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봄날|| #29 좀 더 나은 어른이 되길

in #kr-essay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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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전역하자마자 복학을 한 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시내에 새로 생긴 큰 카페였는데 규모만큼이나 그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도 많았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앞둔 아이서부터 곧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누나, 형들까지. 그 사이사이 없는 나이대가 없을 정도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이런 다양한 나이대 속에서 나는 꽤 높은 측에 속했다. 지금 생각하면 고작 스물셋 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지만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에겐 아저씨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잘 따르고 뭔가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연령대가 다양한 만큼 아르바이트를 하는 연유도 제각각이었다. 나처럼 군대를 다녀와 용돈벌이로, 입대를 앞두고 시간이 남아서, 휴학을 하고 여행을 가기 위해, 갖고 싶은 물건을 사기 위해 등등. 이유만큼 모인 이들도 다양했다. 대학생, 곧 대학생이 될 고등학생, 휴학생, 백수, 거기에 재수생까지.

재수생이 무슨 아르바이트인가 싶지만 본인이 말하길 강제에 의한 규칙적인 패턴이 오히려 능률을 올린단다. 잘 이해는 안 가지만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재수생이었다면 아르바이트 없이는 해가 중천에 떠도 일어나지 못했을 테니. 아무튼, 그 아이와는 같은 시간대에 일하고 있어 일도 많이 도와주고 조금씩 배려도 해주며 친하게 지냈다.

날은 금세 추워지고 수능은 금방 다가왔다. 수험생에게는 일 년 혹은 수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날이었지만 내게는 그저 평범한 날이었다. 그날도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함께 일하는 동생들과 술자리를 갖고 있었다. 술이 한 순배쯤 돌았을 때 오늘 수능을 본, 더 이상은 재수생이 아닌 그 아이도 술자리에 합석했다. 난 반가운 마음에 얼굴을 보자마자 물었다.

 “시험 잘 봤어?”

인사를 대신한 말이었지만 돌아온 말은 뜻밖이었다.

 “아이참, 오빠! 수고했다가 먼저 아니에요?”

그녀도 내게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지만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언젠가 생각했다. 결과만 좇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결과만 중시하는 그런 어른은 되지 말자고. 그런데 보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시험 잘 봤냐?’라니. 그녀 말대로 하루종일 고생하고 온 사람에게 수고했다는 말이 먼저였다.
나는 미안하다며 사과부터 했다. 내 정중한 사과에 그녀는 다소 당황한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린 친한 사이었고, 내 인사에 맞춰 농담 섞인 인사를 한 것뿐이었으리라. 그런데 갑작스레 사과를 해오니 놀랄 수밖에. 그녀는 왜 그러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어쩐지 미안한 감정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제는 아저씨라는 말이 제법 어울리는 나이가 됐지만 날이 추워지고 어김없이 수능 소식이 들릴 때면 그 아이와 있었던 일이 곧잘 생각난다. 잠시나마 스스로가 어른이라고 착각했던 스물세 살짜리 어린 나와 함께.

그래서 지금은 바라던 어른이 됐냐고요? 글쎄······.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좀 더 나은 어른이 되길 바랄 뿐, 어떤 어른이 됐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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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봄날 | 좀 더 나은 어른이 되길
wirtten by @chocolate1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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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네요... 그 재수생이 그녀였다니!!! 부끄부끄!!!

지금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요? :)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말이라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뱉고나서 아차하는 순간도 많고^^
저도 좀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나은 이라는게 어떤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마니마인 첫글 축하드려요 ~
역시 엄지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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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친 아이에게 시험에 관해서 물어보다니 용감하셨군요.ㅋㅋㅋ
이제 디클릭에 병원광고가 들어오네요..신기해라..
마나마인도 되시구 축하축하~~~ 연말 즐겁게 보내세요 초코님 ^^

내년에는 저도 좀더 나은 어른이 되어 있길.

ㅎㅎ 가끔 소식이 궁금해지는 사람과 추억이 있죠.^_^

저도 먼 훗날 아이들이 수능보고 돌아오면(그때까지 수능체계가 유지될까 모르겠지만;;;) 수고했다는 말먼저 해주는 엄마가 돼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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