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단상] "단편_ 응용인문학강의실 M201 #6"/ 어서와, 어른은 처음이지?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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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말인데 또 눈이 내린다. 하얀 모자를 쓰고 빨간 털목도리와 예쁜 갈색 어그부츠를 신은 아이들이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눈길이 아니라도 곧 미끄러질 듯 앞뒤로 젖혀진다. '도깨비' 열풍인지 다들 빨간 목도리다. 며칠 전 지나쳐 온 이전학기 학생을 만나 음료수 하나 못빼준게 마음에 걸렸다. 귀찮거나 싫어서는 아니었다.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과 한학기 동안의 20여 차례가 안되는 만남 후의 이별은 친해지기에 충분치 못했다.

강의실은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공간이었지만, 강의실 밖에서 가끔은 얼굴만 익숙하고 이름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 학생과의 만남은 내게도 짧은 경력으론 어색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 땐 내가 캔음료 하나 빼주지 못한 선배로서의 후회였지만,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 심경은 좀 더 복잡해졌다. "그 때 그 학생은 어색한 내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뭐 이런.

그 학생과 정확히 한 달 만에 카페테리아 앞에서 딱 마주쳤다. 난 역시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가.

"점심은 먹었어요?"
"아뇨 이제 먹을까 생각중입니다."
"잘됐네 같이 갑시다"
"괜찮은데…"
"따라오셈 갑시당."
"네… "

1층은 분식, 2층은 일반식, 3층은 교직원식당이다. 뭐 물론 가격차이다. 한층에 평균 1500원 정도가 올라간다. 3층으로 앞장섰다. 학생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흔쾌히 올라갔다.

"여기서 항상 드세요?"
"아뇨 저는 주로 1층. 분식 좋아해요. 덕분에 살이 자꾸 더 찌긴 하지만"

뚱뚱한 선배가 살찐 이야기를 하니 대놓고 웃지는 못하고 학생은 혼자서 키득키득 웃는다.

"3층 가끔 와요?"
"아뇨 오고 싶긴 한데 좀 비싸서요"

지난 학기 중에 다시 만난 것처럼 금새 친해진다. 질문이 예리하고 책을 많이 읽었던 학생이었다. 이런저런 예리한 질문들이 싫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사회나 근대사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다. 논점은 내가 이끌었지만 소재는 이 학생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 2시간 가까이 담론이 지나갔다. 내가 학부를 다닐 때 이런 대화의 기회가 있었다면. 하는 철지난 아쉬움이 갑자기 들었다. 강의실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촉박해서야 부랴부랴 학생과 헤어졌다. 학생은 잘먹고 고맙다는 말을 다섯차례나 했다. 헤어지고 혼자 돌아오는 길은 아까 내린 눈이 녹아 촉촉한 길이었다. 밥 한번 사고 나니 지난 번 그냥 보낸 미안했던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부쩍 "요새애들 문제 많다"란 말이 좀 불편해서 오늘은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좀 드려볼까 해요.

여러분은 대학생이죠. 20살 혹은 그 이상. 학생들은 어른 혹은 성인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아직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어른/성인이란 표현은 때론 같은 의미로, 때론 다른 의미로 쓰입니다. 같은 의미에 대해선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고, 다른 의미라면, 성인은 신체나 혹은 정신적인, 현실적인 의미에서의 다 자란 인격개체를 의미하므로 말할 것도 없이 여러분은 성인이 맞습니다.

다른 의미에서 어른이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대체로 둘 이상의 개체가 마주할 때 그 상대적인 나이로 결정되는 편이죠. 성인의 정의가 자신의 일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을 완성으로 본다면, 어른은 자신 보다 어린사람과의 관계에서 한정됩니다. 요새 이 표현은 아이들이나 중년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세대와 상관없이 부쩍 많이 쓰는 말입니다.

“요샌 어른이 없다”

아이들, 중년, 고령자들이 똑같이 입을 모아 외치지만 이 의미는 분명 다를겁니다. 그렇습니다. 고령자들에게 어른이란, 아이들을 훈계하고 엄하고 꾸짖고 가르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 하는 사람이죠. 하지만 아이들이 말하는 어른은 비록 가족이 아니더라도 부모처럼 자신의 편이 되어주고, 조건없이 도와주고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죠. 그럼 여러분은 이 두 가지의 어른 중 어느쪽이 정말 어른의 바른 정의라고 생각되십니까?


장유유서

오랜동안 우리의 일반적인 질서를 의미했던 이 말은 장(어른)과 유(아이) 사이에는 위계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설명은 말씀드릴 필요가 없을 것이니 생략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나이가 경험과 정보의 풍부함을 결정짓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훈계와 엄한 교육이란 결국 나이가 이미 많은 기득권이 그들의 질서에 맞게 아이들을 훈련하는 의미 이상이 아닙니다. 그럼 우리는 이제 아이들이 생각하는 기준으로 어른을 정의할 수 있겠군요.


어른이란 자신보다 늦게 세상을 출발한 인생의 후배들을 챙길 수 있는 이들

을 의미합니다. 그들에게 챙겨줄 수 있는 것이 정보든, 애정이든, 생활이든, 혹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나서서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과정들을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어른이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해주는 사람이고, 보여주는 사람이니까요. '미생'이란 드라마 보면 이런 대사 나오잖아요.

"내가 왜 너보다 월급 많이 받는 줄 알아? 이런 일 생겼을 때 내가 책임지기 때문이야."

어른이란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하며, 조건없이 후배를 돕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인들은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나서서 돕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서 책임을 회피하죠. 그리고 자신들의 윤리관의 잣대로 음주나 흡연, 성적인 문제, 임신, 출산 등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선 마치 그것이 인류의 큰 해악이나 되는듯이 펄쩍 뜁니다. 정작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고 통제하고 차단합니다. 인생이란 늘 문제의 연속인 것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인생은 크고작은 문제에 수없이 부딪힙니다. 그리고 그걸 하나씩 풀어가는 게 인생입니다.

"좋은 것만 보여줄게요"

가장 어리석은 부모들의 태도입니다. 세상은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부모와 어른들이 가르쳐야 할 것은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우리는 늘 문제에 부딪힐 수 있으며,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결할 지를 풀어가는 능력, 그리고 넘어져도 일어나면 된다라고 하는 믿음입니다.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방법이 아니라, 아예 넘어지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만큼 바보같은 가르침이 있을까요?


나보다 늦게 세상을 출발한 이들은 아마도 나보다 더 길게 이 세상에서 살아갈 인류입니다. 내 세상이 끝나도 그들의 세상은 내가 생각치도 못한 새로운 경험과 방식으로 돌아가겠죠.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내 기준이 아니라, 나의 머릿속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는, 새로운 새상을 인정하고 품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어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자신의 삶 - 뭐 도깨비 처럼 400년도 아닙니다. - 기껏해야 50-60년 정도 입니다. 이땅의 많은 어른이어야 할 대다수는 자신의 5-60년의 경험을 뛰어넘지 못하고 그 것만이 진리며,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보면 100년 전 사람들의 경험스펙트럼 10년치가 지금은 1년도 걸리지 않습니다. 빠른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분명한 것은 5-60년의 경험이 반드시 우세하다고 할 수 없는거죠.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지식정보 중 절반 이상은 최근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젠, 10년이면 강산만 변하는게 아니라 10년이면 모든게 바뀝니다. 느리게 흘러가던 5-60년의 경험은 2-3년안에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5-60년의 경험을 이미 한 사람은 그래도 그 무게가 그립겠지만, 그걸 다른 곳에도 맞추려고 하는 건 무모한 겁니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요새 아이들이 부족하다고 불평만 하면서 삽니다. 그리고는 복잡한 비트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고치겠다고 십자 드라이버를 들고 달려듭니다.


“요새 젊은 애들은…”

이란 부정적인 표현의 서두를 꺼내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 혹은 예리한 사람일 수는 있지만 어른은 아닙니다. 그게 “요새 사람들, 젊은 사람들”이란 조금 더 점잖은 표현으로 시작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어른은 결코 그런말을 쓰지 않거든요. 어른은 후배들의 단점을 잘 발견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어른이 아니라도 다 알 수 있으니까요. 자신의 젊은 시절 무용담과 비교해서 인생후배들을 뭉뚱그려서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일견 예리하고 멋있어 보일 것 같지만, 오히려 자신의 세상이 저물어가는데 대한 의미없는 걱정과 허세일 뿐이죠. 그 사람이 정말 어른이라면, 쉽게 발견되지 않는 인생후배들의 장점, 잠재력, 그리고 가능성을 발견할 겁니다. 그걸 발견해 줄 수 있어야 어른입니다. 그걸 꽃피울 수 있도록 무한한 후원을 아끼지 않아야 어른입니다.


오늘 이말을 드리는 건, “요새 애들은…”이란 말을 쓰는 어른들한테 드리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그 말을 이미 습관적으로 쓰고 있는 어른들은 제가 보기엔 이미 개선의 가능성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20대인 여러분이 앞으로 40이되고, 60이 되어서 다음의 20대를 바라볼 때 그들의 행동이나 생각이 부족하고 허약해도 묵묵히 지켜봐주고 뒤에서 후원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달라는 겁니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 대부분은 허약하고 부족해 보입니다. 당연합니다. 내가 40이면 그들보다 이미 20년의 앞선 경험을 갖고 그들을 바라보기 때문이죠. 당연히 부족헤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그 앞선 경험은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주기도 하겠지만, 그 경험속에 갇혀버리면 나는 그냥 나이많은 아이가 됩니다. 세상엔 개인이 아무리 오래살아도 할 수 없는 수많은 경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긴 세월 동안 여러 경험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더 많은 것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어서와. 어른은 처음이지?”

여러분이 20살이고, 상대가 40이라면 거의 부모뻘이죠. 하지만 이 말을 하고 있는 저도, 여러분도, 그들도, 20살 어린 상대에 대하여 대부분은 아직 어른의 자격도, 부모의 능력도 없습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는 법을 배우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그냥 나이든 아이인 겁니다, 그야말로, “어서와. 어른은 처음이지?”인 겁니다. 그러면서 어른이라고 우기고 있는 거죠. "나이든 아이"라고 하면 창피하잖아요.


어떻게 어른이 되냐고요? 우린 지금 무심하거나, 혹은 간섭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할 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보다 세상을 늦게 시작한 후배들에게 걷는 방법을 습득시킬 의무는 없습니다. 그들은 때가 되면 걷게 되니까요. 단지 그들이 넘어질 때 옆에서 바라봐주기만 하면 됩니다. 나하고 일면식도 없이 아무런 관계가 없어도 모든 나보다 어린 사람은 나보다 더 먼 미래이며 또한 우리의 미래입니다. 그래서 나의 아들이고, 나의 딸이며, 나의 동생이고, 조카입니다. 누군가가 인생의 후배가 길을 잃고 헤메거나 넘어지면, "너는 왜 그 모양이냐"라고 핀잔하지 말고, "괜찮다, 일어나면 돼"라고 말하면 됩니다. 우리는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어른일 수 있습니다. 많은 우리들은 비록 어른을 만나지 못했지만, 우리는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눈빛이 얼마나 진지한지 내가 오히려 내 가벼움에 미안할 지경이었다. 과후배들에게 당장 어른노릇을 해보겠노라며 종종걸음을 치며 아이들이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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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것들이 X
어른이란 것들이 O

항상 생각하고 고민하던 일에 대한 좋은 글을 읽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풀봇이랑 리스팀을 드립니다.

글과 큰 연관은 없지만, 책임감이 부족한 부모와 상담할 때 부모로서의 의무로 이야기하는 것 보다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이야기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나네요.

얼른 팔로하고 봅니당~ @eversloth님 부족한 글에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스팀까지 해주실만큼 좋은 글은 아닌데 영광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우리의 아이들이라면, 부모보단 어른으로서 해야할 일이 더 많을텐데 말입니다.

우와...
요새 젊은 애들은, 이란 말을 한 적이 있는지 반성 좀 하고 지나가야겠어요..

@yuky님~~~ 그러게요 우리도 모르게… 하핫...

어른이라는거 정말 되기 어려운거 같아요. 우린 20살만 넘어도 어딜가든 넌 이제 어른이다라는 소리를 듣지만, 정작 그 어른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하는지에서 대해서는 말해주는 곳이 아무곳도 없자나요. 나이를 먹고 경험을 쌓으면서 나름대로 어른 '흉내' 정도 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soosoo님의 글을 보니 다시 한번더 제 행동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fraudo님^^ 얼른 팔로합니당^^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모두 흉내만 내고 있는지도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처음인데 말입니다. 관심과 댓글 감사드립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어른이란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많은 경험을 통해 성숙해진 존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끔보면 나이가 많지만 행동은 초등학생만도 못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께 어른이라는 말은 조금 무리지 않을까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hopeingyu님 처음 뵙는군요 얼른 팔로합니다.^^ 고맙습니다.

뭔가 엄청난 시리즈를 이제야 발견했네요. 쭉 읽어보겠습니다!

어이쿠 @gyedo님 부끄럽습니다.그렇게까지 불리기엔 부끄럽지만… ^^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말에 쭉 읽었습니다. 너무 재밌어요 ^^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그래서...
어디가서 함부로 어른이라고 하면 안될 것 같아요
철부터 들고...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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