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國歌)로 보는 국가 #1: 의외로 잘 모르는 3가지 『애국가』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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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전 축구 승리로 간만에 뭉클한 느낌 좀 받으셨을 겁니다. 멕시코인들이 애국가를 부를 정도로 역사적 승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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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national anthem, 國歌)란 한 나라의 외교관계 및 국제행사에 없어선 안될 중요한 상징물입니다. 마음을 하나로 묶는 기능도 하고 있지요. 국기(=national flag, 國旗)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어릴때부터 관습적으로 그냥 불러온, 특별한 경우에나 조금 가슴 벅찬 느낌을 받게 되는 애국가, 우린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요? 아마 대다수 분들이 의외로 모르실 몇가지 사실 살펴보고, 관련하여 알면 유익한 내용 첨부해 보겠습니다.

<일반인의 짧은 지식을 모은 것이라, 맥락 위주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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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애국가는 시대별로 달라져 온 3개의 애국가 중 마지막 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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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최초의 애국가: 대한제국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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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국기>

고종이 더 이상 "조선"이 아닌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국가가 필요하여 만든 버전입니다.

"대한"이란, 과거 삼한(넓게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기상을 하나로 모은 큰(大) 한(韓) 나라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제국"이란, 입헌군주국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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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국가로 지정되었으며, 독일 해군 소속 음악가인 "프란츠 에케르트"가 우리 민요인 "바람이 분다" 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최근 복원한 군악대 버전으로 들어보시면, 선율상 조선시대 음악 느낌도 나고, 일반인들이 따라 부르기는 가사를 가진, 매우 어려운 노래였습니다.

가사를 볼까요? 제일 초기 버전 가사를 완역하면,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성수무강하시어
용이 해마다 물어오는 구슬을 산같이 쌓으시고
위엄과 권세를 천하에 떨치시어
오! 영원토록 복과 영화로움이
날마다 새로워지게 하소서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여기서 상제란 現 애국가의 하느님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대한"을 있게 한 단군의 아버지로 보는 설이 무난해 보입니다. 그런데, 황제를 도와달라 합니다. 대한제국은 입헌군주국을 선포하고, 고종은 스스로를 황제로 불렀지요.

여튼 이 당시 애국가의 주제는 "하느님은 고종을 혹은 우리 황제를 살피시어 그 위엄, 권세가 지속되어 나라를 발전하게 해달라"는 지극히 중앙집권적 가사였습니다. "신이시여, 우리 여왕을 구하사, 여왕이 우리에게 오래도록 군림케 하소서"라는 現 영국 국가 가사와 느낌이 비슷합니다.

일반인들은 전혀 모른채 행사에만 조금 쓰이다가, 대한제국의 힘이 다하자 가사가 바뀝니다.

「하느님은 우리나라를 도우소서,
반만년 오랜 역사 배달민족
영원히 번영하여
해달이 무궁하도록
거룩한 우리나라의 물줄기가 세차게
하느님은 우리나라를 도우소서」

"황제"대신 "우리나라"를 도우라고 바뀐것 보이시나요? "왕실의 위엄과 권세" 부분도 "반만년 역사 오랜민족"으로 대체됩니다. 즉,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국가가 사실상 없어졌지만, 애국가는 있어야겠으니 "하느님"에게 오랜 역사를 가진 배달민족 우리나라를 도와달라는 간절한 가사로 대체해서 애국가의 명맥을 유지하려 합니다.

그렇지만, 워낙에 부르기도 어렵고, 중앙집권적으로 만들어진 노래였고, 사용기간도 너무 짧아 전파가 안되었던데다가, 영국 등 몇몇 입헌군주국과 달리 국민들에게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자부심은 커녕 국가를 잃게 한 왕이 만든 국가를 부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겠죠. 곧 잊혀져 버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사실상 잊혀진 노래, 복원했다고는 하나 現 애국가와 그 가슴 울림이 같은 버전이라고 보기 힘들어 보입니다. 여튼 현재의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에서 선포했던 "대한"의 정신을 살린 민주공화국을 뜻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유래로 봤을 때, 현 애국가의 최초의 버전이라고는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 최초의 애국가를 작곡한 "에케르트"는 후일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도 작곡하게 됩니다. 최초의 "애국가"와 現 "기미가요"를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니, 놀랍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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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두번째 애국가: 임시정부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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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국기>

일제 치하가 되면서, 기존 애국가는 당연히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사실 대부분 원래 애국가란 개념이 미약했었기에 큰 상관은 없었지만,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스스로를 다독이고,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노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임시정부 시절, 現 애국가와 동일한 가사를 가진 애국가가 탄생합니다.

다소 안타까운 점은, 곡이 없던 관계로 스코틀랜드 민요인 "old long since(=오랜 옛날부터)"의 멜로디에 현재 애국가 가사를 붙여서 불렀다는 것입니다.

복원된 버전으로 들어보시면 피아노 선율이라 깔끔한데 많이 들어보신 멜로디죠?^^

스코틀랜드 민요인 "old long since"는 사실 우리가 졸업식 때 부르는 "작별(=혹은 석별의 정)"의 원곡입니다.

바로 이 가사의 노래인데, 가사도 원곡을 번역해서 만든 것입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간들 잊으리오 두터운 우리정
다시 만날 그날위해 노래를 부르네」

2절 가사도 보실까요?

「잘가시오 잘있으오 축배를 든손에
석별의 정 잊지못해 눈물만 흘리네
이자리를 이마음을 길이 간직하고
다시 만날 그날 위해 노랠 부르자」

제가 보기에는 2절 가사가 더 구구절절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가사의 심정이 나라 없는 설움을 달래는데 좋은 부분이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만날 그날 위해 노랠 부르자" 이런 부분 뭉클하죠. 전체적으로 같은 내용을 담아서인지, 원곡이나 우리나라의 "작별"이나 멜로디 자체가 뭉클함을 자아냅니다.

그렇지만, 이걸 그대로 부를수는 없었겠죠. 현재 애국가 가사를 지어 붙여서 애국가로 사용했습니다.

저번 광복절 행사에서, 여성 독립운동가셨다는 91세 할머니께서 과거 임시정부 시절 애국가를 기억하셔서 무반주로 불러주신 버전입니다.

그 옛날에 대부분의 장소에서는 아마 이렇게 반주도 없이 숨어서 혹은 깊은 곳에서 어쩌면 참 구슬프게 불렀지 않았을까 싶네요. 1919년 3.1운동 때도 이 애국가를 불렀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가, 비록 스코틀랜드 민요에다 가사를 붙인 것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진정한 애국가가 아니겠는가 하는 의견들도 일부 있더군요. 사실 여러 문제로 애국가 교체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실 임시정부에 대한 여러 이슈도 있는데다가, 현재의 애국가가 가장 오래 불려왔고, 좀 더 당당하고 웅장한 느낌도 강하니까요. 미국도 국가를 교체하자는 의견이 일부 있지만, 여론조사상 82%의 사람들이 현 국가에 대해 지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現 애국가보다도 밝고 희망적이거나 혹은 담대한 감정을 지닐 수 있도록 해주는 느낌의 노래는 많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애국가를 그때처럼 꼭 슬프게 부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 애국가를 당당히 부르며 가끔 그때의 정신도 마음에 간직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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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세번째 애국가: 대한민국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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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기>

현재의 애국가는 1935년 "안익태"가 작곡한 "한국환상곡"에 당시 애국가 가사를 붙여 만든 것입니다.
1930년 중반부터 해외에서는 사용되었으나, 국내에는 전해지지 못하다가 광복 후부터 본격적으로 불리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설립되면서 국가행사 등에 부르고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성문법상 국가로 채택하지는 않았으나, 오랜기간 관습적으로 불려왔기에 사실상 국가의 지위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미상 처리되어 있는 작사자를 놓고 말도 좀 있지만(윤치호가 짓고 안창호가 일부 개사했다는 설이 유력), 지금의 시점에서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시에도"우리가 3.1운동을 이 애국가로 치뤘는데, 그 안에 담긴 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고 합니다

애국가 가사를 한번 보죠.

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1절을 보면 대한제국 애국가의 후기버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상제)이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우리나라를 영원히 지켜줄테니, 국민들도 대한의 정신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지키고 가꾸자 이런 뜻인것 같습니다.

2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절도 거의 똑같습니다. 다만, 동해물과 백두산이라는 한반도의 대표적 상징 대신, 남산 위 소나무의 기상을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설이 있지만, 아마도 4대문 안에 있는 유일한 산인 남산, 그 사대부들의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꼿꼿한 기상을 말하지 않을까 싶네요.(현실과는 다르지만요)

3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4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3, 4절도 마찬가지 내용입니다.

제가 느끼는 애국가 가사는 국가에 충성을 다짐하는 노래치고는 참 평화롭고 포괄적인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국가는 현재의 나라를 존재하게 만든 전쟁/혁명을 묘사하거나 관련 구체적 사건에 기반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4절 동안의 가사 안에 어떤 구체적 사건, 정황도 묘사되어 있지 않은 형태의 국가는 많지 않습니다.

참 두리뭉실하고 포괄적이라 평화롭다는 느낌을 주는 한편, 조금은 단조롭다는 느낌도 갖게 됩니다. 뭔가 가사를 부르면서 차분히 마음을 가라 앉히고 마음을 되새기는 가사랄까요? 들으면 막 전쟁이나 혁명에 뛰어들어야 할 것 같은 그런 충동을 주는 여러 국가의 국가들에 비해서는 개인적으로 다소 차분한 가사와 멜로디 같습니다. 한민족이 아무래도 사계절과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땅에서 대체로 평화롭게, 먼저 전쟁을 시도하지도 않고 살아와서일까요. 이 부분은 개인적 생각일 뿐입니다.

포괄적인만큼 보편적이기도 합니다. 누가 봐도 비슷하게 쉽게 해석되고, 나름의 전달력이 강한 면도 있어 보입니다. 자국 국가 가사를 외우기도 어려운 국가도 많습니다.간단하고 명확한 가사, 단순 반복 후렴구로 짧게 구성된 것은 보편성 측면에서는 장점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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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 국가에 얽힌 흥미로운 역사들, 그 중 몇몇은 스팀잇과도 연관지어볼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를 연재하기 앞서, 우리의 애국가를 제 마음대로 먼저 정리해 보았습니다. 구체적 사건 상황이 담긴 국가들은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상황을 담은 애국가처럼 이렇게 유래와 흐름보다는, 그 상황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더 재미있게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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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고, 기억하고 싶지 않는 역사이지만, 그것이기에 알아야만 하는 애절한 애국가 파노라마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담담하게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하루 시작하세요^^

어렴풋이 기억하던 내용이 확실해졌습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같은 축제에서 다른나라 국가와 비교해봐도 전혀 밀리지 않는 애국가인것 같습니다~^^

네 곡 자체는 깔끔하고 웅장할 때도 있고 가사도 보편 포괄적이어서 무난한 것 같습니다. 다만, 뭔가 노래 부를때 떠올릴만한 극적인 상황이 없고, 티비에 애국가 나올때 나오는 동영상만 떠오르는 것이 개인적으로 살짝 아쉬울 때가 있네요. 아무래도 "대한"이라는 약간은 추상적인 개념을 추구하는 포괄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가사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애국가 옛버전과 기미가요의 작곡가가 같다는데 놀랐습니다ㅎㅎ

저도 놀랐습니다. 그래서인가 그 두 곡 다 어렵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어우..첫번째 버전이..멋있기는 한데 말씀처럼 어렵기도 어렵고
이거 너무 근엄해서 국가로 쓴다하면 좀 부담되네요.

네. 탈중앙화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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