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봄날|| #20 안녕. 나의 작은 카페들아

in #kr-essay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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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집 근처에서 작고 예쁜 카페 하나를 찾았다. ‘이솝’이라는 예쁜 이름 가진 카페는 커다란 가게들 틈바구니에 앙증맞게 자리 잡고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테이블도 고작 세 개만 있어 공룡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에 비하면 정말 병아리 같은 곳이다.

이솝은 흔히 있는 무선 인터넷도 없다. 있는 거라곤 잔잔히 흘러나오는 음악과 아기자기한 액세서리, 그리고 조용함뿐. 그래서 이솝에 가면 잔잔히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거나 노트에 이것저것 끄적여 본다. 이도 여의치 않을 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청승을 떤다.
할 수 있는 게 많은 곳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꼬마전구들이 환하게 켜질 때면 언제나 발걸음이 느려진다.

 ‘잠깐 들렀다 갈까.’

매번하는 고민이 지겨울 법도 하건만 가게 앞을 지날 때면 언제나 스스로를 달래 주지 않고는 지나치기 힘들다.

이솝을 좋아하는 게 된 건 커피 맛이 좋기 때문은 아니다. 내게 카페를 선택함에 있어 음료의 맛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커피 맛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조용한 분위기, 그거 하나면 된다. 그래서 맛 좋기로 소문난 유명 프랜차이즈도 내 기준에서는 그리 좋은 카페는 아닌 셈이다.

이런 분위기의 카페들은 대부분 사람이 없다. 많아야 나를 포함 두세 명이 전부다. 이솝에서는 아직까지 나 말고 다른 손님을 만나본적 없다. 그러니 이솝을 좋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카페 고르는 취향이 이렇다 보니 생기는 문제가 하나 있다. 사람이 많아야 할 곳에 사람이 없다는 것은 곧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내가 단골로 다니는 카페들은 곧잘 없어진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문 닫은 단골카페가 못해도 대여섯은 되는 거 같다.

얼마 전에도 자주 가던 카페 한 곳이 문 닫았다. 예쁘지는 않지만 조용한 분위기가 괜찮은 곳이었다.
오랜만에 책이나 읽자고 카페를 찾았는데 있어야 할 카페가 없자 허탈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럴 때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카페에 대한 아쉬움보다 나 때문에 문 닫은 것만 같아 미안함이 먼저 들고는 한다. 고작 카페 하나 사라진 것뿐이지만 그간 정 붙였던 마음 둘 곳 없어 쉬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쯤 하니 내가 다니는 카페는 곧 문 닫을 카페라는 공식이 세워진 것 같다. 친구들도 내가 새로운 카페를 발견했다 말하면 “왜? 거기도 곧 망한대?”라며 놀린다. 영 틀린 말도 아니라 반박도 못하고 웃어넘긴다. 이 사실을 주인들이 몰라 망정이지 알았다면 어느 카페고 날 그리 반기지 않으리라.
지금 앉아있는 이솝도 언제 없어질지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단골로 죽치고 있으니.

사라진 나의 단골카페들에게 작은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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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단골인 초코님마저 안 가면 더 일찍 문 닫았을지도 모르죠.
부디 이솝은 오래오래 가길!
맘에 맞는 가게 찾는 것도 참 힘든데 말이죠.
근데 손님을 더 모으려면 적어도 무료 와이파이 정도는 해줘야 할 거 같은데요. -_-;;

제가 안 그래도 와이파이에 대해 물어보니까 이솝이 원래 카페가 아니고 본인의 작업실이었데요. 그래서 딱히 와이파이를 놓지 않았다고.
근데 무슨 작업을 하시는지는 물어보질 않았네요. ㅎㅎ
어쨌든 작업실로 쓰는 곳이면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 같기도하고, 반대로 작업을 그만두시면 장사와 상관없이 문을 닫을 거 같기도 하고. :)

다운 보팅으로 기분이 많이 안 좋았는데 이 글을 읽으니 마음이 차분해지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자주 가던 차분한 분위기의 카페들이 없어지면 좀 안타깝지요.

네. 맞아요. 없어지면 굉장히 허탈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함께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ㅎㅎ
막상 익숙한 곳 없어지니 새로운 곳에 적응을 해야되서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힘들고. ㅠ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이 많이 춥네요. 감기조심하세요. :)

흑흑 ㅠ 초코님 저도 동네에 핫쵸코가 맛있는 작은 까페가 있는데 얼마전에 문을 닫았더라구요.
얼마나 속상하고 허전하던지~~~
스벅이나 투썸도 좋아하긴 하지만 독특하고 개성있는 작은카페도 좋은데 작은카페는 살아남기 쉽지 않은가봐요;;;

그런 거 같아요. 동네 작은 카페들은 아무래도 사람이 없다보니 운영이 더 힘든 거 같아요. 동네에서 카페를 가는 경우가 사실 많지는 않으니까요. ㅠ

내일도 날씨가 많이 춥데요. 감기조심하셔요 해이님. :)

안녕하세요!! 최근에 가입한 노래 포스팅 하는 뉴비입니다^^
유익한 블로그 정말 잘 봤습니다ㅎㅎ
팔로우 하겠습니다 ^_^

안녕하세요. kth님. :)
저도 팔로우했습니다. 앞으로 자주 뵈요. :D

작은 카페라는 이름 만으로도 따뜻하고 정감이 갑니다.
특히 겨울에 어울리죠~
부디 지금 단골가게가 영원하길 바라는 수밖에요~~
혼자 가시지 말고 친구분들 데리고 가셔서 매상도 올려주시고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저희에게 이런 소소한 일상이 알고보면 아주 커다란 추억거리가 된다는게 느껴지네요~

안녕하세요. edwardcha님. :)

친구랑 같이 가면 좋은 이상하게도 친구랑 같이 있으면 이솝에는 안 가게 되더라고요. ㅎㅎ
친구랑 있으면 이야기를 나눠야 하기 때문에 조금 시끄러워도 되는 프랜차이츠를 가는 거 같아요. :)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커피숍 분위기가 고즈넉하고 아늑하고 좋다면, 사람들이 많아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면 뭔가 이상하거잖아요. 물론 아늑하게 분위기 좋은 카페에 조용하게 나 혼자 앉아있다면 아주 좋은 것이지만, 그 대신에 그 카페 운영이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죠.

그게 참 아이러니에요. 분위기가 좋으려면 사람이 없어야하고, 사람이 없으면 카페 운영이 안 되고. 분위기가 좋아 사람이 많아지면 저는 또 그 카페에 잘 안가게 되고.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목님. 날이 많이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

이게 정말 젠트리피케이션인가봐여 . .. 대형 체인밖에 살아남지 못하는 현실..

요즘에는 가격도 싼 프랜차이즈도 많아서 동네 작은 카페들은 더 살아남기가 힘들어진 거 같아요. 단가로 후려치면 살아 남을 곳은 몇 없거든요. ㅠ

날이 많이 춥네요. 감기조심하하세요. 헬켓님. :)

자기만의 색을 가진 아기자기한 곳들이 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네요. 임대료가 문제인 것인지 ㅠㅠ

동네 작은 곳들은 장사가 그리 잘 되는 편이 아니니 아마도 임대료도 문제가 될 거예요. 게다가 주변에 큰 프랜차이즈 하나 들어서면 손님 뺏기는 건 시간문제이기도 하고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leey님. 날이 많이 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

제가 사는 동네만해도 첨엔 카페가 두개 있었는데 지금 여섯개로 늘었어요...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카페들 탓에 점점 힘들어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ㅠㅠ 저도 초코님하고 비슷한 취향으로 카페를 선호하는 편이라 마음이 아픕니다... ㅠㅠ...또 없어지겠구나...사장님이 힘들겠구나...생각이 저절로 ㅜㅜ

맞아요. 마구잡이로 늘어나는 카페들도 문제인 거 같아요. 한 거리에 도대체 몇개의 카페가 있는지 헤아릴 수도 없더라고요. ㅠ
그래도 프랜차이즈가 없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ㅠ

햇쌀님. 날씨가 많이많이 추워요. 감기 조심하시고 또 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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