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심야독백] 잊었어? 여긴 바다야. 그리고 바다는 결코 정의롭지 않아.

in #kr6 years ago (edited)

그래! 여긴 바다야. 수백만의 가상 생명체, 욕망의 아바타들이 부유하고 비상하고 침잠하고 유영하는...

우리를 이 바다로 이끈 건 욕망이야. 이 바다의 창조주 댄은 이 생명체들이 각자의 욕망, 각자의 이익을 쫓아 움직이다보면,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무한에 가까운 자유 속에 서로 교섭하다 보면, 어떤 질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 자생적 질서... 누구도 군림하지 않고 지배하지 않지만, 한없이 풍요롭고, 한없이 평화로운 바다...

어때? 네가 꿈꾼 것도 그런가? 이렇게 말하면 얄밉게 느껴지겠지만, 나는 아냐.

욕망을 '이익'이라는 우리 속에 가둘 수 있을까? 천만에... 그건 착각 아니면 오만...

이익은 그 의미를 정할 수 있지만, 욕망은 그렇지 않아. 이익은 투입과 산출의 인과관계에서 추론될 수 있지만, 욕망은 투입이 산출이고 산출이 곧 투입인 영원한 고리, 뫼비우스의 띠, 클라인의 항아리 같은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욕망은 더 이상 욕망이 아냐...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백, 수천만의 욕망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뒤엉키고 교접하고 때로는 서로를 찢어발기고 때로는 위무하는 대혼돈의 바다가 이곳이야.

이곳이 정의로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 기대를 접어. 바다의 정의는 그런게 아니야.

바다의 정의는 멸종과 번성의 무자비한, 무차별적인 순환에 있어. 탐욕에 눈이 먼 고래들의 분탕질이 바다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면, 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허점투성이 생태계의 먹이 사슬 맨 아래쪽부터 죽음의 기운이 잠식하지.

그렇게 절멸의 사이클은 시작되는 거야. 그리곤 어느새 공멸의 공포와 각자도생의 욕망이 서로를 먹이 삼아 기하 급수적으로 증식하고...

그렇게 종말을 향해 끝모르게 추락하다보면 나중에야 깨닫게 될 거야. 어느덧 번성을 향한 새로운 사이클의 시작되었음을... 절멸의 사이클이 남긴 잔해들이 새로운 번성의 자양분이 되는 거라구...

바다의 정의란 이런 거야. 선과 악, 강자와 약자, 목적과 수단, 원인과 결과 따위는 가리지 않아.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하다구... 바다는 스스로에게만 정의로울 뿐, 그 안에 살고 있는 이 미미한 생명체들에겐 결코 정의롭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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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정의롭지 못한 바다를 떠날 거냐고? 글쎄... 그럴 거 같지는 않아. 오히려 당분간, 아니, 꽤 오랫동안 이 바다의 모험을 즐기게 될 거 같은 예감이야.

두 달 전, 내가 이곳에 온 건, 이 곳을 창조한 '눈먼 시계공' 댄의 설계가 옳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냐.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워. 오히려 댄의 설계가 '허점 투성이'였기 때문이지. '정의할 수 없는 것'으로 정의되는 욕망의 터전으로서 '허점 투성이'는 역설적으로 대단한 장점이거든.... 물론 '허점'을 '장점'이라 포장한 선전에 현혹되었던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끼겠지만...

혹시 알아? 이 비루한 욕망의 아바타들이 아찔한 추락과 절멸, 도둑처럼 찾아드는 번성의 사이클을 거듭 경험하다가, 어느 순간 '합목적성', '합리성' 따위의 가당찮은 오만을 버리게 될지... 그리하여 욕망의 진정한 긍정이 절제와 배려임을 깨닫게 될지... 그런 다음, 그러한 집합적 깨달음에 기초한 새로운 질서가 이 허점 투성이 설계도의 오류를 바로잡고 여백을 채워 나가게 될지 말야...

이봐 친구들!
진정한 모험은 이미 시작되었어.
이 폭풍우가 잦아들 때까지, 이 절멸의 사이클이 끝날 때까지 내 손을 잡아 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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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너무 오바했어

알아... 밤이잖아...심야독백이라구...ㅋㅋ

ㅋㅋㅋ 그냥 첨보는 형이라 말붙여 볼라구 한거구 좋았어
같이 새벽 갬성 즐기자 ~!!

긍까... [심야독백]이라고 말머리 안붙이면, 낼 낮쯤 읽으면 연탄불 위의 오징어처럼 오그라들지도...ㅎㅎ 반가워~ 이불킥 할 땐 하더라도 새벽 감성 가즈아아~

헤르메스... 이거야.. 이런 얘기가 듣고 싶은 거라구.. 역쉬~ 근대 댄 이시키가 하드포크19때 개발진이랑 싸우고 나가버렸다던데.. 난 생각했어.. 아 맞다.. 니들 어리지.. 물론 난 젊은 세대가 변혁의 주체라고 생각해.. 하지만 이 욕망의 바다를 다루는 현명함까지 갖춰주길 바라는 건 역시 무리.. ㅋㅋ 그래서 원탁의 기사들에게는 마법사 멀린이 필요하다구.. 미안.. 멀린이 아직 젊어서 어린 기사들을 도울 수가 없네.. 어케 될까? 이 스티밋은 좌초하더라도 바다는 계속 진화를 거듭하겠지.. 배 바꿔 탈 타이밍이 오면 나도 알려줘~

배를 바꿔 탈 일 당분간 없다니까 그러네...ㅎㅎ 스팀잇에 대한 애정도 애정이지만, 다른 배 역시 탈중앙화 네트워크인 한, 스팀잇과 다를 바가 없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지... 솔직히 스팀잇은 꽤 살만한 곳이야. 고래가 어뷰징을 하든 말든 적어도 저기 바깥 세상 페북이나 트위터 세상처럼, 문빠, 빨갱이, 꼴통, 입진보, 마초, 페미 따위의 딱지 붙이기가 난무하는 곳은 아니니... 나는 지금 당장은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만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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