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4

in #kr-series2 years ago (edited)

아이는 헤어질 때 내게 이렇게 말했다.

(note 2-4 발췌)

"오빠, 나 이제 그만 힘들래. 오빠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힘들어져. 이젠 그만 힘들래. 그리고 나 만나는 사람 생겼어. 친오빠 아는 사람이고 서울대생이야. 그 오빠가 나한테 잘해줘. 부모님도 좋아하시고."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사랑하는데, 너무 사랑하는데... 나 오빠를 너무 사랑하는데. 그런데 이젠 헤어져야 해. 오빠보다 키도 크고 오빠 보다 잘생겼어. 오빠만큼 착하고 집안도 좋아. 그리고 나한테도 잘해주니까 나 그 오빠랑 사귀기로 했어. 그러니까 우린 이제 진짜 헤어지는 거야. 진짜로. 나 이제 엄마랑 아빠랑 행복하게 살 거야. 지금까진 말썽쟁이 딸이었고 못난 딸이었어. 그런데 엄마 아빠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랐지 뭐야. 이젠 엄마의 사랑도 받고 아빠의 사랑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 거야. 그날 오빠한테 헤어지자고 한 이후로 아빠가 얼마나 잘해주는지 몰라. 나 그동안 못 받은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고 있어."

"미안해. 내가 너무 못나서 미안해. 나 때문에 너 힘들게 해서 미안해."

"오빠, 안녕. 사랑하는 나의 오빠, 안녕~~~"

뚜~~

그렇게 끝났다. 열아홉 사랑.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서는 제 맘대로 좋아하고 제 맘대로 사랑하고 내 마음을 흔들어놓고 끝났다. 그렇게 끝났다.

(발췌 끝)

이렇게 끝난 아이와의 인연. 나중에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오빠가 날 못 잊을까 봐, 그래서, 빨리 잊으라고 남자 생겼다고 거짓말했어."

난 야속하게도 아이의 바람대로 정말 빨리 잊었다. 겨우 1주일 만났고 특별한 경험을 줬지만, 오랜 기간 떨어져 있었고 가끔 통화한 아이는 쉽게 잊혀졌다. 내가 위에처럼 적긴 했으나 아이는 내게 더 야속하게 말했다. 좀 밉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새로 사귄 남자에 대해 자랑을 늘어놨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다시 만나서는 거짓말이었다고 했다. 자길 빨리 잊게 하려는 거짓말. 난 아이를 기억에서 지우지는 못했어도 아이에 대한 감정을 쉽게 지웠다. 정말,,, 아이의 바람대로.

그래선지 마음이 매우 허전했다. 친구들은 대학생인데 난 식당에서 일한다는 것도 마음을 가난하게 했다. 그래서 늘 어두운 표정이었고 우울했던 것 같다. 그래서 술을 퍼마셨다. 평일엔 일이 끝나면 술을 퍼마셨고, 주말이나 쉬는 날엔 손님이 너무 많아 점심때부터 술을 퍼마셨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술기운이 아니면 버텨낼 수 없었다. 키 170에 겨우 48킬로였던 난 체력적 한계를 느끼며, 저질 체력으로 일을 버텨내기 위해 낮부터 술을 마시곤 했다. 그러다가 술병에 걸렸고 한 달 넘게 고생 또 고생 생고생을 마무리하던 중이었다. 무엇을 먹든 설사를 했고 온몸이 덜덜 떨렸으며 이러다 죽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런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게 '정'이었다. 정은 날 좋아한다는 게 사실이냐는 내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난 마음이 떨렸다. 정은 1, 2층 아르바이트생 중에 가장 예뻤고,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에서도 지금으로 말하면 얼짱 같은 아이였다. 평상시 일하는 정을 보며 예쁘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도 '저렇게 예쁜 애랑 사귀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나와 수준이 안 맞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대학생도 아닌 주방 보조라는 신분이었고 키도 작았으니까. (난 작은 키가 너무 싫었다.) 그런데 날 좋아한다고? 나도 어쩔 수 없는 수컷이었다. 예쁜 여자를 보면 눈이 가는 수컷. 그런데 예쁜 여자가 날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기, 오빠. 나 오빠랑 사귀고 싶어요."

놀랐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 정말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놀랐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세상이 달라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여긴 내 일터였다. 난 학원비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체력도 안 되는 몸으로 중노동을 하고 있었고, 그걸 술로 겨우겨우 버텨내다가 술병에 걸려 쓰러지고는 회복하는 중이었다. 어제만 해도 세상은 어두웠다. 세상은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고, 돈 있는 자와 돈 없는 자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다. 정이 있던 세상과 없던 세상.

"어? 어... 그... 그래..."

내 대답에 정은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부끄러워서 오빠 얼굴 못 보겠어요."

"어? 어..."

우린 그렇게 시작했다. 가장 먼저 축하한 사람은 카운터를 보던 친구 백이었다. 백은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했고 온 가게에 소문을 냈다. 우린 그렇게 식당 공식 커플이 됐다. 데이트? 한 달에 두 번 쉬는 내게 데이트는 어쩌면 사치였을지도. 우린 내가 쉬는 날에나 제대로 데이트를 했고 평소엔 일하다가 쉴 때나 얘기하곤 했다. 집도 완전하게 반대 방향이라 바래다주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뭐 대단한 데이트를 한 기억이 없다.

그때 2층에도 커플이 한 쌍 있었다. 그 커플은 고2 커플이었고 1층과 2층 고2끼리 많이 어울려 다녔다. 나도 같이 어울리곤 했다. 하루는 백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식당 공식 모기 한 쌍 영진이와 정, 공식 바퀴벌레 한 쌍 ㅇㅇ이와 ㅇㅇ이' 그때만 해도 바퀴벌레 한 쌍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우린 어쩌다 보니 식당의 공식 커플 1호와 2호가 됐고 어쩌다 보니 어울려 놀고 있었다.

정과도 오래 사귀진 못했다. 학생과 직장인이라는 서로 다른 신분 차이도 있었지만, 내가 시간 내기 어려웠다. 정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후엔 저녁에 잠깐 시간을 내 만나기도 했지만 우린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이 헤어지자는 음성을 남겼다. 삐삐에. 난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왜. 이젠 내가 싫어졌나? 난 그런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당황했다. 전화를 달라고 했다. 그렇게 정과 통화가 됐고 정은 미안하다며 이유는 묻지 말아 달라고 했다. 왜? 왜? 정은 끝까지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이유... ㅎㅎㅎㅎㅎ 정 부모님이 날 알게 됐고, 결국은 강요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스무 살인데 대학생도 아닌 남자. 그런 남자와 사귄다는 데 좋아할 부모는 이 세상에 없었다. 난 이유를 알고는, 차라리 이유를 몰랐다면 더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도 했다. 정이 나와 헤어질 수밖에 없던 이유를 알려준 건 정이 아니라 정의 친구였다. 다음 해 봄쯤으로 기억한다. 처음 보는 여학생 둘이 내게 아는 척을 했다. 고3 여학생 둘은 날 보고는 실실 웃었다.

"저기 오빠 이름이 '김영진' 맞죠?"

"어? 어. 그런데?"

둘은 다시 실실 웃었다.

"정 알죠? 우리 정이랑 친구예요."

아, 그러고 보니 교복이 같았다. 그렇게 이 두 여학생은 아르바이트하다가 나와 마주치면 정 얘기를 했다. 작년에 우리가 사귈 때 학교에서 어땠는지, 친구들이 어땠는지, 왜 헤어지게 된 건지 등. 그러면서 정이 보고 싶지 않냐고 정이 오빠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했다.

"정이 가끔 와서 창밖으로 오빠 얼굴 보고 갔는데 몰랐죠? 히히."

식당이 워낙에 커서 창밖을 신경 쓸 수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야 알게 된 건, 정이 자주 와서 창밖으로 날 보고 갔다고 했다. 혼자 오기도 했고 친구들이랑 오기도 해서 친구들 사이에선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게다가 사귀는 중에도 학교에서도 난리가 아니었다고 했다. 얼짱이었던 정은 웬만한 남자에겐 관심도 안 줬는데 사귀는 남자가 있다고 하니 친구들의 관심이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사귀는 중에도 정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도대체 어떤 남자인지 궁금해서 창밖으로 날 보고 갔다고 했다.

그런데 난 겨울이 되면서 2층으로 올라갔고 정은 더는 나를 창밖으로 볼 수 없게 됐다. 그래도 가끔 와서는 혹시나 하고 창밖을 기웃거렸다고.

"정이 오빠 많이 보고 싶어 하는데, 시간 내봐요. 우리가 데리고 올게요."

나, 정, 정의 친구 둘. 우리 넷은 이렇게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잘 지내는지 등 오랜만에 만났을 때 하는 그런 평범한 대화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다시 20살로 돌아와서. 여름 냉면 시즌 동안 죽을 뻔했고, 죽지 않으려고 술을 퍼마시고 일하다가 술병 걸렸고, 정과의 만남 이후 겨울이 됐다. 12월의 어느 날 아침. 주방장은 1층에서 일하는 내게 2층으로 올라가라고 했다. 보통은 설거지 3년, 1층 3년은 해야 2층으로 갈 수 있었다. 2층이야말로 진짜 기술을 배우는 곳이었다. 그런데 난 설거지 3개월, 1층 6개월 만에 2층으로? 이식당 역사상 유일한 초고속 승진이었다. 2층 냉면부장이 그만두면서 공석이 생겼고, 새 냉면부장을 못 뽑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참에 냉면부장 뽑기를 포기하고 내가 유일한 냉면부가 됐다.

그렇게 나의 냉면 인생이 전성기가 시작됐다. 1층에선 냉면 면을 삶는 것만 했지만, 그 외 모든 일은 2층에서 했으니까. 게다가 12월이면 냉면 시즌이 완전하게 끝난 시기라서, 하루에 잘해야 20그릇이나 팔릴 정도였다. 그래서 난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고, 시간이 남아돌아서 온갖 일들을 다 배울 수 있었다. 육부 일인 갈비 포 뜨기, 전골부 일인 전골 재료 준비하기, 탕부 일인 갈비탕 갈비 준비와 육개장 다데기 만드는 일 등 2층에서 하는 일은 전부 배웠다. 난 10시 출근인데도 9시까지 출근해서는 1시간 만에 내 일을 모두 끝내버리고는 육부, 탕부, 전골부 등을 기웃거리며 '뭐 좀 도와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면 일을 하나씩 줬고 난 하나하나 도와주며 모조리 배워버렸다. 난 직장생활 하면서도 내 일과 상관 없는 일들 자발적으로 많이 했다. 난 엔지니어지만 디자인 일 영업 일 마케팅 일 등 가리지 않고 했다. 사장이 '이거 누가 해볼래?'라고 물으면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나섰고 닥치는 대로 부딪히며 배우며 일했다. 그래서 난 타 부서 일도 웬만큼 알고 공석이면 땜빵도 가능하다.

어제 댓글에 내 직장생활 등의 노하우 물어본 분이 계셨다. 얼마 전부터 계획 중인 새 시리즈가 아마도 내 직장생활 노하우가 될 듯싶다. 새 시리즈 제목은 '나는 꼰대다'를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일한 방식대로 시키면 완벽한 꼰대가 되기 때문이다. 난 식당에서 일할 때도 1시간 일찍 출근했고, 군대 다녀와서 직장생활 하는 내내 8시면 출근했다. 출근해서는 책상 청소 등을 하고 손걸레로 모니터 등 이곳저곳 먼지를 닦아내고는 다른 사람들 책상들도 모두 닦았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이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 손걸레로 청소를 했고, 밀대로 바닥청소도 했다. 역시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이다. 그러고는 이면지를 반으로 잘라 만든 낙서장에 그날 할 일을 적었다. 어제 적은 그날 할 일에서 한 일과 못 한 일을 정리하고 오늘 할 일을 정리했다. 난 이렇게 사원급, 주임급, 과장급 내내 했다. 내가 팀장급이 돼선 부하직원들에게 참~~ 많은 잔소리를,,, 아니 꼰대 짓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8시 30분까지 출근시킨 일이다. 난 단 하루도 안 빼고 매일 8시 30분부터 30분 동안 회의를 했다. 각자 돌아가며 어제 한 일을 보고하고 오늘 할 일을 보고하게 시켰다. 그러곤 어제 할 일을 못했을 경우, 그 일을 오늘도 못 끝낼 것 같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끝내라.'라고 지시했다. 내가 신입사원, 또는 새 부하직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이거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 나가 샌다는 말 정확히 아는 사람이 드물 겁니다. 지금 이 회사가 작고 급여도 적다고 대충 일하고 싶은 마음 다 압니다. 저도 그런 마음 굴뚝같으니까요. 하지만 이 회사보다 더 좋은 회사에 가면, 지금 이 회사에서 한 대로 하게 됩니다. 특히나 신입사원은 첫 직장, 첫 사수가 매우 중요합니다. 첫 직장에서 대충 한 사람은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회사에 가서도 설렁설렁하게 되죠. 하지만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급여도 적고 대우도 개판이고 복지도 없는 회사에서도 최선을 다한 사람은 더 좋은 회사에 가서도 최선을 다합니다. 최선에 몸에 밴 것이죠. 그걸 습관이라고 합니다. 습관은 만들기는 쉬워도 버리긴 어렵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습관이 생기면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실패하는 직장인이 되는 것입니다. 저와 일하면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서 끌어줄 테니까요."

옛날엔 이 말이 통했다. 난 그런데 요즘 20대에게 이런 말 하면 꼰대 소리 듣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뭐 나도 젊지만) 초과근무 시키면 도망가거나 신고하거나 대든다. 조언하면 꼰대가 된다. ㅎㅎㅎ

나중에 '나는 꼰대다'에서 더 자세히 말하겠지만, 2장에 나왔던 현정이를 기억할 것이다. 현정인 불량 사원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모범사원이 됐다. 내가 현정이에 대한 태도를 바꾸면서 현정이 마음이 열렸고 모범사원이 됐다. 내가 한식집 1층에서 일할 때 일이다. 한번은 홀서빙 직원이 내게 와서 하소연했다.

"애들이 내 말을 전혀 안 들어. 그런데 왜 네 말은 잘 듣는 거야?"

홀서빙 직원은 나와 동갑인 여자였는데, 아르바이트생들이 그 직원 말을 안 들었다. 시키는 대로 하지도 않는 불량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 하지만 그 불량 아르바이트생들은 내 말을 기가 막히게 잘 들었다. 난 현정이와의 경험을 그대로 1층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했을 뿐인데 아르바이트생들은 내 충성스러운 부하가 됐다.

서빙을 할 땐 우선순위가 있다.

  1. 무엇을 하던 중이라도 손님이 부르면 갈 것
  2. 주문받기
  3. 음식 나가기
  4. 테이블 치우기

테이블 치우다가도 손님이 부르면 가야 하고, 주문을 받다가도 손님이 부르면 대답은 해야 한다. 음식 나가는 일은 3번이다. 그런데 아르바이트생들은 우선순위 1번이 음식 나가기였다. 내가 그렇게 시킨 것도 아닌데도 손님이 부르든 말든 '나가자'라고 외치면 달려왔고 주문받다가도 달려왔다. 아르바이트생들이 하도 이러니까 홀 부장님도 와서 내게 '너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뇌물 먹였냐?'라고 말할 정도였다. 내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한 것과 홀 직원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한 차이점은 이거였다.

홀 직원 : 야, 너네 또 우르르 나가서 담배 피울래? 말을 안 들어?
나 : 담배 피우는 건 괜찮아. 뭐 어때. 그런데 둘씩 나가서 펴. 네 명씩 한 번에 나가면 남아 있는 네 친구가 힘들잖아.

특히나 한참 먹을 고등학생 남자애들에겐 피자도 사주고, 손님이 적은 비 오는 날엔 간식 파티도 해줬다. 그리고 불러서 농담 따먹기 하며 놀기도 하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하며 실수하지 않는 편리한 방법을 알려줬다. 그리고 일 끝나면 노래방에 데리고 가서 놀게도 해주고, 휴일엔 출근 전에 미리 모이라고 해선 맛있는 걸 사주곤 했다. 같이 놀고 같이 먹고 같이 히히덕거렸다. 그랬더니 친해졌다. 아르바이트생들하고 나이 차이라 봐야 1~3살이니 부담도 없었다.

"아르바이트생들이랑 친해지면 돼. 그리고 채찍은 버리고 당근만 줘."

홀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가 난 홀 직원과 원수가 됐다. 나만 보면 째려보고 화를 내더니 그만뒀다. 흠... 내가 뭘 잘못했기에... 나중에 마흔 넘어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나댄 건 아닐까도 싶다. 난 직장생활 하면서도 부하직원들과 친하기 지냈다. 내 직장생활 20년 역사상 내 말에 토를 달거나 못 한다고 하거나 반항한 부하직원이 0명이다. 나는 내가 봐도 정말 짜증 나는 꼰대인데도 여태껏 내 말을 안 듣는 부하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음,,, 초기의 현정이 빼고.

가끔 거래처 공장장님이나 관리자들 또는 사장님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10명이면 10명 모두 거짓말이라고 안 믿는다. 그러면서 '직원들은 잘해주면 기어올라. 아랫사람은 혼내면서 일을 시켜야 해.'라고 했다. 난 당근과 채찍을 반대하는 사람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를 맹신하는 사람이다. 난 부하직원을 혼내지 않는다. 절대 안 혼낸다. 알려주고 도와주고 이끌어준다. 실수를 덮어주고 내가 책임져주고 모른 척해주고 감싸준다. 내 부하직원은 무조건 내 보호 아래에서 누구에게도 불이익당하지 않게 해준다. 이게 내 방식이다. 난 당근만 준다. 당근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아내는 내게 이렇게 자주 말한다. '오빠는 왜 당근만 줘? 오빠한테 화낼 수가 없잖아. 난 오빠가 당근만 줘서 너무 좋아.' 그런 우리 부부는 처제네와 장인 장모님께도 질투 대상이다. 처제는 남편에게 '당신도 형부처럼 당근만 줘. 나도 당근만 먹고 싶다고.'라고 하고 장모님은 장인어른께 '여보, 나도 여잔데 나도 당근만 줘.'라고 할 정도. 자세한 건 '나는 꼰대다'를 쓰면서 풀어보겠다.

말이 삼천포로 빠졌네. 암튼 난 2층으로 올라갔고 2층 일을 다 배운 다음엔 틈만 나면 3층에 가서 반찬 만드는 일을 배웠다. 내 일 다 끝내고는 3층에 가서 '제가 도와드릴 거 없나요?'라고 물었고 온갖 반찬 만드는 법을 배웠다. 온 식당 주방을 다니며 다른 부서 일을 도와주고 다닌 나는 어른들 사랑을 듬뿍 받았다. 사랑도 받고 일도 알려줬다. 어른들은 자신만의 노하우도 다 알려줬고 난 마치 스펀지처럼 쭉쭉 빨아들였다. 내가 신입사원들에게 나처럼 하라고 말하면 꼰대 소리 듣는 요즘이지만, 난 그렇게 했다.

(다음에 이어서...)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3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2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1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6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5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4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3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2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1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6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5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4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3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2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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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ㅎㅎㅎ

난 부하직원을 혼내지 않는다. 절대 안 혼낸다. 알려주고 도와주고 이끌어준다. 실수를 덮어주고 내가 책임져주고 모른 척해주고 감싸준다. 내 부하직원은 무조건 내 보호 아래에서 누구에게도 불이익당하지 않게 해준다.

대박...이글을 읽고 감동받고 가네요. 저렇게 해주는 상사와 친하게 지내지 않을 이유 없죠. ㅋ 나하님 밑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ㅠ ㅎㅎㅎ

오세요. ㅎㅎㅎㅎㅎ 꼰대 상사라도 괜찮다면요. ^^ 지금은 수출입 업무가 많지 않지만, 사람 뽑는다고 하면 말씀드릴게요. ^^

우리는 식당가면
반찬 추가 주문할 때도
직원 부르기가 미안해서 접시들고 간다는^^

저도... ㅎㅎㅎ 식당에서 일해본 사람은 보통... 직접 가져다 먹죠. ㅎㅎㅎ

시간 내서 차근히 읽어볼게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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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은 곧 삭제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