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 욕망의 경제] 미제스 교수님은 월급을 누구에게 받았을까? - 오스트리아 학파는 적폐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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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 공동체에는 유난히 오스트리아 학파에 관한 글들이 많이 올라옵니다. 심지어 ‘국가는 강도다’라는 급진적인 주장도 보게 되는데요. 스푸너라는 미국의 자유지상주의 사상가이자 변호사가 지은 책 제목이기도 한데, 저는 이런 주장을 접할 때마다 이런 짓궂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흠... 그럼, 미제스 교수님은 강도한테 월급을 받은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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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폰 미제스 namu.wiki

오스트리아 학파의 대표 사상가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빈 대학 교수였고, 빈 대학은 국립대학이며, 국립대학은 세금으로 운영되고, 세금은 국가라는 강도가 국민에게서 강탈한 것이므로 미제스는 국가라는 강도의 종범 내지 하수인이었던 셈인데... 세상에...;;;

그렇다면! 혹시 미제스가 제네바를 거쳐 미국의 뉴욕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건 학자로서의 양심 때문? 국가라는 강도로부터 월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

오해하지 마시길... 저는 미제스라는 위대한 학자를 능멸하거나 오스트리아 학파에 대해 냉소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학에 ‘욕망’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은 당대에선 혁명적인 전환이었고 현재의 관점에서도 대단히 흥미롭고 유용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기존의 담론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행위’ 자체는 시대를 초월해서 바람직한 행위, 학문의 본질에 해당하는 행위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을 ‘행위’ 중심으로 이해하려 했고, 당대의 기계론적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한 미제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과도 맞닿습니다.

제가 의문스러워 하는 것은 오스트리아 학파에서 얘기하는 ‘국가’라는 것이 도대체 뭘까 하는 것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오스트리아 학파, 정치/윤리학에서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자유주의, 자유지선주의라고 번역하시는 분도 있습니다.)에 속하는 분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지만 그 분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국가의 이미지는 ‘시장이라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즐거운 놀이터를 방해하는 불량배’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미제스 선생님에게 월급을 준 오스트리아라는 국가는 ‘착한 불량배’쯤 되겠군요.^^

질문이 번집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즐거운 놀이터’를 왜 꼭 ‘시장’이라고 명명해야할까요? 이런 질문에 답하면서 그분들은 놀이터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놀이 가운데 ‘교환’에만 한정짓자고 할 겁니다. 시장은 이제 ‘자유로운 개인들의 교환이라는 놀이가 이루어지는 놀이터’로 정의될 수 있겠네요. (왜 꼭 '교환'이어야만 하는지도 질문하고 싶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그러나 짓궂은 본성을 주체하지 못하는 헤르메스의 질문은 멈추지 않습니다. 갑돌이랑 갑순이가 놀이터에서 딱지치기를 하며 놀다가 갑돌이가 토라져서 집에 가버리면 어떡하지? 딱지치기 이제 끝?

물론, 친구들끼리 치는 딱지치기 정도는 ‘이제 끝!’ 해도 됩니다. 갑돌이는 분이 풀리면 언젠가 돌아올테고 그때 딱지치기를 계속하면 되니까... 설령 갑순이와의 놀이에서 입은 상처가 깊어 이사를 가버리더라도 갑순이는 다른 친구와 딱지치기를 하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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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학파의 사상가들 namu.wiki

하지만,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교환 놀이는 한번으로 끝나도 아무 상관없는 딱지치기와는 다릅니다. 무한히 계속되는 놀이, 무한히 계속되어야 하는 놀이라는 거죠.

예컨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중고나라라는 ‘놀이터’에서 ID 갑순이와 ‘교환 놀이’를 하던 ID 갑돌이가 돈만 챙기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손이 미치지 않는 아마존 밀림으로 떠나버린다면 어떨까요?

갑돌이의 그런 행위까지도 국가라는 강제력이 침범할 수 없는 ‘자발적인 것’이기에 인정받아야 할까요? 그것이 인정된다면 ‘교환’이라는 놀이가 계속될 수 있을까요?

같은 맥락에서 헤르메스의 질문은 계속됩니다. 오스트리아 학파 말하는 ‘국가’란 무엇일까? 일정한 영토 내에서 ‘소속에 있어서의 강제력=국적’을 기반으로 합법적인 최고 권력=주권을 인정받는 정치 공동체 또는 정치 단위, 즉 state인가? 아니면 그러한 국가 내에서 국민들이나 다른 국가들에 대한 정치적 권력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기관, 즉 government인가?

저는 오스트리아 학파가 국가의 개념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의상 정치 공동체 또는 정치 단위를 ‘국가’,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을 ‘정부’라고 구분한다면, 무엇보다 그분들이 말하는 ‘국가’가 전자(국가)인지, 후자(정부)인지, 혹은 둘 다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이러한 구분을 거친 다음, 다시 ‘놀이터의 비유’로 돌아가 보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 듯합니다. 놀이터 자체는 ‘국가’이고, 놀이터에서 이루어지는 ‘교환 놀이’에서 때로는 심판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참여자 역할도 하는 것이 ‘정부’라는 거죠.

그렇다면 국가에 대한 오스트리아 학파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 입장 중 어느 하나이거나 둘 이상의 조합일 겁니다. ‘정부가 놀이의 참여자여서는 안 된다.’ ‘정부가 심판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국가라는 강제적 놀이터는 없어져야 한다.’

어? 여기서 잠깐! 이상해요. 놀이터는 ‘개인들’의 놀이터 아닌가요? ‘주관적 욕망’의 주체는 개인이지 집단일 수 없으니까! 국가는 집단이니 놀이터의 참여자가 될 수 없어요! 아하! 맞네요. 이상하네요. 이 분들의 주장이 얼마간 이해가 되는군요.

그렇다면 ‘심판으로서의 정부’도 마찬가지겠네요. 심판 역시 크게 보면 놀이의 참여자니까... 게다가 놀이는 자발적이어야 하는데 ‘강제력’이라니... 게다가 정부 또한 주관적 욕망을 가진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공정한 심판 따위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나아!

그러고 보니 ‘놀이터로서의 국가’도 마찬가지네요. 나의 ‘주관적 욕망’은 ‘코리아 놀이터’가 아니라 ‘USA 놀이터’에서 놀기를 원한다구. 나는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올 거야. 국적? 내 소속을 내가 왜 결정 못하는 거지? 인간의 본질은 자유야!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존 레논도 노래했어! Imagine there’s no country~ It isn't hard to do~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했나요? 사실, 제가 흥분한 게 아니라,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들이나 그에 관한 글들을 보면 이런 외침들이 귓전을 울리는 듯하여, 그 느낌을 그대로 옮겨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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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스의 명저 가운데 하나인 <인간 행동> www.goodreads.com

어쨌든 오스트리아 학파의 논리로 보면 참여자로서의 정부든, 심판으로서의 정부든, 놀이터로서의 국가든 존재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존재하는 걸 어떡해? 그러면 이런 응답이 가능하겠죠.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으니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런 대답은 오류, 자기부정입니다.

‘없어져야 한다’는 가치 진술입니다. ‘없다’는 사실 진술이죠. 사실 진술과 가치 진술은 뒤섞는 것은 학문적으로 부도덕한 일입니다. 그리고 엄연히 오스트리아 학파의 학설은 그 스스로 선언했듯이 미리 설정된 공리(사실진술: '인간은 ...에 따라 ...하게 행동한다')를 정점으로 한 ‘연역적 논리 구조’로 연결되어 있으며, 연역적 논리 구조에는 대표적으로 수학이 그러하듯 그 어떤 가치 진술도 끼어 들 여지가 없습니다.

반론을 피해 나갈 또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있지만 없어질 것이다’ 즉, ‘놀이 참여자로서의 국가(정부), 놀이 심판으로서의 국가(정부), 놀이터 자체로서의 국가는 존재하지만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라고 예측(예언)하는 겁니다. 좀 더 과감하지만 세련된 반론이죠.

하지만 여기에도 의문이 남습니다. 정부가 ‘놀이 참여자’로서 적극적인 산업 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금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를 향유할 수 있을까요? 정부가 ‘심판’으로서 갖고 있는 법적 강제력이 없다면, 우리가 ‘자유로이’ ‘마음껏’ ‘상대를 믿고’ 교환이라는 놀이를 할 수 있을까요? ‘놀이터로서의 국가’라는 ‘소속 상의 강제력’이 없다면 ‘먹튀’는 어쩐다죠?

어떤 사람은 세계 정부가 만들어지면 ‘국가’가 소멸할 거라 말하지만, 세계 정부는 ‘정부’가 아닌가요? 그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 ‘주관적 욕망’을 가진 사람은 도망갈 곳조차 없으니(지구를~ 떠나거라~?ㅠㅠ) 그것이야 말로 ‘절대적 강제력’, 오스트리아 학파에게는 디스토피아, 악몽 그 자체가 아닐까요?

글을 마무리 하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저는 미제스 교수님이 국립대학의 교수였다는 사실을 비난할 생각이 없습니다. 국립대학 교수로서 월급을 받았는지 무보수 명예직^^이었는지도 모를 일일이구요.;;; 또 그 같은 사실을 근거로 오스트리아 학파의 허구성을 비난한다면, 그것은 학문적 맥락에서 벗어난 도덕적 차원의 비난이자,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맥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는 점에서 얼마간은 ‘비겁한 비난’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제이론과 자유지상주의 정치사상을 전파하는 (개인이 아닌) 핵심 단체가 ‘자유경제원’이고 그 단체가 ‘재벌’이라는 (개인인 아닌) 대기업 집단들의 이익 단체 즉 전경련에서 결정적인 후원을 받아 왔으며 전경련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이명박근혜 정권까지 (‘개인’이 아닌) 국가와의 부도덕한 유착을 자행해 온 현실은 어떤가요?

재벌, 자유경제원, 전경련, 이명박근혜 정권이라는, (현재 적폐세력이라 지목받는,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이 아닌^^) 집단 혹은 정부가 이 사상의 전파를 나름의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은연중에 혹은 공공연하게 전파해 온 것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말머리의 ‘욕망의 경제’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저는 멩거나 미제스의 문제 설정을 존중합니다. 근대 과학의 발생 초기였던 당대의 기계론적 사고방식, 그리고 그러한 사고방식의 경제학적 변용인 계량적 연구방법에 대한 문제 제기는 실로 전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들의 문제설정, 논리구조, 그리고 결론을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 혹은 그들에 대한 과도한 존경심의 표현으로) 기계적, 이념적, 교조적으로 선전, 전파하는 데 있습니다. 이는 멩거나 미제스의 학문적 태도와는 정반대 되는 것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당대에서 그들의 문제설정이 가졌던 함의를 면밀히 따지고 그 과정에서 오늘날의 맥락에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야 말로 ‘적폐세력들이 후원해 온 사상’이라는 주홍글씨로부터 그들의 사상을 구원하는 일 아닐까요?

여기까지 ‘헤르메스, 욕망의 경제’의 첫 문제제기는 ‘국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 글을 읽고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많은 의문이 일어날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오스트리아 학파에 대해 좀더 깊게,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얻게 된 개인, 욕망, 자발성, 행위, 가치, 자유 등 어마어마한 생각할 거리들이 해일처럼 덮쳐 오고 있습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는 여러분과 저의 마음속에서 샘솟는, 혹은 해일처럼 밀려드는 그 많은 의문들이 더 많은 생각, 더 많은 깨달음의 실마리가 되고 또 다른 문제 설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설렘으로 두려움, 즐거움이 교차합니다. 그리고 다음 글은 아마도 이 글에서 제기된 ‘국가’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앞으로 결코 쉽지 않을 생각의 여정에 함께 해 주시길 기대하면서 제 글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 글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몇 주 전에 제가 썼던 아래 몇 개의 관련 글들을 읽어 보시면 제 문제의식을 이해하시는 데 더욱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rothbardianism님이 쓰신 귀한 글 카를 맹거의 주관주의 가치론과 그 글의 댓글에서 @rothbardianism님과 나누었던 건강하고 흥미진진하지만 분량 또한 대단했던^^ 논의가 이 글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음을 밝힙니다. 이와 관련해서 다시 한번 @rothbardianism님께 감사드리며 여유가 되시는 분들에게 일독 또한 권해 드립니다.


헤르메스는 어떤 사람?
인문학과 함께하는 블록체인 영단어
헤르메스의 교단일기
헤르메스의 작은생각
헤르메스의 짧은생각
헤르메스의 주제가 있는 판타지
헤르메스, 나만의 명곡
마법사 헤르메스의 One Day, One Spell
마법사 헤르메스의 Wandcraft
헤르메스의 마법속 철학
헤르메스, 마법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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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동의합니다 ㅋㅋㅋ 역으로 저는 시장에 대한 규정도 불명확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시장질서라는게 과연 정말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역사적 경험이 있는지? 이를테면 시장을 성립하는 재산권이나 소유권과 같은 권리 보장의 주체는 그것이 중세 유럽의 자유도시가 되었든 영주가 되었든 어쨌든 모종의 '국가'였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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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 또한 매우 동감입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계몽주의/자연법사상/사회계약론의 영향, 그 중에서도 로크의 영향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다음 글의 주제 또한 이 부분과 연관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통찰을 주시는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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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암호화폐 투자자의 한 사람이지만, 암호화폐 투자자들 중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화폐'라는 사상과 '블록체인 산업의 국가적 육성'이라는 정책 두 개 다 쫓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게 재밌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ㅎㅎ

이 글을 읽으니, 제가 썼던 글의 한대목이 떠올라서 아래에 남겨봅니다. ^^ 고대 인류는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이 국가 형성의 기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은 공동체 형성에 기여도가 높은 소수 세력에게 주어졌고, 초대 권력의 기능은 각 개인의 욕망을 통제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질서를 세우는 것이죠. 세상이 복잡해졌지만, 같은 맥락에서 경제의 본질은 어떤 계층의 욕망을 우선 시 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착됩니다. 무엇이 적절한지,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지금까지 싸워왔듯이 앞으로도 끝없이 싸울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했던 정의는 모두 당대의 정의일 뿐이며, 다만 제가 믿는 정의가 있을 뿐입니다.

제 쓴 글에 비해 @hermes-k님의 포스팅은 대단히 세밀하고 풍부한 글입니다. 그만큼 많은 공부와 노력이 투입된 것이죠. 많이 배우고 갑니다. ^^ 리스팀합니다.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는 잘 몰라도, 한가지 명확한 사실은,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변하지 않는 한가지 맥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인간의 욕망.

장담컨데, 자본(돈)은 결코 정치권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경제학은 자본과 정치권력 간의 적정한 거리에 대한 끝없는 논쟁이었으나, 무정부주의는 이미 사형을 당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의 본질은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고 조율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성취시키는 것이다. (그걸 잘하고 있는지는 별개로..) 정치는 인류역사에서 단 한가지 변하지 않는 상품인 욕망을 취급하는 셈이다. 이 상품은 인간이 우주로 진출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역사를 넘어 기원으로 회귀된다. 태초에, 처음 물밖으로 올라온 생명체 속에 꿈틀리거렸던 건지도...

우리가 어디로 가든 인간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에 이끌려왔고, 또한 그 욕망을 스스로 규제해왔으며, 그 욕망을 따라 변해갈 것이다. 처음 농기구를 개발하던 인간과 자전거를 개발하던 인간과 엔진을 개발하던 인간과, 지금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인간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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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경제가 분리 가능한 영역이 아닐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 주목합니다. 올려주신 글 꼼꼼히 잘 읽었습니다. 좀더 고민해보겠습니다. 과찬에 가까운 격려의 말씀 그리고 통찰이 길들인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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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전쟁에대해 최근 이자가트가 정리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전쟁이 국가를 만들고 국 가가 전쟁의 원인이다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고 스스로야기한 문제를 해결한다 그과정에서 국가 내부에서는 국가 자신을 제외한 개인간 폭력은 해소된다ㆍ전체 폭력으로인한 사망자 수는 감소한다
*예는 페르시아에 시달린 최초 민조국가 마게도니아 의 그리스 패권과 제국화
*ㅣㅇㅇ년 전쟁후 최초로 봉건제를 넘어선 왕의국가 프랑스
*대혁명이후 모든 유럽제후국의 공격을 받은 프랑스 국민개병과 나폴레옹의 강력 국민군
*의회국가가 스스로 전쟁에 투자하여 시장을 넓혀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한 영국

특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에 동원된 자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그 최종판은 2차대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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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고 이분법적 접근 또한 그리 자명하지 않다는 취지이시라면 완전히 동의합니다. 통찰력을 주는 유익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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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구체적이군요. 굿입니다. ^^

아싸 일빠네요 ^^ 그렇지 않아도 경제맹이라.. 오스트리아학파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일거에 정리해 주셨네요. 특히 이 블록체인 암호화폐에 열광하며 참여하고 있는 그룹의 시선이 양분되어 있어 이게 어떻게 서로 충돌하거나 합의를 하게 될지 관심이 많이 갑니다. 특히, 말씀하신 심판으로서 국가, 공권력, 치안의 역할을 대체할 답을 리버테리안들은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다음 글들을 기대해 봅니다. 그러나 어쨌든 결론은 '마법' 뿐이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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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분, 이분법, 이항대립... 이런 사고방식을 빨리 잊어버려야 할 텐데요... 역시 결론은 마법 뿐! 그래서 다음 one day one spell의 주제는 오블리비아테! ㅎㅎ

흥미로운 논의 감사합니다. 실험경제학에 따르면, 이기적 존재들만 있을 경우 합리적 선택의 오류가 생긴다고 하더군요. 이게 아마 공적인 질서가 필요한 이유겠죠. 그 공적인 질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여전한 과제입니다. 그게 국가가 될 수도 아니면 공동체의 자율 규범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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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건 아닐까하는 느낌이... 이기/이타, 합리성, 공과 사, 국가, 공동체... 생각할 거리들이 너무 많아요.ㅠㅠ 하지만 우리 모두 다 같이 힘을 합쳐 답을 구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죠.^^ 힘이 되는 댓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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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마법사님의 글을 보면,

“흠... 그럼, 미제스 교수님은 강도한테 월급을 받은 셈인가?”

투덜이 스머프가 연상됩니다. 국가는 말이죠. 원래 없는데, 탐욕 덩어리가 커져서 그걸 가꾸 쥐고 놀려다 보니까 어느 노므시끼리끼리 모여서 안놓는거 아닌가요?

시작은 창대하나 종국에는 밥그릇챙기기이다.

저는 무정부주의자이거든요. 참고[雜記] 하이Tech 부족시대의 귀환

모든 주의나 사상은 옳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옳다. -켄윌버

제가 좋아하는 켄윌버 아저씨말씀입니다. 그걸 이용하는 악의 세력들의 문제이지요. ㅋㅋ
반골 마법사님의 논리적 필체에 감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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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주의나 사상은 옳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옳다. ---> 이 말씀 동의하구요. 양해해주신다면 한 마디만 보태겠습니다. '정황적으로' 옳다! 그리고 저 '반골' 아닙니다. 저는 그냥 놀고 있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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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기요. 반골은 말이지요. 반은 골때림입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세요. 꾸벅^ 꾸벅^ 꾸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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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그것 좋아요~ 반은 골때리는 사람 맞는 거 같아요. 정체성을 이제야 확인했네요. 무례라니요. 오히려 감사합니다~ ㅎㅎㅎ

시장과 정부를 대립적인 것으로 간주해 시장이냐 정부냐 하는 문제 설정은 원천적인 오류라고 봅니다. 규칙과 규범이 없는 진공 상태의 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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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오류 여부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19세기 당대의 문제설정으로서 오스트리아 학파가 갖는 의의는 과소평가해서 안될 듯합니다. 한편으로는 대립적 사고를 극복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상대주의의 함정을 피해 나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진지한 관심과 댓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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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말씀과 비슷한 취지라고 생각합니만, 오스트리아 학파라고 묶을 수 있는 무언가의 사상이나 이론들을 모두 싸잡아서 옳다거나 틀렸다거나 하는 포지션은 애초부터 틀린 접근법일 것이라고 봅니다. 일례로 하이에크가 말한 것들 중에서 자생적 질서, 지식 문제에 관한 기여를 따로 취급하여 좌파적으로 해석하자는 주장도 여럿 있는 걸로 압니다(여기 일부 링크나 자료가 언급된 글이 있고, 그 밖에도 많습니다. http://blogs.lse.ac.uk/politicsandpolicy/what-can-the-left-learn-from-friedrich-hayek/).

그 학파에서 파생되거나 재발견할 수 있는 이론적 요소들을 따로따로 봐야 할 거로 압니다.

그중에서 꼭 오스트리아 학파의 문제 설정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시장이냐 정부냐, 자유시장이냐 국가개입이냐'의 양자 이분법적 접근 자체는 문제 설정으로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시장과 정부의 효과적인 혼합'이라는 관점에 서는 것이 현실에 더 부합한다는 취지의 말씀이기도 하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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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동의합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당대의 문제설정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린 거였구요. 링크해 주신 글은 꼼꼼히 잘 읽어봤습니다. 제 문제의식과 연관이 깊은 매우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저는 하이에크가 말한 '지식의 한계'와 '이성 중심의 근대 문명에 대한 반성'이 문제설정의 방향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좌와 우의 진영론의 틀에 끼워넣는 것은 잘못된 일이죠. 언제나 그렇듯 깊이 있는 댓글 감사드립니다.^^

미제스, 하이에크, 오스트리아 학파...
이해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잘 읽었습니다.
보팅하고 팔로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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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거대한 담론이라 제 부족한 글 한 편으로 완전히 이해하시기엔 힘드실 수 있습니다. 가급적 난해한 용어는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제 능력 부족인 거 같습니다. 앞으로의 글에서는 보완해서 조금씩 개선해 나갈 작정입니다. 댓글 감사하구요. 아직 블로그는 방문 드리지 않았지만 텔로미어라는 아이디가 왠지 흥미진진합니다. 저도 팔로우 드리고 방문하겠습니다~^^

어서어서 kr-economy로 오셔야죠 뭐하십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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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그런 태그가 있다는 걸 왜 생각 못했을까요? 지금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3월의 시작을 아름답게 보내세요^^
@clayop님이 지원하시는 스팀마노에 관심을 가져보세요^^
https://steemit.com/steemmano/@steemmano/5abbhz 안내
https://steemit.com/steemmano/@steemmano/2018-3 신청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던지신 의문에 대해선 제가 더 깊게 생각을 해보도록 하겠고. 제가 당장 답변을 드릴 수 있는 사실관계만 몇개 대답을 하겠습니다.

  1. 미제스는 정부의 돈을 받은게 맞습니다.(ㅋㅋ) 그리고 뵘바베르크는 관료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국가를 강도라소 말한 적이 없는데다. 사실 국가를 필요악 정도로 봤기에 그렇다고 넘어가다라도. 라스바드의 경우... 라스베가스 주립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쳤죠.. 주립대... 주립대... 이거 때문에 전 라스바드를 비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관적이지 못하니까요.

  2. 한국에서 오스트리아 학파를 알리던 자유경제원에 대해서 몇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일단 자유경제원은 적폐 맞습니다. 저는 사실 자유경제원을 통해서 많은 지식을 지원받은 자경원 키즈였어요. 그런데 현진권이라는 사람이 원장으로 바뀌면서 본질을 잃게되고, 오스트리아 학파나 시장주의가 아니라 재벌주의를 옹호하는 집단이 되었고, 당시 정권을 옹호하는 어용단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유경제원에서 나와 젊은 사람들이 만든게 자유당(Libertarian Party of Korea)와 SFL Korea(Students for liberty Korea) 입니다.

선생님께서 던지신 본질적인 의문. 매우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내일 좀 더 심층적으로 읽어봐야겠네요! 좋은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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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한가지 더. 이들의 사상을 교조주의적으로 따르면 안된다는 생각에도 동의합니다. 충분히 수용할 건 수용하지만 좀 더 비판적인 관점으로 봐야한다는 부분에선 저는 선생님의 생각과 일치합니다. 이 글에 써주신 의문에 대한 답변은 조만간 제가 정리를 해서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곱씹어 읽어볼 좋은글이지만 박한 이해를가지고 댓글을 쓸 수 없어 우선 보팅하고 다시 천천히 읽어볼랍니다. (국가를 부정하는 자가 주장하는 초국가 라는 이름의 국가...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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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는 맛도 내면서 이해하기 편안하도록 글을 쓰는 경지는 아직 저에겐 먼 길인 듯합니다. 좀더 애써보겠습니다.ㅠㅠ 정성어린 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