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2

in #kr-series2 years ago (edited)

아빠는 나는 물론 내 동생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워낙 말수가 없기도 했지만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는 잘 다니는지, 밥은 잘 먹는지, 뭐 필요한 건 없는지 어느 것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내 초등학생 시절은 ‘방치’라는 단어 하나로 완벽하게 설명이 된다. 아빠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삼촌들도 내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고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프면 아픈가보다, 더러우면 더러운가보다, 받아쓰기 10점이면 10점인가보다. 학교엔 다녔지만 공부도 전혀 하지 않았다. 방치된 아이의 당연한 모습이었다. 생활통지표에 적힌 내 성적은 가가가가가. 모든 과목이 ‘가’였다. 아무리 방치된 아이라도 좀 똘똘했다면 모든 과목 ‘가’는 아니었겠지. 하지만 난 머리가 안 돌아가는 멍청이였다. 멍청이인 데다가 공부엔 관심이 없었고 공부하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으니, 모든 과목 ‘가’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 아빠와 시간을 보낼 시간이 생겼다. 새엄마가 생긴 것이다.

"인사해. 오늘부터 엄마라고 불러라."

처음 보는 아줌마였다.

"안녕하세요."

"엄마라고 불러야지."

아빠는 엄마라고 부르라고 재차 말씀하셨다.

"엄마."

새엄마와 언제부터 같이 살았는지 정확한 기억이 없다. 1년 정도 같이 살았는데 4학년 때였던 것 같다. 운동회 때 새엄마가 와서 사진을 찍어줬는데, 4학년 운동회였으니까. 4학년 운동회인 걸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학교가 교실이 모자라서 건물을 새로 더 지었는데, 그 건물에 4학년 때 들어갔고 그 건물에서 연습한 기억이 있어서 4학년으로 기억한다. 아빠는 요리사였는데 새엄마와 함께 살면서는 장사를 시작했다. 꽃 장사도 했고 호떡 장사도 했는데, 호떡 장사를 먼저 하고 꽃 장사로 바꿨는지 꽃 장사를 하다가 호떡 장사로 바꿨는지는 헷갈린다. 그래도 꽃 장사는 오래 했고 호떡 장사는 잠깐 했다는 건 기억난다. 아마도 꽃 장사를 하다가 겨울에만 호떡 장사를 병행한 것도 같다. 뭐, 내 기억은 엉망이니까.

난 서울시 동대문구 상봉동에서 할머니와 살았다. 지금은 중랑구 상봉동이다. 아직(2019년 현재) 고모가 상봉동에 사셔서 가끔 가보면 완전히 바뀌어 있는데, 내가 살던 시절엔 말만 서울이지 변두리였다. 도로에서 굴다리를 지나야 주택가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도로에서 굴다리까지 대략 50~60미터 정도 리어커 상인들이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장사하셨다. 굴다리를 바라보고 왼쪽으로는 주택가였고, 오른쪽으로는 연탄공장이었다. 연탄공장 뒤로는 그냥 수풀이 무성한 공터였다. 아빠의 꽃 리어커 자리는 중간쯤이었고 왼쪽엔 불법복제 테이프 리어커가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튀김을 파는 리어커가 있었다. 아빤 튀김 장수 아저씨와 친했는데 나를 보면 언제나 튀김 하나를 쥐여주곤 했다.

아빠는 손재주가 좋았다. 꽃 이름은 물론 풀 이름도 많이 아셨다. 그래서 꽃 장사는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됐던 것 같다. 새엄마는 늘 집에 계셨고 아빠 일을 도와주러 왔다 갔다 하셨다. 아, 맞다. 아빠가 손재주가 좋았다고 써놓고 보니, 왜 아빠가 식당 일을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했는지 이유가 생각났다. 그러니까 아빠가 새엄마와 집에 들어오기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가 부러지셨다. 그 때문에 평생 다리를 절으셨다. 아빠는 두어 달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퇴원하면서 식당일을 그만두셨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새엄마와 같이 살았기에 우리 남매를 할머니에게 맡겨두고는 집에 안 들어왔던 것 같다. 남매는 할머니에게 방치해놓고 새엄마와 방을 얻어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교통사고가 난 후 집으로 들어왔다. 아빠는 술이 약하셨는데도 술을 좋아하셨는데 술 마시고 택시를 탔다가 택시기사와 시비가 붙었고 그 바람에 택시기사가 길에 버리고 가는 바람에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암튼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심심해서 여러 인테리어 소품들을 만드셨다. 재료는 병원에서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들이었다. 주삿바늘을 제외한 일회용품들을 가지고 자르고 붙여서 기가 막힌 인테리어 소품들을 만드셨다. 아빠는 손재주가 좋은데 난 왜 손재주가 빵점일까.

그렇게 3년 동안 방치됐던 나와 동생은 드디어 새엄마의 보호를 받게 됐다. 난 너무 좋았다. 새엄마라도 엄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난 옷이 더러워지기 전에 갈아입게 됐고 세수도 매일 하게 됐다. 물론 양치질도 매일 하게 됐다. 거지꼴이던 애가 사람 꼴이 되었으니 새엄마에게 늦었지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데 난 성격이 지랄 같아서 새엄마와의 기억도 대부분 맞은 기억이니, 나도 참 골때리는 놈이다. 할머니 집은 무허가 건물이었는데 방이 3개나 있었다. 그중 가장 작은 방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막냇삼촌이 썼고 중간 방은 아빠와 엄마가 썼다. 그리고 큰방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나 동생이 함께 잤다. 아빠와 함께 살긴 했지만 잠은 따로 잤다.

새엄마가 생기니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우선 방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드디어 놀러 다닐 수도 있게 됐다. 새엄마가 생기고 첫 여름 난 새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외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고속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시골 중에서도 완전 시골에 도착했는데, 버스를 타려면 1시간은 걸어 나와야 하는 시골 중에서도 완전 시골이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리 가족은 외갓집에서 2주인가 3주 정도 머물렀는데, 이때의 추억은 내게 큰 영향을 줬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았던 나였기에 시골 생활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빗방울이 떨어지는 흙으로 된 마당, 외양간 소만으로도 전형적인 시골집이었고, 집 앞 개울가엔 청개구리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그리고 모기도 기가 막히게 많았다.

"택시에서 내리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네 집이야. 보면 인사 바르게 하고. 알았지?"

"네."

친척이라고는 고모 뿐이었기에 평소에 인사할 일이 없어서 걱정되셨나보다. 우린 택시에서 내렸다. 주위는 온통 흙길이었고 풀 뿐이었다. 나와 동생은 엄마 아빠를 따라 한 시골집으로 들어섰다. 담벼락은 있는데 대문은 없는 집이었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TV에서만 봤던 외양간 소가 보였고 나 만한 커다란 개와 작은 개가 보였다. 개 짖는 소리에 할머니가 나오셨다. 우리 할머니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셨다.

"인사해야지. 외할머니셔."

"안녕하세요."

"ㄴㅁㅇㄻㄴㄹㄴㅇㅁㄹ"

으응? 뭐라고? 난 할머니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고."

새엄마가 통역(?)을 해주셨다. 그리고 이모라는 분도 계셨다.

"꼬마들 왔구나. 잘생겼네. 안녕! 난 너희들 이모야."

"안녕하세요."

할머니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이모 말은 서울말이어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모는 대학생인데 방학이라 내려왔다고 했다. 이모는 새엄마와는 다르게 예뻤다. 새엄마는 형제가 많았는데, 다들 결혼했고 이모가 막내라고 나중에 알려주셨다.

할머니가 뭐라고 말씀하셨지만 난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TV에 보면 사투리를 써도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심해도 너무 심했다.

"오는 길에 점심은 먹었어요."

아~~ 밥 먹었느냐는 말이었나 보다. 우린 마당을 가로질러 툇마루에 올라앉았다. 방이 몇 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여러 개 있었고 한 방을 우리 가족이 쓰게 됐다. 툇마루와 연결된 여러 방이 있었고 우린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부엌 구경도 했는데 가마솥이 있는 시골 부엌이었다. 방도 시골 방이었다. 벽지는 물론 문도 시골 벽지와 시골 문. 아,, 시골 벽지와 시골 문이라는 말 외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기억이 한계로. 암튼 방은 작았다.

새엄마는 마을 사람들이 구경 오는 걸 매우 싫어하셨는데, 나중에야 새엄마도 재혼이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왜 싫어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완전 시골 동네라서 소문이 순식간에 났고 ㅇㅇ집 ㅇㅇ이가 재혼해서 애 둘을 데리고 왔다는 소문에 마을 사람들이 구경 온 것이리라. 난 어려서 새엄마가 재혼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다음에 이어서...)

note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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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ㅎㅎㅎ

재밌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내용이 중복되었어요. ㅎㅎ

아, 메모장에 붙여넣기 할 때 두 번 붙여넣나봐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제가 살아온 시절 이야기라서 보았던 장면 같습니다.

받았기 10점이면 10점인가보다.

위에서 6번 째 줄 입니다. 받아쓰기 같네요. ^^

맞아요. ㅎㅎㅎ 이거 오타 발견하긴 했는데, 고친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네요. ㅎㅎㅎ 바로 반영할게요. ㅎㅎㅎ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

나하님 아버지는 금손이셨군요. 입원해서 일회용품으로 인테리어 제품을 만든다니 저로서는 상상을 못할 일;; ㅋㅋ 대단해요.

시골집 장면에서 지금 부모님이 사시는 동네와 겹쳐보였어요. 제가 그곳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별 거 아닌 일도 큰 일이 되어 부풀려져서 여기저기 소문이 퍼져나가기 때문이죠.; 쿨럭-

다음 편도 기대할게요:D

저와는 다르게 금손이었답니다. ㅎㅎㅎ 저는 똥손인데 말이죠.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