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얀's 에세이] 선택을 하는 당신에게

in #kr-pen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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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하는 당신에게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 때부터 절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던 것 같다. 나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한다. 어린 나에게 결혼이라는 제도는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하지 않기 위해 드는 보험같았다. 설사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도, 결혼을 하게 되면 사랑이 단순한 계약으로 변질될 확률이 더 많아 보였다.

 공교롭게도 내 주변에는 엄마를 비롯해 결혼을 하신 여자분들이 행복하기는 고사하고 원만하게 사시는 분들이 한 분도 없었다. 그녀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혹은 일어나지 않은 확률이 더 많은 걱정에 둘러싸여 있었다. 세월이 지난 시점에 이러한 배경이 내 인생에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나는 너무도 단순한 아이였다.
 "그렇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이 결혼이라면, 나는 보험을 드는 것보다 행복을 찾아 떠나겠어!"라고 말해버렸으니, 그 행복의 이름은 자유였다.





 버지니아 울프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라고.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너 스스로 소유하라고.
 나에게 남편과 아이가 있다면, 그런 빈둥거림이 가능할까. 나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나는 요리, 빨래, 청소를 비롯한 잡다한 집안일에 서툴렀으며 아이를 잘 돌볼 정도로 섬세하고 사려 깊은 성격도 아니었다. 시댁과 왕래하며 낯선 어르신에게 살갑게 대하는 것도 자신 없었으며, 그럴 시간에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 글을 읽고 '참 이기적이다'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선을 절대 보지 않겠다고, 결혼을 할 일은 없을 거라고 엄마에게 말했더니 엄마가 그러셨다. "너는 참 너 생각 밖에 안 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되물었다. "엄마가 다시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엄마가 살아온 것처럼 살고 싶어, 아니면 지금의 나처럼 살고 싶어?"
 그러자 엄마는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나처럼 살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 후로 엄마는 결혼 이야기는 다시는 꺼내지 않으셨다. 나는 "값이 잘 나가는" 시기에 다양한 일을 해보면서 암흑의 터널 속에서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디뎠다.




 갈매기 조나단은 엄마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왜 그러니 조나단?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왜 넌 다른 갈매기들처럼 되는 게 그리도 힘든 거니?
-뼈와 깃털뿐이어도 상관없어요. 엄마, 전 다만 공중에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 가를 알고 싶을 뿐이에요. 그게 전부에요. 전 단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리차드 바크 | 갈매기 조나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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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들은 노후에 외롭다는 이유로 주변의 젊은이들에게 결혼을 강요한다. 그 주장의 근거는 자식을 키울 때는 힘들지만 나중에는 자식들 덕분에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난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식들이 무슨 수로 외로움을 없애준다는 거지?
 학창시절에 너무나 인기가 많아서 매일 꽃다발과 선물을 받던 한 친구가 나에게 너무 외롭다고 고백했을 때, 나는 외로움의 반대말은 사람들의 관심이 아님을 알아버렸다. 회사를 다닐 때, 동료가 남편이 먹통같이 대화가 안된다고 주절거리던 것도 기억난다. 반대편에 선 그 남편분도 그 동료에 대해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사실 사람은 같이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내가 외로움을 느낄 때는 재미가 없고 지루할 때이다. 가사노동과 자녀 양육을 동반하는 결혼 생활은 나에겐 정말 재미가 없고 지루하니 난 결혼을 하면 틀림없이 외로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비혼을 선택했다. 물론 결혼 생활이 재미있게 느껴지거나 가치 있게 느껴지는 사람은 결혼을 하면 된다. 그러나 결혼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선택이 되면 안된다.





 비혼을 결심한 여자에겐 돈이 가장 중요하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나는 낡은 원룸을 전전하며 치안이 좋은 동네의 주상복합아파트를 욕망했다.
 밤길을 두려움 없이 걸을 수 있고, 아파트 로비에 젊은 시큐리티 직원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격을 보지 않고 주문할 수 있다면, 내킬 때마다 비지니스나 퍼스트클래스 석을 예약해서 파리로 날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나는 내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 지 보고 싶었다. 그 마음이 바로 자유의 실체였다.



 아직도 부동산 사무실의 소장님이나 인터폰을 수리하러 오시는 기사님이 나에게 "사모님"이라는 호칭을 쓸 때 어색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색을 하고 사모님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호칭은 참 당황스럽다. 여자가 좋은 곳에 살면 그것은 모두 다 남편의 덕이란 말인가. 그럴 때마다 보란 듯이 더 성공할 거라고 마음먹는다.
 난 매일 자유를 만난다. 내가 자유를 원했기 때문이다. 매일 두 시간의 산책을 하면서 쓸 데 없는 공상을 하고, 책을 읽는다. 가끔 친구들과 만나서 식사를 하고 새벽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꽃피우곤 한다. 난 세상의 모든 딸들이 보란 듯이 보험 대신 자유를 선택했으면 좋겠다. 더 많은 것을 시도하고 경험하고 나누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이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나의 진심 어린 축복의 말을 보내고 싶다.







보얀's 에세이


쓴다는 것은 시냅스를 연결하는 것
관계의 견고함은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집사의 편지
베니스에서 얻은 자유
첫사랑
데미안을 만나는 시간
파리에서 해 볼 6가지
요리하는 즐거움
시를 읽는 시간
당신에게 쓰는 편지
로레인 루츠가 가르쳐 준 것
질문 속의 답
페드로씨
없는 날
핸드픽을 그만둘까요?
당신에게 자유란 무엇인가요?
원칙은 세잎 클로버 짓밟지 않기
말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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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levoyants 님!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놀랐습니다. 공감과 함께 리스팀했습니다 :) 저는 이제 고향을 내려왔는데, 아직 스스로 어리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친척들이 결혼 얘기를 꺼내니 놀랐습니다. 저도 보얀님과 같은 이유로 비혼을 결심했거든요. 물론 사람일은 모르니 결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의 부모님을 포함해, 제 주변을 보고 결혼이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요.

결혼이 외로움과 불안을 잠재운다며 잘못된 선택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얼른 치안이 좋은 동네로도 이사가고 싶어요..ㅎㅎㅎ)

반갑습니다 hyunyoa님. 공감해 주셔서 감사해요. 전 결혼은 어디까지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현명한 결정을 내리시길, 그리고 결혼에 관계 없이 풍족한 환경을 만들어 나가시길 바래요^^

주체적인 삶!

인석님 오랜만이예요:)

가까운 지인이 비혼 파티를 하겠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인데
언제할런지 툭하면 여행으로 부재중입니다.
멋지십니다.

사실 제 나이 또래엔 비혼이 잘 없어요. 요즘 남녀를 떠나 비혼을 선택하시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요정인간의 결혼관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연예관/연애관은 없나요? 이제부터 보얀님은 無碍道를 찾아 파란 창공에 Free surfing을 즐기는 갈매기로 분하셨군요. 그래도 그 서핑을 동반하는 남성요정이 있으면 좀 덜 따분하지 않겠나요? 다음에는 남성요정관도 들려주세요.ㅋㅋ

ps. 스파업 조금 더 했습니다. 가장 먼저 보얀요정님께 풀봇을 날립니다. 피터가 돌고래가 되는날이 빨리왔으면 합니다. 그런데 모든지 성급하면 잘 안되더라구요. 지금 시점에서 좀더 떨어지면 살까? 아니면 제시리버모어의 방식대로 상승에 올라탈까? 딱 선택에 기로에 있는 것 같네요. ^^ 길게보면 언제사도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도 디테일에 충실한 연습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허허허.

피터님 연애는 질리도록 많이 해봐서 이제 재미가 떨어진답니다. 피터님 돌고래는 이미 되실 거잖아요. 조바심 내지 마시고 혹등고래에 포커스 하세요:) 제가 응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장손인데요 몇 해 전에 아버지께 고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대를 끊겠습니다~~ 라구요. 하물며 제가 여자로 태어났으면 자유의 길을 보얀님처럼 아주 어릴 때부터 결정했을 것 같네요.

어머나 아버님이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오쟁님이 어떤 선택을 하시든 정말 행복하셨음 좋겠어요:)

어머니에게 확실하게 답을 얻어낸 멘트가 아주 멋있네요. ㅎㅎ

양목님 어머니를 확실하게 세뇌시켰답니다 ㅎㅎ
대신 앞으로 어머니 호강시켜드릴려구요.

사람마다 원하는 것이 다 다르지요. 저도 한때 독신주의자였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결혼을 결심했지만, 제 주변에는 여전히 비혼주의인 분들도 많습니다. 당장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촌누나도 나이 쉰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흔들림 없이 비혼주의를 지키고 있어요. 그리고 미국의 어느 대기업 임원 자리를 멋지게 차지하고 있죠.

행복은 남이 정해주는 기준에서 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뭐라든, 내가 행복하면 된 것이니까요^^

사촌누님 너무 멋지십니다. 그리고 독신주의를 버릴 정도로 매력적인 분을 만나 결혼을 선택하신 kakaelin님도 멋집니다:)

멋져요 보얀님! 전 너무 아무 생각도, 고민도 없이 결혼을 해버려서 처음에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저 나름의 자유를 찾아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보얀님의 글이 저에게 용기가 되었듯이 언젠가 제 삶도 누군가의 여성에게 용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고민 없이 결혼을 하셨다면 부리코님이 그 당시 그만큼 행복하셨을 거예요^^ 앞으로 더 자유롭게 훨훨 날아오르시길 바랍니다:)

저도 자유를 향해 가는길이에요 :-)

경아님은 이미 자유로우신 걸요!

앗, 보얀님 여성분이셨군요 ㅎㅎ 몰랐습니다 ㅠㅠ 한 번 여쭤볼까 하다가 실례일 것 같아서 말았었는데... ㅎㅎ 좋은 하루 되세요!!!

착각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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