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한 단상

in #blog2 years ago (edited)

세월이 흘러 같은 장소에서 바라본 풍경을 담은 헤세의 작품 몇몇을 모았다. 포를레차 호수를 향한 전망(Bick nach Porlezza)이란 이름으로 검색해보면 몇개의 그림이 나오는데 눈썰미를 가지고 살펴보면 그가 이 언덕을 참 좋아했던 거 같다. 1926년(왼쪽), 1933년(오른쪽 위), 1958년(오른쪽 아래) 같은 장소에서 바라본 헤세의 마음 풍경이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풍경도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도 발맞춰서 변해간다.

그는 젊은 시절 노인처럼 느꼈고, 늙어서는 젊었다. - 첫 헤세 자서전을 쓴 휴고 발

보통 40~50세 전후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정신적 위기를 겪는다고 한다. 그것이 나에게만 유별난 경험이 아니라 인간 종자로서 겪게되는 보편적인 패턴이니 뛰어봤자 인간이다. 헤세가 늙어가면서 죽음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했다. 어쩌면 괜찮은 나이에 그러한 단상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서 메모해 두었는데 오늘에서야 정리한다. 천천히 읽으면서 공자 할배께서 말씀하신 "어느 벗이 있어 먼곳에서 찾아오니(有朋自遠方來)" 그거 느끼기에 충분한 메모들이다.

재활병원에서 일을 하다보니 죽음을 앞두신 어르신들의 갑작스런 퇴행현상을 자주 보게 되고 곁에 계신 아버지께 다가올지 모르는 비슷한 상황에 조마조마하면서 그리고 이제는 그닥 새삼스럽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나에게 진행 중인 노쇠함에 준비아닌 준비가 필요한 지혜로운 마음의 눈썰미를 얻는다. 하루 한달 한해가 지나갈수록 몸도 마음도 아껴써야 할 시간이 점점 패달을 밟고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나는 죽음을 많이 생각하지 않고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종종 절망스러운 조바심으로 죽음을 소망하곤 했다. 반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그것의 실체와 크기를, 그것이 운명을 완성하고 둥근 원을 그린다는 것을 이제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내 삶이 하나의 길이었다. 처음 시작에는 충만한 사랑 속에 머물렀고 어머니의 품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종종 콧노래를 부르고 자주 지겨워하고 때때로 저주도 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이 확실하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내 존재에 영양분이 되었던 모든 자극, 모든 힘이 이제는 어두운 시작, 출생과 어머니의 품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제는 힘, 활기, 자극이 갑자기 마비되고 사라질 것처럼 보이는 우연한 점으로 죽음이 보인다. 이제야 나는 그런 '우연' 속에도 그 크기와 불가피성을 본다. 그리고 내 삶의 양쪽 끝이 서로 묶여 있음을 분명하게 느낀다. 그 끝을 바라보며 성장하고 그 어떤 축제보다 진지하게 그 축제에 다가가 완성하기 위해 나는 끝을 마중하러 나간다. 그러한 내 과제와 내 길을 가만히 바라본다. 1916년 (39세)
 
나는 죽음을 염원하기는 하지만 너무 이르거나 덜 성숙한 죽음을 바라지는 않는다. 또한 성숙과 지혜로움을 갖추기보다 아직 달콤하고 변덕스러운 인생의 어리석음을 가슴 깊이 사랑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현명함과 달콤한 우매함을 모두 갖고 싶어한다. 사랑하는 친구여! 우리는 앞으로도 자주 서로 부딪치고 넘어지겠지만 그것들 모두 소중한 것이리라.
 
쉰과 여든 사이에는 그 이전의 지난 수십 년간 경험한 것과 거의 비슷하게 아름다운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든을 넘기는 것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후에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기 때문이다. 1930년 (53세)
 
품위 있게 늙어가고 우리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것, 지혜를 갖는 것은 매우 어렵다. 대개의 경우 우리의 영혼이 육신에 앞서거나 뒤쳐져 있기 쉽다. 그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 삶의 역경에 처하게 된다. 혹은 질병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뿌리째 흔드는 두려움이나 근심, 내면적 정서의 혼돈이 생긴다. 아이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울거나 약한 면을 내보임으로써 삶의 균형을 가장 잘 찾을 수 있다. 그런 것 처럼 역경이나 두려움에 대해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자세를 갖는 것이 좋을 것이다. 1935년 (58세)
 
병이 들고 사망하는 것은 젊고 건강하고 만족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노인에게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사람은 자연의 법칙이 결코 다정하고 관대하게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저항하고 충격을 받으며 그것들을 잔인하고 자연스럽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자연의 부드럽고 유쾌한 속성에 집착해 자연을 어머니, 보호자, 생동감이 넘치는 친구로 인식한다. 그러다가 그것이 예쁜 겉모습을 버리고 사나운 앞발을 들어 우리 가운데 누군가를 거칠게 공격하면 기겁하며 놀란다. 마치 아름다운 공상과 상상에 빠져 있는데 누군가 거칠게 뒤흔들어 잠을 깨운 것처럼, 1947년 (70세)
 
마흔 살과 쉰 살 사이의 십 년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과 예술가들에게는 언제나 힘겨운 세월이다. 마음이 불안하고 삶과 자기 자신을 적절히 조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종종 불만족에 시달리는 시기다. 그렇지만 그다음에는 편안한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그것을 나 자신에게서만 느끼지 않았고 다른 많은 사람에게서도 관찰할 수 있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고 심한 가슴앓이를 하는 젊음이 아름다웠던 것처럼 나이를 먹어가는 것과 성숙해가는 것에도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다. 1955년 (78세)
 
비열한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한 최고의 무기는 용기와 고집, 그리고 인내이다. 용기는 강하게 만들고 고집은 흥미롭게 하며 인내는 휴식을 준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것을 대개 인생의 늘그막에 알게된다. 풍파에 시달릴 때와 죽음에 서서히 다가갈 때도 대개의 사람들은 그것을 필요로한다. 1960년 (83세)


헤세의 마음을 엿보다


시작하며 | 헤세의 연금술 | 뻐꾸기 소리는 배신하지 않는다. | 인내심 놀이 | 노인의 향기 | 50세 헤세의 유머 | 헤세가 죽기 전 날 밤 썼던 시 | 바람 결의 감촉 | 다시 시작하는 가을 몸맞이 | 내몸 아닌 내몸 같은 | 색채보다 감촉 | 닮은 꼴의 헤세와 융 | 방외 화가 두 사람의 풍경화 | 헤세가 사랑한 음악 1 | 헤세 정신의 곳간 | 요즈음 젊은 것들은...과 변화에 발맞추기 | 하리 할러의 꿈을 분석하며 (황야의 이리1) | 헤세의 아니마(황야의 이리2) | 왜 사냐면 웃어야지요(황야의 이리3)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괴로움과 번뇌속의 위안 | 기억의 가치 |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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