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얀's 에세이] 네잎클로버 여정

in #kr-pen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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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사악하도다.
놀랐더라도, 그대여!
살아야한다. 그래도
불확실한 불운따위는 불에 처넣으라.
-랭보



 그녀는 뱃속에 들어있는 악성종양을 제거했다. 그 조직이 너무나 커서 학계에 보고를 해야하니 기증을 해 줄 수 없겠냐는 담당의사의 요청을 받았고, 흔쾌히 승낙을 했다. 그녀의 뱃속에서 자랐던 암덩어리는 얇은 막 안에서만 팽창했고 다행히 전이는 진행되지 않았다. 그녀는 죽은 세포를 기증하고 그 대신 유전자 검사를 할인받았다.

 처음에 그녀는 배에 살이 갑자기 쪄서 헬스회원권을 끊었다고 했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6개월 진행을 했다. 그러자 다른 부위는 다 빠지고 배 부분만 볼록한 채로 남았다.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임신중이냐고 묻곤했다. 그 때서야 놀란 트레이너는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그녀의 복부라인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집이 거제도였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해운대 백병원에 들러 검사를 받았는데, 그 무렵 새로 이사한 나의 집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 놀러와, 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녀는 박박 깎은 머리를 야구모자로 감추고 허름한 트레이닝 복에 두꺼운 겨울파카를 입고 방문했다. 그녀의 차림새를 보고 혹시 같은 아파트 주민이 볼까봐 두려웠다. '내가 이렇게 속물이었나.' 라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무엇보다도 왜 하필 집뜰이도 못한 새집에 방문한 첫손님이 그녀가 되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그녀가 돌아간 후 내면의 갈등을 털어놓으니 하우스메이트인 미쉘양이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큰 병을 이겨낸 사람한테 그런 생각을 품을 수 있냐고 말했다. 나는 그날 밤, 그녀에 대한 죄책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깜박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어났는데, 그 때 나는 그녀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암에 걸린 불운한 사람이 아니라, 암을 정복한 여신이라는 것을. 나는 태도를 바꾸었던 것이다. 이 발견은 너무나 날 매료시켰기 때문에 내일 아침 그녀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네잎클로버를 꼭 찾을 거라고 선언하고 잠이 들었다. 큰 네잎클로버 하나를 그녀에게 건네주는 상상을 하며.

"화이팅."

 다음날 아침, 나의 급격한 열정을 늘 보아왔던 미쉘양은 아주 낮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형식적인 응원을 해주었다.

 수영강 산책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생태공원과 습지가 조성되어 있었는데, 클로버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공원에 다다랐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전날까지 무성하게 있던 클로버밭이 깔끔하게 제조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이건 내 시나리오에 없는 설정이었다. 나는 그 무렵 시각화한 것을 물질로 경험하는 훈련에 심취해 있었고, 나 자신을 상대로 그리고 내 인생 전체를 실험하고 있었다. 분명히 어젯밤에 네잎클로버를 찾는 상상을 했는데, 현실은 잡초가 모조리 제초되어 있는 상황인 것이다. 아, 어쩌지 그만 집에 돌아갈까?


 생태공원 한 복판에서 잠시 서 있었다. 호흡을 천천히, 그리고 머리 끝까지 하는 데에 집중했다. 그러자 어젯밤에 느꼈던 그 기분좋은 상상이 떠올랐다. 나는 혹시나 살아 남은 클로버가 없는지 살피며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큰 나무 빼고는 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혹시 못찾으면 어쩌지? 이런 바보같은 생각이 이루어질 리가 없잖아. 그런 기분이 올라올 때마다 그 생각을 긴 호흡으로 불어내고 내가 한 상상을 현실에서 경험하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채웠다. 전두엽에 네잎클로버를 띄워놓고 그렇게 걸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아가씨!"

 고개를 들고 소리가 난 쪽으로 쳐다보니 중년의 아저씨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분은 해운대구 주민을 상대로 무료로 자전거를 빌려주는 데서 일하고 계셨다. 그 분에게 다가가면서 물었다.

 "왜 부르셨어요?"
 "혹시 이거 찾고 있었어요?"

 그 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끝에는 제초가 안된 클로버가 있었는데, 그 중에 크고 푸른 네잎클로버가 하나 있었다. 그 분은 이 네잎클로버의 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제초를 유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네잎클로버는 무사히 그녀에게 전달이 되었고, 나는 상상을 경험으로 출력한 날을 기억으로 갖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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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얀's 에세이


쓴다는 것은 시냅스를 연결하는 것
관계의 견고함은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집사의 편지
베니스에서 얻은 자유
첫사랑
데미안을 만나는 시간
파리에서 해 볼 6가지
요리하는 즐거움
시를 읽는 시간
당신에게 쓰는 편지
로레인 루츠가 가르쳐 준 것
질문 속의 답
페드로씨
없는 날
핸드픽을 그만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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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나눔]무조건-수동보팅 14회차 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암에 걸린 불운한 사람이 아니라, 암을 정복한 여신"
멋진 글로 인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스마루님, 방문해주셔서 기쁩니다.
늘 행복과 행운이 가득하시길!

좋아하는 그녀의 얼굴이 상상됩니다.

그녀는 이제 눈부시게 건강해요.

네잎크로버가 그저 행운에 대한 상징적인 것밖엔 되지 않겠지만 보얀님이 드린 네잎클로버는 상징을 너머 마음이 함께 깃든 멋진 선물인듯 합니다. ^^

제 마음이 잘 전해졌길 바래봅니다^^

행운을 뜻하는 네잎클로버는 발견할 때도 남에게 선물할 때도 뭔가 특별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지더라구요. ㅎㅎㅎ

맞아요. 그 후로 지인들에게 종종 선물한답니다^^

와우!!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보얀님 이글 읽을 때 친구랑 신나게 간밤에 꾼 돼지꿈 이야기를 하다가 댓글 타이밍을 놓쳤어요. 오늘(아직 잠들기 전이니까) 오쟁님 숲 그림에, 보얀님 네잎 클로버까지 행복합니다. 상상을 경험으로 복사 붙여넣기 출력까지요.

라운디라운드님 얼마 전 돌고래꿈도 꾸지 않으셨나요? 돼지꿈까지 꾸셨다면 올해 좋은일 생길 거예요^^

그러고 보니 네잎클로버 찾던시절이 까막하네요. 흔하긴 한데.

네잎클로버를 찾는 사람한테는 정말 흔한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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