스가 오마주 됩니다.

참고로, 훗날 인터브루는 AB인베브(AB InBev)라는 공룡 기업이 되었지요. (AB InBev의 In을 맡고 있습니다;;) 현재 호가든 브랜드는 AB인베브의 소유입니다.

AB 인베브(AB InBev)

AB 인베브는 OB맥주를 인수한 공룡 기업입니다. 원래 버드와이저로 유명한 회사지만 지금은 인수가 전문입니다. 현재 AB 인베브의 브랜드는 엄청나지요. AB 인베브의 역사는 AB를 담당하고 있는 앤하이저 부시(Anheuser Busch)를 다룰 때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카스, OB, 버드와이저, 벡스, 코로나, 프란치스카너, 구스 아일랜드, 하얼빈, 호가든, 레페, 뢰벤브로이, 미켈롭, 모젤, 스파텐, 스텔라 아르투아...

셀리스 옹의 반격

양조장도 빼앗겨, 자식 같은 호가든도 빼앗겨... 눈물을 머금고 셀리스 옹은 미국으로 건너가 2년 후인 1992년, 그의 딸과 함께 텍사스 오스틴에 Celis Brewery를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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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텍사스에 정착했던 이유는 단순하게도 그 지방 사람들 말이 느려서 알아듣기 쉬워서였다고 하네요. 물론 물이 후아르던과 비슷한 점도 한 몫했지요.

그가 텍사스에 정착하자 텍사스 주에서는 크래프트 비어 혁명이 붑니다. 당연하죠. 맥주계의 대부가 오셨는데요. 그가 온다고 하자, 오스틴 지방에서는 법을 뜯어고쳐 브루 펍을 허용했고, 이로 인해 각종 브루어리와 브루 펍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셀리스 옹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또 하나의 걸작인 셀리스 화이트(Celis White)라는 witbier를 만듭니다. 맥주 덕후들에게 오리지널 호가든이라고 칭송받았던 맥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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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리스 화이트(Celis White)
벨기에 전통 맥주에 텍사스 배경으로 소를 타는 카우보이가 그려진 라벨. 이 아이러니한 라벨이 이제 이해되시나요?

끝나지 않은 불운, 그리고 R.I.P.

그러나 그도 잠깐, 이 새로 세운 양조장은 경영악화로 2000년 밀러 사에 넘어가게 되고 셀리스 옹과 그의 딸은 맥주 양조를 그만두게 됩니다. 나중에 SAB 밀러로 합병됩니다. 밀러 사는 필스너 우르켈을 소유하고 있으며, AB 인베브와 맥주계의 양대 산맥입니다.

그리고 다시 2002년 밀러는 셀리스 양조장과 셀리스 화이트 브랜드를 미시간 브루잉 컴퍼니(Michigan Brewing Company)에 넘겼고, 두 번이나 자신의 자식 같은 양조장과 브랜드를 빼앗긴 셀리스 옹은 2011년 눈을 감게 되지요. R.I.P.

그런데 미시간 브루잉 컴퍼니의 운명도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2012년 파산하게 되지요. 그리고 떠오른 화두! 셀리스 화이트의 이름은 누가 가져갈 것이냐!!

셀리스 화이트의 계승자...

Christine Celis가 Celis White를 획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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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ne Celis
▶ 출처 : Celis Brewery

이름이 참 낯익군요. 얼굴도 누구랑 비슷한데요? 네, 맞습니다. 셀리스 옹의 딸 크리스틴 셀리스입니다. 2014년 경매를 통해 Celis White 브랜드를 가져가지요. (셀리스 옹이 살아 있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본문에서 몇 번 언급했으나, 그녀는 셀리스 옹이 처음 미국에 건너와 양조장을 세울 때부터 함께 양조를 하던 전문 양조가 입니다. 그녀는 나중에 미시간 브루잉 컴퍼니에서도 있었죠.

이후 Flemish fox brewery & craftworks라는 브루어리를 운영했는데 양조장 없이 위탁 양조를 하는 집시 양조 방식으로 Celis White를 생산했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위탁했던 Two Roads Brewing Co의 이름으로 Celis White가 생산되기도 했었죠.

And they all lived happily ever after!!!

이렇게 이야기가 끝난다면 셀리스 옹 부녀의 고군분투기였겠지만, 이야기의 결론은 해피 앤딩입니다. (아직까지는요...)

최근 소식으로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텍사스 오스틴에 2017년에 자신의 양조장을 세우고 다시 이름을 Celis Brewery로 짓습니다. 그리고 현재 셀리스 양조장에서 Celis White를 생산하고 있지요.

그리고 Celis Brewery는 Daytona Camps라는 훌륭한 수석 양조사를 모셔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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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ytona Camps
▶ 출처 : Celis Brewery

엇? 또 누구랑 닮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이 분은 셀리스 옹의 손녀이며, 크리스틴의 딸입니다. 대단한 가문입니다. 3대가 양조자인 집안입니다. 그리고 셀리스 가문의 도전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입니다.

Celis White의 종류

이런 기구한 역사 때문인지 세상에 나온 Celis White는 참 여러 가지 종류입니다. 하나의 브랜드가 이렇게 까지 여러 브루어리에서 생산된 사례도 없습니다.

1. Celis Brewery 제조
셀리스 옹이 만든 맥주입니다. 현재는 구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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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ichigan Brewing Company 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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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2012년 미시간 브루잉 컴퍼니가 망할 때까지 꾸준히 생산되었습니다.

3. Two Roads Brewing Co 제조
크리스틴 셀리스가 판권을 되찾은 후 위탁 양조해서 만든 맥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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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Brouwerij Van Steenberge 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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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잉? 셀리스 옹이 만든 Celis White랑 같은 거 아닌가?라고 하실 분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맥주는 굴덴 드락 (Gulden Draak)으로 유명한 벨기에 Brouwerij Van Steenberge 브루어리에서 만드는 맥주입니다. 셀리스 브루어리가 밀러에게 넘어갈 당시 해외 판권은 벨기에의 Brouwerij Van Steenberge가 사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똑같은 디자인과 이름으로 해외에서 판매하고 있지요.

혹시 Celis White를 본 적이 있다면 이 맥주를 보신 겁니다. 셀리스 브루어리의 Celis White는 자세히 보시면 하단에 오스틴 텍사스 비어라고 쓰여 있고, 이 맥주는 벨지안 화이트 비어라고 쓰여 있습니다. 물론 벨기에에서 생산하는 맥주이므로 바코드는 541로 시작합니다. 벨기에의 맥주가 다시 벨기에로 역수출된 거죠.

5. Celis Brewery 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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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크리스틴이 운영하는 Celis Brewery에서 판매하고 있는 Celis White입니다. 아직은 국내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Celis Brewery가 더욱 성장해서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랍니다.

마치며...

피에르 셀리스는 AB 인베브와 SAB 밀러 같은 고래 등살에 인생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호가든, 셀리스 화이트, 그리고 그를 모방한 무수히 많은 Witbier 스타일의 맥주는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귀한 선물을 안겨주고 간 그는 맥주 계의 산타 같은 존재입니다.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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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포스팅입니다. 멋지세요!!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흥미진진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갑자기 셀리스 옹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썼는데 흥미진진하시다니 다행입니다. ㅋㅋ 좋은 불금 보내세요~!

짱짱맨 태그 사용에 감사드립니다^^
존버앤캘리 이번편은 왠지 찡함..^^
https://steemit.com/kr/@mmcartoon-kr/201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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