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세화 해변에서 서핑을 만나다

in #growthplate3 years ago (edited)

Life Knows better.

삶은 다양한 우연으로 놀라움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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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직찍. 세화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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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

이번 제주 출장에서도 이런 삶의 선물은 우연하게 다가왔다.

동료와 출장일정을 잘 조정해 하루 일찍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유명 요가원 프로그램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 였다. 그러나 우리 일은 그다지 계획한 대로 풀려나가지 않았다.

성수기 번잡한 공항 상황을 고려해 1시간 일찍 도착했지만, 비행기 출발 지연으로 예정시간보다 무려 1시간 45분이 지나서야 제주도로 출발했다. 요가 클래스 시간보다 비행기 도착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지연된 비행기를 타고 제주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요가 클래스 시간이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택시 승강장의 긴 줄을 보니, 택시는 안될 말이었다. 마침 우리 앞을 지나가는 요가원 행 버스 꽁무니를 미친듯이 쫓아 간신히 탔다. 그러나 한참 지나서야 우리가 반대방향 버스를 탔음을 알아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택시를 잡아탈 요량이었지만, 20분이 지나도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제주 시내 한 복판에서 예상치 못한 퇴근 시간의 지독한 교통 체증으로 완전히 발이 묶여 버렸다. 이미 요가 클래스 시작 시간을 넘긴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그 날밤 묵을 게스트하우스로 가기로 했다. 숙소가 있는 세화로 가는 차 안, 우리의 약간의 아쉬움과 실망감은 이내 제주도 하늘이 보여주는 핑크 빛 노을 쇼 덕에 감탄과 경이로 변화했다. 뜻대로 되지 않아서 많이 속상해 했던 동료는 피로가 씻겨 나갈 정도로 행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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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을 만나다

세화의 밤 바다는 고요하면서 아름다웠다. 저녁도 먹지 못한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저녁 요기거리를 찾아서 해변으로 나왔다. 식당들의 상당 수는 문을 닫았고, 여기저기 작은 카페와 술집만이 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로빙화라는 바에 이르렀다. 바 앞 계단에는 알록달록 예쁜 서핑 보드들이 있었다. 그 보드들을 보자 마자 동료와 나는 동시에 ‘내일 서핑 배울까?’라고 말했다. 한 번도 타 본적 없지만, 언젠가 배워보고 싶은 서핑. 어쩌면 내일이 우리에게 서핑을 배우기엔 인생 최적의 타이밍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로빙화 바 주인에게 문의를 했고, 로빙화 주인은 ‘전설의 서퍼’라는 분을 소개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제주 세화 해변에서 뜻하지 않은 서핑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음날 아침, 날씨는 화창했고, 파도는 제법 좋아 보였다. 약속 시간 10시까지 기다리기가 좀 쑤셨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제공하는 제법 멋 떨어진 샌드위치를 맛나게 먹고, 전설의 서퍼님을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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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싸카서퍼 인스타그램>

여느 수상 레저 강사들처럼 단단한 체격의 그러나 제법 나이가 있는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주에서 서핑만 20년 가까이 했다고 했다. 복장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던 우리는 서핑 슈트를 빌려 입고, 강습을 시작했다. 파도가 1시간 안에 사라질 거 같으니, 해변에서 딱 5번만 기본 동작 연습을 하겠다고 했다.

동작은 간단했다. 먼저 양팔을 번갈아 휘두르는 패들링을 배웠다. 그리고 강사가 하나!하고 외치면 엎드려서 양팔을 뻗고, 둘!하면 오른쪽 다리로 뒤를 지지하고, 셋!하면 왼쪽 다리로 일어나는 게 다였다. 처음 하는 동작이라 낯설었지만, 모래 위에선 2~3번만에 동작을 익힐 수 있을 만큼 간단했다.

그 다음은 실전이었다. 허리쯤 깊이까지 들어가서 강사가 보드를 잡아주는 보드 위에 엎드렸다가, 강사가 구령을 외쳐주면 그대로 하면 되는 것이었다. 머리 속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될까 안 될까 하는 생각 조차 없었다.

그리고 파도가 밀려왔을 때, 강사의 구령대로, 그냥 하나!하면 팔을 뻗고 둘!하면 오른쪽 발로 지지 하고, 셋!하면 왼쪽 다리로 일어났다. 신기하게도 단번에 보드 위에 일어나서 파도를 탔다. 몸은 이미 어떻게 하면 되는 지 알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 안에 있는 놀라운 균형감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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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ixabay.com>
(언젠가 나도 이렇게 탈 수 있을까?)

강사는 한번만에 보드 위에 일어나서 타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며, 정말 처음 타는 게 맞냐며 물어보았다. 그냥 하는 말이고 생각하고 웃고 말았다. 같이 간 동료도 2번만에 보드 위에 일어나서 타기 시작했기에 그다지 어려운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그 이후로 몇 번을 물에 빠지고 바닷물을 먹으면서 파도타기를 익혔다.

3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서핑을 탔다. 몸을 일으켜 세워서 균형을 잡는 것이 섬세해질 수록 더 멀리까지 파도 타기를 할 수 있었다.

구름 한 점없이 쨍한 햇살 아래에서 내 피부가 빨갛게 익어가는 만큼 나의 서핑 실력도 좋아졌다. 몸의 균형감을 느끼면서 내 마음의 균형감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바다 수영은 8년전 산토리니에서의 수영 이후 실로 오랜만이었다. 세화 해수욕장은 내가 경험한 어느 해수욕장보다 맑고 투명했다. 하늘 빛을 그대로 닮아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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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제 우리가 요가 클래스에 참석했다면, 거기서 저녁을 먹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훨씬 더 늦은 시간에 숙소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늦은 밤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다면 어쩌면 서핑 보드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산책 길에 서핑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할지라도, 감히, 파도타기에 도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가 계획했던 요가를 해서 나름의 만족감이 있었을 것이고, 오후에 출장지로 이동하기 전에 피곤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우린 요가를 하지 못 해 불만스러웠기에,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다른 대체 활동을 통해 만족감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눈에 들어온 새로운 도전을 기꺼이 맞이한 것이다.

어찌 보면, 그 다지 대단치 않은 ‘우연’에 불과하지만, ‘서핑과의 우연한 만남’은 삶이 내게 제공하는 놀라운 선물들을 상징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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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풀섶 속에 우연의 행운을 숨겨 놓나 봅니다.

와~~~~ 멋진 표현이네요!!! 고맙습니다^^

더위가 가고있어요!!! 선선한게 좋네요

두 분 다 운동신경이 대단하신데요 ㅎㅎ
저도 서핑 도전해보고 싶어집니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편은 아닌데, 그날은 이상하게 잘 되는 기분이었어요.
이미 몸이 어떻게 하는 지 알고 있다는 느낌. ㅎㅎ

ㅎㅎ 사실 어설퍼요^^ 저 혼자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거죠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핑을 한국에서 즐기다니 .... 부럽습니다. 전 물과 별로 친한 사람이 아닌데 한번 해보싶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글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