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바람, 판공초-1
이 세상 호수 중에서 가장 높다는 판공 호수(초)를 주역(周易)의 괘상으로 표현하자면 천택리(天澤履, ䷉ )이다. 하늘(☰, 天) 아래 호수(☱, 澤)가 맞닿아 있는 모습을 상징화한 것인데 옛 지성인은 이 천택리 괘를 거울, 예절, 밟아 나감(실천)과도 연결시키며 첫 구절에 이런 표현을 썼다.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않을 정도로 형통할 것입니다.
履虎尾 不咥人 亨
처음 역학을 배울 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호랑이 꼬리를 밟았을 때 안 물릴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과장이 너무 심하다. 옛 사람의 문장은 축약이 심하고 비유가 많아서 계속 생각하지 않으면 마음 속에 잘 다가오지 않지만 자꾸 읽으면서 무슨 의도였을까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 아하! 그렇겠구나! 할 때가 온다. 오지 않으면 그 문장을 남긴 이의 마음과 나의 마음에 아직 시절 인연이 메듭진 것이 아닐 뿐이다.
바람 한점 없는 호수는 하늘을 그대로 담고 있지만 하늘과 맞닿은 그 경계에 조금이라도 미세한 바람이 일면 하늘을 담은 그 풍경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거울보다는 물에 빗대는 것이 더 적확하다. 다섯 감각 경계에서의 바람이 잠시도 멈춰있지 않으니까,
불교에서 수행자는 팔풍(八風)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이익(利)ㆍ노쇠해짐(衰)ㆍ훼방과 욕설(毁)ㆍ명예(譽)ㆍ인기(稱)ㆍ속고 속임(譏)ㆍ괴로움(苦)ㆍ즐거움(樂), 이렇게 8가지인데 이거 다 조심하면 인생 재미 없고 의미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핀잔을 듣는다. 좋은 것과 싫은 것 둘다 경계하라고 하니 세속의 일반적 이해와는 딴판이다. 관계를 떠날 수 없는 사람 중에서 이 팔풍의 인드라망에 안 걸리는 사람이 도대체 있기나 할까? 그러니까 수행자들에게는 하느님의 마음(天心)을 닮고 살아가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거다.
그래서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그 사람을 물지 않을 정도로 형통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 또 없다. 그런데 리(履) 글자를 살펴보면 주검 시(尸) 바로 밑에 돌아올 복(復)을 붙여 두었다. 마음이란 게 그렇다. 경계의 바람이 불어도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정도로 오염되지 않는 그런 사람은 넘어져도 다시 마음 먹고 일어나서 고요한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발전을 위한 실천을 필요로 한다는 뜻일거다.
성취된 수행자의 지극한 즐거움(極樂)은 쾌락이 아니다. 하늘의 도는 맛이 없고 편애하지 않는다(天道無味無親)는 옛 지성인의 말처럼 지극한 즐거움은 괴로움을 피하고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뜻이 아니라 고요하고 평정한 마음이다. 즐거워서 마음이 동요된다면 그건 즐거움이 아니란 뜻이다. 우리는 괴로움만 피하려고 하지 즐거움을 탐닉하면서 갖게되는 집착심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즐거움에 집착하면 더 강한 즐거움을 찾다가 그것이 번뇌가 되어버린다. 부유한 사람의 마음이 더 불안하고 여유가 없어지는 것처럼,
경계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수행의 요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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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할때가 가장 행복할 때라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