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에세이] 집사의 편지

in #kr-writing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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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오랫동안 내 시선을 기다리고 있던 눈과 마주쳤다. 나는 좀 슬퍼졌다. 그런데 넌 기다리는 것은 행복한 거라고 가르쳐준다. 예의바른 다이아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오늘도 가고 있다.

이름 다이아나 배리
나이 1살 10개월
좋아하는 놀이 - 잔디에서 집사와 뛰어노는 것
좋아하는 간식 - 딸기향 치석제거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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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처음 만났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쇼핑몰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들어간 펫샵. 유리창에 붙은 실리콘을 이빨로 물어 뜯던 라떼칼라의 치와와 한마리를 본 나는 심장이 급격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소개란에 생일이 적혀있어서 만세력을 봤다. 병신년 계사월의 임인일주. 임인일주는 머리가 영리하고 상대를 배려하며 인내심이 많다. 그러나 지지에 인사신 삼형, 이 세글자가 있는게 아닌가! 사주에 삼형이 있으면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할 확률이 높아서 세심하게 보살펴야한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았다. 난 3개월 할부로 너를 샀고, 빨간머리 앤의 친구였던 다이아나를 기억하며 그 이름을 너에게 붙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세심함과는 거리가 먼 인간인지도 모른다. 오전 9시와 오후 6시. 밥 주는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본 적이 없다. 나는 언제나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었다. 내가 허둥댈수록 너는 오히려 나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내 표정을 살피고 내 일에 방해라도 되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이갈이를 시작할 때 비싼 가구는 그대로 두고 고맙게도 제일 싼 이케아 가구에 이빨자국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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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넌 내가 말을 할 때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네가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거리는 것은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지만 나는 열심히 이해하고 싶어요." 라는 의사표현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사실 난 내 기분이 내킬때마다 너를 끌어 내 무릎에 앉혔는데 너는 내 무릎에 앉고 싶을 때마다 눈빛으로 내 의사를 묻는다는 것을 일 년이 지난 후에 겨우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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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되면 10분정도 놀아주는데 너는 항상 더 놀고싶어한다. 인간의 말을 모르는데다가 끼융거리면 실례가 될까봐 내 시선이 닿는 지점에 아끼는 장난감을 하나씩 줄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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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산책을 하면서 시작한 것이 네잎클로버를 찾기이다. 신기하게도 넌 네잎클로버가 있는 장소를 알고있는 듯이 나를 이끌었다. 함께 찾았던 클로버들은 이제 노트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가을에는 낙엽이 뒹구는 공원을 같이 산책했다. 난 낙엽밟는 소리를 무척 좋아하는데, 네가 수북하게 쌓인 낙엽위에서 기분좋게 뒹구는 것을 보고 우린 참 취향이 비슷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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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네가 맞이하는 두 번째 겨울이다. 추위를 너무나 많이 타는 너는 내 옆에 누워있다. 소리를 잘 듣고 싶은 너는 잠이 들어도 두 귀를 세우고 있다. 내 작은 소망은 네가 셀 수 없이 많은 겨울을 나와 함께 보냈으면 하는 것이다. 다이아나 배리,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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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your post

Thank you very much!

다이아나, 사랑스런 이름입니다. 글에서 다이아나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 드러납니다. 잘 봤습니다^^

쏠메이트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다이아나를 주인공으로 동화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사랑스러운 강아지네요. 고개를 갸우뚱 거릴 때, 같이 맞추어 갸우뚱 거리면 눈을 마주하는 것이 습관이 되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예전 동생이 생각나는 밤이네요.

소소한 행복이 가득한 나날들 항상 같이 보내시길 :)

맞아요. 다이아나가 갸우뚱하면 저도 같이 갸우뚱 한답니다.
언제나 기쁜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개성 있는 등장인물, 스토리, 문체의 3박자! 아껴뒀다 틈날 때마다 꺼내 읽고 싶어지는 글이라 리스팀합니다 :)

스티밋에 정착해서 처음 리스팀 받아봅니다^^
어디선가 kr-pen이라는 태그를 보고 처음 달아봤는데 기분좋네요. 감사합니다!

일요일 오후에 차분히 우려낸 홍차를 한 잔 마신 기분입니다.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철수2님 따뜻하게 느끼셨다니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집에 원두가 떨어져서 홍차를 마셔야 하는데 절묘하네요.

..쭈욱 보얀님의 옛글을 읽고 있어요.
이건 댓글을 남길 수 밖에 없네요.
사랑이 너무 가득해서요.
다이아나 배리, 사랑해. 하는 보얀님 목소리가 들리네요.

옛날글을 읽고 있다니 우리 만남은 조금 더 앞으로 당겨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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