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2

in kr-series •  14 days ago

인연은 재밌고도 신기하다. 내가 애초에 펜팔을 하지 않았더라면, 첫 펜팔이었던 누나가 앞집으로 이사 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사갈 때 그 누나가 용기 내 내게 펜팔 하자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3년 만에 이제 펜팔 그만하자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새 펜팔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동생이 그 책대여점에서 알바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 책 대여점 사장이 하필 그 자리에 책 대여점을 내지 않았더라면, 동생이 그 많은 만화책 중에 <윙크>를, 격주간으로 나오는 그 많은 <윙크> 중에 하필 그 주의 책을 골라, 두 페이지쯤 되는 펜팔 광고의 수많은 사람 중에 하필 첫 번째 사람인 아이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난 아이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수많은 인연과 우연과 선택으로 만들어졌다. 내 선택과 타인의 선택으로 인해 난 지금의 나로 살고 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동생이 본 그 호는 이미 한 달 정도 지난 호였고, 아이는 수십 통의 편지를 받은 후였다. 그러니까 이제 더이상 편지가 안 오던 때에 내 편지를 받았다. 내 편지를 받기 전에 이미 다른 펜팔들의 사진과 전화번호를 모두 수집한 후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고나 할까. 얼마 전 본 영화에서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대사에 깊은 생각을 했다. 그래, 타이밍이지. 아무리 잘나고 멋지고 통하는 천생연분을 만났어도, 그때가 고등학생이거나, 남자가 군대 가기 직전이거나 그러면 결혼까지 이어지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내 이상형도 아니고 잘 통하지도 않지만 그냥 무난한 남자를 또는 여자를 서른 넘어서 만나면 결혼까지 이어지긴 쉽다. 그래서 타이밍인 것.

아이가 날 만난 타이밍은 매우 절묘했다. 상황이 매우 안 좋았기 때문이다. 난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었고, 아이는 부모님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며, 우린 겨우 열아홉 열일곱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매우 극단적으로 적극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뒤에 나온다. 나중에 아이가 활동했던 나우누리 게시판을 뒤져본 적이 있다. 아이의 작은 흔적이라도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아이는 PC통신 나우누리를 오래 했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었고 난 그 말을 기억하고는 아이의 흔적을 찾아봤다. 나우누리에 가입하고 게시판을 뒤져본 나는 많은 아이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아이가 남긴 텍스트들을 긁어서 모아뒀는데 절친이 '그걸 왜 모으냐. 그냥 보내줘라. 삭제해.'라고 해서 지워버렸다. 아이가 떠난 후 아이 엄마가 아이 얘기를 간혹 해주곤 했다. 아이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다녔다고 했다. 아이 엄마의 말이 맞기라도 하듯 나우누리엔 많은 사람과 교류한 흔적이 있었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만나고 등의 흔적을 보며 '내가 아이를 너무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젠 그 게시판도 없어져서 영원히 사라진 흔적.

아이는 부모님을 매우 싫어했다. 아니 미워했다. 아니 저주했다고나 할까. 아빠는 폭행을 일삼는 무서운 아빠고, 엄마는 설거지며 청소며 자길 식모 부리듯 하는 엄마로 묘사했다. 나중에 알게 된 진실은, 아빠가 무서운 건 맞지만 엄마는 아이를 식모 부리듯 하진 않았다. 아이 엄마 말로는 아이가 사고를 너무 많이 치고 다녀서 많이 맞았다고 했다. 툭하면 가출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을 다니며 사람을 만났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고 했다. 나중에 아이가 떠나고서야, 아이가 윌슨씨 병 때문에 그랬는데 그것도 모르고 혼내고 때렸다며 많이 후회하셨다. 윌슨씨병은 약간의 정신병적 증세도 동반하는 병이었으니까.

아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다고 했다. 걷기 힘들어지고, 발음이 이상해졌다. 윌슨씨병 증상이다. 윌슨씨병의 가장 큰 특징은 근육이 말리는 것인데, 다리 근육이 말려서 걷기 힘들어지고, 혀 근육이 말려서 발음이 힘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아빠의 사업이 망하면서 별다른 치료도 못 받았고, 휴학하고 집에서 쉬었다고 했다. 집에서 쉬려니 얼마나 심심했을까. 그래서 아마도 PC통신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아이는 중1 다니다가 1년을 휴학했고, 다시 복학한 후에 중2 다니다가 다시 휴학했다. 내가 아이를 만난 때는 중2 다니다가 휴학한 후 다시 중3 복학하기 전이었다. 나보다 나이는 두 살 어렸지만 학년으론 세 학년이나 아래였던 것. 어, 이상하다. 2년 휴학했으면 네 학년 아래여야 하는데. 이노무 치매. 그래, 아이는 네 학년이 아래인 중2로 복학하기 전이었겠지.

아이는 천재였다. 가출을 밥 먹듯이 하고 만화를 좋아해서 매일 만화만 그리며 놀았어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고 했다. 수업 시간엔 잠이나 자고 시험 보면 만점. 그래서 커닝하나 싶어서 독방에서 시험을 보기도 했지만 항상 만점이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책을 통째로 외우고 있더라고 했다. 몇 페이지 몇째 줄에 뭐가 있는지도 기억할 정도였고, 영어단어도 단어장을 통째로 외우고 있어서 페이지 수만 얘기해도 그 페이지의 영어단어를 줄줄 외울 정도였다고 했다. 그냥 천재였던 것. 아이가 일찍 하늘나라로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아마도,,, 대한민국을 바꿀 유명한 인물이 돼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금은 없지만, 아이가 만화를 그려서 내게 선물로 준 적이 있다. 정말 원작과 똑같을 정도로 완벽하게 그렸다. 그림을 기가 막히게 잘 그렸던 것. 그래서 아이는 '오빠 소설을 내가 만화로 그려줄게.'라고 말하곤 했다. 만화도 좋아했고 일본 애니도 즐겨 봤다고 했다. 평소에 공부를 안 해도 시험만 보면 1등에 만화도 끝내주게 그렸던 아이는 작은 키에 마른 체형이면서도 매우 글래머였다. 아이는 처음엔 자신의 몸매를 내게 매우 강조했다. 내가 가슴이 몇이다, 허리가 몇이다. 지금도 기억난다. 두 번째였나 세 번째 편지에 '난 36 24 35'라고 했다. 난 이 말을 전혀 이 해 못했다. 정말 나는 순진한 게 아니라 그냥 바보였는지도. 난 여자에 전혀 관심이 없던 시절이라 그 말뜻을 그땐 몰랐다. 나중에 커서 이해한... ㅎㅎㅎ 공부도 잘해, 인물도 괜찮아, 그림도 잘 그려, 몸매도 돼. 말 그대로 그냥 엄친아였던 것. 17살인 아이는 영어는 물론 자막 없이 일본 애니를 볼 정도로 일본어도 유창하게 했으니 더 말하며 입만 아플 듯. 나중에 아이는 학교를 다시 휴학하고 검정고시로 중졸 고졸 수능시험 논술시험을 1년에 끝내버렸다. 수능은 1문젠가 2문젠가 틀려서 만점 못 받았다고 슬퍼했으며, 서울대 영문학과에 들어갔다. 목표는 법대였는데, 법대에 못 갔다고 한동안 우울해했다. 음... 또또통과 겹치는 인물이 떠오를 것이다. 현정이. 현정인 아이를 참고해서 창조한 인물이다.

음... 이쯤이면 많이 설명한 것 같으니 다시 본문으로 가보겠다.

어제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TV를 보는데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회사 직원들이 워크샵을 갔다. 바베큐 파티를 할 시간이 되자 여주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것이다. 다들 벙쪄 있으니 여주가 '파티 한다고 해서요.'라고 했다. 바베큐 파티는 그냥 삼겹살에 소맥 마시는 거라고 하자 여주는 몰랐다며 옷을 갈아입었다. 회사는 처음이니 워크샵을 잘 모른다고 해도 수학여행은 가봤을 거 아니냐고 묻자, 중학교 땐 수학여행 전날 맹장, 고등학교 땐 수학여행 전에 데뷔하는 바람에 수학여행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도 수학여행은 가본 적이 없다.

중학교 땐 수학여행이란 게 없고, 고등학교 땐 고1 때 수학여행이 있었다. 무직인 할머니와 살던 난 난 비용을 내지 못해 못 갔다. 수학여행 못 간 또는 안 간 아이들만 한 반에 모여서 시간 때우다가 집에 가길 3일인가 4일인가 했다. 그때 난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학여행 못 간 게 한이 돼서 아르바이트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석간 신문 배달을 했다. 그때 당시 6만 원인가 받았다. 너무 적었다. 그래서 조간으로 바꿨다. 월 10만 원인가 받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벼룩시장(아핫,,, 벼룩시장 ㅋㅋㅋ)에서 전단지 알바를 발견했다. 전화했더니 오라고 했다. 남대문 어디였다. 학교 끝나고 3시간에 9천 원. 시급 3천 원이었다. 주6일 한 달이면 20만 원. 진작 알바를 했다면 수학여행은 갈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전단지 알바는 한 달 만에 그만뒀다. 그때 돌렸던 전단지는 일수였다. 난 일수가 뭔지도 몰랐다. 남대문시장 일대를 돌며 전단지를 돌렸는데 그때 남대문 지리를 다 외워버렸다. 그만둔 이유는 같이 알바하던 친구가 경찰에 걸리면서다. 우린 그때서야 이 알바가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고 바로 그만뒀다. 같이 알바했던 친구도 나오 같이 영구임대주택에 사는 가난한 친구였다. (영구임대주택아파트 : 생활보호대상자 또는 장애인이 살게 해주는 임대형 아파트로, 주공이 운영한다. 지금의 휴먼시아라고 보면 된다. 주공이란 말이 이미지가 안 좋아 휴먼시아로 바꿨다는데도 요즘 초딩들은 휴먼시아 거지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알바를 그만둔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그 친구가 자긴 새 알바를 구했다고 했다. 분식집에서 서빙하는 알바라고 했다.

"야, 그런 데서 고등학생도 써?"

"그래. 나도 몰랐어. 종로에 가면 분식집이 많거든. 너도 해볼래? 나 일하는 데는 사람 안 구하는데 돌아다니면 사람 구하는 데 많아."

난 그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종로에 갔다. 그러곤 친구와 함께 가게들을 돌며 '아르바이트 구함'을 확인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들어간 식당이 피노키오였다. 시급 1200원에 저녁 4시부턴가 5시부턴가 시작해서 10시까지 하는 알바였다. 첫 달에 12만 원인가 16만 원인가 받은 걸로 기억한다. 90년대 중반 알바들 시급이 이랬다. 식당은 2인 테이블 33개로 분식집치곤 컸다. 주방엔 아줌마 2명, 아저씨 2명, 누나 한 명, 형 한 명 이렇게 6명 정도 됐고, 홀서빙은 10명쯤 됐다. 일부러 그렇게 뽑았는지 10명이 모두 고2였다. 아, 한 살 위엔 누나도 한 명 있었다. 서빙에서 유일하게 곧 졸업할 3학년이었다. 그 누나는 단발머리에 매직 수준의 머릿결이었는데, 앞머리도 자르지 않고 옆머리와 같은 길이로 길렀다. 그 바람에 앞머리를 계속 옆으로 넘겨야 했고, 밥 먹을 땐 한 손으로 앞머리를 붙잡아야 할 정도였다. 난 그 누나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아니 그 누나의 머리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머리를 길렀다. 1년쯤 길러서 앞머리가 옆머리 길이만큼 될 정도로 길렀고 단발머리처럼 하고 다녔다. 고3 때. ㅋㅋㅋ 앞머리 때문에 매우 불편했지만 밥 먹을 때 왼손으로 앞머리를 붙잡고 밥을 먹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내가 멋있어 보였다. 나중엔 그 머리에 스트레이트를 하고 탈색을 한 다음 쌔빨간 색으로 염색을 했다. 고3 가을에. 그러고 종로를 다니면 사람들이 쳐다보곤 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컴백홈을 부르던 서태지가 나와 똑같이 하고 다녔다. 뭐냐 쟤는. 사람들은 내게 머리가 서태지랑 똑같다며 서태지 팬이냐고 물었고, 난 그때마다 아니라고 대답해야 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너무 많은 질문을 받았다.

암튼 그 누나의 머리에 반해 나도 머리를 길러야지 하다가 한 달이 갔고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새 알바생들이 엄청나게 왔다. 1년 전 겨울방학 때 알바했던 애들이라며 왔는데, 다들 한 서빙 하는 실력자들이었다. 알바생들 10여 명 중 남자는 언제나 둘 뿐이었다. 남자의 역할은 만두를 찌는 일이었으니까. 남자 둘 중 한 명은 만두를 쪘고, 한 명은 돌솥비빔밥 용 돌솥들을 들고 다녔다. 난 만두를 쪘다. 첫 달부터. 새로 온 알바생들도 모두 고2였다. 다들 친했는데, 서로 친하기도 했고 주방 사람들과도 친했고 카운터와도 친했다. 카운터는 사장 딸 셋이 돌아가며 봤는데, 큰딸은 성인이었고, 둘째 딸은 나보다 한 살 많은 졸업반이었으며, 막내는 나보다 두 살인가 어렸다. 세 딸 모두 얼굴이 기억나긴 하는데 이름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난 셋째 딸과는 친했는데, 둘이 쇼핑도 다니고 같이 놀기도 했다. 그런데 이름은 영 기억이 안 난다.

알바생들 중에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이 음식을 빼는 일을 맡았다. 식당에선 이 자리를 '빠텐'이라 불렀다. 주방에서 나온 음식을 전표를 보며 분배하는 일이다. 머리도 좋아야 하지만 웬만한 경험과 노하우가 없으면 못 하기 때문에, 그 자리는 항상 가장 오래 일했고, 가장 실력이 좋은 사람이 맡았다. 그래서 그 자리는 하나의 완장과도 같았다. 반장이라고나 할까.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곧 짱이었다. 앞에도 말했지만, 새로 온 알바들은 이미 작년에 일했던 알바들이고 그 자리 경험이 있는 사람이 둘이나 됐다. 둘은 서로 자기가 그 자리를 하겠다고 신경전을 했고 결국 둘이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하게 됐다. 그 둘 중 한 명이 현희였다. 매~~우 긴 생머리에 웃으면 작은 눈이 더 작아졌다. 그리고 친절했다. 그리고 지난달 일했던 알바생들이 그만두고 새 알바생들이 또 들어왔다. 이번엔 고1 네 명이었다. 여자 둘 남자 둘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건데, 나이 속이고 알바하는 애들이 엄청 많았다. 새로 온 알바 고1 중 두 명의 여자는 사실 중3이었다. 이 둘의 교복을 아는 사람이 '이거 ㅇㅇ 중학교 교복이다'라고 하면서 들켰다. 이땐 알바한다고 해서 부모동의서 같은 건 없었기에 나이 속이는 건 누워서 떡 먹는 것보다 쉬웠다.

남중 남고를 다닌 나는 여자와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알바 첫 달엔 그냥 말없이 일만 했다. 그러다가 두 달째가 되면서 현희와 자주 말을 하게 됐다.

"어,,, 저.. 저기... 미안... 내가... 여자랑 말해본... 적이 없어서..."

현희는 그런 내게 친절하게 대해줬다. 만두 찌고 만두 서빙하는 일을 맡았기에 난 빠텐을 하는 현희와 자주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일 때문에. 그러다가 현희와 자주 얘기를 하게 됐고 우린 빠르게 친해졌다. 우린 출근 전에 같이 커피숍도 가는 등 친해졌고 서로 대화도 잘 통했다. 우린 크리스마스 선물도 주고받으며 우정을 키웠다. 그러다가,,, 무슨 사건인지 자세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두 빠텐이 싸웠다. 현희와 또 한 명의 빠텐. 둘이 싸울 때 난 대놓고 나서서 현희편을 들어줬고 결국 한 빠텐이 그만두면서 빠텐 자리는 현희 고정이 됐다. 아마도 이 사건 때문에 내가 알바생들에게 오해를 받게 됐던 것 같다. 난 신사병도 있어서 늘 항상 언제나 여자를 먼저 챙겨선지 식당 내에서도 내 편이 많았다. 한번은 여자 알바생 한 명이 울고 있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한 손님이 물컵을 엎질렀다고 화를 내서 운다고 했다. 난 어이없게도 그 손님에게 가서 시비를 걸었다.

"누구든, 우리 알바생 울리는 새끼는 내가 가만 안 놔둬."

사장이 보고 있었지만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그 알바생과는 전혀 친하지 않았으니 내가 좋아하는 알바생이어서 화난 것 아니냐는 오해는 금지다. 그 여자애는 사귀는 남자랑 같이 알바하고 있었고, 그 남자는 그 여자애를 달래주고 있었다. 그 남자애는 1학년 여자애는 2학년이었는데, 둘이 식당에서 만나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둘이 사귀더니 남자애가 여자애에게 반말하기에 '야, 너. 사귀는 사이니까 반말하는 건 상관없는데, 식당에선 하지 마라. 나 네 여자친구랑 같은 2학년이다. 조심해라.'라고 말한 적도 있어서, 남자애가 날 싫어하는 때였기도 했다. 암튼, 여러 가지로 난 신사병 환자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이 별명을 지어준 사람은 현희였다.

"야, 우리 식당에 신사병 환자 있잖아. 영진."

다들 딱 맞는 비유라며 깔깔 웃었다. 난 내 별명이 마음에 들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 안 좋아해. 자기한테만 잘 해줘야지, 모든 여자한테 잘해주면 큰일 나."라고 나중에야 현희가 조언을 해줬다.

식당에 일한 지 세 달째였다. 현희와 주방 형이 헤어졌고 또또통에 나온 그 장면이 연출됐다. 어떤 장면인지 모르면 또또통을 사서 보시길. ㅎㅎㅎ 안 알랴줌. 평소 내 소설을 즐겨본 분이라면 기억날 장면이다. 형은 매일 표정이 안 좋았고, 현희는 일하다가도 틈만 나면 단체석에 앉아 울었다. 그런 현희를 위로해준 사람은 중 한 명은 나였다. 난 만두 담당이었기에 조금은 자유로웠으니까. 안 그래도 평소 현희와 잘 어울려 다녔고 일하면서도 너무 친했기에 소문은 '현희와 영진이가 사귀기로 했다며'로 돌고 있었다. 웃음도 안 나왔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이때쯤 엠을 만났다. 늘 만두를 가지러 오던 동갑내기 여자가 아니라 엠이 온 것이다. 작은 가게에 일했던 엠은 늘 오던 사람이 쉬는 날이라며 대신 왔다고 했다. 엠과는 그렇게 만났다. 또또통을 못 읽은 독자들을 위해 발췌를 해보겠다.


(여기부터 또또통 발췌. 난 넘나 친절한 작가야. ^^)

"이수야, 이수야, 희소식. 히힛."

소휘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기분이 들떠 있었다.

"작은가게에 너 좋아하는 애 있다더라. 방금 훈이오빠한테 들었어."

"응? 날?"

"그래그래. 이름은 안 물어봤데. 키가 작다고만 했어. 히힛. 넌 좋겠다. 드디어 여자친구 생기는 거야? 미리 축하해. 참, 너도 맘에 들어야지. 혹시 작은가게에 아는 애 있어?"

"아니. 아, 매일 만두 가지러 오는 애가 있거든. 걘가?"

작은가게에선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인 5시 30분 쯤 항상 지현이가 만두를 가지러 왔다. 지현이가 키가 작긴 했지만, 지현이?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래? 몇 살인데?"

"우리보다 한 학년 아래야. 1학년"

난 만두 가마 앞에 서서 만두를 익히기 시작했다. 곧 저녁 장사를 해야 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5시 30분이 훌쩍 넘어 있었다. 왜 안 오지? 그때 한 아이가 갑자기 내 앞에 서서는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 저는... 작은가게에 미영이라고 해요."

"네? 네. 안녕하세요."

"오빠 말 놓으세요. 저 1학년이에요."

"어? 어. 그래."

"저기 오늘 지현이가 쉬는 날이라 제가 만두를 가지러 왔어요. 만두 주세요."

"그래. 몇 통 줄까?"

"일곱 통이요."

난 만두 일곱 통을 꺼내 미영이에게 건네줬다. 미영이가 만두통을 안아 들자 눈만 보였다. 일곱 통이면 들고 가기엔 많은 거구나, 라고 생각할 때쯤 미영인 인사를 하곤 뒤돌아 걸어갔다. 키가 작아 왠지 불안해 보였다.

다음날도 지현이 대신 미영이가 만두를 가지러 왔다.

"안녕하세요. 지현이가 가족여행이라 오늘도 제가 대신 왔어요. 오늘도 일곱 통 주세요."

"어. 그래."

"저기, 그런데요, 어제 만두 들고 가다가 앞치마랑 옷이랑 다 젖었어요."

만두통을 똑바로 들지 않으면 만두통 테두리에 고인 물이 흘러 나온다는 것을 몰랐나 보다. 아니 키가 작아서 일곱 통이나 되는 만두통을 똑바로 들기 어려웠겠지. 그러자 어제 만두통을 힘겹게 들고 뒤뚱거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작은 키에 만두 일곱 통을 안고 걷다 보니, 혹시나 통을 떨어뜨릴까 품에 꼭 안았을 것이다. 그래서 물이 흘렀고 앞치마는 물론 옷까지 다 젖었을 테지.

"옷이 다?"

"네."

미영이가 미간을 좁히며 아랫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그 모습이 귀엽다 못해 꼬집어주고 싶었다.

"오늘은 내가 물을 다 빼서 줄게. 일곱 통이지?"

난 만두통을 기울여 물을 뺐다. 만두통을 기울이면 물은 빠지지만 만두가 쏟아질 염려가 있었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기울여야 했다. 내가 만두통을 기울이자 물이 한가득 쏟아져 나왔다. 미영인 떨어지는 물을 보곤 손뼉을 치며 활짝 웃었다.

"와~~ 신기해라."

미영이가 싱글벙글 웃으며 좋아했다. 그러곤 머리를 숙여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만두통을 안고 작은 가게로 돌아갔다.

다음날엔 늘 오던 대로 지현이가 만두를 가지러 왔다. 난 평소대로 만두를 꺼내 지현이에게 줬다. 그러자 지현이가 날 째려봤다. 갑작스러운 지현이의 행동에 난 당황하고 말았다.

"오빠 재수 없는 거 알아요?"

난 당황하다 못해 내가 재수 없다는 말에 놀랐다.

"내가? 왜?"

"어제 미영이에겐 물 빼서 줬다면서요."

"어? 어. 그랬지."

"나도 늘 앞치마 젖었단 말이에요. 왜 난 안 빼줘요? 치."

지현인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뒤돌아 가버렸다. 물을 빼주겠다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발췌 끝)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작은 가게에선 내가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서로 만두 가지러 가겠다는 신경전이 벌어졌을 정도였다나. 흠... 내가 어렸을 땐 한 인물 했다. 키만 크면 킹카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었다. 사실이다. 하하하. 난 작은 키가 콤플렉스였는데, 나중에 마흔쯤 되어 생각해보니, 키도 컸으면 큰일 날 뻔했다. 키가 작았어도 좋아한다는 고백을 지겹도록 들었는데, 키마저 컸으면 난 좋아한다는 고백에 쌓여 피곤했을 테니까. 이쯤 되면 내 얼굴이 궁금할 것이다. 하하하.

암튼... 이렇게 엠을 만났다. 이번 꼭지에서 내가 서두에 한 말이 혹시 기억날지 모르겠다. 인연은 재밌고도 신기하다는 말. 만약 내가 알바를 하지 않았다면 엠을 만나지 못했을 거고, 아이가 적극적으로 돌변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는 내게 '엠에게서 오빠를 뺏을 거야.'라고 말했고 정말로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발렌타인데이였다. 졸업식이 2월 13일이었으니, 졸업식 다음 날이었다.

한참 일하고 있는데, 식당에 아이가 나타났다. 아이는 자기가 내 여자친구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녔고 작은 가게에는 1초도 안 되어 소문이 전달됐다. 당연히 작은 가게는 뒤집어졌다. 엠은 일도 못 하고 펑펑 울어댔고 나 주려고 가져온 초콜릿 바구니를 던져버렸다는 얘기를 다음 날 전해 들었다. 이게 무슨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건지. 난 아이에게 따졌지만 쉽게 물러설 아이가 아니었다.

"집에 가. 난 너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싫어. 내 맘이야. 내가 말했지? 오빠를 뺏을 거라고."

아이는 자기 초콜릿을 받지 않으면 집에 가지 않겠다고 버텼고 난 아이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실랑이 중에 10시가 지났고 엠은 혼자 집에 가버렸다. 다음 날 또 찾아와서는 엠에게 해명도 해야 하고 정신 하나도 없는 내게 아이가 충격적인 말을 했다.

"나 엄마 아빠한테 오빠랑 결혼하겠다고 허락해달라고 했어. 그런데 엄마가 안 된다고 해서 가출했어."

(다음에 이어서...)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1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6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5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4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3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2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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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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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소설은 드라마같은 삶을 살아야 가능한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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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오빠는 기구한 삶을 살아서 멋진 소설가가 될 수 있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제 소설에 제 삶이 많이 묻어 있는 것 같아요. ^^ 한 소설가는 노숙자 삶을 이해하려고 일부러 노숙자 생활을 해봤다고 해요. 그러고 나서 소설을 썼다네요. 어떤 소설가가, 너무 평범하게 살아서 쓸 게 없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선지 그 소설가의 소설은 너무 평범했지요. ^^

나하님 인기쟁이셨군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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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핫,,, ㅎㅎㅎㅎㅎ

nTOPAZ 생태계에 참여하기 ⑨ ( 최대 $1.75 👍)

모든 이벤트 참여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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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