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6

in #kr-series2 years ago (edited)

아빠 얘기로 시작한 1부를 이렇게 끝내기엔 아쉬움이 남아 아빠 기억을 조금 더 써보려고 한다. 내 기억력이 치매 수준이라는 말을 하도 많이 해서 이제 독자들은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기에, 순서가 뒤죽박죽인 이 소설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군대에 다녀온 후 아빠는 한 번 입원한 적이 있었다. 이 사실이 오늘 아침에야 기억났다. 1부는 아빠 얘기를 했으니 2부는 엄마 얘기를 해볼까 생각하던 중 갑자기 생각났다. 아빠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기에 절약이 몸이 배어 있었다. 평소 워낙 입이 짧아 병원 밥을 적게 드셨기에 동생은 아빠에게 먹고 싶은 것들을 사다 드렸다. 역시 딸이 최고다. 아들은 결혼하면 남이다. 아들만 둘인 나는 어쩌나. 암튼 동생이 주로 사다 드린 음식은 햄버거였다. 햄버거 중에서도 늘 새우버거만 사다 드렸는데, 아빠가 새우버거만 사다 달라고 하셨다. 나중에야 동생이 말하길, 새우버거가 가장 싸서 새우버거만 드셨다고 한다. 몇백 원이나 차이 난다고. 그런데 아빠의 그런 절약(이라 쓰고 궁상이라 읽으면 적당할 듯)습관은 내게도 동일하게 있었다. 아니 동일하게가 아니라 완벽하게 일치했다. 난 무엇을 사든 백 원 이백 원 차이가 나도 싼 걸 샀다. 가격도 비교해보고 용량도 비교해봤다. 이런 내 습관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아내를 만나고 많이 사라졌다. 갑자기 얘기가 삼천포로 빠진 느낌이 있지만 적어보자. 내 맘이니까.

아내와 막 데이트를 한 지 한 달 정도 됐을 무렵이었다. 같이 이마트에 가서 물건을 보다가 내가 가격과 용량을 비교하는 걸 본 아내는 그 자리에서 화를 내면서 나가버렸다. 난 그램당 얼마라는 단위를 계산하려고 휴대폰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놀라 아내를 따라갔다. 난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도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아내는 말하기 싫다며 앞으로 만나지 말자고 연락하지 말라며 앞만 보고 걸었다. 난 계속 이유를 모르는 척했다. 그러면서 따라가며 계속 물었다. 아내는 이내 짜증이 났는지 왜 용량을 비교하냐며 화를 냈다.

"그게 다 눈속임이야. 원플러스원이라고 해놓고 원래 하나 가격보다 비싼 경우가 많거든."

난 실제로 원플러스원이 하나씩 사는 가격보다 비싼 경우를 몇 번 봤기에 이렇게 말했다. 실제 보면 원플러스원이 4000원인데 개별로 사면 1900원이라던가. 그런 경우를 자주 목격했었다. 이는 언론에서도 몇 번 다룬 실제 사실이다.

"그리고 뭐? 알뜰포장이 더 비싸다고?"

사실이었다. 실제 마트에서 파는 제품 중에 알뜰포장이라고 비닐포장에 담긴 제품이 단단한 플라스틱포장에 담긴 제품보다 비싼 경우가 많았다. 이는 용량을 봐야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알뜰포장이라고 해놓고 5000원이라고 쓰여 있고, 일반포장은 5500원이라면, 알뜰포장은 용량이 800리터이고 일반포장은 1리터인 것이다. 이 역시 여러 언론에서 지적한 내용이었다.

"난 그런 거 따지는 거 싫어. 얼마 차이 난다고 그래? 사람이 쪼잔해 보여. 오빤 나한테 가계부 쓰라고 할 남자야. 난 그렇게는 못 해. 난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살 거야. 그러니까 오빠랑 나랑은 안 맞아. 우리 이제 보지 말자."

난 이 당시에 가계부를 쓰고 있었다. 삶을 리셋하고 거지 신세였기에 한 푼이 가까워서 쓰기 시작한 가계부였다.

"미안해. 내가 다시는 안 그럴게. 약속할게. 내가 평생 안 그럴 거야. 약속할게."

"오빠 왜 그래 정말."

아내는 의외로 단번에 내 사과를 받아줬다. 그리고 울면서 다신 그러지 말라고 했다. 난 정말로 변하기로 했다. 적은 금액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겨우 몇백 원인데, 겨우 몇천 원인데. 이런 생각을 의식적으로 했고 내 삶을 달라졌다. 책에선가 어디선가 들은 말이 있다. 작은 숫자에 연연하면 큰 숫자를 놓친다고. 그래서 나를 개조시켰다. 그리고 그 개조는 너무 쉽게 성공했다. 다 아내를 사랑해서 가능했으리라. 아내는 두고두고 그날 일을 얘기한다.

"오빠 그날 사과 안 했으면 나 오빠랑 결혼 안 했어."

말은 이렇게 해도 '얼마나 안 썼으면 1년 만에 전세금을 모으냐? 정말 대단해.'라고 날 칭찬하곤 한다.

"내가 오히려 더 고마운걸. 내가 작은 숫자에 집착하는 걸 바꿔줘서."

"보통 남자라면 내가 그렇게 갈 때 안 잡았을 거야. 사과하면서 잡지 않았을 거야. 그래서 난 오빠가 너무 좋았어. 잡아주고 사과해줘서. 난 오빠 없으면 못 살아."

아내는 요즘도 내게 '나 오빠 없으면 못 살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오빠야."라는 말을 자주 한다. 말이 많이 새버렸지만 다시 아빠 얘기로 돌아가서, 병원에 거의 매일 갔던 동생과 다르게 난 아빠가 입원한 병원에 한 번 갔었다. 동생의 부탁대로 새우버거 두 개를 사 들고 갔었다. 이런 곳에 이런 병원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작은 병원이었다. 병실 두세 개뿐인 작은 병원. 보통 이런 병원들이 나이롱 환자들을 받는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병실 하나엔 사람이 없었는데, 저 사람은 잠만 자고 종일 안 보이는 사람이라고 했다. 교통사고로 입원했는데 낮엔 일한다나. 뉴스에서만 봤던 그런 부류를 실제로 보니 씁쓸했다.

우린 납골당에 갈 땐 새우버거와 가장 비싼 버거를 사 간다. 정말 새우버거를 좋아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새우버거가 가장 싸서 새우버거만 고집했을 수도 있기에 비싼 버거도 함께 사 간다. 그리고 아빤 피자도 좋아했다. 먹는 양은 피자는 한 조각, 버거는 하나가 다였다. 술은 백세주만 드셨는데, 소주와 반반 섞어 드셨다. 하지만 납골당에 갈 땐 백세주만 사 간다. 소주와 섞어 드신 것도 비싼 백세주가 아까워서 그런 것 같아서.

새엄마도 없던 5학년인가 6학년 때였다. 여름방학 내내 어디 한 곳 가본 적이 없는 우리 남매가 불쌍했는지, 할머니가 아빠에게 어디든 데리고 나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출발한 우리 셋. 아빠가 우리 둘을 데리고 간 곳은 어린이 대공원이었다. 학교 소풍으로 가본 적은 있어도 아빠와 가보긴 처음이었다. 난 많은 기대를 하진 않았다. 아빤 돈도 없을 테고 뭐 맛있는 걸 사주시거나 재미나는 놀이기구를 태워주기라도 하시진 않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는 모든 어린이가 좋아하는 짜장면도 사주시고 놀이기구도 많이 태워주셨다. 가장 기억나는 놀이기구는 다람쥐통이었다. 처음 타본 다람쥐통. 내 앞에 보이는 아빠의 얼굴은 다람쥐통이 돌 때마다 즐겁게 변하기도 하고 놀랍게 변하기도 했다. 옆에 앉은 동생은 꺅꺅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했고 나도 무서움 반 즐거움 반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다람쥐통 안에서 세상이 돌고 내가 도는 그 장면이 왜 생생하게 기억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린 놀이기구를 타고 짜장면도 먹은 후엔 동물원 구경도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서운했을 정도로 너무 재밌었다. 그리고 그다음 방학때도 역시나 방학 내내 어디 다녀보질 못한 우리 둘을 위해 할머니는 어이든 데리고 나가라고 하셨고 아빠는 우리 둘을 민속촌에 데리고 갔다. 아주 아주아주 멀었던 기억뿐이라서 버스를 탄 기억이 전부다. 민속촌에서 뭘 했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버스를 타고 버스를 타고 버스를 탔다는 기억이 전부인 게 신기하다. 난 아빠와 함께 다녀온 민속촌을 생각할 때마다 '두 아들에게 좋은 기억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한다. 버스만 탄 기억보다는 마치 영화 필름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다람쥐통 같은 기억을 주고 싶다.

난 아빠가 되는 게 소원이었다. 마흔이 다 돼가는 나이의 내게 이 소원은 더 간절했고 나와 결혼할 여자가 없다면 외국인 신부라도 얻을 생각이었다. 주위에 베트남 신부랑 결혼한 분이 있었는데 사는 모습이 괜찮아 보였다. 그런 내게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나타났다. 그리고 아내는 내가 소설가가 꿈이라는 걸 알게 되고는 내게 헤어지자고 했다.

"오빠를 사랑하지만 우린 결혼해선 안 될 것 같아. 우린 헤어져야 해."

"왜? 난 너랑 결혼하고 싶어."

"오빠가 나와 결혼하면 오빤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하니까 소설을 못 쓰잖아. 전세금만 모이면 회사 그만두고 소설만 쓰고 싶기도 하다며."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소설가가 꿈이라고. 그래서 전세금만 모이면 회사 그만두고 죽을 만큼 정말 죽을 만큼 소설만 쓰고 싶다고. 밥 먹고 글만 쓰고 싶다고. 소설만 쓰면서 등단에 도전하고 싶으니까 1년 치 생활비만 모이면 내 평생 후회하지 않을 만큼 소설을 쓰고 싶다고.

"물론 내 꿈은 소설가야. 하지만 난 아빠가 되는 꿈도 있어. 아빠가 되고 싶은 꿈이 1번이야. 소설가는 2번이고. 난 그냥 아빠가 아니고 멋진 아빠, 훌륭한 아빠, 친구 같은 아빠, 멘토 같은 아빠, 다정한 아빠, 든든한 아빠 그리고 고향 같은 아빠가 되고 싶어. 그런 아빠가 되는 게 내 첫 번째 꿈이야."

"정말? 그럼 소설은?"

"소설은 뭐 나중에 60살쯤 되면 쓰지 뭐. 백세시대잖아. 등단엔 나이 제한이 없거든. 성공은 언제든 하면 돼. 오늘 해도 성공이고 내일 해도 성공이야. 10년 후에 꿈일 이뤄도 이룬 거고 20년 후에 꿈을 이뤄도 이룬 거야. 죽기 전에만 이루면 돼. 그런데 아빠가 되는 꿈은 지금이 마지막일 것 같아. 소설가는 언제든 될 수 있지만 아빠는 아니잖아."

"오빠, 그럼 내가 오빠를 아빠가 되게 해줄게. 그리고 소설가도 되게 해줄게. 내가 오빠를 아빠로도 만들어 주고 소설가로도 만들어 줄게."

그렇게 나도 아빠가 됐다. 하지만 아빠의 역할은 쉽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했고 체력일 딸렸다. 내가 조언하자면 결혼할 거면 빨리 하라는 것이다. 체력이 될 때 해야 좋다. 두 아들과 놀아주고 나면 허리 아프고 무릎 아프고 아주 완벽히 내가 패잔병이 된다. 조금 안아줬다고 허리 아파서 병원 가고, 같이 방방장 가서 놀았다고 무릎 아파서 2~3일 고생하고. 그래도 책 읽어주는 일은 자신 있을 것 같았지만, 역시나 책 읽어주기도 중노동이다. 읽은 책 수십번 읽어줘야 하는 기분은 경험해본 사람만 알 것이다. 난 반복하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이래서 어떻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난 아빠에게 사달라고 한 게 딱 두 개다. 하나는 과학나라(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그냥 '과학나라'라고 적겠다. 기중기도 만들고, 자동차도 만들고 비행기도 만드는 블록 같은 거였다.)였고, 하나는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 아이스크림이었다. 과학나라는 내가 초등학생 때 몇십만 원 했으니까 지금으로 치면 백만 원 정도 하는 고가였으니까 당연히 못 사줬고, 그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 중에서도 매우 고가였다. 그랬어도 지금으로 치면 기껏해야 5~6천 원. 하지만 아빠는 사주지 않았다. 난 그 후로 아빠에게 뭘 사달라고 말한 적이 없다. 말 해봐야 안 사줄 거니까. 그래서일까, 난 울 두 아들이 좋아하는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자주 사준다. 냉동실을 열어보고 없으면 다음 마트에 갔을 때 꼭 한 통을 산다. 퍼먹는 아이스크림 투게더. 달콤한 맛이 참 좋다. 애들이 좋아할 만 하다. 두 아들이 아이스크림을 퍼먹는 걸 보고 있으면 직접 먹는 것보다 더 달콤하다. 내 아빠는 안 그랬을까? 아들이 먹고 싶다는 걸 왜 안 사주셨을까.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해도. 난 두 아들이 무언가를 먹고 있으면 그 모습이 너무 예쁘다. 그래서 뭐든 먹고 싶다면 다 사준다. 아빠가 돼본 사람만 알 것이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애들 입에 들어가는 게 더 배부르고 행복하고 즐겁다는 걸. 그런데 내 아빠는 안 그랬을까? 두고두고 궁금하다. 나중에 천국에 가면 물어봐야겠다.

(다음에 이어서...)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1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2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3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4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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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ceo00님이 naha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joceo00님의 고팍스 천하제일연재대회

...d> ravenkim 5 17:28 naha/td> 6 17:28 li-li ...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엄청엄청 좋은 부인이십니다.
나하님을 일상으로 올려 놔 주신...ㅎㅎ
예전 아버님들은 꽤 자기본위적이셨던 것 같습니다. 물론 자녀를 사랑했지만 표현할 줄을 모르셨고 그것은 그분들도 보고 배운 적이 없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남자가 육아휴직이라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겁니다.

공무원과 대기업만을 위한 배우자 육아휴직이야 없는 게 차라리 좋겠지만, 예전 아버지들은 그랬죠. ^^ 저는 결혼 참 잘한 것 같아요. 아내에게 늘 고마워하고 있답니다.

우리네 아버지들이 다들 힘들게 사셨죠.
제 아버지도 40대에 병에 걸려서 50 중반에 병으로 돌아가셨네요.
돌아가실 때의 나이가 지금 제 나이보다 딱 3살 많을 때이니 참 허무하게 돌아가셨죠.

마음이 아픕니다.

제 아버지는 48에 돌아가셨어요. 제가 올해 42니까... 흠... 한참 젊었죠. ㅠㅠ

나하님~
우리 남편과의 연애시절이 생각나게 하는 글이네요..^^;;
아버지와 애틋함도 잘 느껴져요..
왜 지나고나면 더 잘해드리지못했는지 후회하게 될까요?

연애시절엔 모두들 행복했죠. ㅎㅎㅎ 왜 결혼하면서 싸우는 걸까요. ㅡ.ㅡ^

부모님께 잘 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녀요. 돌아가시고나면 아무소용 없다는 걸 경험했기에.

난 그런 거 따지는 거 싫어. 얼마 차이 난다고 그래? 사람이 쪼잔해 보여.

미안합니다. ㅠㅠ 가계부 쓰는 여자입니다. 저도 1+1 이런거 잘 안사요.. ㅎㅎ 스스로 쪼잔하진 않다고 생각하는데 쪼잔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부인분이 말씀하시고자 하는게 뭔진 알 것 같아요.

부인 분 참 멋지네요. 아빠도 소설가의 꿈도 이루라고 해주는 동반자 ㅎㅎ

그런데 나하님 혹시 과학상자 말씀하시는 걸까요? 저는 흥미가 없지만 집게 과학상자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끔은 무슨 말을 해드려야 할 지 몰라 댓글을 못달기도 하지만 참 잘 읽고 있습니다. 직장인 시리즈보다도 더 취향입니다.

예전 글에서 '가게부 쓴다'는 글을 보고 살짝 비교가 됐답니다. ㅎㅎㅎ

음... 직장인 시리즈보다 취향이시라니... 영광이네요. ^^

과학상자인지 뭔지 아~~ 이름이 생각나질 않아요. ㅡ.ㅡ

돈에겐 마력이 있다고 합니다.
조금 버는 사람과 많이 버는 사람을 비교하면
조금 버는 사람이 더 힘들다고 합니다.
푼 돈 아끼는 사람보다
큰 돈 잘 쓰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분석도 있고

아내의 말씀을 존중하고 수용하신
사랑이 행복한 아빠를 만들어주셨네요.

푼 돈 아끼는 사람보다
큰 돈 잘 쓰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분석도 있고

맞는 말 같아요. ㅎㅎㅎ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

"과학상자"였을 겁니다. 당시 초등 아니 국민학생들의 꿈의 상자였죠 ^^

ㅎㅎㅎ 기억력이 저보다 좋으시네요. 과학상자가 맞나봐요. ㅎㅎㅎ

1+1에 함정~ 뉴스에서 보고 눈여겨 봐야지 하면서도 뒤돌아 서면 까먹네요~

아핫...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