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3

in #kr-series2 years ago (edited)

시골답게 집도 띄엄띄엄 있었다. 음, 5분이나 10분쯤 거리에 나와 동갑인 여자애가 사는 집이 있었다. 여자애와는 금세 친해졌는데 하도 오래돼서 이름이 기억나진 않는다. 그 집은 외할머니 집보다는 작았고 담벼락이 없었다. 그냥 주위가 온통 풀이었다. 그리고 여자애는 시골애 답게 피부도 짙었고 순수했다. 학교에 다녀서 그런지 사투리가 심하지 않아서 의사소통이 됐기에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린 매일은 아니어도 자주 만났다. 만나서 하는 놀이라곤 냇가에서 물장난을 치는 게 전부였다. 한번은 여자애가 호수에 가보자고 했다. 그래도 이 글이 소설인데 '여자애'라고 하긴 그렇고 이름을 하나 지어봤다. 음, 포항 시골이니까 앞글자만 따면 '포시'. 아, 여자 이름으론 꽝이네. 안타깝게도 내가 한자를 잘 몰라 이름 짓는 덴 꽝이다. 나의 소설 등장인물들 작법은 이렇다. 그냥 생각나는 아무 이름이나 넣거나, 내가 참고했던 모델의 이름 중 한 글자만 따거나 아니면 비슷한 분위기로 짓는다. 그런데 겨우 2주 동안 친구였던 이 여자애 이름은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서 그냥 여자애라고 불러야겠다. 음, 그리고 내가 소설가긴 해도 사투리 구사 능력이 제로인 서울 촌놈이라 그냥 서울말로 쓰겠다.

"우리 호수 가보지 않을래?"

"호수? 그런 데가 있어?"

"그래. 큰 호수는 아닌데 깊어서 사람이 빠지면 죽기도 한다."

"나 수영 못 해. 안 갈래."

"물에는 안 들어가면 되지."

"그럴까?"

난 여자애를 따라 수풀을 걸었다. 길도 없는 수풀이었다. 금방 도착할 것 같았는데 가도 가도 호수는 나오질 않았다.

"여기 길 맞아?"

"호수 가는 길은 없어."

"왜?"

"사람들이 잘 안 가거든."

"왜?"

"거기 호수에서 사람이 많이 죽어서 귀신이 나온대."

"뭐? 귀신?"

"그래. 귀신."

"야, 나 그럼 안 갈래."

"괜찮아. 지금은 낮이잖아. 낮에 나오는 귀신 봤어?"

"어. 그렇지. 근데 호수는 왜 가야 하지?"

"심심하잖아."

나중에 생각해보니, 여자애는 그래도 서울에서 멀리 놀러 온 애한테 재미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날 이리저리 끌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난 그래서 여자애와 빨리 친해졌고 여자엔 내가 서울로 돌아갈 땐 울기까지 했다.

"난 괜찮은데. 그냥 우리 냇가에서 놀자. 난 물장난 좋아해."

"호수 안 가보고 싶어? 너 호수 본 적 없잖아."

"아냐. TV에서 많이 봤어."

"에이. TV랑은 다르지. 여긴 귀신 나오는 호순데."

내가 왜 귀신 나온다는 호수를 봐야 하는지 이유는 몰랐지만, 암튼 계속 뒤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길도 모르니까. 우린 한참을 없는 길을 걸었다. 주변엔 나무와 풀 뿐이었고 물은 보이지 않았다. 시계도 없었고 너무 나무가 많아서 해도 보이지 않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야 여자애가 미안하다며 아무래도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할 때까지 난 그냥 여자애만 믿고 있었다.

"영진아, 아무래도 길을 잃어버린 것 같네. 분명히 이 길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 같은 자리만 돌고 있는 것 같아."

"같은 자리만? 야, 혹시 귀신의 장난 아닐까?"

"야, 낮에 귀신이 어딨어."

"어른들 말을 다 믿어? 난 안 믿어. 어른들은 애들을 쉽게 다루려고 거짓말을 하거든. 너 산타할아버지 믿어? 세상에 산타가 어딨어. 그냥 착한 어린이 만들려고 지어낸 얘기야."

"산타랑 귀신이랑 무슨 상관인데."

"없나? 그래도 난 어른들 말은 안 믿어. 귀신은 낮에도 돌아다녀. 사람 눈에만 안 보일 뿐이지."

"그럼 우리 귀신의 장난에 빠져서 같은 자리만 돌고 있다는 거야?"

"내 생각엔."

"꺄~~"

여자앤 그때서야 겁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곤 당당했던 모습은 간데없고 내게 찰싹 붙었다. 그러곤 내 팔을 붙잡았다.

"야야. 놀랬잖아."

"영진아, 우리 어떡하지? 곧 해가 떨어질 텐데."

"어디서 봤는데, 산에서 길을 잃으면 무조건 내려가야 한대."

"여긴 산이 아니잖아."

"나무뿐인데 산이 아니라고?"

그랬다. 지금까지 우린 무난한 평지로만 걷고 있었다. 큰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었다. 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시 꼬마가 해결방법을 알 수 없는 건 당연했다. 난 우리가 몇 시간 정도 걸어왔는지 생각해봤다. 한 시간? 두 시간?

"우리가 몇 시간이나 걸어왔지? 한 시간? 두 시간?"

"글쎄. 두 시간 정도?"

"원래 호수까지는 얼마나 걸려?"

"원래는 한 시간이면 가."

"야, 그럼 한 시간 지났을 때 나한테 말했어야지."

"야, 난 내가 아는 길이라고 생각했지."

"그럼 여긴 전혀 몰라? 여기가 어딘지?"

"몰라. 모르겠어."

여자애는 내가 다그치자 울기 시작했다. 괜히 다그쳤다.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잠시 흥분했었나 보다. 난 미안하다고 울지 말라고 토닥여줬다. 그러곤 머리를 굴려봤다. 받아쓰기 10점짜리에 생활통지표 가가가가인 멍청이 머리에서 뾰족한 수가 생각날 리 없었다. 하지만 난 최선이 아닌 차선의 방법이 떠올랐다.

"우리 더 움직이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자."

"왜? 곧 해가 떨어질 거고, 그럼 귀신이 나올 건데."

"우리가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아. 생각해봐. 우린 동서남북 중에 한 방향으로 가야 해. 아니지, 동과 북 사이도 있으니까 대충 생각해도 여덟 방향 중 한 방향으로 걷게 될 거야. 하지만 집은 여덟 방향 중의 한 곳이야. 그러니까 확률이 1/8이지. 난 이 확률 못 믿어. 하지만 우리가 이 자리에 계속 있다고 생각해봐. 우리가 없어진 걸 엄마 아빠가 아실 거고 우리를 찾겠지. 집에서 여러 방향으로 찾아다닐 테지만 짧게는 두 시간 길어야 내일 아침까진 우릴 찾을 수 있을 거야."

"와~~ 영진. 너 똑똑하다."

내가 겨우 4학년짜리 멍청이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난 공부는 못했지만 이야기 지어내는 걸 워낙 좋아했기에 TV를 봐도 영화를 주로 봤었다. 아마도 어느 영화에선지 저런 장면을 본 것 같았다. 절대 내 머리로는 저 생각을 해냈을 리 없으니까.

숲이라 해는 빨리 떨어졌고 주위는 금세 어두워졌다. 우린 자리 한 곳을 잡고 나란히 앉았다. 여자애는 귀신이 나온다며 무섭다고 내 팔을 끌어당겨 안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건 사람들 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금방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과 엄마한테 뒈지게 혼났다는 게 기억난다.

다음날 나는 심심해서 또 여자애 집으로 놀러 갔다. 여자애는 언제나 혼자였다. 부모님이 농사를 짓기 때문이었다. 여자애는 날 보더니 히죽히죽 웃으며 좋아했다. 많이 안 혼났냐고 미안하다고 하며 웃으면서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방으로 들어와. 우리 집에서 놀자. 엄마가 나가지 말라고 했어."

난 여자애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시골집답지 않게 좋았다. 외할머니네 집과는 차원이 달랐다. 서울 집 같았다. 그리고 오락기도 있었다. 부잣집에만 있다는 콤보이. 장난감도 많았다. 대부분 부잣집에만 있다는 좋은 장난감들이었다.

"와~~~ 이게 다 뭐야? 너네 부자구나?"

"부자 아니야. 너 가질래?"

"날 준다고?"

"응. 너 가져. 난 안 하거든."

"엄마한테 혼날 건데."

"괜찮아. 안 혼나."

너무나 갖고 싶던 장난감들이었지만 난 괜찮다고 네가 안 혼나도 내가 혼난다고 말하곤 아쉬워했다. 우린 그날은 집에서만 놀았다. 혹시나 혼날까 봐 저녁 먹기 전까지만 놀고 돌아갔다. 우린 그 후로도 모험적인 장난을 치며 놀았다. 개울을 거슬러 올라가면 멋진 폭포가 있다고 해서 올라가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기도 했고, 개울을 더 내려가면 강이 나온다고 해서 내려가다가 물에 빠질 뻔도 했다. 청개구리를 누가 더 많이 잡나 시합을 해서 물통 가득 잡으며 놀기도 했고, 잠자리를 잡겠다고 벌판을 뛰어다니며 놀기도 했다. 서울 촌놈이 시골에 와서 다양한 경험을 해봤으니, 난 여자애가 두고두고 고마웠다.

외갓집에서의 추억을 너무 내 얘기만 해버렸다. 일단 기억나는 추억은 모두 적어놓자. 한번은 아빠가 고추장을 넣고 비빔밥을 드시고 계셨다. 난 그 비빔밥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애들은 매워서 못 먹는다며 안 주셨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애 먹고 싶다는데 주지 그러냐며 해서 마지못해 비빔밥을 해주셨는데 정말 매웠다.

"남기기만 해봐. 혼날 줄 알아."

난 엄마의 협박(?) 때문에 그 매운 비빔밥을 모두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곤 설사를 했다.

하루는 아빠가 내 여름방학 숙제를 해준다며 곤충을 한가득 잡아 오셨다. 그 곤충들을 곱게 말려서는 옷핀으로 꽂아두셨다. 난 그걸 여름방학 숙제로 냈는데, 2등을 했다. 방학 숙제로 받은 유일한 상이었다.

음,,,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고속버스를 탈 때였다. 엄마는 초등학생 버스요금이 어른이랑 똑같다며 화를 내셨다. 동생은 미취학이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이미 4학년인 나를 미취학이라고 거짓말하긴 어려웠나 보다. 난 고속버스를 타는 내내 내가 초등학생인 게 미안했다. 키도 쪼끄만 꼬마가 어른이랑 같은 요금을 내야 한다니, 나도 너무 억울했다. 한번은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갈 때였다. 웬일인지 아빠가 아이스바를 사주셨는데 엄마는 왜 그런 걸 사줬냐고 아빠를 구박하셨다. 애들이 멍청해서 손에 질질 흐른다고 구박하셨는데, 엄마의 예언대로 아이스바는 금방 녹았고 내 손은 끈적거렸다. 그리고 난 엄마에게 빨리 안 먹어서 다 녹는다며 혼났다.

"나 내일 간다."

난 거의 매일 보던 여자애에게 죄인이 된 듯이 말했다.

"내일? 서울에?"

"어. 곧 개학이잖아."

"정말 가?"

"응."

여자앤 눈물을 보였다.

"그럼 언제 또 와?"

"방학 때 또 올게."

"겨울 방학 때?"

"그럼 좋겠지만. 엄마 아빠가 와야 올 수 있으니까. 나도 잘 몰라. 그래도 우리 또 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우리의 짧은 2주간의 우정은 추억으로 남았다. 난 외갓집에 다신 가지 못했으니까.

(다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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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갑니다.
외갓집에 왜 다시 못 갔나요? 여자애가 기다렸는지도 모르는데...

아하하하. 곧 아시게 됩니다. ㅎㅎㅎㅎㅎ
아~~~ ㅠㅠ
제가 오길 기다리고 기다렸을 것 같아요. 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