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독일신 20 - 철학 없이 빌바오를 베끼려는 지자체장들

in #kr5 years ago (edited)

한국에서 수도권의 몇몇 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는 인구가 감소 중입니다. 그래도 기업들이 꽤 있어서 어느 정도 일자리가 있는 지자체는 상황이 괜찮지만, 좋은 일자리가 시청이나 군청, 공공기관 뿐인 지자체도 상당합니다. 그래서 많은 지자체장들이 '관광'으로 돌파구를 모색하려 합니다. 어떻게 하면 관광객이 찾는 지역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쉽게 생각하는 것이 '휴양시설'이나 '랜드마크'입니다. 특히 해외의 유명관광지를 어설프게 보고 돌아와서 그런 생각을 하기가 쉽죠.

오늘은 이런 지자체의 행태를 따끔하게 지적하는 한 건축가의 글을 소개합니다. 서현 한양대 교수가 쓴 글인데요. 인상깊은 내용이 많습니다.

중앙일보 - [문화탐색] 관광도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그는 지자체장들이 왜 어설픈 주문을 하는지를 진단합니다.

"젊어서 외국 체험 기회가 없던 세대가 나이 먹고 사회 주역이 되었다. 방문한 도시의 속살을 관찰하거나 가치를 음미할 여유 없이 바쁜 고위직에 덜컥 올라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질주하는 관광버스 유리창 너머로 보고 느낀 대로 건축가들에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랜드마크 만들어 주시오. 상징조형물 건립합시다. 관광객이 밀려오도록."

서울에 한옥은 여러 곳에 있지만, 왜 북촌에 관광객이 몰리는지도 분석합니다.

"서울에도 관광객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곳이 있다. 너무 밀려들어 주민들이 분노의 팻말을 써 붙이기에 이른 곳이 북촌이다. 한옥이야 남산, 민속촌에도 있다. 그러나 북촌에 관광객이 밀려드는 건 이곳이 세트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삶의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진정 관광도시가 되고 싶다면, 그가 내린 해법이 정말 깔끔합니다. 주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면 됩니다.

"우리에게는 걸어서 갈 수 있는 놀이터와 도서관이 가득 필요하다. 그 벤치에서 이국의 관광객이 안전하고 불편 없이 쉴 수 있으면 그게 관광도시다."

우리가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이 마땅히 이래야 하지 않을지.. 너무나 공감하고 추천하고픈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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