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역사상 가장 초라했던 순간의 (비공식) 수도, Brookeville(브루크빌)
겨울 분위기 물씬 나는 위 사진은 미국 Brookeville(브루크빌)에 위치한 작은 주택이지만, 단 하루 동안은 미국의 (비공식) 임시 수도였습니다. 먼저 독립 후 미국 (공식) 수도의 변천 과정 즉 워싱턴이 현재의 수도가 된 과정을 잠시 본 뒤, 브루크빌이 (비공식) 1일 수도가 되었던 스토리를 풀어보겠습니다.
미국 국가를 들으시면서 보시면 더 이해에 좋습니다.
<The Star Spangled Banner(별이 빛나는 깃발 혹은 별이 박힌 깃발), 現 미국 국가 >
독립 후 미국의 수도 변천 과정
① 미국의 첫 임시 수도, 뉴욕(1789)
1789년 미국의 공식적인 첫 수도는 임시로 대도시인 뉴욕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뉴욕에서 취임선서를 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임시였을 뿐, 수도 결정 문제로 논란이 지속되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풍부한 농산물 생산력을 바탕으로 한 남부지역의 파워가 상당하던 때였기 때문에, 남부지역의 의원들은 수도를 되도록 남쪽에 두고 싶어했습니다.
② 미국의 실질적인 첫 수도, 필라델피아(1790~1800)
불과 1년 후인 1790년 미국의 수도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결국 뉴욕보다 조금 아래쪽인 필라델피아로 결정됩니다. 필라델피아는 대도시인데다가 과거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유서가 깊은 곳이라 명분도 괜찮았습니다.
③ 미국의 항구적인 수도가 된 워싱턴(1800~現)
그러나 남부지역의 불만은 계속되었고, 워싱턴 대통령은 결국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워싱턴을 수도 예정지역으로 낙점하고,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계획은 프랑스계 미국인이었던 랑팡에게 맡겼습니다. 도시가 건설되는데만 10년이 걸렸습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인들 사이에서 프랑스 파리의 멋진 건축양식과 그들의 행동은 귀족적인 것, 고급으로 간주되어 워싱턴의 전반적인 건축은 결국 프랑스 양식을 본 따 미국/영국의 기술로 지은 셈이었습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수도로 계획하고 건설된 워싱턴은 1800년부터 현재까지 항구적인 미국의 수도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워싱턴과 브루크빌의 굴욕, 현대 미국을 낳는 계기로 발전
① 미영전쟁의 시작(1812~1815)
워싱턴으로 수도를 옮긴 미국은 현재와 같은 강대국은 아니었지만, 풍부한 자원과 희망을 바탕으로 국력과 자신감이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당시 영국은 나폴레옹과 맞싸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제외한 거의 전 유럽지역을 정복해가면서 정복국가들에게는 대륙봉쇄령을 내려 영국과의 교역을 차단했습니다. 이에 맞서 영국도 해상봉쇄령을 내려 프랑스와 그 정복국가들로 들어가는 무역선들을 차단해버렸습니다.
이때 미 남부지역도 생산된 농산물 등의 유럽 수출길이 막혀버렸습니다. 유럽의 큰 전쟁의 와중에도 미국은 나름 중립을 지키면서 전 유럽을 상대로 교역을 통해 이익을 취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막히게 되자 불만이 커졌습니다.
그뿐 아니라 영국 해군은 미국의 배들을 점검한다는 명목으로 일부 선원들까지 영국군으로 강제 징집해가기도 했습니다. 독립을 인정해줬지만 아직까지 과거처럼 행동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미국에 의해 영국군이 희생당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미국/영국 모두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결국 미국 4대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민주공화당)은 공식적으로는 유럽 수출길을 막고, 미국인을 강제징집해간다는 명목하에 영국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는 정치적으로 연방주의자들을 축출해 내려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② 미국 최초로 수도가 함락당하는 대굴욕 사건 발발(1814)
1812~13년, 미영전쟁 초반만 해도 영국은 프랑스와의 전쟁 때문에 미국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영국 본토에서 군대를 파병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영국령 캐나다에 속한 군대를 동원해 지지부진한 싸움만을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에 미국은 마음놓고 영국령 캐나다 지역을 유린하였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전 유럽에 휘몰아친 나폴레옹 광풍에도 이겨낼 만큼 아직까지 세계 최강대국 중 하나였습니다. 영국의 해상봉쇄령으로 경제가 고달퍼진 (프랑스에 복속된) 유럽국가들은 오히려 점차 프랑스에 반항하기 시작했고, 영국은 미국에 일부나마 해군을 파병할 수 있었습니다.
1814년 영국을 건너 온 영국해군은 미국의 남쪽에서, 영국령 캐나다군은 미국의 북쪽에서 동시다발로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화력이 강한 영국군이 직접 오자 미국 군대는 흔들렸고, 미 대통령이 거주하는 곳(The President's House)에서 불과 10km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블라덴스버그(Bladensburg)에서마저 대패하자, 미 대롱령 제임스 메디슨은 짐도 못 챙기고 대통령 관저에서 피신하기에 이릅니다. 우리로 치면, 왕이 파천한 셈이지요. 미국 대통령 최초이자 유일한 파천이었습니다.
그는 남쪽 버지니아로 피신하려다가 방향을 틀어 북쪽 브루크빌로 향했습니다. 그곳이 가장 가깝기도 했고 마침 미국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라 언전하다고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 브루크빌의 주택은 메디슨 대통령의 부인과 친한 부부가 살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미 대통령과 정부관료들이 이 작은 곳에서 1814년 8월 26일 밤을 지새우며 회의와 명령을 전달했습니다. 사실상 (비공식) 수도였고, 어쩌면 미 역사상 가장 초라한 대통령 관저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통령이 급피신한 워싱턴은 곳곳이 불타 올랐습니다. 영국령 캐나다 지역이 유린당했던 복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대통령관저(The President's House)를 비롯해 재무부, 법원 등 거의 모든 공공기관 건물이 불탔고 이 와중에 많은 기록물들도 유실되었습니다.
좌측 이미지는 불타는 현장을 그린 것이고, 우측은 불타고 남은 대통령 관저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다행인 것은, 마침 여름의 강한 폭풍우가 오는 바람에 자칫 전소될 수도 있었던 워싱턴의 많은 공공기관건물들의 외형을 보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워싱턴이 점령된 익일에 큰 폭풍우가 와서 불이 꺼졌습니다. 이 폭풍우는 우리의 태풍 수준이 아니라 미국에는 흔한 허리케인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얼마전 캐나다 총리의 백악관 방문시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가 백악관에 불질렀지 않느냐"는 멘트를 한 건 크게보면 이때의 이야기를 과장한 것입니다. 이것이 외교석상에서 할만한 말인가와는 별개로, 백악관을 불태웠던 건 당시 영국령 캐나다군과 영국군이 한 것이지만, 사실상 캐나다 지역 출신인들이 한 것은 또 맞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현 백악관(The White house)은 원래도 하얗다 보니 종종 애칭으로 백악관으로 불리기도 했었다고는 하나 당시에는 대체로 대통령 관저(The President's House)로 주로 불리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재건한 대통령 관저를 더욱 하얗게 칠하고 난 뒤부터는 그 상징성을 따서 주로 백악관으로 불리게 된 것이라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③ 굴욕을 겪고, 역설적으로 현재 미국적 정서가 확대되기 시작
워싱턴이 하루 좀 넘게 점령당했었지만, 완전히 빼앗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 군대도 곳곳에서 영국군들을 상대하고 있었기에 영국군들도 워싱턴에만 머물 수 없었고 근처 다른 전장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영국군이 떠나자 메디슨 대통령은 브루크빌에서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와 주민들에게 단합을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이때부터 역설적으로 많은 미국인들에게 기존의 영국과는 다른 미국적 정서와 애국심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워싱턴 근처 바닷가의 요새인 맥켄리 요새에서 사실상 미영전쟁을 종결짓는 전투가 벌어지는데, 불리한 전세에도 불구하고 몇일에 걸친 전투에서 미군이 승전하고 맥켄리 요새에 더욱 큰 미국의 깃발을 걸게 됩니다.
법률가로서 인질 협상을 하러 현장에 갔던 프란시스 스캇 키(Francis Scott Key)는 그 승전을 목격하고 시를 짓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미국 국가입니다. 미국 국가의 유래에 관한 풀 스토리는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들을만한 여러 곡이 포함되어 있어 재미있습니다.
6/30 국가(國歌)로 보는 국가 #2: 백악관이 불타던 그 때 태어난 『미국 국가』
영국도 프랑스 등과의 전쟁만해도 버거운 상태라 더 전쟁을 끌지 않고 결국 양측은 이듬해 전쟁을 마무리하는 조약을 체결하고, 양국의 영토를 전쟁 전으로 모두 복원시켰습니다. 미영전쟁은 결국 영토가 그대로이므로 전쟁 전과 달라진 것이 없고, 다소 정치적 의도로 시작되었기에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때의 깃발 펄럭이는 승리는 미국 국가로 만들어져서 계속 불려지면서 현재의 미국적 정서를 다지는 기틀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비공식) 수도가 브루크빌로 바뀔 정도로 미 역사상 가장 초라한 순간까지 내몰렸던 그때의 역사가 지금의 미국 국가를, 현재의 미국 정서를 만드는 기틀이 되었다고 하면 조금 과장일까요?
미국 제 4대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메디슨, 그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자, 미 헌법을 사실상 만든 사람으로 현재 미국의 공화주의의 기틀을 다진 사람입니다. 또한 재임 중에 프랑스령 루이지애나 지역을 헐값에 매입함으로써 미국 영토를 2배로 늘린 업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하게도 대통령이 파천한 굴욕 사건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을 그를 영웅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발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무려 5,000달러 지폐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공과 과를 따지되 공을 기리는 평가방식은 우리도 배울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덜 알려진 흥미로운 역사 연재 글>
국가(國歌)로 보는 국가 #1: 의외로 잘 모르는 3가지 『애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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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할건 인정해야 한다는건
갠적으로 가져야할 자세이지 않나 싶네요
네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바라보면 부족한 부분이 참 많죠. 하물며 미 초대 대통령이나 그 무렵 대통령들은 대부분 수많은 노예를 부린 지주들이기도 하니까요. 하물며 링컨도 노예해방과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의원매수 의혹이 높지요. 하나하나 그때로 돌아가서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하고, 남들 따라 비난하기보다는 최소한 스스로 사실을 확인해보고 비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즐거운 연말 보내세요 ^_^
^_^
@lostmine27님 곰돌이가 2.0배로 보팅해드리고 가요~! 영차~
미국 수도애 대한 역사 너무 재미있게 잘 읽고갑니다.
네 외국이 미국 본토를, 그것도 백악관을 불태운 유일무이한 역사였죠 ㅎ
일부 캐나다 사람들이 은근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는.
역설적으로 이때부터 확실히 영국과 다른 미국만의 그 무언가가 더 싹트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미국 국가의 가사는 독립의 기쁨보다는, 독립 이후 1814년 벌어진 워싱턴 근처 맥켄리 요새에서 영국에 승전한 기쁨을 주로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런 유추가 가능해 보입니다. (진정한 독립?)
6/30 국가(國歌)로 보는 국가 #2: 백악관이 불타던 그 때 태어난 『미국 국가』
물론 그렇지만 미국과 영국은 여전히 1급 혈맹(한국은 2급 동맹) 관계이죠.
사실 1814년 영국과의 전쟁의 승전의 기쁨을 노래한 것이 미국 국가의 가사지만, 그 멜로디는 미국인들이 과거 영국에서 거주할 때부터 부르던 권주가(Drinking Song) 멜로디 그대로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왜 그들이 1급 혈맹인지는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_^
미국 초기 수도 변천과 미국 국가 (노래) 에 대한 좋은 내용이네요.
지금은 미국과 영국이 더도 없는 혈맹이지만,
18세기 독립전쟁
19세기 초 영미전쟁
19세기 중반 남북 전쟁도 영국은 남부를 지원하고,
북부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다고 하고,
20세기 초반까지만해도,
영연방인 캐나다와 미국이 서로 침공하고 방어하는
전쟁을 생각하는 불편한 사이였다고 하더라고요.
아마도 2차대전에서 캐시 앤 캐리로 금받고 무기팔고,
원폭 기술과 레이다 기술 제공 받아 함께 전쟁 수행하고,
렌드 앤 리스 하면서 무기 무상 지원하고,
2차대전 함께 하면서 부터,
확실한 동맹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연말 편히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남북전쟁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혹시 안 보셨다면 한가하실 때 한 번 보셔도 좋겠네요.
미국을, 어쩌면 세계 판도를 바꾼, 단 한 장의 문서: 「스페셜오더 191」
참 박학다식하시네요.
아마 아시겠지만 며칠전 계산을 해보니 재밌는 상황이더군요^^ 덕분에 올한해 많이 배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덕담 감사드립니다.
연말이라 좀 쉬었네요.
늘 좋은 정보와 소식도 감사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지난 여름에 미동부여행을 했던지라 더 재미있게 읽었네요~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감사합니다.
동부는 언제가도 좋은 곳 같아요.
스팀잇하기전에 찍은 사진들이 많아서 올리기가 좀 그러네요.
공들인 여행기 잘보고 있답니다.
새해에도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