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조바심에 가득차 있다2

in Avle 종교 철학 인문학8 months ago (edited)


Piktors Verwandlungen, 1923

새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 한다면 오늘과 현재를 잃게 되고 그것과 관련된 현실을 잃어버리게 된다. 넉넉한 시간과 관심은 고스란히 오늘에 허락하라! 나는 자살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비겁함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것이 삶을 살아가고, 삶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주는 출구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삶을 견디는 기쁨

'두려움 극복하기'에서 현자 같은 자살자 심리를 묘사한다. 헤세 역시 15세에 자살 기도를 하였지만 그 시절의 심리는 아닐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자살한다면 낭만적인 자살자일껄?

사실 우리는 정신생리학적으로 매순간 저절로 자살하고 매순간 저절로 태어나고 있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이지.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니 모르는 거다.

그대 두려움에 둘러싸인 영혼이여 그대는 늘 이렇게 묻는다. 험난한 날을 그렇게 많이 보냈건만 평화와 휴식은 도대체 언제 오는가?
 
오, 나는 안다. 편안한 날을 맞이하자마자 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평화와 휴식의 나날을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그대는 잠시 안식을 취할 뿐 다시 새로운 고통을 찾아나간다. 성급하게 뜨는 샛별처럼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차 있다.


오랜만에 헤세의 에세이를 읽었다. 휴! 이분은 정말 표현의 마술사이다. '한 편의 일기'를 읽다가 병환 중에서도 육체와 정신의 고통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 하나 하나를 어떻게 이렇게 허투루 놓치지 않고 때론 무심하게 때론 아름답게 때론 적절하게 묘사할 수 있었는지 감탄하게 된다. 많이 아파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시간의 육체적 괴로움과 순간 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과 두려움을 다시 기억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한땀 한땀 관찰하면서 알아차리고 성찰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고통은 고통이 아니고 관찰 대상일 뿐이다. 예술적 명상가가 아닌가? 이건 뭐 경이로운 명상 일기다.


헤세의 마음을 엿보다


시작하며 | 헤세의 연금술 | 뻐꾸기 소리는 배신하지 않는다. | 인내심 놀이 | 노인의 향기 | 50세 헤세의 유머 | 헤세가 죽기 전 날 밤 썼던 시 | 바람 결의 감촉 | 다시 시작하는 가을 몸맞이 | 내몸 아닌 내몸 같은 | 색채보다 감촉 | 닮은 꼴의 헤세와 융 | 방외 화가 두 사람의 풍경화 | 헤세가 사랑한 음악 1 | 헤세 정신의 곳간 | 요즈음 젊은 것들은...과 변화에 발맞추기 | 하리 할러의 꿈을 분석하며 (황야의 이리1) | 헤세의 아니마(황야의 이리2) | 왜 사냐면 웃어야지요(황야의 이리3)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괴로움과 번뇌속의 위안 | 기억의 가치 |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차 있다 | 죽음에 관한 단상 | 가면 살이 | 백일홍 쇠퇴기 |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차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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