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teem]밀란쿤데라의농담
[booksteem]밀란쿤데라의농담
"만일 역사가 자기 고유의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 이성이 인간들의 이해를 신경 쓸 것이며 여선생처럼 꼭 진지해야 하겠는가? 그리고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완전히 무화시켜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농담’은 실수로 출발한 일들이 필연에 의해 출발한 일들과 똑같이 무겁고 실제적인 것으로 귀결될 수 있으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념과 사상이라는 프레임에 의해 개개인의 인생이 틀어지고 상처를 입게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잘못된 삶을 개선해 보려는 개인의 노력은 좌절된다. 하지만 개인들은 죄가 없다. 현실이, 유린당한 세계와 그 속에 인생들이 농담일 뿐이다.
1. 밀란 쿤데라와 농담
밀란 쿤데라는 체코 출신으로 한때 공산당원이기도 했으나 '프라하의 봄'에 참여했으며 소련의 점령 하에서 숙청대상이 되어 프랑스로 망명했다. [사랑], [이별], [불멸] 등 그의 작품에는 그가 경험한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신랄한 묘사가 그려질 수밖에 없으며, 더구나 그의 처녀작인 [농담] 속에는 너무나 명백하게 반 스탈린주의, 반 공산주의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를 왜곡하기 힘들다. 그래서일까. 세계명작이라는 구색에 맞춰 번역 출간을 하긴 했으되, 아무도 읽지 않길 바라는 듯, 누구도 그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길 바라는 것처럼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 대한 서평이 제대로 쓰인 것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농담은 그의 처녀작이다. 때문에 ‘농담’속에는 치기어리고 유치한, 그래서 어른처럼 보이려 얘쓰는 청년들이 어떤 이념에 휩싸여 저지르는 행동과 생각의 패턴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아울러 이 쿤데라의 첫 소설에는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과 그 모든 이념들의 모순됨, 이성과의 사랑, 육체의 욕망과 그 본질, 진리나 사회현상의 헛된 모순등 이후에 여러 명작들에 나타날 주제들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농담의 배경은 소련에 의해 공산화된 체코슬로바키아다.
루드비크는 똑똑하고 자유롭고 쉽게 지껄이고 지식인 냄새를 풍기며 냉소적이기도 하다. 공산당 혁명이후 그는 자연스럽게 역사의 수레바퀴에 적응하여 공산당원이 되지만 그의 자유주의적인 성향은 심플한 사회주의 동지들에게 의심의 눈길을 받는다. 대학교에서 순진하고 거짓없는 스탈린주의자인 마르케타를 유혹하려 노력한다. 자신은 몸이 달아 괴로운데 그녀는 유럽혁명의 가능성을 낙관하며 행복해한다. 쉽게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 마르케타에게 어느날 화가 나서 엽서를 갈겨 보낸다.
-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농담처럼 가벼운 엽서 한 장을 그 사회는 용납하지 않는다. 트로츠키주의자로 몰려서 군대에 강제 징집된다. 공산당에서 제명당하고 정치범으로 낙인찍힌 채 각종 고초를 겪게 된다. 그의 내면에는 자신을 제명하기 위해 모인 총회에서 100여명의 지인들이 모두가 손을 들어 자신을 ‘적’으로 돌려버린 상처와 울분이 각인되어 있다.
그 강당, 백 명이 손을 들어 내 삶의 파탄을 결정했던 그 강당이 떠오르곤 했던 것이다. 추방이 아니라 교수형이 제안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보곤 했다. 그랬다고 해도 모두 손을 들었으리라는 결론이 나올 뿐 다른 결론에 이르러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새로 사람들을 알게 될 때마다 남자든 여자든 새 친구든 애인이 될지 모를 여자든, 머릿속에서 그들을 그 시대 그 강당에 올려놓고 그들이 손을 들 것인가 자문해보게 된다. 그 누구도 이 검사에 통과한 사람은 없다.. 그들 모두가 손을 들고 만다. 그러니 인정하시라.. 당신을 유배 보내거나 사형시킬 태세가 되어 있는 이들과 아주 친해지기가, 그들을 사랑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그 중심에는 그의 친구였고 그 총회에서 자신을 궁지로 몰아버린 과시욕에 물든 기회주의자 제마네크 파벨이 있다. 세월이 흘러 고향으로 돌아온 루드비크는 자신을 반역자로 몰아 내쫓은 동급생 제마네크 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제마네크의 아내인 헬레나를 유혹한다. 헬레나는 무심한 제마네크와 깨어진 결혼생활에서 지쳐가던 중 루드비크의 유혹에 완전히 넘어가 그를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만다. 헬레나는 제마네크의 보물이 아니라 이미 제마네크의 쓰다버린 걸림돌임을 알고 난 루드비크는 경악한다. 세상은 변했고 과거의 이념은 모두 내버렸으며 세월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충고를 다른 사람도 아닌 복수의 대상 제마네크에게 듣다니. 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는 체코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제마네크는 젊은 제자의 팔짱을 끼고 루드비크에게 경쾌하게 군다. 결국 루드비크의 복수는 실패하고 친구에게 복수하고자 살아왔던 과거의 치열했던 삶은 변화된 세상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다.
이 소설은 명백히,반 스탈린주의, 반 공산주의, 반 전체주의를 고발하는 소설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스탈린주의 세계에서 훼손된 개인에 대해 고발한 작품이라는 해설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사회 속에 내던져진 인생들의 아픔을 실존을 드러내는 소설이다.쿤데라는 자신도 자신, 혹은 자신의 작품이 정치적이거나 반체제적으로 보이는 것을 거부한다며 ‘소설’이란 독자들로 하여금 “삶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 역할이야말로 소설이 “예술임을 증명하는 표시”라고 말했다.
농담이 인생을 바꾸고 농담처럼 바뀌어 버린 인생은 현실이 된다. 그런 세상은 또 농담처럼 잊혀지고 지켜질 만한 것, 극단적으로 추구된 의미들은 농담이 된다. 거짓된 체제 속에 치러지는 모든 행사들이 장난처럼 모순 속에 놓여있다. 결국 인생이 한낮 농담에 불과하다.
삶이 인간에게 던지는 농담, 그 속에 숨은 유머와 아이러니를 밝혀내고자 하며 이로써 삶의 본질,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프도록 고민해 봤음직한 ‘삶의 이유’를 탐색한다는 등의 평들도 그 자체로 모순이며 차마 웃을 수도 없는 농담일 뿐이다. 체코 공산당은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으므로 쿤데라는 『농담』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집필 활동을 금지당하고 얼마 후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다.
4. 유린당한 세계와 개인
고통스런 운명을 다 치르며 복수심으로 단련한 늙은 몸으로 돌아온 루드비크에게 금발을 휘날리며 제마네크가 시대의 변화를 말한다.
“생각 좀 해봐 그들 중 대부분은 10년전 프라하에서 정치재판이 열렸다는 사실조차 전혀 모른다니까”
그 재판을 통해 제마네크가 루두비크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으면서 말이다. 루드비크는 “난 바로 그것이 가증스럽게 느껴져”라고 대답한다. 젊은이들이 과거를 전적으로 거부한다는 말에도 “또 다른 맹목이 예전 것을 대신 하겠지”라며 비관한다.
그들은 자신의 육체를 사랑하지 우리는 무시했잖아. 그들은 여행을 좋아해 우리는 한곳에 처박혀 있었는데, 그들은 모험을 좋아하지 우리는 회의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는데. 그들은 재즈를 좋아해. 우리는 부질없는 민속음악이나 흉내냈고. 그들은 자신의 문제에 골몰했지.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했고 우리는 메시아주의로 세상을 망가뜨릴 뻔했어. 이제 그들이 그들의 이기주의로 이세상을 구원할지도 몰라. 462
자유롭다는 이유로 루드비크를 탄광으로 추방해버린 자가 ‘우리’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구태로 모는 상황. 농담 같은 현실이다. 루드비크가 제마네크에게 울분을 느끼지만 그의 따귀를 때릴 기회는 과거 정치 재판이 열리던 그 강당에서 제마네크가 자신을 궁지로 몰기위해 르뽀를 읽어내리던 그 순간 뿐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런데도 그는 미루어진 복수를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꾸어 살아온 것이다.
그 신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화의 원인이 된 주요 인물들과 점점 더 분리된다. 그 인물들은 더 이상 과거의 그들이 아닌데 ,복수의 신화속에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나도 옛날의 얀이 아니고 제마네크도 과거의 그가 아닌 것이다. 내가 날릴 따귀는 다시 복구할 수도 없이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p 491
소설의 후반부 드러나는 실패한 헬레네의 사랑과 열정, 그 삶 자체가 결국 한소설의 농담에 불과함이 드러난다. 제마네크에게 당당하게 밝힌 ‘루드비크의 사랑’이 거짓임이 드러나자 절망한 헬레네는 약(자신에게 연정을 품은 어린 인드라의 두통약)을 입에 털어 넣고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 약은 인드라의 변비를 숨기려는 거짓 약통에 들어 있었던 변비약이었고 결연한 자살시도는 초라하게 화장실에서 팬티도 올리지 못한 웃픈 개그로 마감된다. 헬레네는 이제 자신이 ‘함부로 침대를 바꾸던 그 여자처럼 자유롭게’ 되었다며 모든 것을 포기한다.
역사가 장난을 치고 개인들은 희생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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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내용일 수 있겠다 싶더니
변비약으로 자살을 실패하는, 농담같은
그러나, 역사의 장난으로 개인들은 희생할 수 밖에 없다는
진지한 농담
농담에 섞인 강한 한방이네요
맞네요.
역사가 깊이 새겨질수록 개인들의 희생이 커질수 밖에 없는거니까. 역사의 크기는 개인의 삶들이 짖밟힌 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