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ing 중독으로 벗어나기

in #growthplate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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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뭐… 평화롭게 잘 지내요. 회사 다니고, 요가하고.. 그러곤 별 건 없네요.”

아는 동생이 찾아왔다. 요즘 한참 바쁜 지인들을 만나서 그들이 요즘 바쁘게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왔다고 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OO님도 근황을 말해주세요.”라고 기습 질문을 하자, 위와 같이 대답했다며 멋쩍게 웃었다고 말했다.

그날 만난 지인들 중 한 사람은 다니던 회사를 나와서 자기 비즈니스를 하다가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강연과 책 저술 그리고 유튜브 활동으로 바쁘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컨설팅을 하며 전국각지를 돌아다닌다고 했다. 저마다 각자의 분야에서 삶을 분주하게 운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평소 무엇이든 열심인 그 후배 입에서 의외로 별 거 아닌 일상, 평범한 회사 생활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흘러나오자, 그들은 꽤나 의외라고 생각되었나 보다. 그 중 한 사람이 진심과 안스러움을 담아서 ‘그럴 때가 있죠. 그 시절이 지나면, 또 바쁘게 지내는 날들이 올 겁니다. 사람 하는 게 다 그래요.’ 라고 위로한 것을 보면 말이다.

후배의 짧은 이 이야기는 이 사이에 뭔가 낀 거처럼, 손톱 아래 이물질이 들어간 거처럼, 머리카락 한 올이 등어리에 달라 붙어서 콕콕 찌르는 거처럼, 아주 미세하게 불편한 존재감으로 남아 나를 한 동안 생각에 잠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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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바쁘게 패달을 밟으며 삶을 경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꼭 그렇게 해야만 할 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책도 읽어보고, 이런 저런 모임에도 나가고, 외국어나 자격증 공부를 하며 심지어 어학 연수나 박사 학위를 위해 대학원 진학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건 딱 내 이야기다. 내가 그랬다.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야 할 거 같아서, 플래너로 지키지 않을 계획을 세우고, 매일 밤 아침형 인간을 결심했다. 매번 작심삼일이 명언임을 확인하는 운동과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다 읽지도 못한 책을 사고, 빈 스케줄은 무엇인가를 채우려 했으며,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그러다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날(음…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러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면, 뭔가 의미 있는 행위를 하지 않은 날에는 ‘아. 또 하루를 이렇게 날리다니. 정말 후회스럽다.’하며 그런 나를 혐오하고 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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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줄이 많이 채워진 달력을 보면, 약간의 긴장감과 이상한 도전의식으로 입꼬리가 올라갔고, 막상 그 스케줄을 전투적으로 해치워야 할 때는 애초에 이런 스케줄을 만든 내가 너무 미련스럽고 원망스러웠다.

미친 듯이 일하며 자기 개발하는 주변 사람들에 감탄하며, 더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고, 도무지 자기 개발에 관심 없어 보이는 이들(그러니까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지인들은 나와 동일시가 되어서)에게는 부지불식 간에 한심함과 답답함을 느꼈다.

이렇게 발버둥치면서 무엇인가를 하면, 어떤 날은 ‘무엇인가를 했다’는 별 거 아닌 성취에 제법 자존감이 올라가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대학원을 졸업해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허함’ 혹은 ‘끝없는 결핍’때문에 좌절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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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나?’

첫 대답은 ‘뒤쳐지면 어떻게 해. 다들 열심히 사는데..’였다. 또 한 번 ‘왜 이러고 사니?’ 질문하니, ‘한 번 밖에 없는 내 인생이니까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 아냐?’ 조금 더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또 한 번의 질문엔 ‘내 안에 뭐가 있는 지,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러지.’라는 답이 나왔다.

‘정말? 정말 그래서 이런다고?’하는 또 다른 의문에서는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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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Doing 중독인지도 모르겠다.

Doing 중독. 정말 이런 말이 있을까? 네이버를 찾아보니, doing중독이라는 말 따위는 없었다. 대신 ‘행위 중독 behavioral addiction’이라는 말이 심리학 사전에 있었으며, “직업적, 사회적 영역에서의 손상 및 내성, 금단현상과 같은 부정적 결과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특정 행위를 지속하며 통제력을 잃는 상태”를 뜻한다고 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Doing 중독은 딱 이런 게 아니다. 나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Doing) 나만 좋았다. Doing을 해내는 ‘나’만 인정할 수 있었다. 그래야만 내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누구인지도 모를 타인으로부터 나의 Doing을 통해서 인정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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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때로는 좋아서, 때로는 힘겹게 애쓰며 Doing을 해 왔다. 그 결과, 어떤 때는 ‘성취’를 했고 그로 인한 행복했다. ‘성취와 성장’은 나의 내적 가치 중 제법 상위권에 속하는 것이 때문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성취’를 해서 기쁜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성취’가 하찮고 별다르게 의미가 없었다.

Doing을 통해서만 ‘성취’를 통해서만 행복할 수 있다는 깊은 믿음이 아주 오래 전부터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던 거 같다. 어린 시절 받아쓰기에서 100점 받으면 칭찬을 받았던 때가 출발이었을까? 아니면, 그 이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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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아서 인지, 아니면 구함이 있어서인지, 내면을 들여다 보는 여러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이런 Doing 중독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나를 바라볼 때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그냥 존재하는 것 자체가 아름답다는 것을 아주 천천히 이해하게 된다.

“누구와 상관없이 위대한 존재는 바로 당신입니다. 그 위대함은 당신이 행했을 수도 있는 일이나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중략)

신성한 의미에서 당신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유일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외적인 성취에서 더 많은 성취의 토대를 쌓고 있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잊어버리는 게 더 낫습니다. 왜냐하면, **위대함은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대함은 어떤 외적인 성취를 통해서 드러날 수는 있지만, 위대함이 외적인 성취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위대함은 사람입니다.

인간들은 이와 관련해서 꽤 쉽게 어리석음에 빠집니다. ‘나는 높은 지위를 얻었으므로 나는 위대하다’ 오,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 어떤 사람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라면, 그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위대함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경험인데, 왜냐하면 그 경험은 이미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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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스스로가 왜소하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그러한 자아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왜소한 느낌, 인간적인 공허한 느낌, 무의미한 느낌, 일의 짜임새 속에서 자신이 중요하지 않으며 자신이 빠지더라도 아무도 더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들이 그것들입니다.

불행하게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 스스로에 대해서 받아들여 왔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코 신적인 의미에서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각자는 필수불가결합니다. 절대적으로 필수불가결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위대함에 대한 감각을 배양해야 합니다."
-마틴 세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나 자체로 위대하다. 당신도 그렇다.
아무 것도 성취하지 않아도 나는 행복하다. 당신도 그렇다.
그냥 이 순간 존재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삶이 풍요롭다. 당신도 그렇다.
바닥을 내딛는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감촉에서도, 코끝으로 들어오는 바람 냄새에서도, 입 안의 아밀라아제가 밥을 녹여 만들어 내는 단 맛에서도 나는 존재한다. 당신도 그렇다.
한 호흡 들이쉬고 내 쉬는 순간에도 나는 존재한다. 당신도 그렇다.
내가 하는 Doing은 내 영혼의 독특성을 드러내는 한 방식일 뿐, Doing이 내가 아니다. 성취가 내가 아니다. 내 존재가 아니다. 행위는 그것을 경험하는 그 순간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지, 그 결과로 나를 평가하지 말라. 적어도 나 자신은 내게 그런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되, Doing이 나를 지배하도록 허용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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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며, 여전히 내적으로 통합되지 않는 불안들을 느낀다. 그래서 가만히 ‘그냥 있는 이 순간의 평화로움' 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불안’을 느끼는 나를 발견한다.

한 호흡 들이쉬며 ‘지금 이 순간, 감사합니다.’
한 호흡 내 쉬며 ‘지금 이 순간, 행복합니다.’

중독된 불안으로 스스로를 Doing으로 내 몰지 말자. 다짐하며, 지금 이 순간을 더 풍요롭게 느껴보기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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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binabi님 (마녀님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Doing중독증 저를 포함 한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중독증입니다.

나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Doing) 나만 좋았다. Doing을 해내는 ‘나’만 인정할 수 있었다. 그래야만 내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누구인지도 모를 타인으로부터 나의 Doing을 통해서 인정받고 싶었다.

저는 꽤나 게으르면서도 간헐적 Doing 중독증을 겪고 있습니다. nabinabi님 말씀대로 성취한 경험에서 뿌듯함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망정 성취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겠죠. 나 자체로 사랑해도 괜찮다. 아무 것도 안해도 괜찮다. 너무 좋은 말씀이십니다:D 리스팀하고 종종 읽어보겠습니다.

우와~ 읽어주신 것만으도 감사한데, 리블로그까지!
감동하고 감사합니다.^^

참고로 마녀도 nabinabi 전부 좋아용~ 편하신대로~~

무엇을 위해서 오늘 해야만 할 일을 떠올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네요.

이웃분이 마녀님글에 JCAR 토큰 보팅 선물하셨습니다.

마녀님 글 너무 좋아좋아

하고 메모 남기셨어요. ^^

이 순간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두 호흡~~ 후.... ^^

carpediem ^^

읽다보니 오래전 글이지만 많이 공감되서 글 남겨요~ 너무 중독되어서 무언가를 하다가 그 대상이 사라지거나 회의감, 후회가 생기면 너무쉽게 방전되는 면도 없지않아 있더라구요.
그런 경험을 하면서 많은 갈등 후에 결국 내려놓는 선택을 했습니다. 미래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홀가분하고 마음의 안정이 생기네요. 뭔가 겉으로는 뒤쳐진다는 생각도 들지만 내면의 나와는 거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마녀님도 너무 무리하지마시고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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