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단상] "단편-아버지는 내게 일찍일어나야한다고 말씀하셨지"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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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아버지는 내게 일찍일어나야한다고 말씀하셨지"


아침에 일어났다 늦잠을 잤다. 9시 30분.
하지만 서두를 건 없다. 바쁜 건 없다. 방 여기저기 널부러진 옷과 책들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던져둔다. 마시다 남은 맥주캔. 병. 주섬주섬 챙겨서는 샤워를 하러 들어가거나 아침에 궁금한 스팀잇의 댓글 보팅들을 제일 먼저 챙겨본다. 폴로에도 접속한다. 이젠 접속방법이 강화되어 항상 이메일로 다시한 번 코드를 확인해야 로그인을 시켜준다. 담배 하나를 꺼내문다. 입맛이 쓰다. 너무 과식하고 잠든 바람에 약간의 가슴통증도 올라온다. 그럼에도 내 머릿속엔 탈고해야 할 원고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 시간이 아침부터 떠오른다.

3년 전만 해도 많이 달랐다. 연구원에 출근. 아무리 늦어도 7시엔 일어나야 한다. 그래도 늦다. 7시 반을 넘겨서 일어날라치면 나는 동시에 두 가지 행동을 해야했다. 한 가지는, 허둥지둥 옷을 집어 던지고 변기에 앉아서 일을 보며 왼손으로는 비누칠과 샤워꼭지를 번갈아 들고 머리를 감는다. 그리고 오른 손으로는 칫솔에 치약짜는 것이 바빠서 아예 치약을 튜브채 입으로 빨아서 짜고, 양치질을 한다. 또 한가지는 화장실로 뛰어가며 내 머리를 쥐어박는 일.

능력도 없고, 게을러서 항상 제 시간에 일을 끝내지 못하면서도 늦잠을 자는 내 게으름에 내가 내리는 엄벌이다. 그래서 시늉만 하는게 아니라 정말 아프도록 쥐어박는다. 때로 나에 대한 분노가 강해질 땐 손바닥으로 몇 차례고 때린다. 자폐증 환자처럼. 그렇게 하면 내가 왠지 좀 나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 게으름에 야단을 칠 줄 아는 사람’. ‘적어도 내가 나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그런 성숙한 사람’.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나를 그렇게 스스로 야단치며 또한 나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어쩌면, 내몸에는 S, 혹은 M의 유전자가 어딘가 박혀있었는지도.

이제 나는 더이상 나에게 그런 가혹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이제 연구원에 사표를 던지고 나와서, 더이상 일찍 일어나도 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게 행하던 그 가학의 행위가 나 스스로에게조차 하면 안되는 행위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옳고 더 좋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과, 늦게 일어난 나를 벌주는 내 행위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젠 알기 때문이다.

생각이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를 키워준 엄한 아버지. 그래도 40이 다되어 가도록 큰 사고 안 치고 이만큼 나름 내 삶을 꾸리고 사는 것이 다 ‘그 양반 덕분’이란 생각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 양반은 새벽운동을 철저하게 지키셨다. “나를 위해”. 새벽 4시면 10살 꼬마였던 나를 끌고 마을에서 가까운 산을 올라가는 그 지독한 행군을 하루도 빼먹지 않았고, 내가 일어나서 준비를 못하거나 올라가다가 잠결에 산길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불벼락이 날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번 산에서 굴러봤다. 혀 끝에서 쇠맛이 나고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산 위에서 맞는 먼동. 그게 나한테 준 맑은 공기, 이른 아침의 느낌. 그리고 세상을 내려다 보는 호연지기.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기분이다. 그분이 내게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고 귀에 박히도록 해 준 훌륭한 교육철학은 때론 내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어느새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이 ‘신심건강하고 밝고 바른 삶을 사는 사람의 제1덕목’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늦잠을 깬 나에게 그렇게 호된 자아검열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큰 사고 안치고 살았던 것은 내가 선천적으로 어떤 강인한 에너지가 없었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봐왔으며, 심심해서 수없이 읽었던 책들 덕분이었다. 아버지 때문이 아니었다. 아, 심심했던 건 공부를 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니까, 그건 아버지 덕분이 맞다.

아버지는 똑바로 살지 않는 ‘인간같지 않은 인간’들에 대해 욕하는데 평생을 썼다. 하지만 돌아보니 내 생각엔 우리 아버지가 제일 ‘인간같지 않게 살다가 갔던 것’ 같다. 여기저기 빚을 졌고, 수많은 여성편력, 그리고 결국 내게 물려준 대단한 빛상속까지.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하느라 2년을 내 법무사에게 월급을 드려야 했다. 가장 깨끗하고 완벽한 삶을 강조했던 양반. 결국 그걸 강조한다는 건 그게 부족해서다. 아, 정말 “인간같지 않게 사는 인간들이 있다”고 강조하고 역설하는 것, “그 ㅅㄲ들 때문에 이 세상이 개판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 틀림없다. 그건 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우리 아버지 때문에 그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또 하나의 내 (가 배워야만 했던) 철학은 ‘유비무환’이었다. 항상 미래에 대비하라는 철학. 모든 것은 미래에 맞춰져 있었다. 항상 준비하는 자세. 그것은 뭔가 아직 얼마 살아보지 못했던 10대의 내게는 어떤 환상같은 것이었다. 거기만 가면 뭔가가 있을 것 같았고, 빨리 도착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때를 대비해야했다. “지금은 힘들어도 괜찮았다” 거기만 가면, 그 때가 되면 다 보상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날은 매우 더욱 더 충격을 받은 날이었다. 엄한 아버지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금 - 그러니까 그 때 - 의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한 소년의 이야기였다. 엄청스레 고생스러웠던 삶의 이야기였지만 나는 그게 현실이었으니까, 전혀 흥미가 없을 수 밖에. 그 날이 충격이었던 이유는 아버지는 그날부터 그 이야기를 매일 반복해서 되뇌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맨날 유비무환을 중시하고 미래를 대비하라고 내게 가르쳤는데, 그 아버지는 그 유비무환을 누릴 시절에야 비로소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것도 내 나이 또래의 과거를.

그래서 알게 되었다. 그 땐 충격이었지만, 이젠 그 충격의 날이 왜 내게 충격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유비무환을 내게 가르쳤고, 모든 유비무환을 갖춰서 살아왔던 아버지는 그걸 준비하던 시절의 가상세계로 돌아가서야 진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아 진짜 ㅂㅅ같다… 그걸 알고도 내게 그걸 중요하다고 가르쳤다니. 아버지라도 그냥 한 대 쳐주고 싶었다. 내가 아버지를 치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가 그토록 강조했던 어른에 대한 존경과 예의때문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그 교육관이 나는 모르는 양반이지만 아마도 할아버지로부터 왔을거라는데까지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더이상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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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말씀이지만..정작 따랐을때 보상은 틀리죠 ㅎㅎ 인생에정답이없는것같습니다.

@realgr님~ 그런가요^^ 관심 감사드립니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말은 정말 유일한 정답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저역시 같은생각입니다..ㅎㅎ 정답이없는것같습니다. 뭐가 뭔지 모르고 살고있는 제모습을 보니말입니다. 수수님은 어떤 연구원이셨는지요 궁금합니다. 읽는 글에서마다 지식과 내공이 묻어나는듯합니다.

@dyuryul님~ 와주셨군요~ 이 글은 사실 픽션입니다. 1/5정도의 제 삶의 지분이 들어있긴 하지만요^^ 안쓰던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어서 생각나는대로… 그냥 막 설정 해 봤습니다. 극중 아버지는 약 대여섯 명 정도가 한 명으로 함축된 사람이고요… 지식과 내공. 너무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참 똑똑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스팀잇에 와서 다른 분들의 글을 보니 많이 자만했구나 반성하고 있습니다. @dyuryul님도 그 중 한 분이고요. 고맙습니다. ^_^

짧은 글인데도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었네요. 공감되는 내용도 많고... 잘 읽고 갑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우와~ @maritus님 ~ 좋게 평가해주셔서고맙습니다. ~

수수님의 글은 뵈면 뵐수록 1류인거 같습니다. 상당히 어리신 분인줄 알았는데 저와 거의 동년배인걸 알고 깜놀했습니다. 왠지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드네요. 그리 좋은분은 아니셨던 아버지까지... 비슷하셨네요 :)

ㅋㅋㅋ @segyepark님 ㅋㅋㅋ 아버지… ㅋㅋㅋ 역시 아버지가 쫌… 별로인 경우에 2세가 좀 괜찮은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철이 쫌 없어서… 애나 혹은 정반대로 아줌마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인데요… 실제로 쫌 피터팬이기도 하고요… 저 79입니당 저와 비슷하신가용?

헐 대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79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동갑내기 분을 또 뵙네요 기분좋당 ㅋㅋㅋ @girina79님도 닉네임이 바로 말해주듯 같은 동갑내기입니다!!

헐. 79 만나기 쉽지 않던데… ㅋㅋㅋㅋ 반갑습니당. 70년산 제조 중 79년 모델이 가장 잘 나온 모델이랍니다 ㅋㅋㅋㅋ 진짜 반갑습니다. @girina79님도 찾아뵈야겠군요 팔로는 되어 있는데 낯설어용 ㅋㅋㅋ 뭐 스팀잇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기억남는 @segyepark님이 동갑내기라뇨 왕~ 더 자주 뵙죵~

저 등장했습니다! 수수님도 79년생이셨군요~~!!
반갑습니다~ ㅋㅋㅋㅋ

@girina79님 ~ 가장 잘나온 79년 모델 또 한 분 여기 계시는군요. 반값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변엔 이상하게 79가 잘 없더라고요… 아 이거~ 79클럽 하나 만들어야 하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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