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욕 바라밀과 쾌락의 줄다리기
Hermann Hesse (German/Swiss, 1877–1962)
조바심에 휘둘려 늘상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 음, 여전히 그러한 습성이 남아있다. 다만, 지금 내가 왜 이러지? 스스로 썩은 미소를 짓곤 한다. 그러니 물리학 법칙처럼 오래된 생활이 쌓아온 관성도 어지간해서 사라지기 어렵다. 예를 들어 아무일 없이 그냥 시간을 때우면서 그렇게 지내다 보면 불쑥 죄책감과 내가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으로 발전하다 다시 본래 생각으로 돌아오곤 한다. 과거 곧잘 경험했던 긴박한 상황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그런 게 바로 습성의 올가미일 뿐인데 왜 아직도 불안해 하는 거지? 아주 오래 전 헤세의 수필에서 그도 나와 같았을지도 그렇지만 속 시원한 결론을 내려주었다. 여기에 덧붙여 한가롭고 여유로운 마음도 연습이 필요하다.
신이 생각했으며 여러 민족의 문학과 지혜가 수천 년 동안 이해해 왔던 인간은 자신에게 쓸모가 없는 것일지라도 그것에 대해 기뻐할 줄 아는 능력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기관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기쁨에는 항상 신과 감각이 똑같이 관여한다. 그 때문에 인간은 궁핍하고 위태로운 삶의 한가운데서도 자연이나 그림에서의 색채, 폭풍이나 바다혹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소리와 같은 것들에 대해 기뻐할 수 있고 이해나 고민거리를 떠나 세계를 전체로 보고 느낄 수 있다. 장난치는 어린 고양이의 머리 놀림을 비롯하여 소나타의 변주곡에 이르기까지, 마음을 움직이는 강아지의 시선을 비롯하여 어떤 시인의 비극에 이르기 까지 연관성, 수없이 다양한 방향의 관계, 일치, 유추, 반영 등은 바로 거기에 그 본질이 있다. 영원히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그러한 언어에서 듣는 사람은 기쁨과 지혜, 재미와 감동을 얻는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신에 대한 의심을 언제든지 극복할 수 있으며 감각 덕분에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감각'이라는 것은 바로 당연한 것의 일치, 혹은 세상의 혼란을 통일과 조화로 예감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금욕주의에 대해서 흔히 감각의 억압으로 오해한다. 지나친 탐닉이 문제인 것이라 불필요한 것을 버리려다 필수적인 것까지 버리려는 그러한 지나친 행동이 우려스러운 꼴이 되었다. 매 순간 다가오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기뻐할 줄 아는 능력도 인내이자 금욕이 될 터이다. 이게 해세가 추구하고자 했던 인욕바라밀, 혹은 비폭력 저항이 아니었을까? 혼란스럽고 두려운 세상을 향한,
하지만 인내하는 것은 어렵다. 인내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고행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힘든 일이면서 그와 동시에 유일하게 배울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 세상의 자연과 성장, 평화, 번영, 아름다움은 모두 인내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인내는 시간과 침묵, 그리고 신뢰를 필요로 한다. 뿐만아니라 인내는 개인의 일생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정도 참고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이 필요하며 개인의 판단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것과의 연관성도 고려해야 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또한 인내와 더불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신앙, 지혜, 천진난만함, 그리고 소박함이다.
나는 투쟁이라는 것에 더 이상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못하게 된 이래로 비투쟁적인 것이나 고귀한 슬픔, 무언의 우월함 같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투쟁에서 번뇌로 이르는 길과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 인내라는 개념 그리고 공자를 비롯하여 소크라테스와 가독교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동일한 것인 도덕이라는 개념을 발견하였다. 고대 중국의 고전에서 말하는 현자나 완성된 자란 인도 철학이나 소크라테스 철학에서의 선한 인간과 똑같은 유형이다.
그런 인간이 지니고 있는 힘은 그가 누군가를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에 있지 않고, 반대로 죽임을 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에 있다.
붓다에서 모차르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귀함과 모든 가치, 업적과 삶에서의 완전한 순수성과 유일무이함은 바로 거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정신이 말짱히 깨어 있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모두 절망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신(神)과 무(無) 사이에 위치하며 그 사이에서 호흡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다. 매일같이 목숨 내던지고 싶은 마음이 울컥 솟구치지만 우리는 우리 내면에 있는 초개인적이고 초시간적인 무엇인가에 의해 매번 저지당한다. 때로는 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저지르는 일이 영웅적이지는 않더라도 용기 있기 있는 행동이 되기도 한다.
헤세의 마음을 엿보다
시작하며 | 헤세의 연금술 | 뻐꾸기 소리는 배신하지 않는다. | 인내심 놀이 | 노인의 향기 | 50세 헤세의 유머 | 헤세가 죽기 전 날 밤 썼던 시 | 바람 결의 감촉 | 다시 시작하는 가을 몸맞이 | 내몸 아닌 내몸 같은 | 색채보다 감촉 | 닮은 꼴의 헤세와 융 | 방외 화가 두 사람의 풍경화 | 헤세가 사랑한 음악 1 | 헤세 정신의 곳간 | 요즈음 젊은 것들은...과 변화에 발맞추기 | 하리 할러의 꿈을 분석하며 (황야의 이리1) | 헤세의 아니마(황야의 이리2) | 왜 사냐면 웃어야지요(황야의 이리3)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괴로움과 번뇌속의 위안 | 기억의 가치 |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차 있다 | 죽음에 관한 단상 | 가면 살이 | 백일홍 쇠퇴기 |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차 있다2 | 인욕 바라밀과 쾌락의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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