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봄날|| #19 어른이 된다는 게

in #kr-essay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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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술과 담배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루는 것? 나이에 걸맞은 사회적 직위에 올랐을 때? 어느 하나 틀린 건 없지만 주변에 어리지만 나보다 어른스러운 친구를 보면 이 말도 영 맞는 거 같지는 않다.

갓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다. 같은 과엔 나이가 제법 있는 동기 형이 한 명 있었다. 형은 회사에 다니다 학업에 뜻을 두고 입학을 했기 때문에 다른 동기들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항상 점잖은 모습에 책임감도 강해 과대표까지 도맡았고 리더십도 출중했다. 거기에 사회 경험까지 있던 형은 모르는 게 없었다. 그런 형을 보며 처음으로 어른이란 건 저런 모습이겠구나 싶었다.

형이 어른스러운 건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형 정도의 나이가 되면 그에 걸맞은 책임감과 어른스러운 모습을 갖출 거 같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지금 난 당시 형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여전히 천방지축이고 실수투성이며 어른스럽지 못하다. 형이 어른스러웠던 건 나이를 먹어서, 경험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저 형의 인품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일이다. 어릴 적 친구 녀석이 집으로 초대했다. 예전 같았으면 밖에서 만나 날이 밝아오도록 술을 마셨을 테지만 결혼하고 어느새 애까지 있어 집으로 부른 것이었다.
친구의 아이는 못 본 사이에 제법 자라 있었다. 걷지도 못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리저리 노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런 모습이 제 아빠를 쏙 빼닮았다.

아이는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뛰놀다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누가 건드린 것도, 뺏은 것도 없거늘 왜 우나 싶었는데 기저귀 갈아야 한단다. 친구는 주섬주섬 새 기저귀 하나와 물티슈를 챙기고는 재빠르게 아이를 잡아다 눕혔다. 숙련된 솜씨로 기저귀를 벗기고 능숙하게 엉덩이를 닦아낸 뒤 새 기저귀를 채웠다. 철부지 아이였던 녀석은 어느새 아빠가 돼 있었다.

그 모습에 난 혼자 중얼거렸다.

 “허, 어른이네.”

녀석이 내 말을 들었는지 피식 웃는다.

 “그럼 인마. 어른이지.”

아무래도 아빠쯤은 돼야 어른이 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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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

악 ㅋㅋㅋㅋ 마지막에 팩트폭격이네요
아빠쯤은 되야 ㅎㅎㅎㅎㅎㅎ
그래도 집에서 아빠들은 다 아내의 첫쨰아들아닌가요? ㅎㅎㅎ

으억 그것도 그렇네요. :)
세상의 모든 아부지들은 아내에게 큰 아들일 뿐이네요. ㅎㅎ

그 동기 형아는 초코님에게 본이되니 초코님에게는 어른이 된 것처럼 초코님도 누군가에게는 어른입죠ㅎㅎ 근데 길동이 아저씨 하나도 안 불쌍함. 젊은 나이에 강남에 2층짜리 단독주택가지고 사는데 뭘...ㅋㅋ

고길동님 능력자죠. :) 한강이 보이는 2층 단독주택에 둘리가 그렇게 집안을 해먹어도 멀쩡하고. ㅎㅎ

맞아요. 고길동 아저씨 불쌍해요. ㅠ.ㅠ

확실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더 어른스러워지는 거 같긴 해요.
하지만 아직도 '참 어른'이 되려면 멀었으니..
도대체 어린 날의 나는 얼마나 어렸던 건지. -_-;;

ㅎㅎ 브리님 말씀 듣고 나니 그러네요.
어린 날의 우리는 정말 얼마나 어렸던 걸까요? 지금도 철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그땐 더 천방지축이었는데 말이죠. :)

고길동 아저씨가 불쌍하기도 하지만 성인 군자인 거 같아요. 제가 당사자였다면 정말 둘리 쫓가내고도 수십번을 더 쫓아 냈을 거예요. ㅎㅎ

아빠가 되도 어른이 안되요. ㅠㅠ
불혹이 넘었는데도 맨날 팔랑팔랑하고 삽니다. ㅎㅎ

아아. 그런 겁니까. ㅠ

두 아이의 아빠이신 노아님이 그럴게 말씀하시니 전 아마도 평생가도 어른이 못 될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저도 어느순간 고길동이 불쌍해지더군요 ^^ 철이 든다는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스사모 모임지기 로키입니다. 앞으로 사진관련 포스팅시 photokorea 태그를 사용해주셔야 향후 소모임 지원이 가능할 듯 합니다 ^^ 참고해주세요 그동안 팔로우가 안되어있었네요 팔로우도 합니다~^^

안녕하세여. 로키님. :)
로키님도 고길동이 불쌍하다 느끼시는 걸 보면 어른이시군요. ^-^

Photokorea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저도 이번 계기로 해서 사진도 좀 찍고 그에 대한 이야기도 간단히 적어볼 계획이랍니다.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려서 감사합니다. 로키님. :)
앞으로 자주 찾아 뵙도록 하깨요! ^0^

넵 감사합니다~!

어른. 나이가 늘어간다고 어른이 아닌것같아요
책임감,배려 등이 잘 어우러진 사람..
그게 저는 아직 미숙하네요ㅜ

저도 그래요. :) 아직도 철 없고 실수투성이예요. 그렇게 차차 어른이 되는 거 아닐까요? ^-^

둘리보다 고길동이 불쌍하면 너도 어른이 되는거라는 저 짤 왜이렇게 재밌나요 ㅋㅋㅋㅋ근데 정말 어른은 언제되는 걸까요 엄마랑 외할머니랑 대화를 하는 것을 훔쳐들었는데, 엄마가 외할머니보고 왜이렇게 아이처럼 구냐고....하시더라고요 ㅎㅎㅎ 할머니급 나이가 되어도 아이 인건가......ㅋㅋ쉽지 않네요 ㅠㅠ 근데 저도 막연하게 부모가 되면 어른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ㅎㅎ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부모 앞에서는 아이인지도 모르겠네요. :)
저는 아직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잔소리를 듣는 답니다. ㅎㅎ 부모가 되면 없던 책임감이나 어른스러움이 생기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요. :)

날이 추운데 감기 조심하셔요 히바님. ^0^

고길동이 어릴때는 미웠는데.지금은 측은해요
맞는 말인가봐요 ㅠ

엇 그렇다면 반님은 어른이십니다. :)

언제나 어른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초코님! 제가 Seven Day Black & White Challenge에 초코님을 지목했어요!
인생의 단면과 일상의 소소함을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작지만 좋은 기회인듯해요 :) 함께해요!

지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농님. ^0^
집에 돌아가서 옛 사진첩부터 차근히 뒤져봐야겠습니다.
내일부터 바로 실행에 옳기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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