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 연재소설] 무너진 세계 - 14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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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지망생 입니다.
외계인과인 전쟁 - sf 생존물 입니다.
다른 좋은 글 보시다가..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어 보세요^^ 감사합니다.


살아남은 아이들 - 14

"가장 먼저 변하는 건 인간성이야.. 살아남고 싶어? 그럼 절대 인간이란 존재를 믿어선 안 돼.. 끝까지 최악을 생각해. 끊임없이! 알아듣겠어? 의심해! 끝까지 의심해! 여지를 남기지마.. 먼저 잘라버려야 돼..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결국 나처럼 될 거야.."

꿈에 나타난 지호의 형..
핏발이 가득한 눈으로 그는 지호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그의 뚱뚱한 몸은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서서히 뜯어 먹히는 중 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호만을 쳐다 볼 뿐이다.
세상에 남겨진 하나뿐인 동생..
무섭고도 애달픈 형의 부릅뜬 눈에선 여러 가지 감정이 흘러 나왔다.
살아라.. 무조건 살아라.. 제발 살아라!

지호는 울며불며 소리치지만 목소리가 나지 않았다.
누군가 강제로 음소거를 시켜 버린 것 같다.
몸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지호를 범죄자 다루듯 무겁게 눌러대자 그는 고개를 드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쳤다.

그렇게 서서히 사라져 가는 형..
무언가 씁쓸한 얼굴, 조금씩 달싹대는 입술.. 희미해져가는 형을 보며, 지호는 그 모습이라도 최대한 기억하려고 뇌리에 각인시킨다.
이제는 꿈으로 밖엔 볼 수 없는 얼굴이니 말이다.
살았을 때는 그토록 꼴 보기 싫었던 형이었는데 이제 와서야 이런다는 것이 정말 우스웠다.
차라리 없었으면 싶을 때가 많았던 형이었는데..
막상 외톨이가 되고나니 혈육이 그리워 가슴이 저린다.

"형!! 형!! 가지마!! 엉엉.."

얼굴이 눈물과 땀으로 범벅되어 눈을 떴다.
시간은 아직 새벽이다.
한바탕 잠꼬대로 난리를 쳤지만 옹기종기 붙어 자는 두 친구는 업어 가도 모를 정도다.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한 채 하루 종일 폐허를 뒤적여 대니 피곤에 곯아떨어질 만도 했다.
그래도 그나마 잠이라도 안전하게 잘 처소가 있는 것이 어딘가..
삶의 여러 가지의 부족을 깊은 잠으로라도 채울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잠에서 깬 지호는 다시금 쉽사리 잠이 들지 않는다.
언제까지 생존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버텨 낼 수 있을까?
살아가야 한다는 중압감이 가슴 한켠을 누른다.
이어질 앞날은 시커먼 미궁과도 같은 나날일 텐데..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두 친구의 얼굴을 보며 지호는 자신들의 미래가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임에 한숨을 쉬었다.
그러던가 말았던가 잘만 자는 친구들..
녀석들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지호는 마치 아이들의 아빠가 된 느낌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장윤의 집으로 들어온 다음날부터 아이들은 날이 밝는 대로 생필품을 찾아 밖을 싸돌았다.
온통 아수라장이 된 도시는 곳곳을 누비는 것만으로도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무서운 고요가 가득한 가운데 흉물스런 건물 잔해들 사이사이로 심심치 않게 시체들이 누웠다.
처음엔 간담이 서늘하다가도 이내 사방천지가 그러니 서글프게도 눈이 익는다.

그런 시체들을 갉아 먹느라 평소엔 보이지도 않았던 시궁창 쥐들이 제 세상 마냥 활개를 친다.
쥐 뿐 만이 아니다.
어디엔 까마귀 떼가 내려앉았고, 때로는 산속 깊은 곳에서나 보았던 맹금류, 독수리도 이따금씩 내려와 피로 물든 부리를 쉬지 않는다.
엊그제 까지만 해도 집안의 귀염둥이였던 개들도 뜯어낸 시체 조각을 서로 먹겠다고 싸운다.
어디에나 있는 처참함에 세 친구는 눈 둘 곳이 없어 그냥저냥 땅만 보며 거리를 헤맸다.

그래도 재주가 좋은 생존자들은 이런 녀석들을 잡아다 끼니를 때운다.
어떻게 피웠는지, 화톳불을 위로 쥐고기와 새 구이를 놓았다.
겨우 이틀이 지났을 뿐이다.
하지만 생존한 사람들은 이미 야생 짐승과도 눈빛이 같았다.
시체는 들짐승이 먹고, 들짐승은 사람이 먹고..
생각만 해도 토악질 나는 순환이지만 지호와 아이들은 이 난리에도 고기를 뜯는 그들이 부러워 저도 몰래 침이 넘어간다.
정말 시궁창 같은 현실 아닌가..

종종 철모르는 꼬마들이 떼를 지어 거리를 뛰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필시 추위와 굶주림에 제일 먼저 희생될 생명은 저런 아이들일 것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사회의 희망이었던 아이들에게 도무지 투영되지 않는 희망..
역한 썩은 내 속에 생필품을 뒤적여야 하는 세 친구는 자신들도 저런 꼬마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처지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으... 으윽.. 으윽.."

자면서도 내 뱉는 병만의 신음 소리에 지호는 한 낮의 망상에서 깨어났다.
병만은 상처의 발열 때문인지 온몸이 땀으로 찌들었다.
강한 척, 아픈 내색을 않지만 녀석의 상처는 점점 더 곯아가고 있었다.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친구가 죽어가는 것을 알아도 나머지 두 친구는 딱히 손쓸 방법이 없다.
선잠에서 깬 지호처럼 녀석의 송글진 땀을 몰래 닦아 주는 정도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항생제가 절실해.. 아.. 그런데 그걸 어디서 구한담..'

친구가 죽는 것이 두려웠다.
이제는 세상에 얼마 남지도 않은 지인이다.

녀석은 경찰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에도 총을 쏘지 않았다.
까딱하면 지호 뿐 아니라 자신도 죽을 수 있는 순간이었는데 말이다.
덩치만 크지 마음이 모질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입으로만 터프가이인 장윤도 이하동문 이었다.
나이만 먹었지.. 영판 없는 꼬마들인 것이다.

"에효.."

지호는 한숨을 쉬었다.
자꾸만 형의 유언 같은 말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런 때에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인간성이다. 살기 위해선 결코 믿어서는 안 돼..]

마음이 복잡하다.
그래서 뭐?.. 도대체 자신에게 뭘 어쩌란 말인가?
이상한 책임감이 지호를 억압한다.

지호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때마침 장윤이 느닷없이 코를 골았다.
가뜩이나 잠이 오지 않는 지호는 마음이 더더욱 심란해 졌다.
잘 자던 병만도 장윤의 갑작스런 나댐이 심란했던지 이따금 신음소리를 크게 내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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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열한 일본 육군 자위대.. -

"방사능 오염 때문에 더 이상 장비의 진입이 불가하다. 고로, 여기서 부터 작전지 까지는 도보로 이동한다. 너희들의 목표는 마주치는 잔당 소탕 및 거대 풍뎅이의 생사 확인이다. 풍뎅이의 생사가 확인 되는 시점에서 작전이 종료 되니 최우선으로 보고 하도록.. 한 소대라도 보고가 들어온다면 그 시점부턴 전원 철수다. 분발하기 바란다. 이상! 부사관들의 지휘에 따라 전 부대원 작전지로 이동!"

우락부락 하게 생긴 대위 하나가 도열한 일본 보병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 뒤 쪽으로는 영관급 장교들이 가져온 개인 쇼파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들은 살아 돌아올지도 확실치 않은 보병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애써 외면하려는 듯 보병들을 등지고 앉은 채 연신 줄담배만 빨아댔다.

보병들도 이 모습이 희한하고 낯설었다.
부사관들의 지휘 하에 이동 이라니..
여기까지나 자신들을 끌고 온 장교들이 목전의 사선은 함께 넘지 않겠단 것이다.
지원 차량과 수송트럭 사이에 터를 잡고 앉은 그들은 마치 골방에 처박혀 나가지 않으려는 구들장 노인과 같다.
장교들이 먼저 머뭇대자 전장으로 향해야 할 군사들도 비죽대며 첫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저기.. 질문 있습니다."

분위기가 냉냉한 가운데 보병사이에서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용감히 목소리를 낸 병사에게 향했다.
이어서 터지는 그의 질문은 너무나도 당연한 의문이다.
누군가는 우려했고, 누군가는 차마 입 밖으로 끄집어 내지 못한 질문이다.

"저희들만 가고 장교분들은 안 가시는 겁니까?"

안 그래도 더러운 인상의 대위가 표정을 구겼다.
하지만 그는 성격대로 소리를 지르기 보단 부드럽게 설명하길 택했다.
여차하면 큰 소란으로 번질 수 있으니 말이다.

"좋은 질문이다. 우리 장교들은 이곳에서 물자와 장비들을 지킬 것이다. 지휘부가 전장에 나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이곳을 거점으로 너희들의 보고를 받고 실질적인 지시를 내릴 것이다. 그러니 다른 오해가 없길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작전은 매우 단순하다. 아군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잔당을 처리하는 것과 풍뎅이의 생사여부만 확인 하면 끝이다. 그래서 상부에서는 보병부대만으로 작전을 감행하려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작전에 굳이 장교들까지 나설 필요는 없으니.. 모든 군사들은 선임부사관들의 지휘 하에 만전을 기하면 되겠다!"

당당한 그의 답에 주위가 대번에 잠잠해 졌다.
그러나 이내 어디선가 또 다른 목소리가 송곳처럼 튀어나왔다.

"결국 장교들은 아무도 안 간다는 거네요?"

대위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용하던 분위기가 이내 소란스러워 졌다.

"야이 새끼들아! 조용히 안 해?"

대위가 병사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대위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소동을 직감한 대령 하나가 대위를 향해 빨리 보병들을 보내라는 사인을 내린다.
대위는 다시금 호령을 질렀다.

"전체 작전지를 향해 전진! 선두 그룹부터 대열 맞춰 이동 실시!"

하지만 여전히 병사들은 발걸음을 내 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열 사이사이로 불만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결국 저 새끼들은 아무도 안 간다는 거네? 우리만 디지러 가라는 거네?"

"벌레새끼 한 마리 없는 여기에 장교가 몇이나 지키겠단 거야?! 뻔히 보인다! 보여!"

"윗 놈들이 솔선수범 해야지.. 에라이~ 씨발놈들아.."

"더럽다. 더러워~ 계급장 낮은 내가 병신이지.. 나.. 참 .."

목소리가 끝도 없이 나오자 드디어 대위가 폭발하고 말았다.
자신의 권총을 뽑아 허공에 한 발 갈겼다.

  • 탕 -

"이 새끼들! 다 조용히 안 해? 어서 명령을 듣지 못하겠어? 대 일본군이 이정도 밖에 안 되는 건가? 어서 움직여! 어서!"

"씨바.. 이 놈의 장교 새끼들은 퍽 하면 총을 뽑고 지랄이네.."

"누구야? 누구야! 어떤 새끼가 방금 입 열어?!! 나와! 당장 앞으로 튀어 나와!!"

하지만 지휘자들에게 실망한 군사들이 대위의 말을 곧 대로 들을 리 없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 오른 대위는 임시로 만든 단상을 무섭게 내려와 앞 열에 있던 병사들의 정강이를 있는 힘껏 걷어차고 돌아다녔다.
차인 병사들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바닥으로 엎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병사들은 요지부동이다.

"어떤 새끼가 씨부렸어? 너야? 너야?! 빨리 안 튀어 나와! 이 개새끼들아!"

아무도 튀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도열한 병사들의 눈빛만 사나워 질뿐이다.

  • 탕 -

그러다 때 아닌 총성 한발이 허공을 울렸다.
병사들은 또 한 번 흥분한 장교놈들 중 한 놈이 총질을 한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총알에 쓰러진 것은 미친개마냥 길길이 날뛰던 대위였다.
불시의 총성에 가슴에 구멍이 뚫린 대위는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으로 들어 누웠다.

"....!!"

총성 한발이 신호탄이 되자 갑자기 여기저기서 지휘부를 향한 총알이 빗발 쳤다.
흥분한 병사들이 적에게 향해야 총구를 지휘부에 겨눈 것이다.
멍하니 담배를 피던 대부분의 장교들은 그 자리에서 벌집이 되어 버렸다.
몇몇 장교들만이 헐레벌떡 몸을 날린 덕에 자신들의 군사로 부터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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