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봄날|| #21 걱정이더라

in #kr-essay7 years ago

그래도 봄날 대문2.jpg



어른이라는 범주의 남자가 술자리에서 내게 말했다.

 “요즘 애들은 목표 의식이 없어. 목표를 딱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이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어. 안 그래?”

난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애들은 부모가 고생해 번 돈으로 배따시게 지내니 걱정이 있어 뭐가 있어? 그러니 꿈도 없는 거야. 자고로 젊었을 때 이것저것 고생하면서 꿈을 키워야 하는데 말야.”

그는 이 자리가 흡사 연설회장이라도 된 것처럼 목소리에 힘주어 이야기했다. 그러나 함께 있던 어느 누구도 명확히 대답하는 이 없었다. 다만 그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간간히 고개만 끄덕였다.

 “나 때는 말이야 당장 오늘 먹을 걱정에 못할 게 없었다고. 근데 요즘 애들은 이 일은 힘들어서 싫다, 저 일은 돈이 적어서 싫다…. 오늘 그만둔 녀석만 해도 그래. 힘들어서 그만두겠다니, 이게 말이야 방귀야?”

그의 말대로 오늘 신입 하나가 그만뒀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지 불과 두 달 남짓 된 녀석이었다. 신입이 그만둔다 말했을 때 나는 말리지 않았다. 입사 뒤 단 하루도 야근이 없던 날이 없었다. 나 같아도 다니기 싫었다.
오늘 자리를 정리하는 신입의 모습을 나는 존경과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봤다.

 “취업난 그런 거 다 도전의식이 없어서 나오는 말이라고. 취업 안 된다고 투덜거리고 있을 게 아니라 사업을 하던가, 아니면 공부를 더 하던 해야지 그저 방구석에 자빠져 있는 게 말이나 되냐고. 취업 걱정? 그것도 다 자기 배가 불러서 하는 소리지. 걔네들은 진짜 걱정이 뭔지 모른다니깐. 봐봐, 옛날에 비하면 요즘 얼마나 살기 좋냐? 안 그래? 취업 안 된다고 징징거릴 게 아니라니까!"

그의 말이 꼬부라져 나왔지만 끊이지는 않았다. 난 조용히 술잔만을 기울였고 다른 이들도 아무 말 없이 그의 말만 들었다. 어쩌면 듣는 척만 했는지도 모른다. 나처럼.

빈 소주병이 테이블 지분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나서야 술자리는 끝이 났다.



며칠 뒤 어린 후배가 술자리를 청해왔다.

 “형. 저는 요즘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거 없어?”
 “네…. 없어요.”
 “그럼 좋아하는 건?”

녀석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서글픈 미소였다.

 “그것도 잘 모르겠어서 고민이에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어서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걸 찾은 사람 보면 참 부러워요.”

후배는 천천히 술잔을 비웠다. 그의 잔이 비워질 동안에도 난 아무런 답을 주지 못했다. 조용히 그의 비워진 잔에 술을 채웠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걱정은 누구나 있다. 돈, 일, 건강.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각자의 걱정에 크고 작음은 없다. 그 크기는 본인만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누구도 타인의 걱정거리에 대한 고단함을 정의할 수는 없다.

세상이 좋아졌다한들 어찌 아이들의 걱정거리가 작다 말할 수 있을까. 꿈도 좋아하는 것도 찾기 힘든 세상에 던져진 아이들의 고민도 당장에 먹고 살 걱정만큼이나 힘들고 고단할 터인데.

맺음말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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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캄사해요. :)

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는 건 어려운 것 같네요...ㅠㅠ

그쵸. 좋아하는 일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것도 찾기 힘든 세상이 됐어요. ㅠ

하고 싶은걸 모르는 봄날인 분들이 많지요.
저는 하고 싶은걸 하기위해 오늘 퇴사했습니다!
그래도 주위에선 따뜻한 시선만은 아니네요...
좀만 따뜻해지면 좋으련만...

오늘 퇴사 축하드립니다. :)
주변에서는 뭐라하든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물론 가는 길이 꽃길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죠. :D

어쩜, 그래서 세상은 돌고 돈다는 말을 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세상도 다 돌고 도는 거 같아요. 유행처럼요. :)

지나고보면 작은 걱정거리였더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그 나이대에 맞는 큰 고민덩이를 하나씩은
안고 살아가는 법이죠!!! ㅎㅎㅎ

네. 그런 거 같아요. 집이 있는 사람에게 오늘의 추위는 별거 아닌 일이지만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가장 큰 고민이죠. :)

비교적 어린 나이에 빨리 하고 싶은 길을 찾은 제가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 나이를 먹을 수록 깊게 깨닫게 되더라구요.

아, 케이님은 일찍이 만화가가 꿈이셨겠군요. :)

지금도 전 제 친구들 중에는 하고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죠. 일찍이 하고싶은 거, 좋아하는 걸 찾은 것도 어쩌면 축복인 거 같더라고요. :D

그 세대에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겠지만 시대가 변한 이후에도 그것을 고집한다면 이 세대의 청춘들은 점점 고달파지는 것 같습니다..ㅠ

시대는 그 시대에 맞는 십자가를 지어준다고 해요. 부모 세대가 먹고 사는 게 걱정이었다면 요즘 세대들은 꿈이나 취업 같은 게 고민이죠. 저는 어떤 고민도 경중을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꿈이라는 건 먹고 사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거니까요. :)

후 옛날에 안태어나봐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얼마나 세상이 좋아진건지 잘 모르겠어서 저런 소리 듣는게 참 싫어요.. 옛날에야 배고프면 산에가서 산딸기라도 뜯어먹었지 요즘은 뭐 그럴 수 있나요. 옛날에야 공기라도 좋고 대학만나오면 취업 다 잘됐지 요즘은 뭐 그런거 있나요 ㅎ 진짜........

옛날엔 정말 대학나오면 대기업 취업하면 바보 취급 당했다고 하죠. 하고싶은 것도 못 찾았다고. 지금은 반대가 됐어요. 대기업에 들어가면 플랜카드도 걸리니까요. :)
지금과 옛날 어떤 게 더 힘들었나 따지기는 힘들죠. 둘다 똑같이 힘든 고민이고 걱정이었을 테니까요. :D

초코님
담요 잘 받았어요...
기억 나눔 프로젝트 감사드립니다.
저도 초코님의 담요를 받았으니
그 프로젝트를 한번 이어가 볼게요..
괜찮겠죠?
감사합니다.

잘 받으셨다니 다행이네요. :)
함께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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