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본이 한국에 무려 5만 구원병을 보냈던 대규모 전쟁이 있다? "백제부흥운동과 백강전투"
매우 오래전 역사이지만, 일본이 한국에 무려 약 5만의 구원병을 보냈던 적이 있다면 믿으시겠나요?
저도 과거 드라마 등을 통해 대충 알던 사실을 이번에 우연히 공부해보고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는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부분이라 잘 몰랐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학계에서 자국의 입장으로 왜곡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기에 팩트 위주로 정리해봤습니다.
① 백제의 멸망(660년), 부흥운동 확산(660~663년)
아시다시피 백제는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의자왕"과 왕족들이 당나라로 잡혀가게 되면서 멸망했습니다. 모든 좌평 관직을 아들들에게만 주며 왕권을 강화했던 "의자왕", 5천 결사대로 신라에 맞섰던 "계백 장군", "의자왕"의 전후처리도 직접 할 수 없었던 신라의 "무열왕" 등의 스토리는 영화 "황산벌" 등을 통해서도 그려지며, 익히들 아실텐데요.
나당연합군의 기습으로 백제의 수도권이 점령되며 멸망했지만, 아직 모든 영토가 넘어간 상태는 아니었기에 백제 유민들이 다시 백제를 살려보겠다며 저항 운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백제의 좌평 출신 "복신" 장군이 중심이 되어 남쪽의 "주류성"을 근거지로 빠르게 세를 규합해 나가는 한편, 일본(당시 이름으로는 야마토 왕조)에 약 30년간 파견되어 거주하고 있던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을 백제로 불러들여 왕으로 추대하고 백제부흥운동의 명분을 높입니다.
"부여풍"이 일본에 간 이유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는 질(質, 볼모)로 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하니, 최소한 백제와 당시 일본간의 우호관계를 위해서 파견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렇게 의자왕의 아들로 일본에 거주하던 "부여풍", 부흥운동을 일으킨 "복신"장군, 승려 "도침" 등은 백제 이남의 영토 대부분을 회복하고 나당연합군이 주둔한 사비성에 위기감을 줄 정도로 세력이 커지게 됩니다.
당시 북쪽에서도 당나라와 맞서고 있던 고구려는 남쪽에서 나당연합군이 공격해 올 것을 우려하여 백제가 살아나는 것이 고구려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근거, 백제 부흥군에 식량 등을 우회 지원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② 일본의 대규모 구원병 파견
"복신" 장군의 원병 요청을 받은 일본은 처음에는 주저하다가, 결국 백제부흥군에 대규모 원군을 파병하게 됩니다.
과연 일본이 무엇 때문에 원병을 출정했는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은 국내적으로는 친백제파와 친신라파로 싸웠던 데다가, 국제적으로는 당나라와 한반도의 삼한(신라/백제/고구려) 등이 얽혀 복잡하게 다투던 때라 전략적 판단이 필요했을 겁니다.
당시 고구려가 당을 맞아 선전하고 있었고, 지리적 이유 등으로 당나라와는 교류가 어려웠으며, 백제와 우호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던 점 등 다양한 점이 검토되었을 겁니다.
분명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추후 결과론적으로는 판단 미스가 될지언정, 국내외적 역학 관계와 이해 관계를 고려하여 복잡한 전략적 판단을 하였을 겁니다.
당시 일본왕 "사이메이"와 대를 이은 "나카노오에" 입장에서는 백제를 살려내는 것이 당시 일본의 정치적, 무역적 이익 등에 부합한다고 판단했겠지요.
기왕 도와주는 거 3차에 걸쳐 대군과 물자를 지원하며 확실하게 밀어주게 됩니다.
- 1차파병(661년): 선발대로 병사 1만
- 2차파병(662년): 주력군 병사 2만 7천
- 3차파병(663년): 병사 1만
당시 일본 야마토 왕조의 상황과 당시 인구, 임진왜란(1592년) 때의 침공 군사 규모 등과 미루어 보면 이 시기에 거의 5만 구원병을 보냈다는 것은 국력을 쏟아부은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5만에 가까운 병사 이외에도 약 1,000여 척의 선박과 화살, 곡식, 피륙 등을 대규모로 지원하여 백제 부흥군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③ 부흥군의 내부 분열
663년 8월, 부흥군을 이끌었던 "부여풍", "복신", 도침"사이에 분열이 일어나 "복신"은 "도침"을 죽이고, "부여풍"은 자신을 죽이려던 "복신"을 역이용해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부흥 운동 와중에도 권력 암투는 있게 마련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내부 분열은 곧 파멸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이후 "부여풍"은 고구려와 일본에 또 원병을 요청하기에 이릅니다. 이미 5만에 가까운 구원병을 보내준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면, 3년여의 부흥운동 와중에 백제군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으며, 왜군도 일정 정도 피해가 있었음을 뜻합니다.
④ 분열을 틈타 나당연합군의 대규모 공격, 백강 전투 발발
부흥군 지도자들이 분열하고 부흥군이 지치고 규모가 축소된 상황에서 "부여풍"이 고구려와 일본에 추가파병을 요청하자, 추가 구원병이 오기 전에 부흥군을 진압하자는 의견이 나당연합군 쪽에서 대두됩니다.
나당연합군은 빠르게 군사를 증원하여 당시 부흥군의 근거지였던 "주류성"근처의 "백강(=현재 금강 하구, 기벌포 근처)"으로는 당의 수군이 진격했고, 신라의 "문무왕"과 당의 "유인원" 등의 육군 또한 "주류성"으로 공격하며 수륙협공을 하게 됩니다.
이때 "백강"의 백제부흥군 규모는 일본의 구원병 약 2.7만명, 함선 1,000여 척에다가 얼마인지 모를 백제군이 합쳐 대규모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당의 수군은 170여 척에 불과했고 병력은 1.7만명으로 더 적었습니다. 신라군의 규모는 명확치 않다고 합니다.
여튼 이렇게 대규모 병력이 집결한 역사적인 "백강전투"는 불과 이틀만에 싱겁게 막을 내리는데요.(663년 8월 27~28일)
함선의 능력이 훨씬 앞서있던 나당연합군에게 일본 수군은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백강 전투에서 일본 함선 1,000여 척 중 400여 척이 파괴되고 2.7만명의 구원병 중 1만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나당연합군도 적지 않은 피햬를 입었지만, 백제 부흥군 피해에 비하면 적었다고 합니다.
과거 일본 혹은 왜의 수군 전투 방식은 배끼리 부딪힌 뒤 상대 배에 뛰어 들어가 칼로 백병전을 벌이는 방식을 즐겼습니다. 이것은 함선이 튼튼하고 포가 발달한 국가의 수군을 만나면 싸워보기도 전에 궤멸할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한데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등에게 쉽게 패배한 것도 이런 부분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이 당시에도 일본 수군은 기동력이 좋은 작은 함선이었기에 1,000여 척으로 규모는 많아보여도 불과 170여 척의 크고 튼튼한 배를 가진 당나라 수군에게 반파되고 말았지요.
이때 당나라 수군을 지휘하던 장수 중에는 항복했던 "의자왕"의 또다른 아들 "부여융"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의자왕"의 아들 중 두명이 한쪽은 당군으로, 한쪽은 백제 부흥군으로 싸운 셈입니다. 실제로 "의자왕"은 당나라에서 살다가 죽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⑤ 백강 전투의 대패, 백제 부흥군 완전 소멸
병력 규모상은 비슷하거나 앞서 있었을 수도 있는 백제부흥군과 일본 구원병은 "백강 전투"의 대패로 의지가 크게 꺾였습니다.
"부여풍"은 도망하여 고구려로 망명했다고 전해지며, 일본 구원병을 이끌었던 장수들은 전사하거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후 잔존 일본 구원병들과 망명을 원하는 백제 유민들은 함께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간신히 돌아갔습니다.
이후 "주류성"도 바로 함락되면서 백제 부흥군은 소멸되었습니다.
⑥ 백제의 완전한 멸망 이후, 많은 성을 축조한 일본
백제의 부흥을 도와 대규모 원군을 파병했던 일본은 나당연합군이 일본을 공격할 것을 우려, 현재 후쿠오카~오사카 지역 사이에 수많은 성들을 축조했습니다. 이런 성터 유적들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나당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으로는 어느 나라도 공격해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당나라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남쪽이 불안했던 통일 신라는 일본에 사신을 보내 수교를 했습니다. 백제, 고구려, 통일신라와의 일전을 벌이면서 국력이 쇠퇴한 당나라 역시 일본과 적을 지지 않았습니다.
결과론적으로는 당시 일본의 백제 부흥군 지원은 결국 성공도 못하고 국력손실로 정권의 약화를 불렀다는 점 등에서 판단 미스였을 수도 있겠지만, 일본 본토에서 싸우지 않아 내부 피해는 적었다는 점, 나름 대규모 군사를 파병하여 국력을 보임으로써 이후 통일신라나 당나라 역시 일본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는 점 등에서는 절반의 성공인 측면도 있어 보이네요.
아주 오래전 과거 이야기이지만, 일본이 한국에 정확하게는 백제에 구원병을 약 5만이나 파병했었다는 점, "의자왕"의 아들 중 두 명이 한쪽은 당나라 수군의 장수로, 한쪽은 백제 부흥군의 수장으로써 싸웠었다는 점도 주목할만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 일반인이 잠시 살펴 본 것을 정리한 글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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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진짜로 처음 들어보는 역사이네요.
네 엄밀하게는 과거 661~663년 당시 일본 왕조가 백제부흥군을 도운 것이라 한국을 도왔다는 표현은 조금 과장일수도 있긴 합니다만 있었던 일임은 틀림없어 보이네요.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대한민국 또한, 다소 편향된 역사 교육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되네요.
혹은, 패자 백제의 역사라 잊혀졌는지도.
+디클
네 우연히 예전 사극을 보다가 찾아보게 되었는데, 흥미로운 내용이라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조심스런 부분이긴 하지만, 휩쓸려 평가하기보다는 항상 사실을 직접 이해하고 생각해보는 노력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편한 시간 보내세요.
곰돌이가 @lostmine27님의 소중한 댓글에 $0.016을 보팅해서 $0.007을 살려드리고 가요. 곰돌이가 지금까지 총 973번 $14.403을 보팅해서 $12.666을 구했습니다. @gomdory 곰도뤼~
디클릭에 대해서 한 번 분석해주시면 ㅇ_ㅇ 좋겠습니다. 궁금한 점이 많아서요. 가능하시다면요.
전 그냥 최근 글에만 달고 있을 뿐 잘 모릅니다.
잘 설명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 것 같으니, 그런 글들을 참고하시면 좋겠네요.
광고가 달렸을 경우를 가정한 가치에 대해서는 디클릭 생기기 전에 분석한 글이 있긴 합니다만...
감사합니다. 편한 시간 보내세요^^
아 그렇군요. 디클릭에 대해서 알고싶은 마음에 얘기해봤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역사에 관심이 있어서 매우 흥미롭게 잘 보았습니다 정치적 이유, 무역적 이익에 부합등 이유가 있겠지만 일본이 도와준 부분이 굉장히 흥미롭네요ㅎㅎ
네 당시 일본 덴노가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여러 설들이 있기에 찾아보시면 흥미로우실 것 같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역시 위기 때 내부분열은 자멸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합심해서 위기를 잘 넘겼더라면 좋았을건데요..ㅠ
네 공감합니다. 보통 큰 분열은 위기로 이어지기 마련이죠. 물론 이 전투에서 백제부흥군이 이겼다고 해서 역사의 물줄기가 크게 바꼈을런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네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몇일전 테레비에서 백제멸망관련 다큐를 살짝봤는데요. 거기에도 이런 팩트가 나오는지 다시 봐야겠네용. 역사공부 잘 했습니다.
네 660년 멸망 이후 생겨난 부흥운동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므로 보신 다큐에서 다루고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혹자는 관점에 따라 부흥운동 소멸시점을 최종 멸망시점으로 보기도 하더군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boddhistats님이 lostmine27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boddhistats님의 DCLICK - TOP 200 effective curators for the last week (2018.10.15-2018.10.21)
모두 첨 들어본 이야기입니다. 감사해요^^ 한자한자 끝까지 읽었으니 풀봇 !! ㅎㅎ
raah님이 처음 보신 이야기라면, 정말 많이들 모를 것 같네요.
예전 kbs사극 "대왕의 꿈"에 부흥군의 "부여풍"이 왜군 파병을 요청하고 왜군만 오면 이길 수 있다고 기대하는 부분이 나와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후쿠오카~오사카 라인 쪽은 백제와 신라 느낌의 유적도 많은 것 같더라구요
야요이 시대 유적만 해도 많이 비슷한 느낌이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와.. 이과생이란 핑계로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알고는 있었습니다만.. 정말 처음 알게된 기록들이군요. 감사합니다.
네 유익했다니 감사합니다.
편한 시간 보내세요.
steamsteem님이 lostmine27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steamsteem님의 [스팀蟲: smt, dApp ] @ned 의 Steemit 아닌, 딴 살림, 딴 인터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