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간운기도편(臥看雲起圖片), 판공초-3

peterchung (77)memberwisdom runner 1기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 • last year (edited)

중년에 매우 도를 좋아해서 늘그막하여 남산 근처에 집을 지었다. 흥이 날때마다 홀로 거닐며 일이 뜻대로 되어도 떠다니는 구름처럼 헛된 것임을 알게되었다. 가다가 물길이 다하는 곳에 이르면 앉아서 구름이 일어나는 때를 바라본다. 우연하게 숲속의 늙은이를 만나면 이얘기 저얘기를 나누다가 돌아갈 생각을 잊는다.

中歲頗好道晚家南山陲
興來每獨往勝事空自知
行到水窮處坐看雲起時
偶然值林叟談笑無還期

시불(詩佛)이라고 부르는 왕유(王維)의 종남별업(終南別業)이란 시이다. 왕유의 시를 보면 부처님의 게송 같다고 해서 지어진 별명이란다. 종남(終南)산은 어느 유명한 선비가 그곳에 은둔하게 되면서 임금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출세했다고 해서 그게 유행이 되어 자칭 능력있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후세 문인들이 출세를 위해 미끼삼아 종남산에 일부러 은둔했다고 한다. 천년이 훨씬 지난 그시절 왕유가 타의로 강제 해고를 당했는지 자진 명퇴를 하였든지 세속 일을 그만두고 지은 시라는데 속마음은 다시 재기를 꿈꾸었는지 시의 제목을 종남산에서의 특별한 직업(終南別業)이라고 위트있게 지었나보다. 단순히 시만 보면 세상사에서 초탈한 풍경이 연상된다.

후세 문인 화가들이 유명한 시를 읽고 그림 그린 것을 시의도(時意圖)라고 부른다. 송나라때 마린(馬麟)이라는 문인이 이 시의 세 번째 구절(行到水窮處坐看雲起時)을 보고 감흥이 일어나 남긴 그림이 있다.

마린(馬麟)의 좌간운기도(坐看雲起圖)

왕유와 비슷한 생각에 나는 2007년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고 도꾼으로 자유직을 시작하면 어떨까 생각해서 역학 및 의학을 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직장인의 개꿀맛 캐쉬카우를 기대하며 헤드헌터를 찾아다니며 이곳저곳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곤 하였다. 그러다가 비자발적 파이어족이 되어버렸다. 15년이 지난 지금, 왕유처럼 돌아갈 생각을 잊은게(談笑無還期) 아니라 아예 포기했다. 그래서 나는 라다크 판공초에서 와간운기도편(臥看雲起圖片)을 남겨두게 되었다.

가다가 하늘 물이 모여있는 곳에 이르면 누워서 구름이 일어나는 때를 바라본다.

行到天水會處臥看雲起時

이곳은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지도 않았고 물길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겁나게 모여들어 북적거린다. 세속에서 잠시 휴가온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쪽 저쪽에서 풍경에 감탄하며 천상계에 있는게 아닌가 생각하며 사진을 찍어댄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문명의 지구상에 사람 발길 끊어질 곳은 사라져버렸다. 발길이 끊긴게 아니고 귀찮고 힘들어서 안가는 거다. 나는 캐쉬카우 보장되는 그곳으로 돌아갈 기약없이 완전히 퍼져버렸다. 솔까 이 나이에 불러줄 곳도 없다. 하늘 호수의 물소리와 함께 유리광 같은 맑은 하늘 길을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21세기 와간운기도의 변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