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國歌)로 보는 국가 #4: 한국과도 인연 깊은, 비운의 『대만(=중화민국) 국가』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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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국가. 아이들이 불러 가사가 잘 들리는 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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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중국/일본인들의 특징들이 혼재되어 있어, 대체로 평화롭고 친절한 곳입니다. 면적은 경상도보다 조금 크고, 인구는 2,350만명 정도이며, 인당 GDP는 약 2.6만불이나 구매력기준으로는 한국보다 높게 나올 정도로 물가가 저렴하여 경제활력은 꽤 떨어졌지만 나름 만족스럽게 사는 편인 국가입니다.

대만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의 사례처럼, 국가/국기 관련해서는 참 비운의 이슈가 많은 곳이죠.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과 인연이 깊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국가/국기 관련 개요 살펴보고, 관련 정세 조금 적어볼께요.

<일반인의 개인적 정리글이므로, 맥락 위주로 보시는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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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국가는 과거 "중화민국" 정체성 강조


① 정식 국가의 핵심, "삼민(三民)주의: 민족, 민권, 민생"

『삼민주의는 우리들이 따를 길
이로써 민국을 세우고, 나아가 대동을 이룩하세.
아, 그대들이여, 민족을 위해 선봉에 서라
밤낮으로 게으르지 말고, (삼민)주의를 따르라
맹세코 근면 용감하고, 반드시 정직하고 충실하라
한 마음 한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관철하라.』

가사도 간단하고, 애국가와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느낌을 가지고 쓰여져서인지 좀 비슷한 느낌이 드네요.

가사는 중국 최초의 공화국을 만든 "쑨원(=손문)"이 광저우 군관학교에서 연설한 내용을 간결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쑨원"이 신해혁명 후 1912년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라는 공화국을 만들며 추구하고자 했던 "삼민(三民)주의"는 과거 중화민국(=현 대만) 건국이념이자 뿌리로써 100년 이상이 흐른 아직까지도 변형되면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② 대만의 삼민주의, 중국의 신삼민주의

신기한 것은 삼민주의란 "민족, 민권, 민생"을 의미하는데, (쑨원이 무얼 의미했는지보다도) 대만과 중국 각자의 입맛에 맞게 해석 발전시켜왔다는 것입니다. 쑨원 초기에는 청나라라는 왕정과 난립한 군벌들을 무너뜨리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목적이었습니다. 그것을 점차 자유민주주의 쪽으로 해석을 해가고 있는 대만과 달리, 중국(=중화인민공화국, People's democratic of China)입장에서 민생은 서민들의 삶이므로 경작인의 토지는 경작인 소유여야 한다는 관점에서, 토지의 국가소유 명분으로 사용하고 있지요.

③ 민진당 지지자나 일부 사람들은 제창할 때 다소 꺼리기도.

"삼민주의"를 노래한 이 국가는 사실상 중화민국 건국시부터 대만에서도 수십년 간 장기집권해 온 국민당의 노래나 다름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삼민주의"를 싫어하거나, 대만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사람들은 일부 꺼리거나 제창 중 피하는 부분도 조금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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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대만 국가, 국기


①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버리기 힘든 대만

아시다시피, 대만은 과거 국공내전에서 장개석(=장제스)의 국민당이 모택통의 공산당에 밀려 내려와서 만들어진 국가입니다. 이들은 외지에서 대만섬에 왔기 때문에 외성인이라고도 하며 그 비중은 인구의 14%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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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개석(=장제스)>

신해혁명을 통해 일궈낸 정통성을 가진 공화국 정부, 세계대전의 전승국이자 실질적으로 항일투쟁의 선봉에 서서 중국을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 대만의 기득권층이 되었죠. 물론 그 와중에 부패로 욕을 먹은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쟁의 와중에도 미리미리 수많은 문화재들을 대만섬으로 챙겨간 것을 보면, 대단한 정성임에는 틀림없어 보이네요. 작은 영토지만, 박물관만큼은 세계 4대 박물관으로 꼽히기도 할 정도로 유물이 약 70만개로 많아서 그 큰 박물관 전시물들을 3개월마다 교체하는데도 다 보려면 8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② 중국과의 파워게임에 밀린 대만, 수교국 거의 없어

소위 냉전 시대에는 미국이 대만을 인정했고, 전승국 지위도 대만이 승계하면서 나름 영향력이 있었지만, 중국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국제사회는 대부분 그 파워에 냉정하게도 대만과 등을 돌리게 되는데요.

1971년 유엔 투표에서 대만을 지지하는 미국의 안이 부결되고, 중국을 지지하는 알바니아의 안이 통과되기에 이릅니다. 이미 그 전부터 주요국들이 중국과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대만은 스스로 유엔을 탈퇴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제 발로 걸어나오게 됩니다. 중화민국이라는 정통성은 국가정체성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쉽게 버리기 힘들었겠죠. 수교국은 점차 감소하고, 한국도 91년 단교하면서 영향력 있는 거의 모든 국가와 수교관계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도 대만도 경제력이 좋아지자, 대부분 국가가 어느정도 무역을 유지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일반인들 간에는 정식 국가나 다름없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인구 2,350만의 국가가 작은 건 절대 아닐 겁니다. 크로아티아 인구가 400만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하네요. 워낙 중국의 파워와 압력이 거센 것이겠죠.

③ 국제대회에서는 다른 국가. 국기를 주로 사용

중화민국 정통성을 버리기는 어렵고,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이 그 이름을 못 쓰게 하자 "중화 타이페이"라는 이름을 직접 짓습니다.

"중화 타이페이"란 "Chinese Taipei"인데, China를 쓰지 않음으로써 중국의 지역 자치구로 보이는 것을 차단하면서도 Chinese라고 하여 중국에서 온 정통성은 알리는, 묘수의 이름이지요.

생각해보면 대만도 중국도 윈윈하는 이름입니다. 타이페이는 수도로써 붙인 것이구요.

유엔 탈퇴 이후, 올림픽 등 국제대회도 자의반, 타의반 출전을 못하다가 대부분 1984년부터 다시 참가하게 되는데요. 88 서울올림픽에서는 한글로 "차이니스 타이페이"라고 정확히 기재해주어 대만인들이 좋아했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대만은 대회에서 "삼민주의"를 노래한 정식 국가 대신 "국기가"를 부릅니다.


<중화민국 국기가>

『산과 강은 아름답고 자원은 풍부하다네.
염제와 황제 때부터 동아시아의 영웅이라고 하였다네.
자포자기하지 말고 옛 관습에 얽매이지 말자.
우리 민족(=중화민족)을 빛내고 대동(=세계 평화)을 앞당기자.
나라를 일으키는 것은 어려우니 선열들을 생각하라.
나라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으니 얕은 꾀로 행동하지 말라.
한 마음 한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자, 청천백일만지홍!
한 마음 한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자, 청천백일만지홍!』

가사를 보시면, 중화민국 혹은 삼민주의 같이 민감한 부분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우리 애국가랑 비슷한 가사 같네요.

그리고 국기도 "중화올림픽위원회기"라는 것을 만들어 별도로 계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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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식 국기(좌)", "중화올림픽위원회기(우)">

오른쪽 기를 들고 입장하는 것을 종종 보셨을 겁니다. 국화인 "매화"모양 안에 정식 국기의 상징인 모양과 색상들은 작게나마 다 넣고, 오륜기를 함께 넣어서 최소한의 체면은 차립니다만, 자국 국기를 들지 못하는 부분은 제 3자 입장에서 비운을 느끼게 하네요. 최근 "쯔위"사건은 대만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민진당 지지도를 높이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④ 대만 청년층, "중국인" 아니라 "대만인"이라는 인식 확산 중

매해 대학 입학생들에게 조사하는 정체성 서베이에서 최근 거의 60%가 대만인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2~30%로 훨씬 낮았었는데요. 이들은 전쟁의 기억이 없이 대만에서 자라난 세대이고, 최근 "쯔위"사건 등에서 보듯 중국을 안 좋아하는 심리도 강한 것 같습니다. 작고 힘이 좀 약하더라도 살만한 국가인 만큼 이제는 분리해서 "대만인"으로 살고, "강한 대만"이 되자는 것이죠.

하지만 한계가 있는 만큼 아래처럼 여러 명분을 들어 다른 의미로서 "중국인"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지닌 대만은 일시적으로 밀려내려왔지만, 현 중국은 불법 찬탈 정권이고 결국은 수복해야할 드넓은 우리 영토",

"현실적으로 이제 수복은 불가하니, 정통성/수복 문제는 상징적 의미로 양보하자. 하지만, 좁은 대만섬으로는 국제사회에서 한계가 있으니, 적어도 국가 대 국가 개념으로 대등하게 통일해서 강해져야 될 필요가 있다. 물론, 그전에 현 중국이 민주화되는 것이 통합을 위한 선결과제"

이런 의견이 주류였고, 아직도 청년층을 제외하고는 많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분리독립 공약을 내건 現 차이잉원 총리도 과거에 "나는 중국인, 중국식으로 배우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어 이슈가 되기도 했었다고 하네요.

여튼 청년층 위주로 "대만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견해가 커져가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최근 차이잉원 총리를 비롯해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민진당 출신 후보들이 수시로 총리에 당선되고 있기도 하지요.

반면, 그런 공약으로 당선된 대만 정부가 "대만 독립"과 "강한 대만"을 더 크게 외칠수록, 중국도"하나의 중국"을 국제사회에 더 크게 주장하게 되어 오히려 더욱 더 대만의 고립을 자처하는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점점 더 수교국이 줄어 영향력 있는 국가는 전무한 실정이지요.

교황의 국가인 "바티칸시티" 1곳만 수교국으로 남을거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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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화민국과 한국과의 큰 인연


① 최고등급의 건국훈장(=독립유공자)인 "대한민국장" 최초 30인 중 5인이 중화민국인

https://ko.wikipedia.org/wiki/%EA%B1%B4%EA%B5%AD%ED%9B%88%EC%9E%A5_%EB%8C%80%ED%95%9C%EB%AF%BC%EA%B5%AD%EC%9E%A5_%EC%88%98%ED%9B%88%EC%9E%90_%EB%AA%A9%EB%A1%9D

위키백과에 의하면, 독립유공자 훈장 중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은 불과 59인에 불과하고 그 중 몇몇은 취소되기도 했는데, 최초로 수여될 당시에는 30인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들 중 5인이 중화민국 사람입니다. 누구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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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3번 장개석, 22번 송미령(장개석의 부인), 23번 진과부, 24번 쑨원(=손문), 25번 진기미 이렇게 5인입니다. 24번 쑨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나머지 4명은 대한민국 독립 지원을 이유로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따로 다뤄야 할 정도로 방대한 이야기입니다만, 최초의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30인 중 5명이 초기의 중화민국 사람이라는 것은 상당한 비중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찍 사망한 쑨원을 제외하면 모두가 현 대만(=중화민국) 쪽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중 무려 3번에 이름을 올린 "장개석"은 승전국 지위로 모인 이집트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을 언젠가 독립시킬 것"을 결의하였던 사람입니다. 당시 모인 3인방은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총리 그리고 중화민국 국민당의 "장개석" 총통 이었을 정도니까 이때만 해도 "장개석"의 영향력이 꽤 높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뭐 우리를 좋아해서 도왔다기보다는 다른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3번까지 올려준 것은 신기하네요.


② 아시아에서 가장 늦게까지 수교 관계를 유지

6.25전쟁 시 중공군 참전, 북한과의 대치 등에 기인한 바 컸겠지만, 과거 저런 측면도 조금은 작용했을까요? 한국은 대만과의 수교관계를 아시아에서 가장 늦게 단절하는 국가가 되며, 최소한의 예의는 갖춘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소위 "혐한"시위가 일어나고는 했지만, 그것은 국제사회 모두가 대만과 단교하고 그나마 믿던 한국마저 떨어져나간 아쉬움에 생긴 극히 일부의 움직임이었을 것으로 생각하며, 대다수 일반인들은 몇 번의 방문경험에 불과하나, 한국인들에게 대체로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대만 섬 자체가 본토 중심지와 매우 멀어 국가 개념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데다가, 대체로 청나라 말기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으며, 대만 본성인들과 원주민들 상당수는 장개석과 외성인들이 대만에 들어오기 50여년 전부터 일본의 지배를 받고 살았었지요.(※ 1895년 청일전쟁 시 청이 패배함에 따른 시모노새키 조약으로 대한제국보다 먼저 식민지가 됨)

거기다가 14%비중에 불과한 외성인들이 들어와서는 86%를 차지하는 본성인(84%)/원주민(2%)을 대상으로 초장기 집권하다보니, 독재와 학살 등 부조리도 일부 있었기에, 오히려 반일 감정은 우리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꽤 적은 편으로 압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인들 특유의 친절함을 어느 정도 습득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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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날이 더워 대만의 망고빙수가 그리워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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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게 되었네요.
전 대만도 우리나라랑 거의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경제력이나 문화 같은 것들이..

네 여러모로 그런 느낌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좀 더 수출 대기업이 많고 대만은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자영업이 많죠. 그래서 웬만하면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고 1%대에서 유지하는 듯 합니다. 우리가 4%이상할때도 여긴 이미 1%대였던 기억이에요. 우리도 뭐 요샌 1%대긴 하죠. 일장일단 있지만, 그만큼 활력은 떨어져간다는 반증 같아요. 감사합니다^^

매우 잘 보았습니다. 예전에 중국 친구와 대만 문제로 나름 격렬하게(?) 의견을 주고 받았적 기억이 나네요^^

네 좀 더 상세히 알려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문가도 아니고, 잠깐 짬내서 정리한다는게 완성도 측면에서는 쉽지 않은 부분이네요. 공부 차원이지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 같은 경우 워낙 오래전 일이라서요^^ 제가 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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