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과 수제 시가

in #kr6 years ago

이미 워런 버핏에 대한 일대기, 일화와 수 많은 명언 등은 알려질 대로 알려진 상태입니다만, 다음 달이면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도 있고해서 워런 버핏에 대해 좀 더 알아 보겠습니다.

새로운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미 알고 계실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함께 나누어 보시기 바랍니다.

WB.jpg

보통 알려진대로 워런 버핏은 어렸을 때부터 비즈니스에 탁월한 센스를 보였습니다만, 워런 버핏 자신도 자신이 부자가 되기로 마음 먹은 계기가 있었다고 밝힌 적이 있었습니다.

워런 버핏의 어린 시절은 그의 고향 네브래스카 뿐 아니라 미국 전체가 1929년 대공황의 영향으로 엄청난 타격을 받은 상태였고, 당시의 많은 아이들처럼 워런 버핏 역시 돈을 아끼는 습관을 가지며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워런 버핏의 아버지 하워드 버핏은 자신의 아이들이 10살이 될 때마다 단 둘이 동부 쪽으로 여행을 가곤 했습니다.

둘째인 워런 버핏이 10살이 되던 해, 워런 버핏의 아버지는 뉴욕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숫자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던 워런 버핏은 스캇 '우표와 동전' 회사(Scott Stamp and Coin Company), 라이오넬 기차회사(Lionel Train Company), 그리고 뉴욕 증권 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에 가보기를 원했습니다.

워런 버핏의 마지막 방문지였던 뉴욕에서 증권거래인이었던 애트 몰(At Mol)과 함께 점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자 한 종업원이 여러가지 종류의 담배 잎을 모두 쟁반에 올려 놓고 몰 씨(Mr.Mol)에게 보여주고, 그가 선택한 담배잎으로 궐련(시가,cigar)을 직접 말아주는 장면을 보았던 것이죠.
지금 기준에서 VVIP를 위한 서비스였던 것입니다.

시가.jpg

워런 버핏은 이 때 '더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it can't get any better than this)'의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미국 전역을 강타한 대공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 살고있던 그 당시에도 누군가는 수제시가를 주문할 정도로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워런 버핏의 눈에는 '증권거래소'는 '현금이 넘쳐나는 곳[fountain of cash]'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부터 워런버핏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헌신 할 것이라고 다짐을 하게 됩니다.
어린 워런 버핏은 그때 이미 ‘돈’의 힘을 알아챈 것이었을까요?

워런 버핏은 '돈'이라는 수단을 통해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었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돈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물질의 부유함을 통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나아가서 다른 사람도 돕는 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요?
이 글을 읽는 저와 여러분 모두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그날까지 정진합시다!

출처: Baer, Drake. (2014). Warren Buffett Had An Epiphany At Age 10 That Set Him On The Path To Being America's Second-Richest Man. Retrieved from http://www.businessinsider.com/young-warren-buffett-epiphany-life-decision-2014-11.


일전에 소개해 드린 펀딩이 계속 진행중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호응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아래 그림을 클릭하시면 펀딩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펀딩.png


이전 포스팅 내용이 궁금하시면 아래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옵션 기초

어닝 플레이

옵션 매매 일지

인사이트 및 뉴스

Coin Marketplace

STEEM 0.16
TRX 0.16
JST 0.030
BTC 58551.10
ETH 2514.90
USDT 1.00
SBD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