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7

in #kr-series2 years ago (edited)

연이 한 번은 전화하지 않을까 생각한 건 내 착각이었다. 연은 내가 퇴원하기 전까지도 전화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주의 전화. 주는 다음날 학교 끝나자마자 내게 전화를 했다. 보러 오겠다고. 내가 입원한 병원은 종로와는 반대 방향이었다. 병원에 왔다가 다시 종로에 가려면 한 시간은 가야 했다. 주는 간식거리와 읽을거리를 들고 날 보러 왔다. 날 보자마자 울먹일 듯 한 표정을 지으며 와서는 어떡하다 다친 거냐고, 흉터는 안 남느냐고 걱정을 했다.

"어제 이상했어요. 오빠가 안 보이니까 제 마음이 이상했어요. 이 아린 마음은 뭐지? 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은 뭐지?"

난 주의 말을 듣기만 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이 잡힐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도 같아서였다. 사귀지는 않았지만, 연과 나는 가게에서 소문만 사이었고 주도 분명 알고 있을 테니까. 연과 내가 썸을 타다가 연의 전 남자친구가 나타나서 어쩌다 차인 신세가 됐고, 그 후로 난 주방에 틀어박혀서 일만 하고 술만 마셨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주는 인사하고 그러는 사이긴 했어도 제대로 대화를 하거나 그런 사이는 아니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다.

"제가 오빠를 좋아하나 봐요. 너무 헷갈리고 복잡해서 어제 잠도 못 잤어요. 그런데 오빠 얼굴이 자꾸 떠오르고 막 보고 싶은 거 있죠. 학교에서 수업이 하나도 안 됐어요. 빨리 오빠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설마... 아~~~ 설마... 안 되지. 그건... 내가 만약 이 애의 마음을 받으면 난 정말 속물이 되는 것이었다. 내 치부를 다 보였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알고 있는 주의 마음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제 하루 못 봤을 뿐인데, 그런데 너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저 오빠를 많이 좋아하나 봐요."

"어? 어... 그... 그래."

우린 잠깐 대화를 나눴고, 주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서둘러 일어났다. 가면서도 울 듯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나가는데, 난 다리가 너무 아파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한 과정, 치료한 과정은 또또통에서 매우 자세하게 다뤘다. 옆에서 간호해준 현정이를 빼고는 모두 팩트다. 난 극심한 다리 통증 때문에 화장실에 갈 수 없을 지경이었고, 그래서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셨다. 걸을 수가 없었다. 간호사가 휠체어를 가져다줄까요 물었지만 거기에 앉긴 싫었다. 내가 장애인도 아니고. 하지만 입원한 지 얼마 안 되어 팔에 극심한 통증이 생겼다. 너무 아파 진통제 주사를 맞았고, 이 통증은 이틀간 지속했다. 그리고 내 손은 마비됐다.

(또또통 발췌)

자려고 누웠는데 왼팔 팔꿈치 안쪽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이 통증은 뭘까. 소독할 때의 통증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일단 참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통증은 나아지긴커녕 점점 더 심해졌고 난 다리를 질질 끌고 간호사에게 갔다.

"저기요, 팔이 너무 아파요. 팔이 끊어질 것 같아요."

간호사는 내 팔을 보더니 의사에겐지 누구에겐지 연락을 하는 것 같았다. 난 기다리는 시간도 고통이었다. 팔을 잘라내려고 무언가로 쑤시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이 통증은 뭘까. 소독할 때보다도 더한 통증이었다. 이 통증은 오직 한 곳 팔꿈치 안쪽에서만 느껴졌다. 잠시 후 간호사는 주사를 나줬다. 그때야 난 살 것 같았다.

아침 회진 때 의사가 어젯밤 왜 아팠는지 모르겠다며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보통 화상의 경우에 이런 통증이 동반되진 않는다고 하면서 내게 겁을 주기도 했다. 난 몇 가지 검사를 했고 현정인 옆에서 날 도와줬다.

다시 밤이 됐다. 현정인 자기가 없을 때 아팠던 게 미안했는지 집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옆에서 간호해줄 거라며. 그리고 어제 아팠던 시간에 다시 통증이 시작됐다. 난 인상을 쓰며 참다가 현정이에게 간호사를 불러달라고 했다. 현정인 울먹이며 간호사를 불러왔다. 아무래도 현정이 별명을 울보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왜 저렇게도 자주 우는지. 간호사는 의사와 연락을 하더니 어제 놔준 주사는 두 번 맞을 수 없는 진통제라며 참으라고 했다. 아~~~ 참으라니. 팔이 잘릴 것처럼 아픈데 참으라니. 난 이 상황도 현정이에게 미안했다. 계속 울고만 있는 현정이. 계속 인상만 쓰고 있는 나. 난 갑자기 기도가 하고 싶어졌다. 기도하면 아프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이 고통을 멈춰주세요.' 하지만 고통은 멈추지 않았고 현정이와 난 그렇게 밤을 새웠다. 새벽쯤 됐을 시간이었을까. 졸려서 잠이 들었는지, 아프다 지쳐 잠이 들었는지 난 잠이 들었고 현정이도 내 손을 쥐고 옆에서 잠이 들었다.

식사 알림에 잠에서 깼다. 통증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느낌이 좀 이상했다. 팔이 내 팔이 아닌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었다. 난 내 왼팔을 들어 움직여봤다. 팔은 움직였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 왜 손가락이 안 움직이지? 난 오른손도 확인했다. 오른손은 엄지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 뭐지? 난 마치 손가락 움직이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 같았다. 왼손 손가락 다섯 개와 오른손 엄지는 내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뭐지? 왜 내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지?

아침 회진을 돌던 의사는 이상하다는 말만 했다. 보통 깁스를 오래 하면 근육이 굳어지기는 하지만 하루 만에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우선은 화상 치료를 먼저 하고 화상 치료가 마무리돼갈 때쯤 신경 검사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너무 걱정하진 말라며, 보통은 깁스를 오래 하거나 붕대를 오래 하고 있어서 근육이 굳은 경우엔 재활로 금방 원래대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난 의사의 말을 믿었다. 하루 만에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아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검사를 해보고 재활을 한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중략)

퇴원 날짜가 잡히고는 신경 검사를 하게 됐다. 신경 검사는 재활 쪽이라서 병동이 달랐고 난 병동을 옮겨 검사를 했다. 신경을 어떻게 검사한다고 해서 조금 무섭기도 했다. 의사는 침대에 누우라고 하고는 내 팔에 바늘을 꽂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계속 꽂았다. 바늘은 한의학 침처럼 생겼는데 몇 개나 꽂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내 팔 팔꿈치에서 손목과 손가락까지 온통 바늘투성이가 돼버렸다. 그러곤 전기 같은 걸 흘리면서 검사를 했다.

"느낌이 오나요? 이상하다 왜 안 잡히지?"

의사는 안 잡힌다며 내 팔에 꽂힌 바늘들을 잡고는 마구 휘저었다. 그때마다 난 고통스러워 인상을 쓸 수박에 없었다. 결국 옆에서 지켜보던 울보 현정인 또 울고. 이런 이런. 난 최대한 인상을 안 쓰려고 노력했지만 고통을 숨기는 재주가 없었다.

퇴원 전 마지막 회진. 하지만 의사는 보호자와 함께 얘기할 게 있다며 날 불렀다. 검사 결과가 안 좋았나? 난 걱정 반 궁금증 반으로 의사 면담을 했다.

"검사 결과가 매우 안 좋아요. 왼팔은 전체적으로 신경이 죽었다고 보면 됩니다. 신경이 아예 잡히질 않아요. 중간에 끊겼다고 봐야 합니다. 죽은 거나 마찬가지죠. 오른손은 다행히 엄지손가락만 같은 증상입니다. 이런 경우엔 완치가 불가능합니다. 신경이 살아 있어야 재활이든 치료든 해볼 텐데 신경이 완전히 죽었다고 보면 됩니다. 치료도 재활도 소용없지요. 이수 씨, 아직 군대 안 갔죠? 군대도 못 가게 될 겁니다. 그리고 곧 장애인 등록도 하게 될 거고요,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 될 겁니다. 제가 이렇게 모두 말씀드리는 건 아직 너무 젊은 나이라서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왜 길에 다니면 손을 못 써서 구걸하는 사람 가끔 보이죠? 그런 사람들처럼 손을 영영 못 쓰게 될 테니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합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신경 이식 수술을 하면 됩니다. 하지만 수술이 워낙 고가인 데다가 성공 확률도 매우 낮습니다. 그리고 성공한다고 해도 완치는 어렵고 50% 정도 치료가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성공 확률이 너무 낮습니다. 매우 비싸고요. 한 번 해서 될 수술도 아니고 여러 번 해야 하는 수술입니다."

(중략)

"저기 선생님, 저기, 수술비는 얼마나 들어요? 제가 다 낼게요. 우리 오빠 치료만 해주세요. 네?"

"비용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시죠. 지금은 최대한 수술을 미루면서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화상 후유증으로 단기간에 신경이 마비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라서요. 신경 검사에서도 전혀 신경이 잡히지 않는 것도 좀 그렇습니다. 한 달 후에 재검사를 해보고 그때 다시 결정해도 됩니다. 하지만 장애인이 될 준비는 단단히 하셔야 합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신의 장난이란 말인가. 내 왼팔 팔꿈치 아래 전체와 오른손 엄지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니. 영영 움직일 수 없다니. 말도 안 돼.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 난 겨우 스무 살이 아닌가. 겨우 스무 살에 장애인이 된다니. 난 돈이 없어 대학을 포기했고 식당에서 일했을 뿐이었다. 난 그저 돈을 벌고 싶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 싶었다. 먹지 못해 늘 어지러웠고 자주 쓰러지곤 했던 초등학생 시절, 매일 같은 옷에 찢어진 운동화에 냄새나는 아이, 미술시간엔 준비물을 사 가지 못해 미술시간 내내 뒤에서 손들고 서있던 서러움, 수학여행에 가지 못한 게 너무 억울해서 일부러 내리는 비 다 맞으며 정처 없이 떠돌던 고등학생 시절을 이겨낸 나였다. 그런 날들을 살아온 내가 이제 돈을 벌어보겠다고 일했을 뿐인데, 그런 내게 신은 내게 장애를 선물해줬다. 뭐 때문에? 왜?

한 손으로, 게다가 엄지손가락을 쓸 수 없는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적었다. 젓가락질을 하지 못해 포크를 써야 했고 펜을 쥘 수도 없었다. 게다가 단추가 있는 옷은 입을 수 없었고 지퍼도 겨우 올리고 내렸다. 난 엄지손가락이 없으면 물건을 쥘 수도 없다는 걸 깨달으며 살게 됐다. 엄지가 없는 네 손가락은 물건을 쥘 수도 없었다. 동전 하나 잡을 수 없었다.

이런 손으론 일할 수 없었다. 난 바로 퇴사를 했고 현정인 나를 돌봐야 한다며 나와 같은 날 퇴사를 했다. 그러곤 매일 아침마다 우리 집으로 출근을 했다. 아침 일찍 와서는 아침밥 먹는 일을 도와줬고, 옷 입는 일을 도와줬으며, 내가 손을 써야 하는 모든 일을 도와줬다. 아니 병수발을 들어줬다. 난 그런 현정이가 고맙게 느껴졌다기보다는 또다시 내 필요에 의해 현정이를 이용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사랑하지도 않는데도 사귄다는 이유로 현정이에게 병수발을 시키고 있었다.

(발췌 끝)

또또통의 병원 장면에서 현정이와 소휘가 등장한 것만 제외하고는 모두 사실이다. 내 경험을 그대로 옮겼다. 그리고 병원에서의 현정인 현실에선 '주'였다. 그리고 병원에서 '영접 기도문'을 따라 하고 떨리던 몸이 멈춘 것도 사실이다. 지루한 낮,,, 병원 전도팀이 돌다가 내 앞에 있는 아저씨(또또통 표현 그대로,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를 발견하고는 위로해주고 걱정해줬다. 그러곤 기도를 따라 하라고 했다. 그땐 그게 무슨 기도문인지 몰랐는데, 나중에야 '영접 기도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틀 넘게 몸을 덜덜 떨고 있던 아저씨는 기도를 마치는 '아멘'소리와 함께 떠는 행동을 멈췄다. 뭐지? 기도한 번으로 기적이 일어난 걸까? 설마.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난 믿지 않았다.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다.

위의 발췌 부분에서처럼 주는 내 손발이 돼줬다. 주는 학교가 끝나면 날 보러 와서는 잠깐만 보고 다시 아르바이트하러 갔다. 그리고 쉬는 날엔 아침부터 종일 병원에 있어 주면서 내 손발이 돼줬다. 난 죄책감이 들었다. 날 좋아한다는 이 아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외롭다고, 내가 손이 불편하다고 싫다는 말없이 그냥 옆에 두고 있는 내가 미웠다. 난 나쁜 놈이었다. 내 치부를 본 주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으면서도 난 주에게 오지 마라거나 널 좋아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내 첫 장편소설 '사랑은 냉면처럼' 29장의 키스 장면은 주와 병원에서 있던 일을 약간 참고했다. 늦여름의 9월, 산책하자며 병원을 돌던 우린 해가 떨어지는 의자에 나란히 앉았고, 주가 기습적으로 내게 입술을 대버렸다. 난 그 자리에서 녹아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난,,, 내가 보기에도, 내가 생각하기에도 저질스러운 남자가 됐다.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미안해야 했음에도 미안해하지 않았고, 자격이 전혀 없음에도 내 자격 없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주는 내 옆에서 밥을 떠먹여 주고, 화장실에 데려다주고, 옷을 입혀줬다. 손이 마비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주는 그런 날 위해 내 옆에서 내 손이 돼줬다.

퇴원하는 날 주가 선물 하나를 내밀었다.

"퇴원 선물이에요."

작은 일기장 한 권이었다. 겉표지를 펼쳐보니 주의 사진이 보였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부터는 내게 쓴 편지들이었다.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내게 쓴 글 들이었다. 그리고 친구들의 사진과 응원 글이 가득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 친구 ㅇㅇ이에요. 예쁜 사랑 하세요... 어쩌고저쩌고 응원 글이 여러 페이지 이어졌다. 일기 편지에, 친구들의 응원 글로 가득한 작은 일기장에 난 감동이었다. 너무 좋았고 너무 행복했다. 난 그런 내가 가증스러워 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슬프다고 술 퍼마시던 내가 아닌가. 난 왜 이렇게 속물일까. 난 왜 이렇게 더러운 사람일까. 난 내가 미우면서도 주가 내게 하는 대로 그대로 다 받기만 했다.

다시 식당에 출근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붕대를 감은 부위는 얼마 안 됐지만, 난 손이 마비돼 있었다. 왼손은 전체 마비였고, 오른손은 엄지손가락이 마비였다. 엄지손가락이 얼마나 소중한지 온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네 손가락은 사실상 별 쓸모가 없었다. 단추 하나 잠그지 못했고, 펜도 못 잡아 그 좋아하는 일기도 쓰기 힘들었고, 젓가락질도 못 했다. 좀 벗어난 얘기지만, 난 젓가락질 실력이 형편없었는데, 나중에 손이 정상이 된 다음 난감한 상황이 찾아왔다. '어??? 젓가락질 어떻게 하는 거였지?' 평생을 해온 젓가락질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 배웠는데, 지금은 정석으로 한다. 기가 막히게 잘한다. 그래서 난 젓가락질 서툰 후배들에게 꼰대 짓을 한다. '야, 젓가락질이 그게 뭐냐? 하루만 연습하면 해. 내가 경험자야. 가르쳐줄까?' 그동안 연은 물론 연의 친구들도 모두 그만둔 후였다. 다행이었다. 연의 얼굴을 다시 볼 자신이 없었으니까.

위 발췌에서도 봤듯이 신경 검사 결과는 나빴다. 의사는 내게 장애인이 될 거라고 했다. 장애인... 장애인이라니. 의사는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했다. 물론 군대는 못 갈 거라고 했다. 고모와 작은아버지들은 그래도 장남인데 얘를 어떻게 하냐고 걱정만 했다. 걱정으로 끝냈다. 난 철저하게 혼자였다. 혼자 이겨내야 했다. 그래서 마음도 독해졌다.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런 내가 주에겐 부담으로 작용했다. 난 주에게 이렇게 마비된 손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고졸에 배운 기술이라고는 요리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적었다. 마비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적었다기보다는 아예 없었다. 요리는 손으로 해야 하는데 마비된 손으로는 요리도 할 수 없었다.

난 신이 원망스러웠다. 신이 저주스러웠다. 잘살아 보겠다고 발버둥 친 내게 신이 한 짓은 손 마비였다. 내 손을 마비시켰다.

'넌 불행해야 해. 네가 불행해야 내가 행복하니까. 어라, 그런데 식당에서 잘나가네. 어라, 최연소 주방장도 가능하겠는걸? 절대 그럴 순 없지. 내가 널 불행하게 해주겠어. 옜다. 손 마비!'

신이 내게 이렇게 했다. 난 그 신을 저주했다. 두 번의 신경 검사 결과는 나빴고 나는 장애인 확정이었다. 언제 수술을 하고 언제 장애인 등록을 하느냐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 난 점점 더 성격이 괴팍해져갔고 주는 내 옆에 있으면서 점점 더 힘들어했다. 겨우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주. 손이 마비되어 점점 괴팍해져 가는 남자친구를 얼마나 더 감당할 수 있었을까. 난 두고두고 후회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왜 나는 주에게 나쁜 남자였을까. 왜 나는 주에게 개놈이었을까. 난 평일엔 집에만 처박혀 있다가 주말이나 돼야 주와 함께 외출할 수 있었다. 주는 내게 손이었다. 난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내 손은 있으나 마나 했다. 그런 내게 주는 내 손이 돼줬다. 하지만 주는 힘들어했고 점점 지쳐갔다. 난 힘들어하고 지쳐가는 주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개놈이었다. '네가 내 여자친구니까 내 손이 돼줘야지. 당연한 거 아냐?' 미친놈. 난 그렇게 생각했다.

"오빠, 우리 헤어져요."

"어? 왜? 아니, 왜?"

"이유는 묻지 말아줘요. 우리 헤어져요."

"안 돼. 그럴 순 없어. 나를 봐봐. 나한텐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잖아. 넌 내 손이야. 너 없인 외출도 못 해.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헤어지자고 말할 수 있어?"

난 두고두고 후회했다. 주를 여자친구가 아니라 종 부리듯 하인 부리듯 했고, 헤어지자는 말 앞에서도 난 주를 종 취급했다. 이런 속물을 좋아한 주에게 너무 미안하다. 난 두고두고 후회했다. 주에게 잘해주지 못해서, 받기만 해서, 마치 내 손처럼 부리기만 해서, 헤어지자는 앞에서도 내 손이 되어달라는 말을 했다. 난 쓰레기였다.

"오빠, 미안해요. 우리 헤어져야 할 것 같아요. 이유는 제발 묻지 말아줘요."

"안 돼. 이유가 뭐야? 왜 헤어지자는 거야? 왜? 이유가 뭔데?"

"미안해요. 이유는 묻지 말아줘요. 우리 헤어져요."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겨울방학을 앞에 두고, 가을 내내 내 병수발을 해준 주와 그렇게 헤어졌다. 난 주와 헤어지고는 자포자기가 돼버렸다. 다시 술을 퍼마셨다. 술이 떡이 되도록 퍼마셨다. 양손 다 쓸 수는 없었어도 준비를 철저히 하고 나가니 밖에 다닐 만 했다. 지금이야 교통카드로 버스를 타지만, 그땐 토큰을 내야 했다. 난 토큰을 미리 주먹에 쥐고 버스를 탔고, 손잡이를 잡을 수 없는 난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가 몇 번이고 넘어졌고 기사가 놀라긴 했지만 혼자서도 버스를 탈 만했다. 그렇게 종로에 가서는 술을 퍼마셨다. 퍼마시고는 길바닥에 쓰러져 아침을 맞았고 이 개 같은 세상 뒤집어 버릴 방법을 연구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가 얼마나 잘못했다고 내 손을 이렇게 만든 거야? 난 술을 퍼마시고는 거리를 배회하며 신을 욕했다.

"이 개 같은 신 새끼야, 죽여. 그냥 죽여 이 씨발새끼야. 왜 손만 다치게 한 거야? 그냥 죽이라고 개새끼야."

내가 이러고 다니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주는 오랜만에 연락해서는 저녁을 사달라고 했다. 우린 경양식점에서 돈가스를 시켰고 주는 내 것까지 모두 잘라줬다.

"내가 오빠 이럴까 봐 많이 망설였는데, 우리 헤어지길 잘한 것 같아요. 이제 술 그만 마시고 정신 좀 차려요."

"누구한테 들었어?"

"그건 알아서 뭐하게요. 오빠, 나 때문에 그래요? 아니면 손 때문에 그래요?"

나도 헷갈렸다. 그래, 난 속물이니까.

"둘 다. 그래도 네가 있을 땐 살 만했어. 그런데 너까지 없으니까 못 살겠더라."

"오빠, 그거 핑계인 거 알아요? 난 가난하니까, 난 고졸이니까, 난 열심히 일하면서 잘살려고 노력했으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손 다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거. 그거 자기 합리화고 그냥 핑계에요. 오빤 그런 사람이에요. 충분히 잘할 수 있는데도 도망가려고 해요. 요즘 버스도 혼자 타고 다닌다면서요. 할 수 있잖아요. 오빤 손을 못 쓰는 장애인이 돼도 잘 살 거예요. 생각해봐요, 오빠는 칼질 1년도 안 해서 2인자가 됐어요. 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난 오빠의 나약한 모습이 너무 싫어요."

할 말이 없었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말을 주가 해주고 있었다.

"나 오빠를 좋아하는 마음 진심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오빠를 안 좋아해요. 그러니까 슬퍼하지 말아줘요. 내가 안 좋아하는 거예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주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곤 날 보여 웃어줬다. "오빠, 그러니까 힘내요. 오빤 나 없어도 잘살 수 있어요. 손이 마비됐어도 잘살 수 있어요. 오빤 강한 사람이에요."

난 주를 마지막으로 바래다 줬다. 먼저 가라고 말하며 손을 흔드는 주는 마지막까지 네게 웃어주며 힘내라고 말해줬다. 난 힘을 내기로 했다. 무엇이든 하기로 했다. 왼손은 완전한 마비, 오른손은 엄지손가락 마비. 이 손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이미 군대는 한 번 연기된 상황이었고 난 시간이 남아돌았다. 22살의 1월 난 지역광고지 벼룩시장을 뒤지다가 주유원 모집이라는 광고를 봤다. 자동차의 주유 뚜껑을 열고, 주유기로 주유하는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주유소 아르바이트. 난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 스승님이 될 분을 만났다. 내 신앙의 스승님. 난 주유소에서 일하다가 스승님을 만나 제자가 됐다. 목사님은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제 수사제입니다.' 종교 얘기는 다른 장에서 다루기로 하고... 내 20살부터 21살의 여정은 여기까지다. 식당에서 일했고, 칼질 천재가 됐으며, 손을 다쳐 장애인이 됐다. 2년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아,,, 맞다. 누나들 몇 명이 더 있는데... 흠... 어쩐담... 이번 꼭지 너무 길어지는데...

주희누나. 내가 1층에 있을 때 1층에서 아르바이트했던 대학생 누나였다. 작은 키에 귀여운 얼굴이었는데 나를 끔찍이도 챙겨줬다. 내가 누나에게 장난도 많이 치곤 했고, 누나는 책을 읽으면 읽은 책을 꼭 내게 선물해줬다. 누나가 선물해준 책들을 난 아직도 갖고 있다. 책에 편지를 써놔서. ^^ 주희 누나는 주방 형들하고도 친해서 같이 술자리도 많이 가졌다. 내 안경을 자주 뺏어가서는 닦아줬던 일이 기억난다.

현경이 누나. 내가 2층에 있을 때 2층에서 아르바이트했던 대학생 누나였다. 목소리가 깜찍해서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누구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람 목소리가 어떻게 이렇게 깜찍할까 할 정도였다. 머리가 길고 숫도 엄청 많았는데, 거기에 파마를 해서 바비인형 같았다. 일을 안 할 때도 지나가다가 날 보러 왔다며 들러서는 빵이나 우유를 사주곤 했다. 종로에 올 일이 있으면 일부러 날 보러 오곤 했다. 이 누나와는 편지도 많이 주고받았는데, 내가 군대에 갔을 때도 내게 편지를 써주곤 했다.

4부에선 어떤 얘기를 해볼까...

(다음에 이어서...)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6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5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4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3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2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1

(2장은 공모전 시작과 동시에 삭제 예정입니다.)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6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5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4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3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2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1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6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5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4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3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2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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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읽기엔 너무 길어요
칼질 천재니까
글 줄임도 가능하지 않나요?^^

줄이면 재미 없어요. ㅎㅎㅎㅎㅎ

아!! 공모전에 당선되면 종이책으로 나오거예요. ㅎㅎㅎ

으음 이제 나하님이 치부가 보이는데요. 그런데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살아가며 상처줄 수 있어요. 이해못하고 비난받을만한 행동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으로 해요. 제가 이해 안되도 그렇게 모질고 냉정하고 바보같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고2밖에 안되었던 그 '주'라는 여성분에겐 제가 좀 반한 것 같아요.

나 오빠를 좋아하는 마음 진심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오빠를 안 좋아해요. 그러니까 슬퍼하지 말아줘요. 내가 안 좋아하는 거예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참 현명한 사람이에요. 그 주라는 분 인생에서도 나하님이 필요했을 거고 나하님 인생에서도 그 주라는 분이 좋은 인연이었다고 생각해요. 서로를 통해 분명 성장하셨을거에요.

그냥 내가 안 좋아졌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술 그만 마시라고... 내가 장애인이 돼서가 아니라, 가난해서가 아니라 그냥 안 좋아진 것 뿐이라고.
아~~ 근데요... 제가 결혼전에 제 소중한 일기장을 포함해서 버릴만한 건 다 버렸는데요, 얘가 준 그 일기장... 그게 어디 처박혀 있다가... 아내가 발견해서 버렸다네요. 아이고야... ㅎㅎㅎ
아내가 한번은 웃으면서... '내가 오빠 성격 아니까 그냥 말없이 버린줄 알아. 일부러 안 버린 게 아니란 거 알아. 그것만인줄 알아? 내가 버린거 다 나열하기도 힘들어. 책 사이에도 편지가 있더라. 여기저기서 막 나와. 나 기억력 좋은거 알지? 내가 발견한 이름만 해도 몇 갠줄 몰라.' 그러면서도 '괜찮아. 결국엔 내가 차지했으니까.' 라고 말하는 아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