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매직스쿨 다이어리] "까칠남" 선생님과 "소심녀" 신입생의 리얼 대화편
오늘 낮에 있었던 음성지원 대화록. 신입생의 이름은 당연히 가명입니다.
혜민: 쌤~ 질문 있는데 들어가도 될까요?
헤르메스: 응... 들어와. 거기 앉어.
혜민: 네, 쌤, 고맙습니다. 음... 쌤이 아까 철학시간에 데모크리토스에 대해 설명하신 부분 있잖아요. 그게 잘 이해가 안 되서요.
헤르메스: 응... 그래서?
혜민: 변화, 생성, 소멸에 대해 설명하신 부분이었는데...
헤르메스: 으응...?
혜민: 응... 솔직히... 파르메니데스에 대해서 설명하신 부분부터 제대로 이해가 안 됐어요.
헤르메스: 응... 그랬는데...?
혜민: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사실 그 대목부터 이해가 안 된 거 같아요.
헤르메스: 음...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다...에서 이해 안 될 게 뭐가 있을까? 혜민이는 혜민이, 나는 나...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데.
혜민: 아니, 그건 너무 당연한데 암튼... 잘 모르겠어요.
헤르메스: 그래, 좋아. 그럴 수 있지. 그래서...?
혜민: 그래서... 잘 모르겠어서 질문하러 왔어요.
헤르메스: 그래 좋아, 질문해.
혜민: 지금 질문하고 있는 건데....
헤르메스: 으응? 뭐라구...?
혜민: 수업 시간에 말씀해 주신 내용이 이해가 잘 안되서, 그래서 쌤이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질문하라고 하셔서...
헤르메스: 그치, 그러니까 잘 했어. 그러니까 어서 질문을 해.
혜민: 그래서... 어... 지금 질문하고 있는 건데...요...
헤르메스: 어? 그래? 그런데 뭐가 질문이지? "잘 모르겠어요." "이해가 잘 안 되서요."를 질문이라고 하지는 않을 테고...
혜민: 어? 그런가요?
헤르메스: 응? 그렇지 않나?
혜민: 그렇네요.
헤르메스: 혜민?
혜민: 네?
헤르메스: 너, 멍청이냐?
혜민: 네?
헤르메스: ㅋㅋ 놀래긴... 쌤이 정의한 거 잊었어? 쌤의 정의에 따르면 멍청이란?
혜민: 아아~ "지혜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
헤르메스: ㅋㅋㅋ 알고 있네. 자, 그럼 쌤의 정의에 따르면 혜민이는 멍청이인가?
혜민: 으음... 쫌 그런 듯? ㅋ
헤르메스: ㅎㅎ 왜 그렇다고 생각하지?
혜민: 자꾸 모른다고만 하고 이해 안된다고만 하니까...?
헤르메스: 글쎄, 맞는 듯도 하지만 정확치는 않은 듯...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건 좋은 거야. 소크라테스 설명할 때 말했었지?
혜민: 무지의... 자각?
헤르메스: 그치...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건 좋은 거야. 그런데 왜 혜민이는 스스로 쫌~ 그런 듯하다고, 말하자면 쫌~ 멍청이 같다고 하는 걸까?
혜민: 글쎄요...
헤르메스: '글쎄요'는 적절한 대답이 아닌데...
혜민: 으음... 질문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헤르메스: '제대로' 한다는 건 무슨 의미지? 혜민이는 뭘 ‘제대로’ 하지 않은 걸까?
혜민: '모르겠어요'는 물음표로 끝나지 않으니까? 쌤이 항상 물음표를 던지라고 하셨어요.
헤르메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물음표를 던져봐. 질문을 하러 왔다고 했으니 하고 가야지...?
혜민: 네... 알겠어요. 그런데요, 쌤 갑자기 다른 질문이 생겼는데 해도 돼요?
헤르메스: 비겁하게 딴 길로 새는 거냐? ㅋ
혜민: 어? 하면 안돼요?
헤르메스: 안 될 건 없지. 딴 길로 새더라도 돌아오기만 한다면...ㅋㅋ 무슨 질문인데?
혜민: 지금 막 깨달은 건데... 제가 수업 시간에 수업 내용을 잘 이해 못하는 건...
헤르메스: 근데, 잠깐... 이쯤에서 내가 하나만 질문해도 될까?
혜민: 네, 그럼요.
헤르메스: 정말 이해 못했어? 이해 안 되면 말하라고, 질문하라고 틈틈이 말했는데 그때는 왜 이야기하지 않았지?
혜민: 아아~ 그건요. 수업 시간엔 다 잘 이해가 됐거든요. 그래서...
헤르메스: 거짓말.
혜민: 네?
헤르메스: 아까 2교시 때 한 내용이 그때는 이해가 다 됐는데 지금은 모르겠다고? 에이~ 그건 거짓말이지. 아님, 혜민이는 진짜 멍청이인거? ㅎㅎ 아니, 그새 그걸 다 까먹었다면 멍청인 거지~
혜민: 아니, 쌤. 그게 그러니까... 제 질문이 그거라니까요. 수업 시간에는 잘 이해됐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모르겠다는 건, 제가 제대로 이해 안 한 거잖아요.
헤르메스: 오호~ 이제 좀 똑똑해지려고 그러네~ 혜민이가 수학을 어려워하는 것도 아마 그 때문일걸? 아픈 델 건드렸나? ㅋ
혜민: 아뇨... ㅠㅠ 그러니까... 쌤 말씀이 맞는 거 같아서요. 쌤이랑 눈 안 맞추고... 아는지 모르는지 쌤이 확인시켜 주실 때 대답 잘 안하고... 그러니까 제 나름대로 해석해버리고는 확인도 않고 스스로 맞다고 생각하고.,,
헤르메스: 으흠... 갑자기 확 똑똑해지는 걸? ㅋㅋ
혜민: 아니... 쌤... 그게 저한텐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일반 학교 다닐 땐 선생님이랑 눈 맞추는 게 뭐랄까 무섭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헤르메스: 아니, 또 그 변명이냐? 일반학교 선생님들은 널 잡아먹는대니? ㅋㅋ
혜민: 아니, 그게 아니라... 선생님이랑 눈 맞추고 대답 크게 하면 다른 아이들 눈치가 보여서... 저더러 나댄다고 할까봐.
헤르메스: 거 참, 지난 번에도 그러더니... 거기선 그랬다 치자. 우리 학교는 안 그렇잖아. 언니 오빠들 하는 거 안 보여? 여긴 나대는 애들 천지인 거네... 아님, 걔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는 건가? ㅋㅋ
혜민: 아뇨. 만만하긴요. 쌤이 지난 번 상담 때 잘 했든 잘못 했든 쌤 눈 똑바로 보고 말하라고 할 때 좀 무서웠어요.
헤르메스: 뜬금없이 뭔 소리야? 글고, 무섭다는 애가 점심시간에 뜬금없이 나한테 그런 수준 높은... 이거 반어법이다~ 아재 개그를 던지고 가냐? 하도 어이가 없어서 뭐랬는지 기억도 안나네...
혜민: 아니, 그러니까 쌤이 무섭다는 뜻이 아니라 선생님 눈을 보고 말하면 왠지 제가 생각하는 모든 걸 알고 계시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헤르메스: 그건 사실이지. 내가 모르는게 어딨어? ㅋㅋ 아니면, 나한테 뭐 찔리는 게 있나부지...
혜민: 아이, 참... 아니요. 그게 아니라 쌤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제 뭔가... 알겠다구요. 그런데 저... 요즘은 그래도 어색해도 앞 자리에 앉아서 선생님이랑 눈 맞추려고 노력은 해요.
헤르메스: 그건 인정해. 좀 부담스럽지만...ㅋㅋ 그래서, 칭찬해 달라고? 근데 그것도 질문은 아니지 않아?
혜민: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렇게 조금씩 노력하면, 쌤 말씀처럼 생활에서부터 제 습관 바꾸려고 노력하면 저도 선생님처럼, 똑똑한 언니 오빠들처럼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헤르메스: 아니, 아직 멀었다.
혜민: 네?
헤르메스: 선생님처럼 된다는 말이 일단 부담스럽구요, 언니 오빠들이 그리 똑똑한 것도 아니구요. 혜민이가 나나 언니 오빠들처럼 될 이유도 없구요. 게다가 넌 멍청해.
혜민: 네?
헤르메스: 지금 너는 지혜를 추구하는 게, 알려고 하는 게 아니라 누구처럼 되려고 하는 거니까. 멍청이 맞네...
혜민: 어, 그러네요.
헤르메스: 오호~ 인정하는 거? 그럼 질문 다시 해 봐.
혜민: 으음... 그러니까, 쌤 말씀대로 일상생활에서 상대방이 말하려는 의도부터 정확히 알려고 하고, 그러니까 정확히 소통하려고 하고, 확실하지 않은 건 확인하고, 쌤이 말한 생각하는 근육 키우는 연습하면, 그게 뭐든,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젠가는 알게 될까요?
헤르메스: 응.
혜민: 아... 네에...
헤르메스: 대답이 왜 그래? 왜? 내 대답이 너무 짧아서? 허무해?
혜민: 네? 아니, 그게... 네에...
헤르메스: 아직 멀었네...
혜민: 으응...?
헤르메스: 혜민. 너 아침 안 먹고 학교 온 날, 점심시간이 되면 급식대로 바람처럼 달려가지?
혜민: 네.
헤르메스: 어이구, 양심은 있어서 그 대답은 잘 해요. 배가 고파 죽겠는데 급식대로 엉덩이 뒤로 빼고 뭉기적뭉기적 걸어가니?
혜민: 아니오.
헤르메스: 아직도 모르겠어?
혜민: 알겠어요.
헤르메스: 뭘 알어?
혜민: 제가 엉덩이를 뒤로 뺐네요.
헤르메스: 이제 가라.
혜민: 네?
헤르메스: 알았으면 이제 가라구~ 실천해~~~
혜민: 아, 네. 고맙습니다. 쌤! 안녕히 계세요~
헤르메스: 응, 바이바이~
길었죠? 이게 끝일까요? 아니오. 이제 시작입니다. 혜민이는... 그리고 저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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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요?
선생님과 제자의 대화..
이런 대화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겠네요.
아이들과 생각없이 하는 하는 대화에 답답할때가
꽤 많았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생각하며 대화 할 수 있도록
제가 준비를 못한게 더 많았네요.
기존에 포스팅하신걸 좀 더 봐야지 이해가 되겠네요.
많이 배우고 많이 생각하고 자러 갑니다.
아~~ 대화 하시는걸 보니 댓글 잘 써야 겠네요 ㅋ
감사합니다.
실제 대화는 더 장난스럽게 진행됐는데 글로 하는 음성지원은 역시 한계가 있네요. 까칠남이라는 건 장난이고 사실 저 알고보면 부드러운 남자입니다~ ㅎㅎ
ㅋ 부드러운 남자일것 같아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아주쪼금
의심이 들지만요.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기대할께요~~ 아들과이렇게 대화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야 이 일을 천직으로 삼고 있으니 익숙한 것일 뿐 @kibumh 님에게는 아드님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있으니 지금도 잘 하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천직으로 삼으신다.
천직 "타고난 직업이나 직분" 사전적 의미네요
행복하실거 같아요. 지금 하는일을 천직으로 생각한다는 것.
사실 좋지 않으면 못하는 것이고 천직이라고 생각 할 수도 없는 것이잖아요.
요즘 아들이 갑자기 공부를 합니다.
공부하기 싫다고 해서 맘껏 놀라고 했더니
정말 3년을 내리 놀았습니다. 그런대 갑자기 공부한다고 해서
살짝 당황했구요. 그냥 부담같지 말고 편하게 하란 말을 했네요.
선생님 학교가 일반학교와는 좀 틀리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전 획일화된 끼어 맟춘 현재 교육시스템을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아들을 전학시키고 싶은데 애엄마가 떨어져 있는걸 넘 부담스러워해서
그냥 보고있습니다.
이거 아들 얘기만 해서 우리 사랑하는 딸에게 미얀하네요
지금 사춘기라 한번 사고 치겠다고 벼르고 있거든요.
ㅋ~~ 사고는 못칠거 같습니다. 사고 칠 녀석이 아빠에게 공표하지는 않죠.
아닌가요? 이거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거면 알려 주세여
포스팅 재밌었구요.. 오늘 제가 모임에서 술을 많이 먹고 들어와서
말이 길었네요.
감사합니다.
와~ 고등학생 제자와 이렇게 수준 높은 대화를 주고 받다니 대단하고 부럽습니다! 누군가의 생각을 키워줄 수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네요!
사실 저희 학교가 4년제라 저 학생은 일반학교로 치면 중3학생입니다. 저나 저 친구나 특별히 수준 높지도 않구요.ㅎㅎ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참 멋진 일 맞습니다. 요즘 제가 체력이 좀 딸린다는 것만 빼고는...^^ 친절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수준이란 게 나이와 무관하죠~
스승과 제자가 정답만 푸는 문제다 아닌 같이 생각하며 나누는 대화가 참 인상적이어서요!
체력 회복하셔서 즐거운 시간 더 누리시길! ^^
시험기간이라 좀 바빠서 엄살을 떨어봤네요. 따뜻한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