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3-1

in #kr-series2 years ago (edited)

아이 얘기는 생각나면 또 하기로 하겠다. 그담엔 어떤 얘기를 해볼까 생각해봤다. 열아홉 시절의 얘기를 했으니 스무 살로 가면 너무 이어지는 것 같아서, 학창시절 얘기를 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왕 삘 받은 김에 스무 살로 넘어가 보자.

난 좀 독특한 성격이다. 초딩때는 동네에서 왕따를 당했고, 중딩때는 반에서 왕따를 당했다. 초딩때는 워낙 존재감 없는 꼬마여서 별명이 없었지만 중딩땐 별명이 '싸이코'였다. 음... 별명 얘기가 나와서 언급하자면, 고딩때 별명은 '이쁜이'였다. 너무 예쁘게 생겨서. 아,,, 이런. 내가 지금은 마흔이 넘어서 그렇지, 어렸을 땐 이쁜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여자처럼 생긴 데다가 성격도 여자 같았다. 피부는 하얗게 타고났고 입술은 아무것도 안 발라도 빨겠다. 주먹만 한 얼굴에 마른 체형. 아내 말로는 요즘 남자 아이돌 기준이 딱 내가 스무 살 시절이랑 판박이라고 한다. 처제는 내 스무살 사진을 보고는 '와~~ 형부 완전 아이돌이었네. 인기 엄청 많았겠다.'라고 했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는 '아니 도대체 작가님 어떻게 생겼어요?'라고 궁금할 때가 됐을 것 같다. 검색해보시라. 구글링하면 다 나온다. 난 1999년에 처음 아이디를 만들었을 때부터 아이디가 나하였다. 구글링하면 어마어마하게 나온다. 알러뷰스쿨부터 시작해서 스카이러브와 다음으로 이어진 다음 네이버로 이어진 아이디가 모조리 나하다. 흠... '나하'의 의미는 이 소설이 연재 중인 이 곳에서 말한 적 있으나 잊어버릴 때쯤 또 우려먹기로 하고, 암튼 난 잘생겼다, 귀엽다, 예쁘게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성격은 워낙에 독특해서 보통 사람과 친해지긴 힘들었다. 난 일단 남자가 싫었다. 대화 코드가 안 맞는다랄까. 남자와 대화하면 즐거움 같은 게 없었다. 하지만 여자와 대화하면 코드가 잘 맞았다. 그래서 여사친도 많았고 아는 동생은 물론 누나들과도 엄청 친했다. 전화통 붙들고 2시간씩 수다를 떠는 누나와 친구가 많았다.

성격만이 아니라 취향도 매우 독특했다. 이땐 머리에 염색하면 당연히 날라리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난 씨뻘건 색으로 염색을 하고 다녔고, 병아리색 노란 바지에, 형광색 블라우스 같은 남방(왜... 그... 건달들이 입고 다니는 화려한 상의)을 입고 다녔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웃긴지. 빨간 머리, 초록 상의 노란 하의. (난 지금도 화려한 원색을 좋아한다.) 그리고 바지는 질질 끌고 다녔다. 거기에 색색 반지를 여럿 끼고 팔찌에 목걸이도 주렁주렁. 반지와 팔찌 목걸이는 수시로 바꿔가며 차고 다녔다. 길거리 다니다가 액세서리 사는 재미에 빠져 살았고, 노래와 춤 술을 좋아했다.

내가 2장에서 염색한 얘기를 쓰면서 빼먹은 게 있다. 그 염색약이 염색+코팅+파마라고 언급한 걸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 파마 기능도 있었다. 난 스트레이트 파마를 했다가 머리카락이 너무 굵어 실패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성공해야 한다며 약을 빗에 바르고는 머리를 쭉쭉 펴지게 빗고는 한 시간을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앞머리도 앞으로 내려서 빗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황당했다. 턱까지 내려오는 앞머리가 옆으로 안 넘어가는 것이다. 이런. 이를 어쩌나. 그래서 앞머리를 옆으로 넘긴 다음 모자를 쓰거나 머리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냥 머리에 핀을 하고 다녔다. 완전 편하더라. 난 내 바람대로 밥 먹을 때 왼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먹는 일엔 성공했지만 평상시에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난 머리핀도 사다 모았다.

보통의 남자는 여자를 보고는 예쁘다, 귀엽다 등의 반응을 한다. 그런데 난 거기에 하나 더 붙여 '멋있다'라는 반응을 자주 했다. '와~~ 멋있다. 나도 저렇게 해봐야지.' 그중 하나가 영턱스클럽의 데뷔곡 '정'의 춤이었다. 난 세 여자의 춤을 보고는 반해서는 그 춤을 너무나 춰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성 정체성을 고민하기도 했다. 격주간으로 나오는 순정만화 잡지를 즐겨봤고, 여성 패션지를 즐겨봤으며, 어려서부터 '성격이 기지배 같아서 큰일이다'라는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자랐고, 남자가 불편했으며, 남중 남고를 다녔어도 사회에 나와서는 여자들과만 어울려 다녔다. 어울려 다닌 여사친들은 하나같이 내게 '네가 남자란 생각이 안 들어. 같이 목욕탕도 갈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할 정도였고, 여자들끼리만 하는 성적인 대화도 같이할 정도였다. '네가 남자로 안 느껴져'라며 '마치 절친 같은?'이라고 하면서. 난 생물학적으로만 남자였지 거의 여자였다. 그래서 한때는 '내가 여잔데 남자로 잘못 태어났나?'라는 생각도 했고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다행인 건, 남자에겐 전혀 성적인 감정이 안 생긴다는 것이다. 남자는 그냥 싫었다. 뭐, 지금도 싫고. 불편하다. 남자에게 성적으로 아무런 감정이 안 생긴다는 걸 생각해낸 후로는 성 정체성을 의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만 그냥 성격이 여성스러울 뿐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분식집을 그만뒀다. 그리고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아이와는 헤어졌지만 대학에 가고 싶었다. 아이와의 이유가 아닌 날 위해서. 그러나 문제는 돈이었다. 집에선 '널 대학에 보내줄 돈이 없다'라고 해서 그만둔 공부. 재수한다고 달라질 일은 없었다. 아르바이트하며 모아둔 돈은 학원비 몇 달 치밖에 안 됐다. 그래도 난 일단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그래도 장남인데, 5대 종손인데 설마 대학 가겠다는데 모른 척 할까 싶었다. 고모와 작은아버지 두 분이 도와주실 수도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작년과 같았다. 난 학원비를 달라고 했고, 대학에 붙으면 등록금도 도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도와줄 수 없다는 것.' 내가 영어 빼고 모든 과목 수를 받는 성적이긴 했어도 영어 때문에 장학금은 불가했다. 난 결국 재수학원을 한 달 다니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딱 1년만 일해서 돈 모은 다음 다시 공부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하지만 1년이란 공백은 너무나 컸다. 내 머리는 1년 동안 돌이 되었고 난 재도전에 실패했다.

재수학원 한 달은 내게 특별한 기억이다. 30명쯤 되는 한 반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재수생부터 삼수생 사수생은 물론이고 직장인 아저씨에 학교 다니지 않는 10대도 있었다. 참으로 다양한 나이대와 다양한 사람들이 한 반에 모여 공부를 했다. 강사는 학교 선생님과 달랐다. 처음 다녀본 학원이라 강사가 선생님과 다르다는 게 신기했다. 그들의 강의는 전문적이었다. 머리에 쏙쏙 들어왔고 강의시간 내내 난 감탄을 하며 공부를 했다. '와~~ 내가 부모 제대로 만났다면 학창시절에 학원에 다녔을 거고 서울대는 껌이었겠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나 영어에서 난 어이가 없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내내 찍기만 했던 영어. 난 영어 강사의 수업 방식에 기절할 정도였다. 그는 문장 형식부터 가르쳤는데 난 영어 단어를 못 외우는 장애가 있어도 문법 공부는 기가 막히게 잘 따라갔다. 문법이 너무 쉬웠다. 영어 단어만 모를 뿐 문법은 껌이었다. 영어 문법이 이렇게 쉬운 걸 왜 6년 동안 모르고 있었는지 놀라 정말 기절할 뻔했다. 괜히 강사가 아니었다. 내가 중학생 때만 학원에 다니며 영어를 보강했어도 정말 서울대는 껌이었을 듯싶었다. 난 영어 때문에 늘 등수가 밀리고 장학금을 못 받았는데, 총점으로는 전교 10번째 안에 들었고 반에서도 1, 2등 할 정도였지만, 단위점수가 높은 영어 때문에 등수가 많이 밀렸기 때문이다. 영어 빼고 계산하면 1, 2등 성적이었다. 내 인생을 영어가 송두리째 바꾼 것. 만약 교과목에 영어가 없고, 수능에 영어가 없었다면 난 지금 완전하게 다르게 살고 있을 테니까.

재수학원에서도 역시나 누나들과 어울려 다녔다. 같이 밥을 먹고 수다를 떨며 어울렸다. 하지만 겨우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었기에 특별히 적어볼 사람은 없다.

난 학원을 그만두고 다시 종로를 배회했다. 시간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종일 일할 일자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보통의 식당들은 직원을 구하지 않았고 난 종로에서 가장 큰 식당(한식집이다)에 붙어 있는 직원 구함을 보고 들어갔다. 이 식당은 종로2가에서 가장 큰 식당이었는데 대략 500석인가 600석인가 되는 규모의 식당이었다. 1층만 300석이었으니 말 다 했다. 주방에 조리사가 20명 정도였고, 1, 2, 3층 합친 서빙도 20명 정도였다. 사무실 직원과 지하에 있는 호프 직원까지 합하면 아르바이트를 합한 총직원 수가 50명이 넘었다. 이 식당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내 첫 소설 <사랑은 냉면처럼>을 읽으면 이해가 더 잘 된다. 으하핫, 난 새 소설 쓰면서 전 소설을 홍보하는 천재 마케터. <사랑은 냉면처럼>은 내가 일했던 이 한식집의 배경을 그대로 옮겼다. 하지만 내용은 99% 창작이다. 주요 등장인물도 모두 창작이고 내용도 전부 창작이다. 또또통에서 이수가 공부를 때려치우고 현정이와 일한 식당도 내가 일했던 한식집과 같은 배경이다.

"저기, 직원 구한다고 해서요."

"그래? 나이는?"

"스물이요."

"남자 맞아?"

"네."

"따라와."

난 불친절한 남자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뭐지? 1층만 식당인 줄 알았는데 2층도 3층도 식당이었다. 와~~ 크네. 남자는 따라 옥상에 도착했고, 옥탑방 같은 곳으로 날 데리고 갔다. 왼쪽은 남자 휴게실, 오른쪽은 여자 휴게실이었다. 난 왼쪽 방으로 들어갔다. 방엔 또 방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주방장 방이었다.

"주방장님, 여기 일하겠다고 왔는데요."

남자는 날 주방장에게 데려다 놓고는 사라졌다. 나중에야 그 남자가 홀 책임자인 '부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주방장은 날 놀란 눈으로 유심히 살폈다. 빨간 머리에 머리핀을 한 모습이 신기했나 보다.

"머리가 그게 뭐냐? 남자 맞지? 나이는?"

"스물이요."

"고등학교 갓 졸업했겠구나. 내일부터 출근해. 일은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고, 월 70. 쉬는 날은 한 달에 두 번인데 쉬고 싶은 날 쉬면 돼. 하는 일은 설거지고."

"네."

난 희망이 보였다. 학원비가 이때 월 20인가 했고 대학 등록금은 얼만지 몰랐지만 1년 일하면 학원비와 등록금을 모을 것 같았다. 이 한식집에서 난 나의 찬란한 스무 살을 보냈다. 찬란하고 눈부신 나의 스무 살.

(다음에 이어서...)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6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5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4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3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2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2-1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6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5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4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3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2
기억 여행자의 낙서질 note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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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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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기 돌려봤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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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머리에, 노란 바지, 형광색 블라우스 ㅋㅋㅋ 극강의 총 천연패션이네요

ㅋㅋㅋㅋㅋ

구글에 나하 검색하니 일본 지역 나하 란곳 여행관련 내용이 무쟈게 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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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 진짜 해보시다니. ㅎㅎㅎ

https://www.google.com/search?q=naha77&source=lnms&tbm=isch&sa=X&ved=0ahUKEwi1ofT7mv7gAhUMabwKHbsZCm84FBD8BQgOKAE&biw=1486&bih=835

흠... 최근 사진이 먼저 뜨니까 계속 페이지 넘기다 보면 옛날 사진 나오긴 할듯요. ^^

ㅎㅎ 미소년 사진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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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늙었습니다. ㅠㅠ

구글링 좀 해봐야겠네요~ㅎㅎ

앗,,, 해보지 마세요. 옛날엔 많이 떴는데, 방금 해보니 거의 안 나오네요. ㅎㅎㅎ

와 ㅎㅎㅎ 빨간머리 ㄷㄷㄷ
대단 하셨네요 ㅎㅎ 옛날에도

앗,,, '옛날에도'라면 지금도 대단하다는 말씀이시죠? ㅎㅎㅎㅎㅎ
제가 한 대단 하죠. ^^

나도 남자들보다 여자들과 수다가 좋은 데^^

아핫... 저랑 잘 맞겠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