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단상] "단편_ 응용인문학강의실 M201 #2"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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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_ 응용인문학강의실 M201 #2"

프리젠테이션을 밤새 준비했다. 전공이 제3 - 흔히 말하는 - 국의 철학이나 언어이다보니, 실질적인 효용성 같은 건 별로 없었다. 흔히 ‘생존’ - 21세기에 우리 생활에 이런 말이 쓰여야 하는게 이상하지만 - 의 현장에서 우리같은 관념적인 학문을 연구하는 이들은 ‘문송’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래도 나는 “지방시”같은 책을 쓴 저자가 느낀만큼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지 않은 것은 참 다행이었다. 어제 낮 하루종일 지방시를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졌고, 별로 슬픈 내용은 없는데도 왠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모든 분야가 그랬다. 그래도 안정적으로 학부과정까지라도 부모의 지원아래서 있었던 이들은 그게 뭐 어렵냐고 하겠지만, 다들 나름의 노력만큼 생존의 필요한 것들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수십년에 걸쳐 만들어 둔 자본의 계급들간의 격차는 사실 흔히 말하던 ‘개인의 타락’인 ‘배금주의’니, ‘물질만능주의’니 하는 비판을 통해 지적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올라가지 않으면 생존에 위협을 받는 이 사회에서 개인에게 문제를 돌리는 것은 이미 너무 무책임하고 사회전체의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만 보였다.

사실 그래도 어떻게 이 전공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비인기에 좀 실리가 아니라 공부를 좀 해보겠다고 들어온 학생들이 하나같이 잘생기고 예쁘게만 보였다. 또 고맙기도 하고...

저번에 상대평가와 로봇 이야기를 했었죠? 문제는 현대에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 대체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로봇화가 문제라고 했어요. 바로 이 시작은 산업이에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역시 매우 부지런했지만, 농사는 무조건 열심히 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연이 주는 비, 빛, 바람을 기다려야 했어요. 그래서 그 시기를 잘 읽어내야 파종부터 수확에 이르는 몇 달에 걸쳐서 하나의 작업을 끝낼 수 있었어요.

그러니 일만 하는 것 같았지만 농부들의 노동엔 여유가 있었죠. 아, 혹시 오해할까봐 그러는데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는 제외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건 아마 따로 이야기 해 보도록 하죠. 그래서 그 시기까지만 일을 마치면 되었어요. 몇몇 작업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일을 할 필요도, 할 수도 없었죠. 현대의 농사와는 많이 다른 양상이었어요.

외국에서 한국인을 대표하는 말은 ‘빨리빨리’죠? 이게 바로 산업화되면서 한국 사람의 삶의 양상, 성질, 한국사회가 완전히 바뀐겁니다. 우린 원래 가장 여유있고 느린 민족이었어요. 100여년 만에 성질급한 사람들로 취급받게 된 겁니다. 산업이란 일을 한 양만큼 결과가 바로 나오는 구조에요. 그러니 무리를 해서라도 많이 일하면 많은 결과와 보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동양사람들의 사고에요. 하지만, 산업에 필요한 기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니에요. 효율이죠.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능력이 없고 능률이 낮으면 민폐일 뿐이죠.

능력과 능률은 원래 사람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가치는 아니에요. 바로 기계에 요구되는 가치죠. 얼마나 성능이 좋고, 고장이 덜나고… 뭐 이런거 말이죠. 근데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걸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즉,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이 위주가 아니라, ‘일’이 위주가 된거죠.

산업화는 우리에게 ‘음식쓰레기’란 50년 전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말을 쓸 수 있을 만큼의 밥을 주었지만, 우리를 어떤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는 기계로 전락시켰어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된 건 아닙니다. 어떤 이유로든 이미 많은 재화를 선점한, 이른바 자본가들, 혹은 생산을 열심히 해서 돈을 많이 벌게 된 뒤늦게라도 자본가가 된 이들은 더이상 생산기계가 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자본가와 노동자란 계급이 산업회 시대에 생겨납니다. 새로운 계급이죠.

자본이란 말은 돈 자체가 하나의 씨앗이 되고 재료가 되어서 새로운 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즉, 이미 돈이 있으면 돈이 다시 돈을 낳기 때문에 대개 자본이 있으면 자본이 계속 늘어나고, 자본이 없으면, 번 재화를 모두 생계유지에 소배해야 하기 때문에 자본가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게 “부익부 빈익빈”이고, 다른 말로는 경제적인 “양극화”에요.

저… 자본이 자본을 어떻게 낳습니까.

역시 책상이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던 그 학생의 질문이었다.

자본을 더 많은 자본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건, 이자와 빚이에요. 고리대금, 빚쟁이 이런 말들은 매우 부정적이죠? 하지만 자본가들은 그렇게 해서 돈을 법니다. 빚을 주고 이자를 받죠. 내가 월급을 받지 않고 직접 일을 할려면 현금이 있어야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이걸 ‘투자’라고 합니다. 캐피털리즘, 이른바 산업화에 기반한 ‘자본주의’의 탄생이죠. 그래서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겁니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으면서 돈을 불리죠. 이 때 돈을 빌린 사람들은 채권(bond) 혹은 차용증(IOU) - 재미있는 표현이죠? - 을 발급해줘야 합니다. ‘어음’은 우리말인데 조금씩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원리는 동일합니다. 사실은 수표(check)도 마찬가집니다. 현금이 없으니 나중에 주겠다고 이런 걸 발행해 주고 그 날짜에 현금이 없어 갚지 못하면 사업은 파산하죠.

하지만 채권을 받고 돈을 빌려준 거대 회사들은 자금량이 많기 때문에 이 채권을 훨씬 싼 값에 전문적으로 돈을 받아내는 이들 - 채무추심 - 에게 팔아버립니다. 심하게는 10%의 가격에도 판다는군요. 바로 oo신용정보라고 이름 붙은 회사들이죠.

너무 돈 이야기만 했군요. 저는 경제쪽은 잘 몰라요. 하지만 대략 이런 구조를 자본주의라고 하고, 거기서 고지를 선점한 이들을 자본가라고 하며, 그 자본가들로부터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이들이 노동자입니다. 노동자라고 하니 어감이 어디 빈국에서 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 같죠? 아닙니다. 우리와 우리주변의 많은 이들이 자본가나 중산층이 아니라면 사실은 대부분 노동자 계급입니다.

9시에 시작한 강의진도의 2/3정도를 나가니 11시다. 강의실 밖에서 햇볓이 직사광선으로 들어온다. 10여분 만에 땀이 날 정도로 더워진다. 에어콘을 켜니 살짝 곰팡이 냄새가 난다. 에어콘을 꺼버리고 학생들과 파리날려에 다 가서 커피 한잔씩을 나누기로 했다. 걸어가는 동안 학생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신이 났다. 16-7년 정도 밖에 차이나지 않는데 모두 애기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 학생들이 뭘 알까 하는 상념을 해 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얼마지나지 않아 조별 발표수업을 듣고, 토론을 거치는 과정에서 여지없이 깨어졌다. 20대초반 학생들의 수준은 내가 20대에 가졌던 것 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고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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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수수님!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저의 작은 경험으로 비추어볼때에도 한국에선
'즉,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이 위주가 아니라, ‘일’이 위주가 된거죠.' 이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거든요. 하지만 지금 사는 곳에선 아직까지는 '사람' 이 위주이구나.. 라는게 많이 느껴져서 한국의 이런 상황들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해요.
'일'이 위주가 되면 정말 효율이 오르는건가. 우리가 막연히 그렇게 믿고있는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ㅎㅎ 좋은글 읽어서 그런지 여러가지 생각이 많아지네요. 두서없지만.. 결과적으론.. 글 감사하다는 말이였습니당 ^-^ㅋㅋ

저도 @dayoung님의 금손을 보고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는데 와주셔서 이렇게 또 정성스런 댓글을 달아주셨군요. 내놓기 부끄러운 생각들에 동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밖에 나와서 살다보면 좀 더 차분하게 한국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란 말이 반드시 좋은말이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는 참입니다. 살려고 일을 하는건지, 일을 할려고 사는건지… ^^ 고맙습니다.^^

저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러시아 갔다오느라 못 들렸어요 그동안 수수님 ㅠㅠ

tip!

@rbaggo님~ 와주셔서 감사해용 헐 팁 너무 감사합니다ㅜㅜ 러샤~ 잘 다녀오셨는지용?

기계화 된 사람은 쉬는 시간에도 불안 하지요... 아무일이 안생기는걸 참을수가 없어서 그래서 수행을 하면 좀 극복할수 있을까 하고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여유가 오히려 불안을 가져온다는게 참 슬픕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올께요^^

@heeyaa35님~ 반갑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자주뵐게용~

잘보고 갑니다
이브 즐겁게 보내시구요~~~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yangpankil27님 감사합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좋은글 잘읽엇습니다
뉴비이지만 자주 뵙고싶습니다! 팔로우와 보팅하고갈게요
즐거운 저녘되시길바랍니다

고맙습니당~ 맞팔합니다. 자주뵈어용~~ 메리크리스마스~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깊은세계^*^ 매일 받기만하가다가 오랜만에 찾아왔씁니다.좋은 한주되세요

@steemitjp님~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갑자기 댓글이 먹먹해집니다!

Hi @soosoo! You have received 0.1 SBD tip + 0.03 SBD @tipU from @rbag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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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여유가 있던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복의 넉넉한 품, 바깥 풍경에 맞게 짓던 집들, 쇠못 하나 없이 잇던 배들... 우리 선조들은 모두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gaeteul님 또 와주셨군요. 옳은 말씀입니다. 한복, 풍경과 조화로운 집, 배… 별로 해보지 않은 생각인데 @gaeteul님 덕분에 또 멋진 상념에 빠져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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