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얀's 에세이] 말의 맛

in #kr-pen6 years ago

IMG_0601.JPG

사람들은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은 잘 잊어도 내가 그들에게 준 느낌은 절대 잊지 않는다.
-마야 안젤루




 나는 말을 잘 못한다. 대화를 할 때도 상대방의 말을 듣느라고 표정을 놓치고, 표정을 살피다가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던진 말이 다른 연상작용을 일으키고 혼자 상상의 나래에 빠지는 바람에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말의 '뉘앙스'를 해석하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서 글을 읽고, 글로 표현하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편하게 느껴진다. 그런 내가 말을 잘 하고 잘 듣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커피가게를 할 때 맞선 보는 남녀의 대화를 엿듣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그런 종류의 만남은 추석이나 설날 연휴에 많이 있었는데, 타지에서 근무하는 자녀들이 부모님 성화에 못이겨 그 무렵 약속을 잡기때문이었다.

 대부분 남자가 대화를 주도하게 된다. 나는 화자인 그들을 몇 년에 걸쳐 관찰하면서 모종의 법칙을 발견했다. 모든 경우가 다 그렇다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남자의 말이 총 대화량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애프터 신청을 받을 지 안받을 지 결정이 난다. 그 때 알았다. 말을 하지 않는 대신 귀를 기울일수록 여자들의 몸이 앞으로 쏠린다는 것을.

 남자쪽의 말수가 적을수록 커플이 되어 나타날 확률이 높다. 한편 대화 도중 일말의 공백도 허용하지 않았던 남자들은 다음 명절에 다른 여자와 맞선을 보기 위해 다시 우리 가게를 찾았다. 그리고 똑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주식에 투자했다가 모아둔 돈을 다 날렸다는 얘기는 제발 하지 않으면 좋을텐데...



 나 역시 대화의 여백을 즐기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 여백의 끝에서 예상치 못했던 화제로 전환된다면 더할나위 없다. 상대방이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저절로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의자에 앉을 때의 자세, 크지 않으면서 분명한 목소리도 중요하다.



 얼마전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를 읽다가 너무 공감가던 부분이 있었다.

"사람은 그 사람의 한 마디로 그 사람의 삶의 본질을 꿰뚫고 그 사람과 사귈 지를 정한다. 실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은 몸의 무늬다. 말에 헛됨이 없고 말에 힘이 있는 사람은 분명 그런 삶의 방식을 갖고 있다. "

 결국 말은 몸이고 마음이자 태도인 것이다.




보얀's 에세이


쓴다는 것은 시냅스를 연결하는 것
관계의 견고함은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집사의 편지
베니스에서 얻은 자유
첫사랑
데미안을 만나는 시간
파리에서 해 볼 6가지
요리하는 즐거움
시를 읽는 시간
당신에게 쓰는 편지
로레인 루츠가 가르쳐 준 것
질문 속의 답
페드로씨
없는 날
핸드픽을 그만둘까요?
당신에게 자유란 무엇인가요?

Sort:  

말은 몸의 무늬다. 라는 어구가 와닿네요.말이 많다는건 자신이 없다는 것일지도..

말을 많이 하고 싶은 사람도 그만의 사정도 있겠지요:)

저같은 경우는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는데 언제쯤 나타날까요...

언젠가 나타날거예요.
그리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어요.
질문을 던지시면 됩니다:)

오오!!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ㅎㅎㅎ

易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것인데요. 말=몸=맘 사실이지요.그렇지만 因緣이 더 먼저인거 같습니다. 콩깍지는 어떤 합리성보다 우선하지요. 사람사이의 feel, 感. 그래서 결국 딱풀이 되어버리죠. 첫인상? 나빠도 인연 앞에서는 무색해지죠.

ps. 서재이신가 봅니다. 만화책 수집광이신듯, 아닌가?

인연도 마음의 상이 끌어당기는게 아닐까요? 콩깍지는 의지의 영역이 아니건 확실한 것 같아요. 호르몬의 작용인것 같습니다. 나쁜 인연은 칼로 자르고 상을 바꿔버려야죠:-)

글치요. 그런데 고놈의 마음이 호르몬에도 끄달리고 몸에 도 끄달리고 지가 만들어논 상에도 끄달리고 아무튼 무쟈게 어렵습니다. 인연에도 끄딱없는 강철마음이 되면 좋겠죠.

그럼 나는 心봤다!

말에 힘을 다시 한번 느껴습니다
말한마디는 그 사람에 본질을 알수 있다는것은 맞는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요즘 말을 할 때 생각을 하려고 해요:)

스팀아 4월을 멋지게 가보즈아!!!

오치님 반가워요!

말의 무늬를 새삼 생각합니다. 감사해요.

말의 무늬는 투명한데 다 보이는 것 같아요^^

말의 소리도 보이더라구요^^

대화의 '여백'이라는 말이 참 마음에 듭니다. 아주 어릴 때엔 대화가 끊어지면 어떻게 하지, 불편한 것이 아닌가 하면서 강박적으로 이어나가게 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에서는, 가끔 대화의 여백에 놓아두어 그냥 그 상황을 즐기고 관조하고 싶은 때가 있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여백도 대화의 일부라지요.

정말 여백은 대화에도 꼭 필요해요. 그걸 아는 사람과 대화하는 게 즐겁습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16
TRX 0.16
JST 0.030
BTC 58176.03
ETH 2475.13
USDT 1.00
SBD 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